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천칠년! 천치같이 살고팠던 이천칠년이 갔고 나는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이십대 후반이 되었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건대, 나는 무덤에서 걸어나왔으되 아직 발걸음을 온전히 떼지 못한 시체와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지난 한 해 동안을 총평할만한 quote :
The Bride : Wiggle your big toe.. wiggle your big toe..
(pause)
The Bride: [after finally getting her big toe to move] Hard part's over. Now let's get these other piggies wiggling.
from [Kill Bill vol.1]
1. 신상 (+)
- 어쨌든 복학생. 두 학기 동안 30학점을 들었고, 총 평량평균은 3.5를 넘겼다. 두번째 학기엔 좀 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조모임을 혼자 하면 A를 받을 수 있다'라는 교훈을 얻었다.
- 모든 공모전 등에서 여전히 계속 탈락중이고, 소설은 한 편도 쓰지 않았다.
- 그러나 나는 인생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 한 계기를 만났다.
2. 인간관계 (=)
- 이제 새로운 인간관계라는 것은 피곤한 일로 여겨지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러나 간혹 좋은 사람을 만났고 또 간혹 정말 피곤한 것을 넘어서는 사람도 만났다.
- 어찌 됐건 좋은 게 좋은 거다.
3. 문화 생활 (+)
- 독서권수는 많지 않았지만 도서 구입 권수는 훨씬 많아졌다. 군대 있을 때는 보통 단체로 빌려보았던 관계로 선택의 폭이 좁았지만 올해는 어쨌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주로 사서 읽을 수 있었다. 마는 아직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솔직히 20권 가량이나 된다. -_-
- 영화는 좀 많이 본 편이고. 연극도 봤고 공연도 갔다. 미술관도 몇번 찾았고. 전반적으로 윤택한 편이었다.
4. 섭생 (-)
- 나는 운동과 '여전히' 담 쌓고 살고 있는 것 같다.
- 나는 이제 금연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총평 : 그러나 상승세라고 생각한다. 지난 해 정석완의 코멘트에 따르면 '너는 네 인생 최저의 시기다'라고 했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_- 바닥을 쳤던 거랄까!
올해의 사건은 단연코 연애의 시작이다. 하하.
2007년은 참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우선 가깝게는 대선이 있었고, 많은 우려와 탄식을 낳게 하는 결과를 얻었다. 태안 머시기도 있고 신정아 '게이트'도 있고 삼성 비자금 사건도 있고 하는 굵직한 뉴스들 사이로 내게 '올해의 사건'은 연애의 시작이다.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의 연애와 비틀즈의 앨범 발매를 하나로 엮어두었는데, 내가 그런 무책임한 짓을 굳이 해본다면 나는 이렇게 쓸 것이다. 한국은 IMF와 관계맺은지 10년 뒤 비로소 진정한 신자유주의 체제에 돌입했고 그때 나는 연애를 시작했다.
그 외에는 상해 여행과 상해 여행 중 겪은 지갑 분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진 카메라 분실 및 재구입-_-,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나의 올해의 인물은 다들 짐작할 수 있을 테니 굳이 적지 않으련다.
나는 이 분야 지난해의 목표를 초과달성하였다.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사랑은 인류를 구원할 거야..
올한해 유독 많은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만큼 '좋은' 영화들도 많이 만났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몇 편 꼽고 20자평을 달아본다면..
300 : 누가 뭐래도 복근이 꽃보다 아름다워..
밀양 : 이런 영화도 있습디다
스틸 라이프 : 사실 난 이 영화 보는 중에 잤음.. -_-;;
조디악 : 스타일리스트의 거장증명
데쓰프루프 : 타란티노는 '졸작프루프'
라따뚜이 :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본 얼티메이텀 : 전작의 가치를 높여주는 보기 드문 후속작
블랙북 : 정치적 삶의 진실이란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의 영화는? <색, 계> 짝짝짝..
올해의 dvd - 올해엔 구입한 dvd보다 '구운' dvd가 더 많았다. -_- 뭔가 부끄러운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 dvd를 꼽자면 '이창동 전집'이 완성되었다능.. 경희가 박스셋을 사줬고 <밀양>의 dvd도 샀다. 하하. 사실 작년도 이 분야로 꼽았던 오즈 야스지로 전집은 시작도 못했는데.. -_-;;
올해의 영화배우 - 난 진심으로 하정우가 올해의 배우가 되기를 원했건만, <두번째 사랑>은 의견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투문정션> 등의 '계통있는' 에로 영화의 조금 덜 야한 버전에 불과했다. 유일한 미덕이라면 백인여성과 유색인 남성을 커플링했다는 것 뿐.. 그러나 사업에 성공한 기독교인 황인남성의 '씨앗'이 필요해서 만났다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영화에 무슨 정치적 공정성이 있단 말인가? 그리하야 <히트>로 스타덤에 오를 '뻔'한 하정우는 삐끗하고야 말았다. 각설하고.. <밀양>의 전도연은 '쾌거'를 얻었고 <색,계>의 탕유는 전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한편 내게 있어 올해의 영화 배우는..솔직히 '영화배우'는 잘 모르겠고 MBC 드라마 <하얀 거탑>과 <이산>에서 호연하고 신인상까지 받은 중고신인 한상진을 주목. 영화계에 픽업된다면 최소한 김상경이나 이성재 이상은 하지 않을까..
