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와 책읽기

우리가 영국을 이해하는 방식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6. 01:40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영화는 매우 차분한 ‘영국적 어조’를 답습하고 있다. 마이크 리 혹은 샘 멘더스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 출신의 감독들이 연극적인 차분함과 비정상적인 캐릭터의 등장은 그대로이고, 브라스드 오프나 풀 몬티의 경쾌한 유머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t-rex의 70년대 음악들―cosmic dancer와 children in revolution 들은 70년대 글램과 펑크가 태동하기 전의 에너지를 간직한 록큰롤 사운드로, 매우 훌륭하다.

영화의 배경은 10여년 남짓 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집권할 당시이다. 극중의 지명이 생소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스코틀랜드 쪽이라고 생각되는 곳이며, 폐광촌이다. 지독한 영국식 영어, 잘 들리지 않는 어휘들은 아마 스코티시가 아닐까 하고 어림짐작해보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마거릿 대처는 삼성의 기업 이미지 캠페인에서 등장한 바대로, 공권력의 향유자나 경제권자 등 소위 사회지도층(혹은 기득권층)에게 ‘철의 여인’ 혹은 ‘영국병을 몰아낸 위대한 수상’으로 추앙받는다.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잘못된 사회보장제도를 바로잡았으며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사회의 산업 효율성을 제고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사회의 밑바닥, 여러분이 잘 알 영화 ‘타이타닉’의 3등석 손님 내지는 맨 아래 석탄을 삽으로 밀어넣든 현대판 노잡이 노예들과 같은 신세인 노동자나 그에 준하는 서민들에게 있어서 그는 ‘함께 섹스를 해도 오르가즘은커녕 구역질만 날(트레인스포팅에서 인용)’ 여인이며, 마녀의 현신이다.

클래쉬, 섹스 피스톨즈 등 계급적 사회적 모순에 대한 통렬한 저항과 패배주의로 무장한 펑크마인드의 밴드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즈나 스미스, 오아시스, 버브, 그리고 춤바왐바 등에 이르러 일관되게 얘기되고 있는 소위 계급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답답한 희망으로, 또 광우병과 구제역이 상징해 버리는 진정한 의미의 영국병(british disease)의 의미를, 이 영화는 재정의한다. 산업 효율성, 국가 경쟁력의 저하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 죽음으로 인한 ‘틈’을 막는 행위가 그 자신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식의 논리이다.

광부들이여, 단결하라(miners, strike now). 끊임없는 시위는 경제적인 능력을 빼앗긴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죽음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돈을 뺴앗긴 현대인은 왜소하며 그 왜소함은 기존 사회와의 틈을 만든다. 그 틈을 매우기 위하여―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혹은 슬프디 슬픈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하여 아내의 패물을 전당포에 맡기거나 땔감으로 쓰기 위해 피아노를 망치로 내려쳐야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영국병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영국에 대해서 갖고 있던 이미지는 무엇일까. 축구와 홍차, 신사의 예절과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 셰익스피어와 죠지 오웰, 그리고 톨킨에 이르는 지독한, 그리고 고상한 브리티쉬 잉글리쉬. 캐나다와 호주를 위시한 영연방의 맹주국. 여왕과 왕세자, 다이애나 ex-프린세스브라이드의 리얼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 엠아이식스와 007 제임스 본드, 그리고 근위병의 나라. 북아일랜드와의 끊임없는, 그리고 끝없는 내전.

트레인스포팅을 단순한 트렌디 뮤지컬 버디 무비로 이해하거나, 브라스드 오프 풀 몬티 등을 단순한 드라마 혹은 코메디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영화를 향유할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교생이라면, 칼 맑스가 뭔지도 모르고 노동운동이 무엇인지 모를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발리 구두와 구찌의 선글래스, 루이 뷔똥의 색을 맨 채 ‘영국이라면 버버리와 닥스의 코트가 좋아’ 라고 생각하는 국소적 의미의 ‘한국병 환자’ 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저 문장과 저 단어에는 따옴표가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도 많이 다르지 않다. 가깝게는 롯데 호텔과 이랜드 노조의 파업,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 농성하고 있는 대우차 노조의 사람들은 공권력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으며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조선족 혹은 동남아 출신의 가난한 이들이 몰매를 맞고 있거나 심지어 토막살해되고 있다. 우리 산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빌어먹을 가장 국지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방법들이다.

(2001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