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와 책읽기
이토록 적나라한 지붕 뚫고 하이킥
toto le heros
2010. 3. 20. 00:26
지붕뚫고하이킥이 오늘 종영. 중간에 일주일치의 에피소드가 결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장 없이 예정된 날짜에 뚝딱 끝이 났다. 덕분에 막판 일주일 분량에는 몇몇 비약들이 눈에 보인다. 엔딩을 둘러싼 여러 논란들은 기실 마지막 대여섯 에피소드들의 낮은 완성도 때문인 듯싶다. 예컨대, 이지훈(최다녤)이 감정선이 영 엉망이다. 갈팡질팡하는 건 갈팡질팡하는 건데.. 22분 안에 억지로 구겨넣으려면 좀 더 타이트한 장면 구성이 필요했고. 등장인물들의 '성장' 이야기들도 중요한테,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라는 파뷸라롤 대입시켜볼 때 '남는 자들', 그러니까 해리, 광수, 준혁, 정음의 성장들 역시 정확히 매조지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 서너개 에피소드를 60분-70분 분량에 압축해 놓고 본다면 괜찮았을 수도 있겠는데.. 25분 이내의 에피소드 플레이를 하다보니 결국 억지스레 서사를 끌어가느라 편집도 좀 망가져 있고, 캐릭터들을 다들 챙길만큼의 시간이 안 나오는지라(9시 뉴스와 일일 드라마가 껴 있는 저녁 방송은 방송시간 연장 편성이 어렵다. 심야 시트콤이면 아마 좀 달랐을 것이다), 좀 성급하게 끝난 듯한 느낌이 든다. '코미디'라는 장르적인 특성만 두고 봐도 유머들도 마무리가 문제가 있고.. 무슨 시네아스트들이나 시도할법한 서사 건너뛰기도 아니고.. 쩝쩝.
이 다음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여튼, 드라마트루기의 가장 주요한 축이라고 할 수 있던 네 사람(순재/자옥은 공간의 주인이었다는 점에서, 세경/지훈은 소위 말하는 '러브라인'의 중심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중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두 사람은 죽으면서 끝이 났다. 이 시트콤의 마지막 장면, 대단한 잔상 효과를 남기며 일도양단처럼 넘어가버린 마지막 프레임(무슨 프랑소와 트뤼포도 아니고..)에 갇힌 두 사람의 죽음은 가만 따져보면 이 시트콤의 모든 등장인물의 운명과 맞닿아 있는 듯 싶다. 그러니까 사실은 이 티비쇼는, 세경의 직접적인 언급대로, 계급 상승 욕망의 필연적 좌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계급을 뚫을 수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거지.
다들 그러려니 해버려서 별 말 안 나오고 있지만, 정말 재밌는 사실은.. 왜 하필 이 시트콤의 제목에서 뚫고자 한 것이 '지붕'이었냐는 거다. 따져보면 이 드라마에서 떠나야 했던 사람들(정음, 세경가족, 인나와 광수 등등)의 유일한 결점은 결국 지붕을 뚫을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가부장적인 계급의 속박을 벗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가부장적인'이라고 한정했다고 해서 성차의 문제만은 아니다. 물론 가만 보면 젠더 문제도 있긴 하지만(일테면 순재는 회사를 딸 현경이 아니라 사위인 보석에게 물려준다, 그 무능한 보석에게), 결과적으로 보면 일가를 이룰 수 있는 능력과 관계된 계급 문제가 결정적이다. 이 드라마의 모든 '헤어짐'은 계급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헤어져 있던 세경부-세경/신애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인나-광수, 세경-지훈, 정음-지훈, 세경-준혁 등등.
세경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보았을 때, 이보다 더 암울한 시트콤 캐릭터는 아마 전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같다. 빚쟁이에 쫓겨서 무작정 상경, 갈곳없이 헤매다가 식모살이 시작, 모든 걸 희생하고 외국으로 가려다가 비명횡사. 연애 한 번 못해보고 말이지. 그녀의 이지훈에 대한 '사랑'은 사실 그녀 캐릭터의 말대로 계급상승의 발버둥이었지. 그러니까 준혁에게도 '공부 열심히 해서 그 대학에 가라'라고만 하는 것이다. 광수와 인나의 헤어짐은 마치 '로마의 휴일' 같지만, 사실 새로운 '지붕'에 들어가버린 인나를 잡지 못하는, 그러니까 다른 지붕을 뚫지 못한 광수의 계급 상승 좌절의 드라마다. 모든 커플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어진 커플은 순재-자옥인데, 이들은 각자의 지붕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유일하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예컨대 드라마의 주요한 갈등 중 하나였던 정음의 학벌 문제 같은 경우도 그렇다. 준혁, 지훈은 그걸 덮어주고 싶어하지만, 현경은 끝내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해결될 수 없는 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나와 광수의 이야기도 그렇다. 인나가 데뷔를 하긴 했지만, 그러면서 또 하나의 억압 속에 들어가야만 한다(사실 쇼비즈의 세계에 대한 과장이 좀 섞여 있긴 하다. 인나가 광수와 헤어지게 되는 이야기는 대단한 비약이었다). 곁다리지만 쥴리엔과 신애의 사랑(?)도 마찬가지고. 그러고보면 가장 평범하게 신파스러운 이야기는 해리와 신애의 우정뿐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결국 계급문제고. '너 이중에 2개 가져' 라고 하고 하필 가장 '계급적인 표지'가 잘 드러나는 엘리자베스 인형을 주는 해리의 센스..도 이 드라마의 인간관계가 사실 계급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드러내준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게 무슨 기분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만듦새와 상관없이 말한다면 이 결말은 참, '슬프지만 진실' 어린 결말이지 싶다. 그들이 떠나간 뒤 남겨진 이들의 성장..해리가 신애에게 선물을 주고 슬퍼하던 장면, 광수가 만화방을 인수해서 사장이 된 사연, 번듯한 대기업 부팀장이된 정음, 어쨌든 대학생이 되서 입대를 하게된 준혁.. 등등을 상상하며 마지막 흑백 프리즈 프레임의 멈추어진 시간들에 각자의 염원을 담는 수밖에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재/자옥은 '나이'를 초월한 '계급'의 힘으로 행복하게 살 것이고, 보석/현경 역시 '나이'를 초월한 '계급'의 힘으로 늦둥이를 볼 것이다. 말하자면 이 드라마에서 뚫린 것은 벽 뿐이고, 이토록 적나라한 드라마에는 '실장님'도 '구준표'도 없다.

