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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한 시절

toto le heros 2009. 6. 1. 04:31
 
 수 년, 수십 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이 시절을 어떠했노라고 술회할까. 고작 서른 해를 넘기지 못한 한 짧은 생애와, 고작 육칠십년이 지났을 뿐인 어떤 조국의 역사 가운데 한 방점일 이천년대 첫 십년 그 몇 해를 앞으로 어떤 기준과 어떤 언어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과 많은 말들이, 그동안 벌어졌고 벌어질 행위와 사건 가운데 무슨 모양으로 놓이고 입히고 펼쳐질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그분조차도 그러했다. 그런데 하물며 나 같은 민초가 무슨 생각과 무슨 말로 이 시절을 통찰하고 답파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아무 것도 몰랐던 그때,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차라리 어린이용 영웅전의 한 인물이었다. 지난 며칠간, 무능하고 자격없고 파렴치하기까지 했다고 일컬어지던 그를 사람들은 자꾸만 '바보'였노라고 말했다. 내게도 실로 그는 바보였다. 백의종군한 이순신이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것처럼, 그는 항상 혼자 싸웠고, 혼자 지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이 애처롭다기보다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정치적 신념이 어떻고, 정책적 비전이 어땠는지도 전혀 알 리 없었던 시절이었다. 어렸을 적 마을 어귀의 삼거리에 붙은 노태우와 김영삼과 김대중의 벽보와 처음으로 본 정치 연설 가운데 나는 노태우의 승리가 무슨 의미인지, 그 당시 노무현이 청문회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러한 무지에도 노무현은 단기필마로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기사의 모습으로 비쳤다.

 대통령인 김대중과 시정잡배들의 입 노릇을 하는 김대중을 겨우 구별해내던 십대시절을 지나, 고작해야 배운 것이라고는 술담배 뿐이던 대학 신입생 시절 노무현은 새 대통령이 되었다. 수업을 땡땡이치고 보던 TV뉴스에서는 탄핵이라는 정치쇼를 중계했고, 그러나 나는 분개했다기보다는 코미디쇼를 보듯 우스워했다. 여의도 앞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 틈에서 나는 어쩌면, 축제를 즐기듯 즐거워했었던 것같다. 얼마 후 처음으로 투표를 했을 때, 유시민과 진중권 사이에서 나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찍었다. 다시 얼마가 지나, 이뤄놓은 것도 없이 나는 쫓기듯 군대를 갔고, 자이툰부대와 김선일과 여명의 황새울과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와 한미무역자유협정과 노무현 독트린과 종합부동산세와 행복도시와 대연정제안과 대통령의탈당과 각종 게이트 속에서 나는 대통령이 버림받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안쓰러웠고 한편으로는 멋적게 웃었다. 나는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한심한 족속의 하나인 채로, 버려진 그의 등 뒤에서 무력했고 또 자괴감을 느꼈다. 지방선거와 대선, 그리고 또 다시 총선과 교육감 선거에서 번번이 낙선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내 고민은 항상 무용했다. 나는 정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게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의미를 잃어갔다. 나의 '잃어버린 10년'은 그런 것이었다.

 그가 고향마을로 돌아간 뒤 벌어진 그를 향한 수많은 해코지들에조차 나는 무심했다. 기록물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말이 우스웠다. 유시민과 이해찬이 소속없이 낙선하는 것을 보고 그러려니 했다. 김두관과 문희상과 이강철 등속이 무엇을 하고 지낼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이명박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그리워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쳤다. 박연차라는 '듣보잡'이 돈을 얼마를 주었네 마네 하는 말에도 그런가보다 했다. 이미 이광재와 강금원과 안희정이 옥살이를 했거나 그에 준하는 일을 겪었다. 노건평이 잡혀 들어갔어도, 노무현 본인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왔어도, 내게 그것은 하나의 정치쇼일뿐이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부스스하게 잠에서 깨어나, TV를 켜고 뉴스 보도를 보고 나서야 나는 별안간 슬퍼졌다.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고, 이윽고 무서워졌다. 그는 정말 그렇게 '바보'로 남게 되는 것인가.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든 기병은 적의 창과 극에 쓸리고 깎이어 쓰러지는 것인가.

