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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없는 제국>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6. 02:14
<분별없는 제국>

마이클 만 (2005)
이규성 역
심산
20세기 중-후반(특히 1970년대 이후)에 이르러 미국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세계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지만, 세기가 바뀌면서 또한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두 가지 위기를 겪었다. 하나는 지난 세기의 끝 무렵(1990년대) 고성장-고주가-저실업-고임금-고생산성이 가능했던 이른바 ‘신경제’ 체제가 2000년 3월 나스닥 시장의 붕괴로 상징되는 몰락의 위기를 겪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 제국’이 된 미국이, 소련(러시아)이나 유럽 등 어깨를 견줄만한 상대국이 아니라, 사뭇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소규모의 테러집단에 의해 ‘공격 당한’ 것이다. 하버마스가 “최초의 세계사적인 사건” 이라고 부른 911 사건에서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최초의 ‘세계 제국’에 찾아온 이 두 가지 위기는 신자유주의적 금융경제 체제 재확립 시도와 더불어, 신보수주의(마이클 만의 표현에 따르면 신제국주의) 군사화 기도와 밀접히 관련맺고 있다. 나스닥, 나아가 IT 기반 경제체제의 붕괴는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금융경제의 내적 모순을 드러냈으며, 911테러는 1980년대부터 미국 내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신보수주의(‘네오콘’)의 군사주의와의 연결고리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 했다. 2000년 초 이 두 가지 위기는 미국의 국제 사회에서의 제국으로서의 두 가지 핵심 전략, 즉 신자유주의적 금융 경제 체제의 확산 이행과 군사주의적인 시도를 강화시켰다.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40년간 이어져 온 냉전 체제의 종말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가 세계의 정치 경제를 번영과 평화로 이끌 것을 기대하게 했다. 예컨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의 논자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하며, 정치 이념과 이데올로기 논쟁 대신 자유민주주의의 전세계적 확산이 인류 역사의 종착점임을 주장했고, 실제로 미국경제가 ‘신경제’의 호황을 누리는 등 단기적으로 볼 때 그러한 주장이 합당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의 정치 경제적 상황은 그러한 예상과는 다르게, 남미나 동아시아 각국에 찾아온 경제위기와 더불어, 동유럽, 한반도, 이스라엘과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 등 각국의 정치군사적 분쟁은 오히려 전보다 심화되었다. 일례로 소련 붕괴 후 90년대 약 10년간 클린턴 정부 시기의 미국의 군사 개입은 냉전 체제 때보다 더 많았다 는 사실은, 자유주의적인 헤게모니가 인류 진보의 종언으로서 기능하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미;국 내 금융자본과 군산복합체의 역량이 세계적 수준의 경제 위기와 군사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 되고 있다.
