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 리

<두견·화>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2. 19. 02:35

두견․화

더러운 냄새가 난다. 사위가 적막하고 눈이 몹시 어두워서, 빛이 드는 틈이 가늘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저 불꽃이고, 미욱하게도, 어두운 방 가운데 빛을 모으는 한 점 같은 때, 별안간. 그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또 낯익어 이상하다.

“각 대원들은 구보로 접근하라, 선착대는 상황 파악하여 속보하고, 인명 구조와 연소 확대 저지에 만전을 기하라.”

엉덩이가 큰 소방차들은 좁은 골목길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수차례 이어지는 지령을 뇌까리며 나는 들것을 끼고 하릴없이 달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짙은 연기가 맥락 없이 삶의 부산함대로 어지러웠고, 세월을 종양처럼 달고 있는 과밀한 주택가 이면 도로를 소방관들은 랜턴을 끼고 뒤뚱거리며 습격했다.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구경꾼들이 많아졌고, 바닥에는 힘줄 선 팔뚝처럼 팽팽해진 수관이 낡은 주택의 지하로 가는 계단을 향해 어지럽도록 뻗어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 불길이 거세 탈 것을 다 태우지 못하고 검고 짙게 올라오던 연기는 진압이 시작되며 이내 허연 김으로 바뀌고 있었다. 여러 차례 새로운 방수를 개시하는 지령이 오가며 진압은 활기를 띄었고, 화점에 진입한 진압대는 초진을 보고했다.

이윽고 구조대원이 검게 그을린 몸뚱이 둘을 들쳐 메고 어기적거리며 지상으로 기어 나왔다. 선착했던 관할대의 구급대원들은 그것을 인수해 바닥에 모로 눕혀 생사를 확인하고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현장 활동 수칙에 따라 그들을 들것에 나눠담고 골목 바깥의 어둠을 향해 사라졌다.

삶과 죽음이 서로를 왕래하는 시시때때, 제 몸뚱이의 숙명까지 두려워 그것의 안팎이 교통한다는 사실을 뒤집고 싶은 찰나. 그 순간마다 나는 뜻하지 않았던 수많은 죽음들을 상상하곤 했다. 소실되는 삶들은 언제나 내 눈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소환되었던 이 도시의 모든 뜻하지 않는 많은 죽음의 현장을 빠르게 되짚곤 했고, 그럴 때면 나는 돌연 무언가에 눌려 내 속 어디선가 나는 철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아야 했다. 평안히 길을 건너던 소년을 과속하던 화물차가 횡으로 긋고 지나갔고, 오랜만의 재회를 기념하며 희로애락을 소통하던 친구들은 오해로 벼려진 칼날을 서로의 목에 꽂았다. 낙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던 아파트 발코니에는 비관을 비관하여 해를 따라 낙하하는 죽음이 있었고, 귀가한 아버지는 현관을 열고 공중에 떠 있는 아들의 비틀린 발과 길게 내뺀 혀와 목을 감은 제 목에 있었던 넥타이를 보고 답답에 겨워 셔츠의 단추를 뜯어내고 바닥으로 무너졌다. 나는 그때마다 그 죽음의 현장에 증인이 되어야 했다. 지령을 받고 구급차를 대고 그들을 실으며, 뛰지 않는 심장을 터뜨릴 듯 눌러댔지만 그것이 다시 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죽음이 확실한 그들에 대한 소생술은 대개는 수칙에 따른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힘없이 온갖 구멍이 열리는 사체, 귀신은 아마 아연하여 제 살던 몸을 싣고 가는 하얀 구급차 뒤꽁무니를 쫓다 살 곳이 없어 스스로 오열할지도 몰랐다. 불타 죽은 송장, 내장이 터진 송장, 온 피가 마른 송장, 사지를 배배 꼰 송장의 주인 노릇하던 귀신들은 서로를 위무하며 소방서에 사접해 맴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구조대원 하나가 축 늘어진 여자아이 하나를 업어들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 왔다. 아이의 얼굴은 그을려있었다. 아이의 눈꺼풀을 열고 아래턱 아래 굵은 핏줄에 손가락을 댈 때만 해도 습관이 된 단념이 앞섰으나, 아아, 아이의 맥이 잦아드나마 뛰고 있었다.

“살았어요, 아직 살았어요.”

나는 헤뜨게 소리치며 호흡을 확인했다. 가는 숨이 있었다. 조를 이룬 운전원과 나는 들것에 아이를 눕히고 차를 향해 뛰었다. 삶, 삶, 삶, 삶, 삶. 발길이 땅을 차는 소리가 그렇게 났다. 사소하고 우스운 소리였다.

아침에 대원들은 모여 전날의 사태를 복기했다. 진압 작전 상 딱히 문제될만한 것이 없었으나 사람이 둘 죽었다. 다세대 주택서도 흔치 않은 지하 2층에 살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연기고 늦게 피었고, 신고가 늦었다. 좁은 골목길 탓에 중형의 펌프차를 대지 못했지만, 주변 소화전의 점령도 원활했고 초진도 빨랐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소방서의 화재조사계와 경찰의 과학수사계에서는 액체 가연물을 이용한 우발적 방화가 화재의 원인이었으며, 대피할 수 있는 입구 주변에서 최초 발화하여 연소 확대된 것이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고 분석 결론지었다.

직접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남자는 질식과 화상 어느 쪽이 첫 번째 사인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녹았고, 여자는 방에 쓰러져 있어 질식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내가 이송한 여자아이는 살아남았지만, 상태가 나빴다. 얼굴과 팔 주변에 입은 상처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 한들, 기도에도 2도 가량의 화상이 입었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측은함이 들었으나, 곧 잊어야 했다. 잊지 않기에는 지워야 할 개별적인 소실 이편에 있던 삶의 내용들이 항상 무거웠다.

“그래 불은 왜 싸질렀대?”

늙은 부소장이 화재조사계의 김 주임에게 농치듯 묻자 김 주임은 쓰게 웃었다.

