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지-드래곤은 자신의 솔로 앨범 <Heartbreaker>에 제기된 표절 혐의를 두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더 큰 비난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대신 그는 앨범에 수록한 다른 노래에서 ‘예전에는 울기도 많이 울었네..(중략)..세상아 내 인생 물어내..(중략).. 살기 힘든 세상 나 하나로 위로가 되신다면’(<Gossip Man>)이라는 가사로 적잖이 섭섭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성난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뜨거운 냄비/눈 깜짝하면 식을 테지’(같은 곡)와 같은 가사를 물고 늘어진다.
지-드래곤 논쟁이 채 정리되지 않은 와중 또 다시 ‘건수’가 터졌다. 주인공은 제 33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듀오 ‘이대 나온 여자’의 노래 <군계무학>이다. 의혹을 제기한 네티즌들은 이 노래가 리쌍의 <광대>, Nouvelle Vague의 <This is not a Love Song>,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노래가 만약 작년에 출품되어 수상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은 이미 ‘지-드래곤 학습효과’를 겪은 뒤였다. 지-드래곤의 음반에 별 반 개를 준 음악평론가 차우진의 표현대로라면 대상에 ‘모작의
혐의’가 있는 경우 ‘비평적 개입을 중단’하게 된다. ‘찝찝해서 평가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음악에 대해서 ‘알 만한 사람’들이 심사를 맡은 제법 공신력 있는 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가요제의 연출을 맡은 프로듀서의 주장대로, 전문가 집단의 검증을 거쳤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대중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팀의 이름이나 줄곧 ‘개성’ 운운하는 가사가 적절한지 이야기하지 않고 표절에 관해 이야기한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표절, 혹은 모방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 한국의 대중음악 판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대중의 원하는 멜로디는 수렴한다’는 식의 변명이 통하는 수상한 곳이다. 오히려 표절하거나 모방한 노래의 성공이 더욱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취향은 결국 소비를 통해 학습되고 훈련된 결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음악이 더 많이 혹은 더 널리 소비되는가의 문제는 사실상 그것의 독창적 성과와는 큰 관계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청자는 자신과 접한 외부 환경에서 널리 들려진 음악에 길들여지며, 강요된 선택지 안에서 가장 편안하게 들리는 음악을 선택하여 소비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들 논란이 어떻게 끝날지 예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빈도와 심각성의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왕왕 있어 왔던 문화계 전반의 표절 논란도 늘 마무리가 석연치 않다. 마징가 Z와 태권V 시절부터 항상 그래왔던 ‘오래된 미래’다. 예컨대 ‘대중문화’라는 레토릭을 불편해 할 문학계의 사정도 썩 말끔하지 못하다. 1992년 출간된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작가세계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베낀 작품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인화는 ‘페스티시(혼성모방)’ 기법을 논하며 혐의를 피해갔고, 심지어 다른 필명으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상찬하는 평론을 쓰는 희비극도 연출했지만 문학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중견소설가 신경숙도 대표작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딸기밭>이 모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고 올해 발표한 [엄마를 부탁해]는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양대 문학상을 석권한 소설가 권지예도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칼럼니스트 박경철의 에세이와 연관되어 표절 시비가 일자, 인터넷에서 본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해당 작품에 동인문학상을 준 심사위원회는 ‘표절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그녀를 방어해 주었다. 지난해 발표된 조경란의 장편소설 [혀] 역시 심각한 표절 공방이 오갔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론 없이 사건은 잊혀갔다. 그녀 역시,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패션 산업에도 표절은 공공연한 영업 비밀이다. 수많은 인터넷 패션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어느 브랜드의 어느 제품이 하이패션계의 어떤 제품을 카피했는지를 정확히 추적해낸다. 동대문에서 살 수 있는 옷가지부터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고가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양상에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어느 쪽이 조금 더 ‘비싼’ 원본을 택했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에 따라서는 여러 브랜드에서 동일한 디자인의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 그것이 카피인 줄 모르고 구입한다. 하지만 몇몇은 알아도 산다.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비싼 디자인’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한다. 그러니 기업에서는 더욱 대담하게 카피 제품을 찍어낸다.
이 무수한 표절 논란에서 왜 하필이 지-드래곤만 집중 포화를 받게 된 것일까? 일차적인 원인은 물론 뻔뻔함에 있을 수도 있다. 지-드래곤과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논란에 대해 장르적 특성상 음악 창작 과정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샘플링이니 오마주니 하는 말들로 도망치며 모방의 흔적을 애써 말소하려 든 것은 사실이다. ‘실수였다’라는 사과는 용서해도 ‘오해다’라는 변명에는 발끈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인가?
임명직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가 있을 때마다, 논문 표절도 위장 전입과 함께 단골 메뉴가 되었다.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후보자의 경우 표절 의혹에 휘말려 하차했지만, 정권이 바뀐 뒤에는 수많은 입각 후보자들이 표절 의혹과 관계없이 인준이 되어가는 추세다. 간혹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표절 문제 때문은 아니다. 결국 표절 의혹은 결국 비난의 구실이었을 뿐이었다.
지-드래곤에 대한 대중의 비난에는 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정치적 공세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공격에 있어 표절은 만만한 핑계다. 워낙 만연한 일이다보니 털면 털리는 먼지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연예인에 대한 비난에는 별다른 부담과 수고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정의로운 인간이다’라는 식의 묘한 쾌감을 준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통해 성공한 타인에 대한 양가감정, 즉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와 ‘아무리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불편한 이중 잣대 가운데, 연예인에 대해서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쉽다는 뜻이다. 지-드래곤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은 그가 ‘천재 뮤지션을 자칭하더니 표절을 했다’ ‘풍기문란을 조장하는 티셔츠를 입을 때부터 알아보았다’ 등 악의적인 코멘트를 덧붙인다. 애당초 지-드래곤이 사회적 안녕을 저해하는 불순분자인 만큼, 표절 역시 비윤리적인 개인의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반면 고위공직자후보자들의 위장전입과 논문표절은 왕후장상의 입신양명 필수 코스라는 식의 무의식이 작용한다. 동시에 그것을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비난하는 대신 ‘성공한 자들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 실수’ 쯤으로 생각해 버리고 만다.
물론 문화계나 학계의 표절과 모방 관행을 옹호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분명 모작 자체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말은 바로하자. 우리 모두 하고 있다. 그러니 지-드래곤만 잡으면 될 일이 아니다. 지-드래곤은 서로 충돌하는 욕망이 뒤엉킨 잇몸에 박힌 이빨일 뿐이다. 이 지리멸렬한 치통의 원인은 충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잇몸에 있다. 이빨을 뽑는다고 잇몸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