마이클 만의 2005년 저작 <분별 없는 제국 :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적 신군사주의>(이하 ‘본저’, 인용이 필요할 경우 페이지만 표시)은 특히 조지 부시 부자와 그 사이에 낀 클린턴 정부에서 일관되게 추진되기 시작한 군비 강화 경향과 세계 질서간의 함수관계를 자신의 이론 모델인 군사,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 아들 부시 수반의 미 행정부가 수행한 일련의 전쟁과 대북 정책에서 드러나고 있는 특징들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마이클 만은 본저에서, 클린턴 정부 말기부터 나타났으며 아들 부시 정부에서 극에 달한 미국의 신군사주의와 신제국의 추구를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정부였던 클린턴 정부와는 대조적으로 부시 정부는 군산복합체에 친화적인 공화당의 후보였으며, 네오콘 씽크탱크, 유대인 및 기독교 근본주의자와의 유대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 등에서 계속적으로 지적된 군사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부는 두 번 연속 집권에 성공했으며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위시한 네오콘 강경주의자(만의 표현에 따르면 ‘신보수주의자 병아리 매파’)들이 행정부를 장악했다. 이들은 거대국가(나아가 세계)를 관리할 수 있는, 강한 군사력을 갖춘 큰 정부를 지향했으며, 이들은 국내적인 문제(예컨대 경기 부양이나 실업 문제 해결, 복지의 확대, 환경 보전의 문제) 보다는 국제적인 정치를 우선시한다. 특히 이들은 만의 표현에 따르면 ‘제국’을 지향하는데, 특히 영토적 지배 대신 간접적이고 비공식적인 제국을 원한다(34). 즉 미국식 경제 체제나 미국식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175). 즉 네오콘 신제국주의자들의 대외적인 목표는 특히 체제 전환 중인 국가나 새롭게 시장이 형성되는 국가에 대해 민주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국가 체제 확립을 유도하는 것이다(121-122).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냉전 체제의 종식 이후, 미국의 세계 제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특히 부시 행정부는 다자주의 질서나 국제기구를 통한 관계 형성 등을 경시하고, 일방주의의 노선을 택하고 있다(140-146). 특히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선언 등을 통해 군사적인 일방주의와 선제 공격을 통한 예방적인 차원의 전쟁을 정당화 하고 있다. 그 대상은 부시 행정부에 의해 ‘깡패 국가’ 혹은 ‘악의 축’으로 규정된 규모가 작은 반미 성향의 일련의 국가들은 물론, 국민국가적 차원을 갖추지 못한 반미 테러 집단에 이른다. 마이클 만이 서문에서 적시하고 있는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전략 기획들은 미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는 군사력을 선제적으로 또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국익과 세계 체제 안정을 위해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본저는 이러한 경향의 명목, 즉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대한 신제국주의적인 향수 혹은 전망의 허구성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만은 서문에서 세계 제국을 자임하는 미국의 ‘제국’으로서의 역량이 미달함은 물론, ‘자만심에 가득차서 과잉행동을 일삼는 군사주의……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분별력을 상실한(incoherent) 제국’임을 주장한다. 만은 자신의 권력 이론의 유형에 빗대 21세기 신제국주의 미국의 특징을 ‘군사적 거인’이지만 ‘자동차 뒷좌석의 경제 간섭꾼’, ‘정신분열증적 환자로서의 정치’, 그리고 ‘허깨비’같은 이데올로기에 다름아닌, 제국주의적 부정합성(incoherence)의 균열을 담지한 ‘제국 아닌 제국’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경제력은 막강하고, 미국 통화인 달러는 세계의 기축 통화이며, 세계은행의 총재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 역시 미국 행정부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차원에서 미국은 경제적으로 주도권을 갖지만, 미국의 경상수지적자 규모는 현재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무리한 전쟁 수행으로 인해 재정적자 규모 또한 확대되고 있다(95). 부시 행정부는 2기 때부터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10년간 일관되게 추진해 온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하고 대신 약한 달러 정책을 채택하였으며, 2005년부터는 더욱 공세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등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또 엔론이나 월드컴 등 일부 주요 기업의 회계 부정 등으로 인해 미국 경제의 건강성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내부적 역량 뿐만 아니라, 그들이 체제 전환국이나 빈국을 포섭하기 위해 기획하여 제공하는 원조 프로그램의 수준은 매우 하찮은 것이며, 내용적으로도 그 대부분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등 불공정하다. 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위시하여 확산 전파하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시장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이론의 기도와는 다르게 각 국가의 이익을 증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내외의 계급을 분화하고 나아가 갈등의 원인이 되며, 의도치 않은 결과로서 신자유주의-시장자본주의-세계화의 정점에 서 있는 미국에 대한 반미감정의 확산의 원인이 된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반미 감정은 거의 대중적인 코드가 되어 있으며, NAFTA의 주요 블록인 멕시코에서 좌파 세력의 득세는 물론 중남미 대다수의 국가가 반미 성향의 정부가 구성되고 있다(이를 테면, 전통적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물론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띠나의 키르치네르, 칠레의 바첼렛, 파나마의 토리호스, 니카라과의 오르떼 정권이 모두 좌파 정부이다).