“신고한 윗집 사람이 돈 문제로 싸우는 소리가 났대요. 그 여자 죽은 방에 보험 증서 같은 게 여러 장 있고요. 불도 안 컸는데, 그 남자가 술꾼이었어요. 취해서 저질렀죠.”

늙은 진압대원 중 하나가 거들었다.

“그 집 문밖에 빈 소주병이 한 짝은 있대요. 찬 소주병이 뜨건 화염병이 된 게지.”

아침마다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며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는 삶의 경건함이 신께서는 고이 미쁘실까. 출근이 거의 끝나가는 아홉시, 도시의 통근로에서 나는 터덜터덜 집을 향했다.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 역시 축복이자 저주였다. 가까운 곳에 사는 소방관들은 출동 지령이 울린 뒤 제 집 주소를 환청으로 듣곤 했다. 불타 죽는 피붙이를 상상하며 얼굴이 굳다가, 재송되는 목적지가 제 사는 곳에서 먼 곳임을 재차 확인하며 안전장구를 챙겼다.

빈 집의 문을 따고 들어서는 일은 옛날 괴담에 나오는 망각의 강을 건너는 일과 비슷했다. 비번과 당번의 세계는 서로가 서로에 닿아 있지 않으며, 그것이 서로 만날 때란 곧 비상사태를 의미했다. 서로가 서로를 거꾸로 보는 너머의 세계를 나는 잘도 왔다, 갔다, 했다. 아직 어둡고, 그러나 또 밝은 그 시각에 아내는 집에 있다, 없다, 했다.

아내가 출근을 하지 않는 날 나는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고 몸을 씻은 뒤, 커튼을 드리운 방에서 짧거나 길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언제나 매초롬했다. 나는 서로 반대로 누워 성기를 애무하는 체위를 좋아했다. 아내는 때로 그것을 불편해했지만, 나만은 삽입 없이 절정에 이른 뒤 때 모르게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누워 가늘어서 핏줄이 도드라진 아내의 발등을 쓰다듬으면, 꼼지락대는 발가락 사이로 일렁이는 순간의 아른거림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내가 일을 나간 날에 나는 홀로 부엌에 앉아 아내가 출근하기 전 갖춰둔 식탁에 앉아 말없이 먹었다.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친 뒤에, 전날 불이 있는 날이면 꼭 챙겨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불길이 핥고 간, 타고 남는 것들의 냄새가 물에 녹아 하수구로 처박혔다. 그러나 아무리 문지르고 쓰릴 때까지 닦아내도 끝내 그것들은 늘 나를 감싸고 남았다. 내 몸속에 이미 타다 남을 것, 많은 것을 소실시키는 불의 뿌리가 웅크리고 있었고, 어쩌면, 내 몸이 하수구였다. 나는 김이 낀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를 짐짓 불온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많은 것들이 내 몸을 경계로 들어가고 나오면서 차면 또 비워서 있으면 또 없었다.

한심하리만치 지리멸렬한 시간들이 지나, 해가 떨어질 무렵 날이 맑으면 나는 밖에 나가 한 바퀴 돌아 달리곤 했다. 간혹 도로에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들이 지나다녔고 구급차들이 지나다녔고 구조공작차들이 지나다녔고, 그때마다 나는 익은 낯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지만, 갑부와 을부는 서로 만날 일이 없어서 그저 몸을 숨긴 사람처럼 그들에게 굳이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다.

짜게 젖은 몸으로 돌아온 저녁에 아내는 집에 와 있었다. 현관에는 아내가 출근할 때 신곤 하는 구두가 넘어져 있었고, 거실에 둔 오디오에서 아내가 즐겨듣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집안은 등을 밝히지 않고 어두웠다.

“왔어?”

인사를 묻고 스위치를 찾으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식탁의 모습이 뜻밖에도 화려했기에 나는, 짐짓 의아함에 몸을 멈췄다. 늘 보아오던 식탁 위에는 그러나 늘 보던 것과는 다르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처럼 촛불이 세 개 흔들리고 있었고, 꽃병이 서 있었고, 아직 마개를 열지 않는 술병과 목이 가늘고 머리가 큰 잔 두 개가 가지런했다. 주방에서 아내는 멋쩍게 웃으며 씻고 와요, 하고 인사했다. 나는 날짜를 헤아려보았다. 당-비-당-비 하며 일-삼-오-칠-구로 헤아려가는 나의 날짜 개념이 새삼 거북하고 생경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었고, 근래에 또 아무 일도 없는데 아내는 식탁을 꾸미고 헤헤 거렸다.

가볍게 세수를 할까 하다가, 전날의 매캐함이 자꾸 코끝에 걸려 다시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아내는 다가와 손을 잡고 식탁으로 이끌었다. 오랜 시간을 들였을 음식들이 정갈하게 향취를 피우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묻는 내게 아내는 웃으며, 고백을 할 것이 있노라 하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뭐뭐 산부인과 하고 적힌 봉투를 열며 나는 아찔했다.

“이제 아버지가 되는 걸 축하해.”

아내는 연신 웃으며, 제 몸에 생긴 일을 자랑하듯 가슴과 배를 내밀어보였다.

나는 가슴이 무척 뻐근해 왔다. 아내의 임신 사실이 적혀 있는 종이들을 읽으며 나는 아내를 향해 억지스럽게 기뻐하는 얼굴을 했다. 우리는 앉아 포도주를 한 잔씩 나눠먹었고, 우리 신분에 지나치게 좋은 음식들을 나누며 일곱 달 반 뒤 태어나게 된 아이에 대해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면 요 며칠 사이 돌연 속이 좋지 않다고 해 오던 아내의 말에 너무 무신경했던가 했지만, 그것은 모두 까닭이 있는 일이었다.