 주말 동안, 또 주중 동안 그 어느때보다 그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담았다. 서울시청과 서울역을 찾아,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고, 화내는 사람들을 보고,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 희노애락과 동상이몽에 공통으로 새겨진 의미와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백만이 넘는 사람이 그에게 헌화를 했다고 했다. 정치가들은 저마다 상주를 자처했다. 한때 그를 버렸고 한때 그를 비난했던 이들조차 그가 그립다고 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뒤, 권력의 그늘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름들은, 남상국과 정몽헌의 이름들과 함께 거리를 나뒹굴었다. 촛불이 켜졌다. 그의 장례가 있던 금요일, 광장은 그야 말로 '황제'를 기리는 '황제'였다. 그러나 그 일사분란함 속에서, 몇몇 이들이 몇몇 구호를 외쳤으나 메아리는 크지 않았다. 거리에서 앞서가는 '그'를 따르는 '산 자'들은 어느덧 불통하는 듯 보였다. 모두들, 죽은 노무현에게 답을 듣기를 원하는 듯했지만, 당연히도, 망자는 말이 없었다. 고인이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더 있었다면, 그는 투신하여 자결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다만 담배가 있냐고 물었고, 피우지 못해서 죽었다.
 
 내 아버지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어린 시절 내가 부를 줄 알았던 유일한 흘러간 옛 유행가가 <사랑으로>였다.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눈물 짓고, 타는 가슴으로 햇살을 갈구하고, 그늘진 곳에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노랫말이, 익숙해서 내용없는 음향이 아닌 깊고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그때 그자리에서가 처음인 듯싶다. 광장에서 멀찌감치 서서 그 노래를 듣고 있을 때, 나는 담배를 물었다가 비벼 끄고는 정말 그가 그리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아 생전 그는 정말 '사랑으로' 살았던 것일까. 양희은과 안치환과 윤도현의 노래도 그저 푸닥거리같이 들렸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상록수>도 알맹이 없는 구호처럼 들렸건만 <사랑으로>만은 가슴이 아팠다. 지난 해 이맘때 거리를 가득 채웠던 풍자와 해학과 분노와 격문이 '사랑'을 말할 수 없게 해서 슬펐건만,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들려준 노래는 '사랑'이었고 또 '사랑'이었다. 네가 네 친구를 사랑하고 무슨 상이 있으리오, 너희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 그렇게 그는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나 그들은 알까. 예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그들이, '뱀의 자식'들인 그들이, 그 원수를 사랑하라던 말을 또 다시 망령되이 일컫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아프거나 슬퍼할 것도 없다. 그들은 항상 그래왔고, 그렇게 얄팍한 승리를 챙겨왔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아픔에도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있다면, 그 말을 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품고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관념과 정서가 있다면 다만 사랑일 뿐이다. 힘이 없고 돈이 없어서 욕망하는 것조차 욕망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조그만 손길, 그런 것이 사랑이다. 작년 이맘때 나는 이렇게 썼다--자신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며, 타인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하여 더 좋은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전망이 생기는 것이고, 진보가 있다. 우리가 성취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상상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싶다. 투쟁하지 않아도 되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맞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사랑을 말할 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섹스는 사치이며 모든 사랑은 공포다. 이러한 삶은 죽음의 유예이다--. 그래서 그는 죽어간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그는 살아서 의미를 전할 수 없음에 스스로의 몸을 던졌다. 그렇게 그는 다만 의미를 전하기 위해 자결했고, 그 의미는 상서롭게 퍼질 것이다. 그의 이름을 앞에 걸고 행할 모든 투쟁 속에서, 그는 다만 죽음이 아닌 삶으로,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거짓이 아닌 참으로 다시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 혼란하고 음습하고 답답한 시절은, 시간이 흘러 담백하고 또 치열했던 사랑의 한 시절로 적혀야 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바울과 요한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을 남기게 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인 것은, 윤회와 부활이 하나인 것은 다만 그것이 '사랑'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사랑이 환상이고, 그 사랑과 환상이 때로는 곡해되고 망령되어갈지라도, 우리는 다시금 당연한 문제에 대해 천착하고 기억해야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여 서로 소통하고 연민하는 가운데 진실이 있고 정의가 있고 예의가 있으며, 그렇게 세상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된다. 사람은 모름지기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며, 모든 시절은 마침내 사랑의 한 시절로 적혀야 한다. 사랑했노라, 행복했노라 말한 뒤에 이어 마땅히 사랑하노라, 행복하고 또 너도 행복하기를 바라노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이 시절도 사랑의 한 시절로 적힐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