제국주의적 정치 역시, 탈식민화된 국민국가의 민족주의와 다자주의 경향으로 인해 그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다(“민족주의 시대에 제국의 재량권은 제한되어 있다”, 165). 특히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수행한 전쟁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치의 불가능성은 방증되었다. 전쟁 수행 능력은 별개로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의 불완전한 전후 평화(257)를 해소하는 데 실패한 것이나 이라크에서의 평화 정착(391)에 실패한 것은 미국의 군사 개입이 침공과 체제 전복에서는 성공적이었을지언정 정치적인 헤게모니 구축 혹은 평화와 질서 구축을 위한 전략이 부재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 민족주의 담론의 공고화와 더불어 제국은 더 이상 제국의 대리 역할을 하는 협력/조력자들을 찾아낼 수 없으며(148), 대리국가를 만들어내더라도 이스라엘의 경우(165-169)에서나 아프가니스탄의 군벌과 같이 미국에 불복종하며 폭력과 혼돈을 야기한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략은 따라서 분열적이며, 미국의 정치력은 일방주의, 동맹주의, 다자주의 등을 오가며 분열증적인 양상을 보인다.
또 미국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중동지역에 이식하는 것을 명분으로 하지만(175), 그러나 중동지역의 민족주의로 인해 도전받고 있다. 미국 제국 헤게모니의 위상은 미약해졌으며(174), 미국은 제국주의 대상국의 민족주의, 종교주의의 도전으로부터 스스로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구 시대의 제국주의적 제국들과 제국주의 질서에 비한다면, 유례없는 ‘세계제국’으로서의 미국의 경제적 기반은 세계적인 경제 수준에 미루어 볼 때 기반이 취약하고, 민족주의적인 질서로 재편되어 있는 21세기의 민족 국가들에 대해서는 다자주의와 일방주의 원칙 사이를 배회하며 동시에 국내적인 정치적 무능을 드러내고 있으며, 나아가 국외적으로도 자신의 비공식적 제국의 영역에 평화와 번영을 이끌 전략적 역량도 없다. 또 탈식민시대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압도할만한 (문화적, 인종적) 헤게모니의 지반도 없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가 일관되게 집착했던 것은, 그나마 압도적인 역량을 갖춘 군사적인 부분이다. ‘스타워즈’, 미사일방어계획(MD), 핵무기 보유 등이 그 일환이며, 그러한 과정에서 미국의 군비지출은 막대하다. 만은 본저에서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소개하고 있는데(41), 미국의 군비지출은 차하위 24개국 군사 예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으며, 미국이 적으로 지목한 ‘깡패 국가’의 군비를 모두 합한 것의 25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군사주의 역시 도전받고 있다. 만이 서문에서 적고 있듯(37) 찰머스 존슨이 말한 역풍(blowback)에 시달리고 있다. “탈콧 파슨스가 지적했듯이 합의에 의한 권위와는 달리 생경한 힘 그 자체는 ‘수축적’이다.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그 힘은 급속하게 수축한다”(145). 또 미국의 군사력이 공식적 식민국가 유지를 위한 평화 정착 전략을 수행할 역량이 없기 때문에(58-60), 화력에 의존한 군사적 승리는 가능하지만 정치적 준비에 소홀했고, ‘반대 세력을 강화시켜준다(431)’. 또 ‘약자의 무기’는 911 테러는 물론, 영국의 지하철 테러나 스페인에서의 기차역 테러 등의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 즉 네오콘 신제국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군사적 우위 자체에도 그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만의 주장대로, 미국의 군사화와 제국 추구는 미국의 공화국(republic)으로서의 도덕적인 정당성을 희석시켰고, (만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유령’에 가깝다. 이라크 공격과 대북 강경책 등은 테러와의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시작’한 것이 되었으며,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순조롭게 ‘발을 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지경이다. 미국 내에서는 물론, 유럽 각국에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반미 시위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한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된 부대에서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조기 철수에 대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수행이 장기화됨에 따라 금융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한 사회보장제도(특히 연금 제도) 개혁이나 불법이민자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했고, 공화당은 12년만에 양원 모두를 민주당에 넘겨주었다.