일 년여의 연애 뒤, 결혼하자마자 신혼 밤부터 아이를 갖자고 채근하던 아내를 나는 금전상의 이유로 설득하곤 했다. 우리는 내 뜻에 따라 꼬박꼬박 피임에 철저했다. 그러자 아내는,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기로 했던 것을 취소하고 한 달 만에 일자리를 구했다. 아내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내가 설득할 때 말했던 금액 얼마얼마를 모은 통장들을 내 앞에 제시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합의에 의해 피임을 중지했고, 삽입성교의 횟수를 늘렸다. 그리고 이윽고 아내는 임신했다. 결혼한 지 1년 반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과연, 누구의 씨앗을 품었다는 말인가?

아내를 만나고 연애를 시작할 무렵, 겨울을 앞두고 나는 수술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IMF시대에 이르러 출산과 관련된 나라의 정책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 당국은 여측이심을 드러내며 정관수술에 대한 의료보험 혜택을 중지했다. 해가 바뀌면 같은 수술에 열 배가 넘는 돈을 들여야 했고, 나는 이제껏 자녀를 둘 생각이 없었다. 나는 연금이 나오는 공무원이었고 무엇보다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재간도 자신도 의향도 없었다. 수술 후 이따금 하는 정기검사에서 정자는 검출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우스웁게 뿌듯했다. 나는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태교를 이유로 마시지 않은 포도주를 모두 비웠다. 아내가 잠든 뒤에 나는 침대를 빠져 나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웠다. 유독 연기를 힘껏 빨았다. 적막한 아파트촌의 풍광 가운데, 내 눈의 원근법이 닿지 않는 저쪽 맞은편 귀를 막으면 들려올 것 같은 온갖 비명과 죽을 때 나는 시큰하고 비릿한 냄새와 신조차 어쩌지 못할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을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며칠간 소방관들은 두 남녀가 죽고 한 아이가 중상을 입은 화재에 대한 기묘한 소문들을 인사 대신으로 주고받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객쩍고, 들어서 언짢은 종류의 이야기였다. 화마로 인해 살아남거나 죽은 사람들의 뒷모습 가운데에는 늘 불타 사라지는 지점이 있었고, 소방관들은 늘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되거나 끝나는 이야기에 무심한 말들로 분주했다. 방화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관계로, 이내 수칙에 따라 간부들을 중심으로 특별조사반이 구성되었다. 조사반은 현장 감식과 더불어 피해자들의 친인척 관계와 보험 관계 등을 조사했고, 살아남은 아이를 후원해줄 사람이 누군지를 파악에 나섰다.

죽은 조명관은 올해 나이 서른둘이었고, 거실 바닥에 누워 용융되고 있었다. 신참 구조대원 박은 그를 끌어내기 위해 팔을 잡았을 때, 살가죽이 힘없이 벗겨져 나갔고, 그래서 토악질을 할 뻔했다고 중얼거렸다. 감식에 따르면 그 곁에는 라이터에 쓰는 기름을 담는 플라스틱 통이 녹아 늘러 붙은 흔적이 있다고도 했고, 바닥에 점점 뿌려진 모양으로 탄 화흔은 즉 액체 가연물을 임의 분사한 뒤 착화, 연소된 것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죽은 이유화는 올해 나이 서른이었으며, 안방 침대에 상의를 기대 엎드린 채로 발견되었다. 구조대원 안이 발견 즉시 이유화를 업고 현장을 빠져나왔지만, 관할 구급대원 이에게 인계했을 때 이유화는 이미 맥박과 호흡이 정지되어 소생이 어려운 상태였다. 주요한 사인은 질식이었다.

신고자에 따르면 조명관과 이유화는 화재가 일어나기 30분전쯤, 돈 문제로 크게 다투었다고 했다.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흐느끼는 소리가 났고, 유리병 따위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으며, 곧이어 잠잠했다고 했다. 깨진 유리병은 집 현관 옆에 쌓인 숱한 소주병 가운데 한둘이었을 것이다. 특별조사팀과 경찰이 찍어온 다량의 사진 가운데, 이유화가 죽어있던 침대 근처에 널브러진 몇 장의 보험증서가 다툼의 원인에 대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구조대원 강이 구하고 내가 이송하여 목숨을 건진 정희정은 다섯 살 난 여자아이였다. 조사반과 경찰은 부부와 딸이라 생각한 정희정과 조명관의 성씨가 다름을 의아하게 여겨 조사한 바 정희정은 이유화의 딸이었고, 조명관은 이유화와 내연관계에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유화의 남편 오수호는 현재 이유화와 별거, 지방에 있는 창고 따위에서 잡역을 하는 자로, 경찰이 연락하자 그는 덤덤히 그러냐고 되묻더니 지금은 바쁘니 이틀 뒤에나 출두하겠노라 통보했다 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그렇소, 하고 담당 형사가 쏘아붙이듯 묻자, 그는 그저 딸이 살았으니 됐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이러이러한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자 아내는 오수호를 힐난했다.

“그럼 죽은 남자는 여자랑 무슨 관계야?”

“거기 대충 뭉개면서 같이 살았지.”

“그래도, 부인이 죽고 딸이 중태인데 가장이 책임이 없는 것 아냐? 아무리 다른 남자랑 살고 있었대도.”

“마누라가 딴 놈팽이와 배가 맞아 놀아났는데. 게다가 그 딸이란 아이도 정가인데, 남편은 오가야. 제 해가 아닌데 정이 있을 리 없지.”

나는 그리 말하고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나는 오수호가 죽은 이유화와 별거하며 사는 동안, 이유화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혹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별거했으리라 생각하는 쪽도 괜찮았다. 정희정은 아마 이유화의 전남편에게서 얻은 아이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몇 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남자를 셋이나 품었다는 뜻이 됐다. 오수호가 이유화와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내의 외도에도 이혼하지 않는 남편도 간혹 있으니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아내가 깎아주는 과일을 집어먹으며 스캔들과 사망사고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았고 스포츠뉴스와 아내가 즐겨보는 연속극까지 다 보았다. 때때로 거실 뒷벽 액자 옆에 걸어둔 시계가 뻐꾹 꾹꾸 하고 열 번 울고 열한 번도 울었다. 신혼 때 입사 동기 하나가 집들이 선물로 들고 온 제법 큰 시계였다. 아내는 연속극을 보다가, 아이가 생겼으니 이제 술 담배를 끊으라 했다.

