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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수 없이 산다

toto le heros 2009. 11. 28. 04:45


 별 일 없이 사는 가수, 장기하를 내가 목격;한 것은 공연장에서가 아니라 노상에서였는데.. 한 번은 종로근처였고 한 번은 스브스에서 일하던 때 방송국 로비에서였다. 처음 그가 장기하 라는 것을 알아보았던 때는 아직 앨범이 나오기 전으로, 홍대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서울대생 뮤지션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러다 나름 방송에도 출연하고 여기저기서 인지도가 높아진 뒤여서였는지.. 방송국 로비의 장기하는 카메라 마사지를 제법 받은 말쑥한 엘리트간지의 연예인처럼 보였달까. 아마 라디오에 출연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을테지.
 유명해지기 전의 그에게서는, 일테면 같은 전공을 공부한 다른 가수들..예컨대 이적이나 성시경에게서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사회학이 묻어나는 표정(일테면 마르크스의 초상에서나 만나볼 법한 시크함?-_-)을 찾을 수 있었다. 허나 행인지 불행인지 그즈음의 그의 눈빛에서는 마르크스는커녕 스펜서도 느껴지지 않더라. 물론 그의 외양과 행간에서 촘스키를 찾든 피터 드러커를 찾든 그건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 것일 게다. 하여 사실 그때 나는 그게 좀 부러웠는데.. 요새 유행하는 말로 그에게서는 '위너 간지'가 흘렀다(실제로 키도 컸고-_-).
 어쩌면 이런 느낌은 처음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홍대 마플 주변에서 마주친 '미선이'의 조윤석과 이후 대학로 라이브극장 주변에서 마주친 '루시드폴' 조윤석에게서 느껴지던 어떤 차이..와도 비슷하다. 그 뒤 조윤석은 스위스로 떠난 뒤 돌아왔다. 책을 내고 명성을 얻고 등등. 물론 여전히 장기하와 조윤석은 '인디펜던트'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에 가깝겠지만.. 그리고 여전히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음악이 좋지만, 마치 헤어진 연인이 잘나간다는 소식을 듣게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스물일곱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퍽이나 무참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도 난 세상이 마냥 고까운 마음이다. 결국 스스로의 부덕이지만서도.. 연말쯤이 되니 결국 한 해가 이다지도 심상하게 지나갔다는 것에 새삼 치를 떤다. 아니, 사실 치를 떤다는 표현은 그냥 그렇다는 말일 뿐이다. 사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왜냐 하면, 나는 별 수 없이 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스물일곱이란 나이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냥, 그 정도 나이를 먹으면 혼자서도 세상을 전부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교과서에 적힌 이야기들, 일테면 경제정책의 수립이나 민족문화의 창달 따위가 내 손끝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허나 내 삶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기회를 잃어가는 것이고 더하여 하나씩 패배를 늘려가는 일에 다름아닐뿐이다. 언제부턴가 상실과 포기가 쉽고 익숙하다. 그냥 그렇게 지나가고 마는 것들을 쟁여놓는 게 인생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 나는, 절반쯤은, 그동안 살고 싶었던 인생의 어떤 방식을 포기한 채, 노동력을 생산하는 기구로서의 신체를 저당잡혀 나머지 인생의 대손충당금을 벌어들이는, 그렇고 그런 인생의 세계로 아주 편안히 진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교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그간에는 그토록 근사하게 살고 싶어했지만, 이젠 그걸 내놓고 이렇게 품위 없이 살게 되었으니, 그냥 자동적으로 모든 게 다 되어야 한다는 알량한 보상심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기실 그때 이미 모든 게 결판이 난 셈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응당 모든 걸 다 걸어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나도 보통 사람일 뿐이었으니, 그따위 케세라세라 자세로 직장인이 되어 등따숩고 배부를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반칙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단 한 군데도 나를 고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정당한 일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고까움을 느끼는 내가 아직 덜 자란 거겠지. 그러나 다시 한 번 그럼에도, 가끔씩 마주치는 '위너 간지'들의 세상의 단면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그런 세상이 부럽다고 해서 그런 삶을 쟁취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제는 좀처럼 없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늘 내가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협상력을 과대평가하곤 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당장 취업이 안되서 우울하고, 근사한 커리어가 없어서 쪽팔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쉽게 얘기하면 왕자병이랄지 교만일는지도 모르겠다. 별일없이 사는 장기하가 부럽고, 책을 두 권이나 낸 조윤석이 부러울 수도 있겠다. 블라인드를 치고 어두컴컴한 방 침대에서 기어나오지 않는 잉여라이프인 내 삶은 하잘것없이 가소로운 것일 수도 있겠다. 당장 먹고 죽을 돈이 없어서 하루에 서너시간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고 서너가지의 알바자리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 내 삶보다 훨씬 숭고한 것이고 가치있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이런 말이 역겹고 우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삶이 숭고하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가치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내 몸의 항상성이 아니라, 내 마음의 의지대로 살고 싶을 뿐이다. 미미수족관의 두달된 금붕어가 뻐끔거리는 것과 태평양 3천미터 심해에서 향유고래가 유영하는 것이 같은 의미라고 한다면, 그것이 인간의 삶과 꼭 같다면, 그래서 나는 그냥 별 수 없이 산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기를 바랄뿐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내가 돈이 없고 능력이 없어 매일매일 일을 하며 살고 있다거나, 혹은 돈이 차고 넘쳐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거나 하는 가정은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나는 그 지경에 다다랐다. 내 말에 우스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스운 일일 것이다.



 오늘 두군데서 나를 불렀다. 한 군데에는 공부 핑계를 대고, 다른 한 군데에는 선약을 핑계로 댔다. 그러고선 동네에 사는, 스브스에서 일하는 박지영을 만났다. 오래전부터 밥을 사기로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박지영이 워낙 바쁘기도 해서. 우연찮게 백화점 지하에서 그때 함께 일했던 피디님과 작가님을 만나, 밥을 사러 나간 내가 도리어 밥을 얻어 먹었다. 피디님은 농반진반으로, 피디 공부 하다 안되면 와서 작가로 일해 보란다. 솔깃해지면서도 쫄깃해지는 이야기다. 두산매거진에서 탈락 메일이 온 다음날, 편집장님('님'자를 붙일까말까 고민하다가 또 붙이고 만다. 이 간사한 마음이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와 기분이 비슷했다. 모르겠다.

 오늘은 원래 일찍 잠들려 했다. 잠시 후에는 우리 학교 대학원에 면접 시험을 보러 간다. 커뮤니케이션 전공 석사과정. 사실 난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게 없다. 학부 2학년 수준의 지식 정도로 보면 될 테다. 떨어져도 할 말은 없다. 공부를 하려 했지만, 4년간 배워야 했을 무수한 이론의 구체성을 하루 사이에 볼 수 있을리가 없다. 그냥 미욱하게도, 입고 갈 옷만 정했다. 다들 면바지에 캐주얼코트를 입고 오겠지만, 난 새로 산 양복을 골랐다. 애당초 산 까닭이 면접용, 이었지만 2번 밖에 입지 못한 게 아쉬워서다.

 새벽 5시다. 2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날 수 있을까. 



 이토록 많은 말을 내뱉고도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단 한 마디도 적지 못한다. 그런 게 삶인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