상원에서 민주당의 압력이 커짐에 따라 조지 부시 행정부의 주요 세력이었던 신제국주의자들, 특히 만이 본저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했던 각료들도 연이어 퇴진하고 있다. 이라크전 장기화와 사상자 확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사임한 것을 필두로, 존 볼튼(유엔주재 미국대사), 더글러스 페이스(국방부 정책차관), 잭 크라우치(NSC 부보좌관)은 물론 스티븐 캠본(국방부 정보담당 차관), 로버트 조지프(국무부 군축담당 차관) 등이 사임했다 . 또 신제국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가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중도 하차함에 따라, 미국의 군사주의는 물론 신자유주의적 금융경제의 세계화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현재 부시 행정부를 이끌고 있는 것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실용주의 외교파’이다. 라이스 주도의 실용주의 외교파는 최근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재개했으며, 그간 미국이 ‘악의 축’의 하나로 비난해 왔던 이란과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도 시도하고 있다. 신제국주의자들이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한다면, 이들 실용주의 노선이 오히려 더 현실주의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만이 책의 말미에서 “현실의 불완전하고 어지러운 세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실용주의가 필요하다”(444)라고 역설한 것과 맞닿는다. 라이스를 비롯한 부시 행정부 내의 실용주의 노선이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만,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이끌어낸 213 대책이나 이라크 안정화 대책 회의에 ‘깡패 국가’의 일원인 이란과 시리아가 참석한 것, 팔레스타인 내전 중재안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한 것 등에서 미루어 볼 때 미국이 이전의 제국주의적인 방식이 아닌, 달라진 전략을 채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네오콘-신제국주의 세력이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정치 경제적 이해 관계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비록 미국이 각종 회계부정이나 재정 불건강 등으로 경제적인 역량이 침체되어 있고, 장기적인 전쟁 수행으로 반전 분위기가 확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다. 미국은 조합주의가 아니라 시장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금융 주도의 신자유주의-자본주의-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이며, 미국이 전세계적인 금융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는 금융 패권 국가이다. 또 네오콘 세력과 연계된 군산복합체 세력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에너지 확보를 위한 전쟁 수행의 가능성은 아직도 열려 있다. 아직 전쟁수행 단계에 돌입하지 않은 북한과의 핵 협상과는 달리, 중동 문제의 기저에는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문제와 이스라엘의 문제가 보다 핵심적이고, 이라크, 이란, 시리아, 레바논 등 다수의 국가와의 관계에서 보다 다차원적인 함수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일원적인 노선 변경은 어려울 것이다. 즉 금융자본주의의 동요와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에 의해 어떤 새로운 변수가 도출될지는 평가하기 어렵다.
2007년 현재 유럽의 기축을 담당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가 수반이 교체되었고, 하반기에는 미국과 더불어 한국 역시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 파병과 대북문제 등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균형점을 잡기 어려운 문제들과의 갈등을 조정해야 했다. 마이클 만이 본저에서 지적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은 만의 분석보다 더욱 빠르게 해체되고 따라서 한반도 정세에서 그 영향력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보자면, 탈냉전과 더불어 나타난 제국주의-일방주의 외교노선의 부시 행정부 이후에 올 미국 행정부의 성격과 그 영향을 예측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올해 한국은 한미간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더불어, 군사 정치적으로 한미동맹관계에서의 변화를 요구하거나 요구 받고 있다. 한반도, 나아가 중국과 일본 등이 끼어든 동북아라는 공간에서 어떤 가능성이 가능할 것인지를 전망해야 할 일이다.