“소방관이 연기를 마셔야 용감해지지.”

“자기가 무슨 소방관이야. 기껏해야 술 취한 아저씨들 깨워서 집에 보내는 것밖에 안 하면서.”

침실로 돌아와 등을 끄고 자리에 누웠으나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누운 아내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내 쪽을 향해 모로 누운 아내를 물끄러미 보다 문득 거칠게 깨워 삽입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소름끼쳤다. 나는 임신한지 두 달 반 되었다는 이 여자가 두 달 반 전 나눴을 익명의 성교에 대해 생각했다. 이틀에 한 번 지아비 없이 지낼 수 있는 하는 젊은 어른의 여자로서 능히 그럴 법하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내가 아내와 나눈 성교의 횟수를 헤아렸고, 아내가 누군가와 나눴을 성교의 횟수를 헤아렸다. 저급한 욕망의 크기는 헤아린 숫자만큼 자라났고, 나는 속옷 아래로 불거진 것을 만지작거리다 슬그머니 침실을 나와 발코니에 섰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일까 말까를 다섯 번 여섯 번 고민하다, 한 대를 다 피우고 다시 멍했다.

다음 날 아침 먼저 집을 나선 나는 그러나 소방서로 가지 않고 이십사 시간 불이 들어오던 근처 성인 오락실에서 릴 게임을 했다. 경험이 없어 지갑에 있던 돈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락실 문을 나서, 아내가 출근길로 삼지 않을 만한 곳을 골라 쏘다녔다. 아내에게는 오늘 휴무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다.

아내는 시내 백화점에 부속된 문화센터에서 동화구연을 가르치는 일로 돈을 벌었다. 중년의 주부들과 할머니들이 주로 그 강의를 들었다. 내가 들은 아내의 일상은 이랬다. 아내는 하루에 두어 번 있는 강의를 마치면 친한 수강생들과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떤 뒤 헤어져 층을 옮겨 백화점 스포츠센터에 있는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고, 지하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장을 봐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내의 마지막 강의가 끝날 시각을 헤아려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삼년쯤 전이었고, 그때 아내는 유치원 강사로 일했다. 한 줄 기차 두 줄 기차 하면 한 줄로 두 줄로 서서 배시시 웃는 꼬마들을 데리고 아내는 소방서로 견학을 왔고, 그때 신참이었던 나는 아이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주고 소화기 사용법을 가르친 뒤 소방차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침실 화장대에 있는 사진에서 나는 어린아이 둘을 양팔에 한쪽씩 안고 얼뜨게 웃었고, 아내는 다른 강사들과 반대편에 서서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다.

“파랑새 반 친구들, 소방관 아저씨 말 잘 들어야지. 안 그러면 잡아가신다.”

“잡아가지는 않아요. 못해요. 저희는 사법경찰권이 없습니다.”

그리 같잖은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아내는 그때 나를 보고 무안해 했다. 나는 아내의 무안함이 귀여웠다. 그러나 아내는 씩씩하게, 지지 않고 아이들에게 소방관의 무서움을 역설하며 줄을 세우는 일에 열심이었다. 소방관 아저씨한테 혼날래? 소방관 아저씨 무섭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구급대로 발령받았다. 발령 첫날 오전 열시 사십삼 분에 접수한 구급 요청에 대한 지령을 받고 첫 출동을 갔다. 지령실은 젊은 여성이 한 유치원에서 하혈한 뒤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 했다. 나는 아랫배를 감싸 쥐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아내를 상자 같은 구급차에 실어 인근 병원 응급실로 날랐다.

“소방관 아저씨가 잡으러 오셨네요. 내 말이 맞았네.”

아내는 식은땀을 흘리며 가누지 못하는 몸을 내게 의지했다. 의사도 아닌 바에 깊은 진단은커녕 어떻게 해야 응급 처치가 되는지 알 길이 없어 먹먹했다. 그저 나는 아내를 눕히고 땀을 닦아주었다. 생혈로 젖은 아래는 재간이 없어 그저 그 위에 가재만 덮었다. 이내 아내는 응급실에서 실신했고, 나는 어기적거리며 돌아와 구급차와 들것을 닦았다.

다음날 나는 퇴근하던 길 집으로 향하는 대신 아내가 입원한 병원의 입구서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처음으로 도맡아 도운 사람이어서, 스스로가 누군가의 생을 위해 노무할 수 있는 인간인가를 의심하던 자로서 도리어 마냥 고마웠던가. 아파하며 잡으러 오셨네 농치는 여자가 고마웠다. 나는 병원 입구에서 파는 무성의하게 만든 꽃다발이나마 사들고, 응급실을 들렀다가 아내가 입원한 병실을 찾았다. 아내는 그때 성기게 자라다 시드는 화분 같아서 쓸쓸해 보였다. 나는 말없이 인사하고 괜찮냐 몇 마디 묻고, 부끄러워 발길을 총총 돌렸다.

며칠 뒤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플 때 도와준 것도 고맙고 다음 날 찾아와준 것도 고마워서 보답을 하고 싶다고 했다. 비번 날 저녁 근처 일식집으로 약속을 잡고 나는 열없이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퇴근을 한 아침 가던 길에 한 옷가게를 개시해주었고, 단칸방에 홀로 있는 여러 시간 동안, 식사도 대충 챙기며 까닭 없이 들떴다.

“저, 약소하지만 받아주세요.”

“예?”

아내는 그때, 식사를 마칠 즈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하얗고 얇은 봉투였다. 편지라도 되나 싶어 열었더니 만 원짜리 서너 장인가가 들어있었다. 언젠가 선배 하나가 비슷한 일로 사례비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뇨, 이런 거 안 받습니다. 못 받게 되어 있어요.”