2006년 <달려라 아비>에 김애란의 싸인을 받았고 2007년 <강산무진>에 김훈의 싸인을 받았다. 사놓고 가장 단숨에 읽은 것은 김훈의 <남한산성>이었고, 어찌되었건 '올해의 소설'이 남한산성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최고의 '간지나는' 문장들! 그러나 한편으로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지적인 구성'은 소설이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문학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지평이었고. 번역된 닉 혼비와 키냐르의 소설(?)도 재미있었고.. 그러나 어쨌든 가장 재밌게 읽었던 것은 다시 한 번 윤대녕의 <제비를 기르다>였다.
한편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있게 읽은 책은 민주화운동 약사인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와 <관습의 정치>였고.. 지금 읽는 건 예전에 사 둔 <나쁜 사마리아인들>.
가장 열심히 들었던 앨범은 루씨드폴의 <국경의 밤>이었고. 그 앨범의 (개인적인) 베스트 싱글은 <kid>와 <사람이었네>, 두 곡이다. 메시지송이 그리웠던 걸까.
올 한해 꽤 많은 CD를 샀는데.. 더러는 조금 실망했고 더러는 참 좋아서 열심히 들었다. 욜라텡고, 트래비스, mot와 칸예의 신보는 조금 '덜' 들은 축에 속하고(그들 앨범이 훌륭하지 않다는 건 아니고), 심지어 매닉스는 거의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았다(이번 앨범은 범작 수준에 머무른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국내에 CD로 아직 발매되지 않아 어둠의 경로로 듣게 된 언더월드의 신보가 매우매우 훌륭했음.
그외에 기대하고 있는 신인은 멜로디와 아워멜츠..인데, 롤러코스터가 조금 식상해졌고 elope!이 기량미달이라면 이 두 팀은 정갈한 음악을 다채롭게 뽑아내는 능력이 있어서 기대하고 있는중이다.
다들 올해의 연예인이라면 원더걸스나 소녀시대를 꼽겠지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음....
뻥이고..
연애인이 된 관계로 이런저런 데이트 나들이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몇 군데 저렴하고 맛난 집을 발견했고 그중에서 가장 맘에 든 집은 인사동에 있는 <된장예술>. 강된장에 밥을 비벼먹는 곳인데 저렴하고 양많고 맛있으며 입지도 좋다. 그리고 '의외로' 특별히 맛있었던 집을 생각해보면 압구정역 근처에 '스파게티엔와인'이라는 천편일률적인 상호의 이탈리안이 있는데 의외로 맛이 훌륭했다. 거짓말 좀 보태면 본 뽀스또이상.. 그 외에는 익히 알려진 집들이라 생략..
올해의 커피숍은 명동과 삼청동에 분점이 있는(오가닉 옆에 있더라) cafe coin...인데, 명동에서 갈만한 커피숍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찾아냈다. 명동 본점은 클럽모나코 맞은편에 있음. 특별히 커피맛이 뛰어나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마음에 들고 음악을 튀지 않게 틀어준다. 들러본 커피숍 중에는 소공동 롯데호텔 별관 로비(13층인가?)에 있는 살롱드떼가 제일 간지났음. -_-
은근 '햄릿형' 쇼핑중독/일중독인 나는 올해도 이런저런 물건을 많이도 사들였다. 그중 가장 잘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디에세랄과 dvdp.. 한편 피복 가운데에서는 경희와 열심히 발품팔아 고른 코트.. 비싸긴 하지만 쫌 맘에 든다. 하하. -_-
다들 한번쯤 그렇게 다녀보았을 뻔한 데이트코스지만.. 덕수궁/덕수궁미술관 - 시청앞광장 - 명동 -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데이트코스는 서울나들이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한편 상해 여행에서는 이케아와 상해노가 신천지..가 가장 유익한 코스였고. 하하. 근데 써놓고 보니 별거 없네.. -_-;
TV는 예전부터 잘 안 보았고 지금도 자주 보진 않지만, MBC의 <하얀거탑>과 투톱 예능 프로는 꽤 재밌게 시청했다. 물론 언급된 세 프로 모두 각각 일본원작, 일본예능프로들, 인터넷에서의 예능 실험들을 이식한, 엄밀히 말하면 온전한 크리에이티브는 아니지만 어쨌든 재밌으면 된다는 게 요새 사고방식 아닌가? (경제만 살리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