컬러로 된 인물들만 상류층이라 행복하게 살아간단 말씀. 존나 적나라한 포스터 아님??
ps. 글 다 쓰고 여기저기 뒤져보니, 한참 전에 세경이 미술관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그림의 제목이 '마지막 휴양지'라고 한다.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을 데리러 차를 끌고 온 남자..를 그린 암울한 색채의 그림이다. 세경이 가려던 곳은 타히티고. 이 그림에 스텐레스김이 제대로 꽂혔던 모양.
2ps. 다 보고 나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냄세가 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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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ps. 밤새 별 얘기가 다 있었던 모양이다. 신세경 귀신설/쌍둥이설 어쩌고 하면서 김병욱 천재..이런 인간도 있고, 완성도가 낮다고 애써 폄훼하는 사람도 있고, 신세경이 나쁜 년이라고 하는 인간도 있다. 생각해보면 첨엔 사람들이 해리만 미워하다가, 나중엔 오히려 '꾸질꾸질 신신애'를 보며 짜증내 했다(사실 나도 좀...-_-). 그러니까 신세경이 뜬금없이 이지훈을 '죽게' 만든 것을, 그리고 본인도 죽은 걸 두고만 볼 수 없는 것. 이런 서사를 인정하기엔 좀 너무 우울하니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서사의 완성도를 깎아내려서 극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다른 내용이 있다는 식으로 왜곡시켜 받아들이거나(쌍둥이설/귀신설), 그도 아니면 걍 캐릭터 개인을 부정함으로써 그런 비극적 최후를 '개인의 윤리'로 정당화하는 것 같다(지옥에서온 식모 신세경 어장관리녀 설). 이런식으로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엔 좀 너무 우울하니까..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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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ps. 생각해보면.. 마지막 프리즈 프레임은 정말 짠한 것 같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세경의 바람이 이루어진 셈이니까. 생각해보니 교통 사고 암시나 3년후 인서트 같은게 죄다 사족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3일 후쯤 어느 날 세경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대충 어떻게 어영부영 사는지 보여주고 다시 돌아와 프리즈 프레임으로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ps. 글 다 쓰고 여기저기 뒤져보니, 한참 전에 세경이 미술관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그림의 제목이 '마지막 휴양지'라고 한다.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을 데리러 차를 끌고 온 남자..를 그린 암울한 색채의 그림이다. 세경이 가려던 곳은 타히티고. 이 그림에 스텐레스김이 제대로 꽂혔던 모양.
2ps. 다 보고 나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냄세가 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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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ps. 밤새 별 얘기가 다 있었던 모양이다. 신세경 귀신설/쌍둥이설 어쩌고 하면서 김병욱 천재..이런 인간도 있고, 완성도가 낮다고 애써 폄훼하는 사람도 있고, 신세경이 나쁜 년이라고 하는 인간도 있다. 생각해보면 첨엔 사람들이 해리만 미워하다가, 나중엔 오히려 '꾸질꾸질 신신애'를 보며 짜증내 했다(사실 나도 좀...-_-). 그러니까 신세경이 뜬금없이 이지훈을 '죽게' 만든 것을, 그리고 본인도 죽은 걸 두고만 볼 수 없는 것. 이런 서사를 인정하기엔 좀 너무 우울하니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서사의 완성도를 깎아내려서 극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다른 내용이 있다는 식으로 왜곡시켜 받아들이거나(쌍둥이설/귀신설), 그도 아니면 걍 캐릭터 개인을 부정함으로써 그런 비극적 최후를 '개인의 윤리'로 정당화하는 것 같다(지옥에서온 식모 신세경 어장관리녀 설). 이런식으로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엔 좀 너무 우울하니까..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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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ps. 생각해보면.. 마지막 프리즈 프레임은 정말 짠한 것 같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세경의 바람이 이루어진 셈이니까. 생각해보니 교통 사고 암시나 3년후 인서트 같은게 죄다 사족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3일 후쯤 어느 날 세경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대충 어떻게 어영부영 사는지 보여주고 다시 돌아와 프리즈 프레임으로 끝났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