“비밀로 할게요. 신고 같은 거 안 할게요.”

애꿎은 봉투가 음식 위로 오가다 둘 사이의 중간께 놓였다. 아내는 봉투와 나를 번갈아 본 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보니 그때 아내는 새순이 돋는 화분 같았다. 나는 그 화분에게 물을 주고 햇볕을 쪼여주고 흙을 고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노라 들떠 얘기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얘기하고 싶은 것을 참은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참고자 했다.

“그 일을 얘기했어요. 원장 선생님도 그렇고, 부모님도 그러시고, 사례를 바라고 찾아온 거라고 하더군요. 가져오신 꽃다발은 방에 화병에 넣어두었어요. 수선화는 제가 좋아하는 꽃이에요.”

“사례를 하실 요량이시라면 꽃값보다는 많이 하셨어야죠.”

“그러게이에요. 생각보다 꽃이 많아서 놀랐어요. 그럼 돈을 더 넣어드릴까요?”

“일 없어요. 괜찮습니다. 혈혈단신이라 돈 많이 안 씁니다. 필요 없어서 안 받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럼 그날 왜 찾아오셨을까요?”

아내의 말에 나는 여짓거리다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웃고 말았다. 아내는 젓가락으로 밥알을 뒤지듯 작은 소리로 내게 자꾸만 왜 왔었느냐고 되물었다. 후일 나는 그것이, 사명감에 사무쳐 누군가의 생명소를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에 그만 좋았다고도 했고, 당신이 예쁘다고도 했다. 우리는 연애시절 참 자주 만났다.

수 년 후, 의처증에 빠진 소방관의 임신한 아내는 동화 구연 강의를 마치고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보냈다. 아내의 강의를 듣는 할머니 몇몇과 비빔밥을 먹었고, 운동을 빠진 대신 백화점에 딸린 멀티플렉스에서 혼자 앉아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에서 나와 장을 보았고,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소형 승용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비빔밥 대신 돈가스를 먹었고, 멀리 떨어진 좌석에서 영화 대신 아내를 보았다. 아내가 탄 승용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먼 길을 돌아 동네로 왔다.

전날 아내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신청해 살폈지만 특별히 반복되는 번호도 없었고, 지령실 직원에게 담배 두 갑을 사 주고 의심될만한 늦은 시각에 아내의 휴대전화에 대한 위치추적까지 해보았다. 아내는 그때 그저 집에서 연속극을 보고 있는 듯했다. 이미 그 남자와는 헤어진 뒤였을까? 결국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려 몰래 친자 확인이나 해야 할까? 나는 아내의 임신 경로를 상상하고 추적하는 동안, 아내에게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어 그 주도면밀함에 놀랐으므로, 내가 이토록 멋없게 뒤를 밟는 동안 증거를 포착할 수 없던 것도 그저 아내의 모든 주도면밀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했다.

이틀에 한 번은 여침에 자는 신세였지만, 가본 적 없는 찜질방에서 보낸 하룻밤은 고단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화재현장에서보다 나는 더 많은 땀을 흘렸다.

구름 낀 어느 아침 일찍, 오수호가 소방서를 방문했다.

그저 민원인 하나려니 했던 소방관들은 그가 죽어가는 딸의 의붓아버지이며 오쟁이 진 남편이란 사실을 알자 사뭇 눈빛을 흐렸다. 오수호는 하관이 빨고 깡마른 남자였다. 그는 화재조사계의 김 주임이 화재 경위를 설명하고 진압 활동 내용과 피해 상황, 그리고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는 동안 굽은 등으로 의자에 앉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따님 병원엔 들러 보셨습니까? 괜찮아요?”

“예, 괜찮답니다.”

나는 오수호에게 정희정을 구출한 대원의 이름 뭐뭐를 대며,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되도 않을 말을 늘어놓았다. 그는 처음으로 희미하게나마 웃었다. 오수호는 설명을 다 듣고 보험금을 탈 때 필요한 서류 몇 개를 떼고 돌아갔다. 김 주임은 널브러져 있던 보험증서의 보험금 수령자가 남편 오수호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날 간혹 불이 있었고, 그보다 자주 다치거나 죽어가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때마다 현장에 소환되어 모든 것을 지우는 사태를 지우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우리는 모두 사명만으로 일했다. 불을 잘 끄는 소방관이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고, 급자를 더 많이 살린 구급대원이 상을 받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이기심을 매만지는 방식으로서 그 모든 소실의 사태에 대응했다. 그것들의 소실에 가슴 아파 하며 일했다. 소실 저편에 뒤집히고 사라지는 것들을 연신 그리워하거나 혹 망각하여 살았다.

그날 새벽에는 어느 여관에서 한 남자가 실없는 목소리로 사람이 쓰러져 있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지령실은 상황을 이상히 여겨 경찰에 지원 요청을 했다. 여기 오번가 모텔 302혼데요, 제 애인, 아니, 아니, 웬 여자가 쓰러져서요, 숨을 안 쉬어요. 흑흑. 흐흑. 경찰과 함께 내가 방에 도착했을 때, 군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현관 앞에 망연히 주저앉았고, 여자는 욕실에서 발가벗은 채 형편없이 구겨져있었다. 외출혈이나 타박상 같은 외상은 없었으나 여자는 축 늘어져 의식이 없기에 확인하니 경동맥이 뛰지 않았고 동공이 열렸다. 사내는 그저 울먹이는 말로, 마디마디 끊는 말로 중얼거렸다.

“저 여자가 다른 남자랑 바람이 났다고요. 나는 그냥 화가 나서 한 번 밀쳤는데.”

나는 황급히 침대 시트 따위로 여자를 덮어 들것에 올릴 것도 없이 업어 나왔다. 안팎에서 생동감 없는 시큰한 냄새가 나 구토감이 치밀었다. 구급차 안에서 제세동기를 틀어 벗은 여자의 가슴에 대고 눌렀다. 여자는 입술이 파랬고 동승한 군복 사내는 입을 반쯤 벌리고 창밖만 보았다.