마이클 만 (2005)
이규성 역
심산
20세기 중-후반(특히 1970년대 이후)에 이르러 미국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세계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지만, 세기가 바뀌면서 또한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두 가지 위기를 겪었다. 하나는 지난 세기의 끝 무렵(1990년대) 고성장-고주가-저실업-고임금-고생산성이 가능했던 이른바 ‘신경제’ 체제가 2000년 3월 나스닥 시장의 붕괴로 상징되는 몰락의 위기를 겪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 제국’이 된 미국이, 소련(러시아)이나 유럽 등 어깨를 견줄만한 상대국이 아니라, 사뭇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소규모의 테러집단에 의해 ‘공격 당한’ 것이다. 하버마스가 “최초의 세계사적인 사건” 이라고 부른 911 사건에서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최초의 ‘세계 제국’에 찾아온 이 두 가지 위기는 신자유주의적 금융경제 체제 재확립 시도와 더불어, 신보수주의(마이클 만의 표현에 따르면 신제국주의) 군사화 기도와 밀접히 관련맺고 있다. 나스닥, 나아가 IT 기반 경제체제의 붕괴는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금융경제의 내적 모순을 드러냈으며, 911테러는 1980년대부터 미국 내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신보수주의(‘네오콘’)의 군사주의와의 연결고리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 했다. 2000년 초 이 두 가지 위기는 미국의 국제 사회에서의 제국으로서의 두 가지 핵심 전략, 즉 신자유주의적 금융 경제 체제의 확산 이행과 군사주의적인 시도를 강화시켰다.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40년간 이어져 온 냉전 체제의 종말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가 세계의 정치 경제를 번영과 평화로 이끌 것을 기대하게 했다. 예컨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의 논자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하며, 정치 이념과 이데올로기 논쟁 대신 자유민주주의의 전세계적 확산이 인류 역사의 종착점임을 주장했고, 실제로 미국경제가 ‘신경제’의 호황을 누리는 등 단기적으로 볼 때 그러한 주장이 합당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의 정치 경제적 상황은 그러한 예상과는 다르게, 남미나 동아시아 각국에 찾아온 경제위기와 더불어, 동유럽, 한반도, 이스라엘과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 등 각국의 정치군사적 분쟁은 오히려 전보다 심화되었다. 일례로 소련 붕괴 후 90년대 약 10년간 클린턴 정부 시기의 미국의 군사 개입은 냉전 체제 때보다 더 많았다 는 사실은, 자유주의적인 헤게모니가 인류 진보의 종언으로서 기능하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미;국 내 금융자본과 군산복합체의 역량이 세계적 수준의 경제 위기와 군사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 되고 있다.
마이클 만의 2005년 저작 <분별 없는 제국 :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적 신군사주의>(이하 ‘본저’, 인용이 필요할 경우 페이지만 표시)은 특히 조지 부시 부자와 그 사이에 낀 클린턴 정부에서 일관되게 추진되기 시작한 군비 강화 경향과 세계 질서간의 함수관계를 자신의 이론 모델인 군사,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 아들 부시 수반의 미 행정부가 수행한 일련의 전쟁과 대북 정책에서 드러나고 있는 특징들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마이클 만은 본저에서, 클린턴 정부 말기부터 나타났으며 아들 부시 정부에서 극에 달한 미국의 신군사주의와 신제국의 추구를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정부였던 클린턴 정부와는 대조적으로 부시 정부는 군산복합체에 친화적인 공화당의 후보였으며, 네오콘 씽크탱크, 유대인 및 기독교 근본주의자와의 유대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 등에서 계속적으로 지적된 군사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부는 두 번 연속 집권에 성공했으며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위시한 네오콘 강경주의자(만의 표현에 따르면 ‘신보수주의자 병아리 매파’)들이 행정부를 장악했다. 이들은 거대국가(나아가 세계)를 관리할 수 있는, 강한 군사력을 갖춘 큰 정부를 지향했으며, 이들은 국내적인 문제(예컨대 경기 부양이나 실업 문제 해결, 복지의 확대, 환경 보전의 문제) 보다는 국제적인 정치를 우선시한다. 특히 이들은 만의 표현에 따르면 ‘제국’을 지향하는데, 특히 영토적 지배 대신 간접적이고 비공식적인 제국을 원한다(34). 