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와 책읽기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0. 20. 01:26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영어 제목은 꽤 흥미로운데, <memories of matsuko>, 즉 '마츠코의 추억(기억)'이다. 영화는 마츠코의 조카(이름이 기억이 안나네-_-)가 죽은 마츠코의 집을 찾아가 마츠코 주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마츠코의 일생을 '전해듣는', 일종의 플래쉬백의 콜라쥬 형식을 취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관찰자의 시점에서 진행될 때는 영화가 세피아톤으로 바뀌고, 오히려 플래쉬백 장면들에서는 총천연색이거나 뮤직비디오에서 보는 콘스라스트가 분명한 화려한 색감 따위가 등장한다. 더군다나 군데군데 삽입된 플래쉬백의 나래이터는 마츠코 자신일 때가 많으며, 심지어 플래쉬백 형식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체 이게 누구의 플래쉬백이지?' 라고 여기게 되는 장면이 많다.  마침내 플래쉬백의 종점에 다다르면 '현재'의 장면에서 관찰자와 마츠코가 실대면을 하게 되는데, 이때는 세피아톤이 아니라 내추럴톤이다. 

 요컨대...영화는 어느 다른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들려주는 플래쉬백의 전해 듣기가 아니라, 마츠코라는 유령의 기억들이 전면적으로 재현되고 있는..말하자면 마츠코라는 '유령눈'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심지어 마츠코의 시점숏과 시점숏의 역숏으로 끝맺음된다.
 
 ...개인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이 영화가 상당히 안티-페미니즘 적인 영화라는 점이다. 영화의 주제는 간략하게 요약하면, 일본 근대사에서 나타나는 가정/가족주의의 위기와 대상이자 주체로서의 여성성에 관한 제 문제이다. 마츠코는 항상 남성 응시에서 스스로의 여성성을 재구성하려 하고, 쉽게 얘기해서 남자의 사랑 없이는(그것이 아버지가 됐든 연인이 됐든 간에) 살아갈 수 없는, 수동적인 여성상의 전형이다. 

 일본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몇가지 키워드들(오일쇼크나 매매춘사업의 변화, 새 천황즉위, 경단3형제의 히트, 야쿠자, 그리고 소년 범죄)이 콜라주된 가운데 마츠코는 가족으로부터 밀려나, 안정적 사랑이 결핍된 불쌍한 여성으로 죽어간다. 문제는 이때 가끔 등장하는 마츠코 주변 '남자'들의 아주 불쾌한 일갈이다. 특히 마츠코의 가장 주요한 연인인 (역시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_- 렌 이었나) 제자이자 야쿠자..는 마츠코가 어찌됐건 불가해한 사랑을 나눠주려고 했기 때문에 '신'과 같은 사랑을 한(뭐, 이거, 아가페?-_-) 사람이라고 칭송하고 주인공 역시 거기에 동의한다는 듯한 제스쳐를 한다. 그리고 마츠코가 마지막으로 동일시하는 대상은 아버지의 사랑을 담뿍 받았던 동생 쿠미다. 결국 여자에게는 아버지-남자의 사랑이 제일이고, 어쨌든 여자는 아버지-남자에게 아가페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바쳐야 하는 순정적이고 수동적인 대상으로서의 주체라는 것일까? 영화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균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