응급실에서 여자는 몇 번인가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바이탈 싸인 플랫, 보조하는 간호사가 제세동하는 의사에게 반복 보고했다. 이윽고 몇 번인가 간헐적으로 생명 징후가 보였지만 응급실의 당직 의사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학적으로 사망했습니다. 의사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동행한 경찰에게 넌지시 이르자 경찰은 군복을 입은 사내의 어깨를 잡고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찔렀다. 사내는 달리 저항하지 않았다.

경찰과 상황 정보를 교환하고, 지령실에 전화하여 동향을 보고한 뒤 나는 낯익은 응급실 당직 간호사에게 물어 정희정이라는 여자아이 환자가 어디 입원했느냐 물었다.

“그때 불나서 실려 온 여자애요? 화상 병동에 격리 입원해 있었어요. 오늘 걔 아빠가 와서 수술 날짜 바로 잡고 곧 수술한다던데요.”

“기대 안하고 물어봤는데 바로 답이 나오네. 관심이 좀 있었나 봐요?”

“응, 걔 입원하고 유명해요. 꽃 배달도 오고, 인형 같은 것도 오고, 유명해졌어요. 애 아버지가 보냈대나. 여전히 정신은 없죠. 어린앤데 안됐지.”

비번 날 뭐하세요? 서로 연민하듯 소방관들은 아침마다 헤어지는 인사를 대신해 서로 닿지 않는 삶들에 대해 상상해줄 것을 주문하듯 물어오곤 했다. 업무상 친교하는 자들의 비번 날 뭐하세요 하는 질문은 그러나 타인들의 당번 날 뭐하세요 하는 질문에 비해 더 노곤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물음이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돕는 시간은 서로의 밥벌이를 위한 시간들뿐이었고, 그래서 비번 날에는 대개, 결코, 서로를 위무할 수 없는 까닭에서였다. 소방관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 대개는 피로에 젖은 몸을 뉘어 한숨 자고 일어나기도 했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고, 운동을 하고 오기도 했다. 부업으로 장사를 하는 자들도 있었고,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었고, 사진을 찍으러 가거나 노래를 부르러 가는 소방관도 있었다. 늙은 부소장은 농사를 지었다. 사람이 꾸역꾸역 살아야지 그냥 살아지면 못써, 몸이 살아지면 곧장 사는 게 사라지는 거야. 나는 그의 말이 말장난치고는 제법 마뜩했고 그래서 그 말이 언제나 두려웠다.

며칠이 지났다. 어린 정희정은 수술을 받았고 후속 치료를 위해 계속 입원해 있었다. 보험금을 탄 오수호가 비용을 댔고, 저간의 사연이 지역 신문에 소개되면서 몇몇 단체에서도 성금을 걷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파출소 직원 하나가 우리도 인도적 차원에서 얼마간의 성금을 걷자고 했다. 며칠 안 걸려 얼마간의 돈이 모였고, 김 주임이 대표로 성금을 전달한다고 했다. 나는 김 주임에게 따라가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날 나는 아내와 약속하기를 함께 산부인과에 다녀온 뒤 아이가 쓸 침대를 사기로 한 터였다.

정희정이 입원한 병원은 소방서가 관할하는 지역에서 가장 큰 것이었고, 아내를 만났던 곳도 게였다. 아내에게 주려고 수선화를 만들던 꽃집에서 붓꽃을 넣어 화환을 만들었다. 아내를 위해서가 아닌 꽃을 사는 것도 처음이었고, 아내 말고 내가 이송했던 환자를 찾는 일도 처음이라 퍽 머쓱했다.

김 주임과 나는 북적이는 로비를 지나 곧장 입원 병동으로 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좀처럼 희미함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정희정을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이었다. 대신 나는 참으로 말랐던 오수호의 몸과 얼굴을 생각했다. 김 주임이 화재 사건을 묘사할 때 짓던 표정이 왜 그리 담담했는지, 비감이 넘쳐서 그것을 이기기 위해 짓던 표정이었는지가 궁금했다. 소방관들이 불구덩이가 좋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기기 위해 들어가 몸을 숨기듯 그도 비감이 싫어 그 안으로 들어가 마침내 담담한 표정을 지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희정은 네 명이 쓰는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어린 정희정은 기도 삽관하는 화상 치료를 받았고 이어 얼굴에 약간의 피부 이식수술도 했다. 이유화가 죽기 전에 어린 아이에게 물에 적신 담요를 덮어주었다고 들었다. 어린 정희정은 풀잎처럼 잠들어 있었다. 평온한 얼굴이었다. 링거를 꽂은 정희정 옆에는 오수호가 앉은 채로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었다. 여전히 말라서 복 없어 보이는 인상 그대로였다.

누구를 찾아오셨죠? 정희정과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 하나가 나를 살며시 보더니 물어왔다. 내가 정희정과 오수호의 이름을 대자 여자는 어이요, 희정 아버님, 하며 오수호를 깨웠다. 오수호는 깜빡 졸았던 듯 금세 잠에서 깨 네네 하고 주위를 살폈다. 여자가 우리 쪽을 가리켰다. 오수호는 나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무슨 일로…….”

“소방서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따님이 사고를 당했을 때 현장에 있었습니다.”

나는 김 주임 뒤에 서 있다가 가져간 꽃다발과 오렌지 주스 따위를 내려놓았다. 오수호는 일어나 번갈아 악수를 청했다. 그는 김 주임과 내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우신 분이 고맙게 또 찾아오시니 또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악수를 받으며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소방관 일을 하며 고맙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난감했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고 봉투를 건네며 조심스레 정희정의 상태를 묻자 오수호는 딸의 수술이 잘 끝났다고만 했다. 오수호는 엷게 웃으며, 죽은 이유화와 함께 들었던 보험이 많아 받은 돈도 많은데 그간 받은 성금도 너무 잘 썼노라 했다.