즉 미국식 경제 체제나 미국식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175). 즉 네오콘 신제국주의자들의 대외적인 목표는 특히 체제 전환 중인 국가나 새롭게 시장이 형성되는 국가에 대해 민주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국가 체제 확립을 유도하는 것이다(121-122).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냉전 체제의 종식 이후, 미국의 세계 제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특히 부시 행정부는 다자주의 질서나 국제기구를 통한 관계 형성 등을 경시하고, 일방주의의 노선을 택하고 있다(140-146). 특히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선언 등을 통해 군사적인 일방주의와 선제 공격을 통한 예방적인 차원의 전쟁을 정당화 하고 있다. 그 대상은 부시 행정부에 의해 ‘깡패 국가’ 혹은 ‘악의 축’으로 규정된 규모가 작은 반미 성향의 일련의 국가들은 물론, 국민국가적 차원을 갖추지 못한 반미 테러 집단에 이른다. 마이클 만이 서문에서 적시하고 있는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전략 기획들은 미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는 군사력을 선제적으로 또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국익과 세계 체제 안정을 위해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본저는 이러한 경향의 명목, 즉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대한 신제국주의적인 향수 혹은 전망의 허구성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만은 서문에서 세계 제국을 자임하는 미국의 ‘제국’으로서의 역량이 미달함은 물론, ‘자만심에 가득차서 과잉행동을 일삼는 군사주의……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분별력을 상실한(incoherent) 제국’임을 주장한다. 만은 자신의 권력 이론의 유형에 빗대 21세기 신제국주의 미국의 특징을 ‘군사적 거인’이지만 ‘자동차 뒷좌석의 경제 간섭꾼’, ‘정신분열증적 환자로서의 정치’, 그리고 ‘허깨비’같은 이데올로기에 다름아닌, 제국주의적 부정합성(incoherence)의 균열을 담지한 ‘제국 아닌 제국’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경제력은 막강하고, 미국 통화인 달러는 세계의 기축 통화이며, 세계은행의 총재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 역시 미국 행정부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차원에서 미국은 경제적으로 주도권을 갖지만, 미국의 경상수지적자 규모는 현재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무리한 전쟁 수행으로 인해 재정적자 규모 또한 확대되고 있다(95). 부시 행정부는 2기 때부터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10년간 일관되게 추진해 온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하고 대신 약한 달러 정책을 채택하였으며, 2005년부터는 더욱 공세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등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또 엔론이나 월드컴 등 일부 주요 기업의 회계 부정 등으로 인해 미국 경제의 건강성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내부적 역량 뿐만 아니라, 그들이 체제 전환국이나 빈국을 포섭하기 위해 기획하여 제공하는 원조 프로그램의 수준은 매우 하찮은 것이며, 내용적으로도 그 대부분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등 불공정하다. 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위시하여 확산 전파하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시장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이론의 기도와는 다르게 각 국가의 이익을 증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내외의 계급을 분화하고 나아가 갈등의 원인이 되며, 의도치 않은 결과로서 신자유주의-시장자본주의-세계화의 정점에 서 있는 미국에 대한 반미감정의 확산의 원인이 된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반미 감정은 거의 대중적인 코드가 되어 있으며, NAFTA의 주요 블록인 멕시코에서 좌파 세력의 득세는 물론 중남미 대다수의 국가가 반미 성향의 정부가 구성되고 있다(이를 테면, 전통적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물론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띠나의 키르치네르, 칠레의 바첼렛, 파나마의 토리호스, 니카라과의 오르떼 정권이 모두 좌파 정부이다).
