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시사상식

dead calm

toto le heros 2011. 10. 23. 00:49
아침바람이 냉장고 문 열고 고개쳐박을 때처럼 콧속을 쨍하니 아프게 하는 시월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올 한해를 얼마나 비루하고 미천하게 살고 있나 짐짓 실감해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새 서른이 차근차근 오고 있고, 나는 죽는둥 사는둥 무신경하게, 주변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잠에서 깨나 다시 잠들때까지 별반 의미없는 섭생나부랭이를 반복하고 있다.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목표의식이 더 불명하다. 심지어 내가 누구를 친애하고 무엇을 대적하는지도 지금은 온통 오리무중이다. 그저 지난날의 가진 관념들이 관성으로 남아 의식무의식적으로 사리를 분별하려 해 보지만, 실은 다 값없는 속단들이고 그래서 실은 죄다 틀려먹은 명제들만 남는다.

이게 자본주의적인, 소외된 삶인가? 맑스니 뭐니 하는 이들의 말을 백날 옮겨놓아도 적당히 먹고 살만한(엄밀히 말해 그렇다고 느끼는) 삶을 사는 필부필부 인생들에게는 그 전언의 진위를 판별할 최소한의 인식적 혹은 도덕적인 여력도 남지를 않는 모양이다. 하긴, 배운 넘들과 배부른 넘들도 다 그모양인데, 정신차릴 틈도 없이 사는 이런 인생에 무슨 성찰과 회의가 깃든단 말인가.

이렇게나 저렇게나 살아가다 문득 이 얄팍한 물질적 토대의 외피가 깨져나가게 되면, 그때그순간 매일 가일층 왜소해져간 존재들은 스스로의 무존재함이 얼마나 가이업고 또 두려울 것인가. 해고 노동자들, 별안간 가족과 동지를 잃은 사람들, 돈 때문에 어떻게 하려 해도 뭐가 안되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공포를 새삼 가늠해보면, 아아, 월급쟁이가 되어가면 그 영업권에 대한 이자비용으로 내 영혼의 일부를 야금야금 떼어갔구나, 내 마음이 순식간에 이리도 가난해져갔구나 싶어지며, 예전보다 오히려 더 짙은 경제적 공포와 고독에 휩싸이고 만다.

상스럽거나 범속한 일들에 조금 더 대범하고 싶고, 온당하고 경이로운 일들로 감복하는 삶이 되길 바라보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영수증 한장 더 만들어내는 일밖에 없어서 슬프다. 솔직하고 싶고 솔직한 말 사이사이로 살짝씩 수줍어 보고 싶은데, 마음이 울리지 않으며 입술이 떨어지지 않고 눈길은 가 닿지 않으며 손길은 까슬거리는 것이.. 죽은 자처럼, 무덤 속에서 걸어나갔다가 다시 무덤 속으로 돌아오는 것같만 같다. 인간의 연대와 인간의 공감과 인간의 사랑이 무척 그립지만 난 이순간도 또 어사무사한 말을 채운다.

하여 이토록 말이 많으나 이 말들은 모두 다 죽음처럼 조용하기만 하리라 싶어 쓸쓸한 가을이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