“사실 돈 문제는 그래서 어렵지가 않습니다. 주시는 것이야 늘상 고맙지만……. 저와 아내가 따로 살았던 게 돈을 더 악착같이 벌려고 그랬던 건데, 아내가 죽으며 남기고 간 돈으로 살자니 참……. 어려운 건 희정이가 많이 외롭진 않을까……, 어린 것이 어미도 없이. 그게 제일 걱정이지요.”

오수호는 내가 가져온 주스 따위를 냉장고에 넣고 대신 다른 음료를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다 마실 때까지 하염없이 정희정의 얼굴을 보았다. 오수호는 가만히 있다가, 예쁘지요? 하고 물었다.

“예. 예쁘네요. 봄에 피는 들꽃처럼 예쁘네요.”

김 주임과 오수호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는 동안, 나는 음료수 병을 비우고 손을 털어 일어났다. 오수호는 일어나는 내게 재차 악수를 청했다. 그는 이따금 웃어보였다. 그와 마주 눈인사하고 병실을 나서며 나는 다시 한 번 어린 것을 돌아보았다.

병실을 나서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 쪽을 찾아 걸었다. 내 뒤로 종종거리는 발소리가 나기에 나는 혹시 정희정이 깨나서 오는 것일까 하고 돌아보았다. 등 뒤에는 정희정 대신 좀 전 같은 병실에 있던 여자가 쫓아와 내게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기억 못하시죠? 한 달 전쯤에 불나서요, 저 치료해 주셨는데.”

“아,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여자는 호호 웃으며 내게 귤 한 개를 쥐어주었다. 여자는 내 칭찬을 몇 마디 하더니, 곧장 오수호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저 아이가 문득 궁금해져서 한 번 와봤을 따름이었다.

“저 아버지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난 처음에 딸이라는데 성이 달라서, 아니 뭐 그러냐 했는데.”

여자는 병실에서 혼자 있던 것이 답답했는지 구면인 나를 보자 수다를 떨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오수호가 딸의 외로움을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게, 죽은 부인 친구 딸이래요. 그 친구 부부가 노점상으로 호떡장수를 했는데, 길 가던 트럭이 덮쳐서 받았대요. 그래서 저 부부가 고아를 업어다 길렀대요.”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여자가 준 귤을 까서 반을 떼어 여자에게 주었다. 새침한 냄새가 났다. 여자는 귤을 입에 넣고 복도 한쪽에 있는 의자로 나를 끌어다 앉혔다. 링거 행거를 질질 끌기에 내가 대신 잡아주었다.

“언젠가 그런 얘기도 했는데, 아이의 죽은 엄마가 불임이어서 잘됐다 싶었대요. 아이 유치원 보낼 나이가 되어서 돈을 더 벌려고 따로 살다가 불이 나서……. 혹시 거기 가셨어요?”

“예, 갔었지요. 희정이를 제가 이리로 데려 왔었지요.”

“어쩐지, 새삼스럽게 찾아오는 데 이유가 있었네. 세상에 저런 아버지가 없어요. 낮에는 딸한테 와서 놀아주고, 딸이 잠들면 그때 제게 신신당부를 하고 가요. 밤에 딸이 갑자기 아빠를 찾으면 만사 제치고 와요. 밤에 일하러 가는 거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요. 제 몸으로 난 딸이래도 그렇게 못 할 텐데.”

여섯 달인가가 지났다. 그간 아내의 몸은 아이를 위해 고군분투 노력하여 시나브로 차고 있었다. 아내와 잠자리에 들 때 바라보는 창문 밖으로 날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더니, 곧 생이 있고 사가 찾아와 많은 것이 어둡고 또 밝았다. 아내의 몸이 변하는 것이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말하는 것인지 뜻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을 보며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이 내가 아내의 발에서 만지던 그 영원을 유예하기 위한 시간들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에 더 알고 싶었다.

나의 삶은 당-비-당-비로 반복되었고, 아내는 강의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내는 일을 멈추고도 동화책 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더해 며칠 전부터는 출산 준비물까지 사들이기 시작했다. 실로 아득한 일이었다. 나는 이유화와 조명관이 죽던 날과 다름없이 아내를 대해야 했다. 아내는 늘 아침상을 차려놓고 상냥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아내도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산달이 다가왔지. 아, 그놈 얼굴을 보고 싶어.”

내가 그리 말하면 아내는 잠자리에서처럼 매초롬하게, 아들인지 딸인지 어찌 아니 하고 답했다. 그런 말을 주고받은 다음 비번에는 동기들과 술을 먹기도 하고, 여자들이 있다는 방석집이니 뭐니를 가기도 하다가 그 일도 두 달 전에 그만두었다. 돌이키기엔 아내의 배가 너무 불렀다.

아내는 어느 날도 퇴근하며 동화책 따위를 몇 권이나 더 사온 모양이었다. 아내는 쇼핑백에서 책을 꺼내 작은 방으로 갔다. 거기에 우리는 책장과 책상과 컴퓨터 따위를 놓았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주기로 한 방을 서재처럼 쓰고 있었고, 아내는 틈이 나면 어서 정리하자고 성화였다.

“아이 이름은 희정으로 할 거야. 우리 연애할 때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기억 못하지?”

“희정은 싫어. 안 돼.”

식탁에서 나는 아내의 말을 자르듯 단호히 말했다. 아내는 기분이 상한 듯 입에 물었던 것을 오물오물 빨리 씹었다. 희정, 정희정, 죽어가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다만 그 이름이 반년 전 불타 죽은 여자의 딸이며 또 죽어가는 모르는 아이의 이름과 같아서 불길하다고 했다. 아내는 대꾸가 없었지만, 나는 오래전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가 생기면 우리는 밝을 정(晶)과 성할 희(熺)자를 쓰기로 했다. 정정희는 이상하니 정희정으로 하자. 남자 이름으로도 나쁘진 않지만 딸이면 좋겠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는 해사하게 웃었고, 씨를 낼 수 없는 나는 말을 못하고 마주 웃기만 했다.