제국주의적 정치 역시, 탈식민화된 국민국가의 민족주의와 다자주의 경향으로 인해 그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다(“민족주의 시대에 제국의 재량권은 제한되어 있다”, 165). 특히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수행한 전쟁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치의 불가능성은 방증되었다. 전쟁 수행 능력은 별개로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의 불완전한 전후 평화(257)를 해소하는 데 실패한 것이나 이라크에서의 평화 정착(391)에 실패한 것은 미국의 군사 개입이 침공과 체제 전복에서는 성공적이었을지언정 정치적인 헤게모니 구축 혹은 평화와 질서 구축을 위한 전략이 부재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 민족주의 담론의 공고화와 더불어 제국은 더 이상 제국의 대리 역할을 하는 협력/조력자들을 찾아낼 수 없으며(148), 대리국가를 만들어내더라도 이스라엘의 경우(165-169)에서나 아프가니스탄의 군벌과 같이 미국에 불복종하며 폭력과 혼돈을 야기한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략은 따라서 분열적이며, 미국의 정치력은 일방주의, 동맹주의, 다자주의 등을 오가며 분열증적인 양상을 보인다.
또 미국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중동지역에 이식하는 것을 명분으로 하지만(175), 그러나 중동지역의 민족주의로 인해 도전받고 있다. 미국 제국 헤게모니의 위상은 미약해졌으며(174), 미국은 제국주의 대상국의 민족주의, 종교주의의 도전으로부터 스스로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구 시대의 제국주의적 제국들과 제국주의 질서에 비한다면, 유례없는 ‘세계제국’으로서의 미국의 경제적 기반은 세계적인 경제 수준에 미루어 볼 때 기반이 취약하고, 민족주의적인 질서로 재편되어 있는 21세기의 민족 국가들에 대해서는 다자주의와 일방주의 원칙 사이를 배회하며 동시에 국내적인 정치적 무능을 드러내고 있으며, 나아가 국외적으로도 자신의 비공식적 제국의 영역에 평화와 번영을 이끌 전략적 역량도 없다. 또 탈식민시대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압도할만한 (문화적, 인종적) 헤게모니의 지반도 없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가 일관되게 집착했던 것은, 그나마 압도적인 역량을 갖춘 군사적인 부분이다. ‘스타워즈’, 미사일방어계획(MD), 핵무기 보유 등이 그 일환이며, 그러한 과정에서 미국의 군비지출은 막대하다. 만은 본저에서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소개하고 있는데(41), 미국의 군비지출은 차하위 24개국 군사 예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으며, 미국이 적으로 지목한 ‘깡패 국가’의 군비를 모두 합한 것의 25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군사주의 역시 도전받고 있다. 만이 서문에서 적고 있듯(37) 찰머스 존슨이 말한 역풍(blowback)에 시달리고 있다. “탈콧 파슨스가 지적했듯이 합의에 의한 권위와는 달리 생경한 힘 그 자체는 ‘수축적’이다.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그 힘은 급속하게 수축한다”(145). 또 미국의 군사력이 공식적 식민국가 유지를 위한 평화 정착 전략을 수행할 역량이 없기 때문에(58-60), 화력에 의존한 군사적 승리는 가능하지만 정치적 준비에 소홀했고, ‘반대 세력을 강화시켜준다(431)’. 또 ‘약자의 무기’는 911 테러는 물론, 영국의 지하철 테러나 스페인에서의 기차역 테러 등의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 즉 네오콘 신제국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군사적 우위 자체에도 그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만의 주장대로, 미국의 군사화와 제국 추구는 미국의 공화국(republic)으로서의 도덕적인 정당성을 희석시켰고, (만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유령’에 가깝다. 이라크 공격과 대북 강경책 등은 테러와의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시작’한 것이 되었으며,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순조롭게 ‘발을 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지경이다. 미국 내에서는 물론, 유럽 각국에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반미 시위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한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된 부대에서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조기 철수에 대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수행이 장기화됨에 따라 금융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한 사회보장제도(특히 연금 제도) 개혁이나 불법이민자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했고, 공화당은 12년만에 양원 모두를 민주당에 넘겨주었다.
상원에서 민주당의 압력이 커짐에 따라 조지 부시 행정부의 주요 세력이었던 신제국주의자들, 특히 만이 본저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했던 각료들도 연이어 퇴진하고 있다. 이라크전 장기화와 사상자 확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사임한 것을 필두로, 존 볼튼(유엔주재 미국대사), 더글러스 페이스(국방부 정책차관), 잭 크라우치(NSC 부보좌관)은 물론 스티븐 캠본(국방부 정보담당 차관), 로버트 조지프(국무부 군축담당 차관) 등이 사임했다 . 또 신제국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가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중도 하차함에 따라, 미국의 군사주의는 물론 신자유주의적 금융경제의 세계화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현재 부시 행정부를 이끌고 있는 것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실용주의 외교파’이다. 라이스 주도의 실용주의 외교파는 최근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재개했으며, 그간 미국이 ‘악의 축’의 하나로 비난해 왔던 이란과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도 시도하고 있다. 신제국주의자들이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한다면, 이들 실용주의 노선이 오히려 더 현실주의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만이 책의 말미에서 “현실의 불완전하고 어지러운 세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실용주의가 필요하다”(444)라고 역설한 것과 맞닿는다. 라이스를 비롯한 부시 행정부 내의 실용주의 노선이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만,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이끌어낸 213 대책이나 이라크 안정화 대책 회의에 ‘깡패 국가’의 일원인 이란과 시리아가 참석한 것, 팔레스타인 내전 중재안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한 것 등에서 미루어 볼 때 미국이 이전의 제국주의적인 방식이 아닌, 달라진 전략을 채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네오콘-신제국주의 세력이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정치 경제적 이해 관계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비록 미국이 각종 회계부정이나 재정 불건강 등으로 경제적인 역량이 침체되어 있고, 장기적인 전쟁 수행으로 반전 분위기가 확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다. 미국은 조합주의가 아니라 시장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금융 주도의 신자유주의-자본주의-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이며, 미국이 전세계적인 금융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는 금융 패권 국가이다. 또 네오콘 세력과 연계된 군산복합체 세력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에너지 확보를 위한 전쟁 수행의 가능성은 아직도 열려 있다. 아직 전쟁수행 단계에 돌입하지 않은 북한과의 핵 협상과는 달리, 중동 문제의 기저에는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문제와 이스라엘의 문제가 보다 핵심적이고, 이라크, 이란, 시리아, 레바논 등 다수의 국가와의 관계에서 보다 다차원적인 함수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일원적인 노선 변경은 어려울 것이다. 즉 금융자본주의의 동요와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에 의해 어떤 새로운 변수가 도출될지는 평가하기 어렵다.
2007년 현재 유럽의 기축을 담당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가 수반이 교체되었고, 하반기에는 미국과 더불어 한국 역시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 파병과 대북문제 등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균형점을 잡기 어려운 문제들과의 갈등을 조정해야 했다. 마이클 만이 본저에서 지적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은 만의 분석보다 더욱 빠르게 해체되고 따라서 한반도 정세에서 그 영향력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보자면, 탈냉전과 더불어 나타난 제국주의-일방주의 외교노선의 부시 행정부 이후에 올 미국 행정부의 성격과 그 영향을 예측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올해 한국은 한미간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더불어, 군사 정치적으로 한미동맹관계에서의 변화를 요구하거나 요구 받고 있다. 한반도, 나아가 중국과 일본 등이 끼어든 동북아라는 공간에서 어떤 가능성이 가능할 것인지를 전망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