아내가 잠든 뒤 나는 새로 생긴 습관으로 발코니로 와 담배를 피웠다. 아내의 간곡함에 줄인 것이 바로 그 하루 한 개비였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는 많은 죽임이 있는 세상을 책하며 소파에 누웠다. 텔레비전을 보다 소파에 누워 잠드는 날이 많았다.

봄.

눈이 시리게 부는 바람이 푸른 계절에 오수호와 이유화의 딸 정희정이 죽었다. 그날 나와 아내의 딸 정희정은 세상에 나왔다. 아내는 예의 그 병원 산부인과 병동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낳았다. 나는 휴가를 냈고,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황급히 아이의 얼굴을 살피며 누구의 얼굴이 들어 있나 찾았다. 간호사가 지나며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했다. 의례적인 말이었다. 나는 밤새 아내의 입원실에 있다가, 아침이 되어 병원을 찾은 동료에게 잊어서 살던 아이의 부고를 들었다. 나는 성모의 출산을 바라보는 목수의 심정이 되어 지난 밤하늘의 별을 속으로 헤아려보았다. 방문하는 박사들의 얼굴을 뜯어보며, 혹 아이의 아비가 있을까 의심하고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아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던 그때, 인간의 왕은 대신 세상 모든 아이들을 죽였다. 정희정이 태어나던 날, 정희정이 죽었고, 나는 그 잊어야 살던 아이의 부고를 재차 삼차 들었다.

“대충 여덟 달이면 많이 살았지. 돈이 아까워서…….”

“내가 봤을 때 그렇게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 살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장사 하루 이틀 해. 그 정도면 사실 현장에서 죽었어야 마음이 편한 거야. 살 놈은 살아야지. 아비가 불쌍하다.”

동료 소방관은 병동 밖을 나와 담배를 피우며 고약한 말을 뱉었다. 나는 그제 하루 한 개비 피우던 것마저 끊던 터였다. 아이의 얼굴을 보자 문득 연기를 깊게 빨아 코로 내쉬고 싶었다. 정희정이 죽고 정희정이 태어났고, 우연치고는 고약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가 잠든 사이 장례식장에 들렀다.

종합병원에 부속된 장례식장 특유의 누추하고 퀴퀴한 분위기가 장내를 더 어둡고 우울하게 했다. 고깃국의 냄새가 떠다녔고, 산 사람의 입김이 부딪쳤다. 어디서 화투장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돈이 오가며 언성들이 높았다. 오수호는 딸의 영정 옆이 꺾인 나무 둥치처럼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정희정의 죽음을 애도하러 올까, 그것은 애당초 더할 나위 없이 텅 빈 소실이었다. 오수호는 그저 그 소실점을 더 멀리로 연장하느라 온 힘을 썼다.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모든 삶은 소실점 안쪽에 있었고, 소실되는 저편에 모든 소중한 것들이 전복되거나 지워졌다. 우리는 언제나 소실을 지우려 애쓰는 자였지만, 그러나 횡행하며 반복되는 소실의 사태를 우리는 결국 어쩌지 못했다.

바닥에 발자국이 많았다. 나는 그것들에 내 발들을 맞추듯 일관성 없이 서성였다.

갓 태어난 정희정은 잘 울었다. 건강했다.

진달래 피던 날, 아내는 일주일에 두 번 다시 일을 나갔다.

어느 날 아침 집에 돌아와 창문을 열자, 아내가 사온 화분이 벌벌 떨면서 흔들렸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아내가 차린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웠다. 딸아이는 눈이 차게 자랐다. 자라며 아이는 나를 닮았다. 딸은 봄에 피는 들꽃처럼 예뻤다. 분홍이 감도는 얼굴빛을 보고 취해 나는 상춘하러 가지 않았고 두견주를 따로 찾지 않았다.

아내의 귀가를 기다리며 나는 막막하게도 미안했다. 나는 홀로서 집을 천천히 돌거나 누워 시간을 보냈다. 눈을 감고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기우뚱거리며, 소방관이 되고 어느덧 딱딱해진 손날을 어루만지다 깨물기도 했다. 이 손에 닿던 자들은 얼마나 천천히 죽어갔던가. 이 무감하고 비생산적인 육체에 닿은 죽어가는 육체들은 누추하고 비루하게 사위어 갔던가. 나는 사람 죽이는 것을 확인하는 일을 하고 있던가, 아니다, 살리는 일이다. 삶, 삶, 삶, 삶, 삶. 새들이 하늘을 비집고 땅에 닿는 소리가 그렇게 나는 낮 동안 문득문득 아내가 그리웠다. 구름이 비가 되고 하늘이 걷히며 그리를 채우는 개인 저녁 하늘의 햇살처럼 아내가 그리워서, 저녁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디고 오랬다.

눈을 감고 또 뜨다가, 바람이 들어 시든 화분을 보고 일어났다. 서랍을 뒤지니 원예 가위 하나가 있었다. 마른 잎을 자르고 화분흙에 떨었다. 시든 잎을 자르고 분무기를 들었다. 기다란 잎에 점점 맺히다 흐르는 것이 눈물 같았다. 눈물이 뿌리를 적시고 있었다. 각각 나뉘어 심어진 화분들은 시들어서가 아니라, 번식할 씨앗을 날릴 수 없고 눈물이 젖는 뿌리를 엉킬 데가 없어서 쓸쓸한지 몰랐다. 누운 잎을 보며 성기고 시든 화분 같던 아내의 옛날 모습을 생각했다.

나는 딸이 기다리는 방으로 가서 함께 어미를 기다렸다. 가련했던 화분, 마침내 일으켜 열매를 맺은 여인아, 정희정은 좋은 이름이더라. 거꾸로 해도 그대로인, 앞뒤가 맞는 사랑할만한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