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악
Zodiac

이 <조디악>을 포함한 데이빗 핀쳐의 전 작품들은 국내 개봉시 번역제목을 달지 않는다. 굳이 센슈얼한 한국어 제목(일테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따위의)을 달지 않는 것은 감독의 '이름값'이 주는 신뢰감 덕분이다.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핀쳐는 헐리우드 주류 상업 영화 감독들과 비교한다면 샤말란(<식스센스><언브레이커블><싸인><레이디인더워터>...)과 마이클 베이(<아마겟돈><더 록><콘 에어><트랜스포머><아일랜드>...<나쁜녀석들>시리즈는 제외-_-)의 중간쯤에 있고, 마이클 만(<히트><콜래트럴><마이애미 바이스>..)과는 비교되며 거스 반 산트(<아이다호><굿윌헌팅><엘리펀트><라스트데이즈>..)와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서설이 길었고 앞으로도 좀 길텐데-_- 비교적 '금지된' 축에 속하는 필모그래피들인 <에일리언 3>과 <게임>에서부터, <세븐>, <파이트 클럽>, <패닉 룸> 등의 일련의 작품들에 붙여지는 수식어들은 대개 '스타일리쉬' 쪽이고, 혹자는 반문하겠지만 그 '스타일'에 비해 작품의 어떤 영화적이거나 혹은 문학적인 '깊이', 나아가 '완성도'에는 어느 정도 물음표가 달려 왔던 것도 사실이다. <세븐>의 음산한 분위기, '이 사회는 무언가 잘못되어있다'라는 메시지를 살리는 것은 간지나는 편집과 미장센, 그리고 상당 부분은 나인인치네일스 트렌트 레즈너가 담당한 음악에 빚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견 폄하해서 말하자면 '핀쳐의 영화들은 (그의 촬영감독인) 다리우스 콘쥐의 영화'라고도 말할 수도 있었다. 마치 대니 보일의 <비치>가 콘쥐의 촬영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영화인것처럼 말이다. <패닉 룸>이 전작에 비해 평가를 덜 받는 건 콘쥐가 중간에 콘래드 홀로 교체되었다는 사실 때문으로 생각했다. 물론 <세븐>, 그리고 <파이트 클럽>과 같은 영화는 (콘쥐가 촬영했지만, 마르크 카로의 미술과 장 피에르 주네의 연출이 더욱 빛나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의 경우에서처럼) 핀쳐의 '연출력'이 승리한 사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핀쳐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것은 조금 무리한 요구였던 것 같고, 나는 그는 그래서 그를 그의 영화적 선배들인 브라이언 드 팔머, 올리버 스톤, 조나단 드미 같은 감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고사하고 동년배인 퀜틴 타란티노나 스티븐 소더버그, 리처드 링클레이터보다 아랫줄로 보고 있었던 것도 사실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조디악>을 보고 곰곰 생각해보건대 그 생각은 이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타란티노의 <재키 브라운>, 소더버그의 <트래픽>, 링클레이터의 <웨이킹 라이프> 같은 영화들을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긴 서설과 짧은 본론. <조디악>의 작업 당시 프로젝트이름은 <크로니클스>였다. 이는 극중 등장하는 주인공들(제이크 질렌할과 로버트 다우니가 연기한 그레이스미스와 에이브리)이 일하고 있는 신문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 영화의 형식('연대기적 구성')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는 집요하게 지금의 시퀀스가 언제 어디서 벌어졌는지를 다큐멘터리처럼 표시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추보라는 것은 하나의 시퀀스에 제시된 하나의 시공간적 배경의 디테일들이다. 따라서 스릴러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교차편집이나 플래쉬백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스릴러가 아니기도 하다. 장르적 스릴러란 곧 정해진 결말을 향해 지연된 퍼즐들이 짜맞추어지는 순간 도파민의 분출과 더불어 아드레날린이 솟는 그런 장르적 쾌감을 목표로 하는 영화들을 얘기할텐데, <조디악>은 그런게 없다. 오히려 <조디악>에 비한다면 <콘스탄트 가드너>가 더 스릴러스럽다. <조디악>의 서스펜스를 구성하는 것은 온통 맥거핀들이다. 하지만 히치콕이 즐겨 사용한 맥거핀이 말 그대로 맥거핀인 반면, <조디악>에서는 그 맥거핀이야 말로 영화의 본질인 것 처럼 보인다. 인생이란 원래 항상 감질나는 것이다. 실제 살인사건들의 범인이 잡히는 과정은 영화에서처럼 서스펜스도 없고 스릴러스럽지도 않으며, <나쁜 녀석들>이나 <히트>, <세븐>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예컨대 <인정사정 볼것없다>라든지 <살인의 추억>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조디악 킬러'의 살인수법이나, 경찰과의 두뇌싸움 운운은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찌질'할 정도로 유치하다. 그렇지만 범인이 잡히지는 않는다. 실제로도 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 그런건 다 찌질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목격하고 인식하고 증언하고, 영화화되고 그 영화를 보고 하는 일은 항상 다 맥거핀이고, 그것만이 사실은 영화가 담지할 수 있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결국 영화적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그레이스미스가 신문삽화를 그만두고 발로 뛰는 사건 수사에 뛰어들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를 찾아가 노려보고 책을 내고....했던 일을 다시 영화로 만들고, 연대기적으로 재현하고.. 등등의 일에서 값을 할 뿐, 그것을 어찌 윤색하고 짜맞추고, 관객과 게임하고 하는 일을 버리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핀처는 방법론적으로는 히치콕을 따르고 있지만, 주제상으로는 고다르 등에 닿는다. 맥거핀의 향연이야 말로 영화적 진실인 것이다. 여기에 이 영화의 진정한 미덕이 있다.
(2007)
Zodiac

이 <조디악>을 포함한 데이빗 핀쳐의 전 작품들은 국내 개봉시 번역제목을 달지 않는다. 굳이 센슈얼한 한국어 제목(일테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따위의)을 달지 않는 것은 감독의 '이름값'이 주는 신뢰감 덕분이다.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핀쳐는 헐리우드 주류 상업 영화 감독들과 비교한다면 샤말란(<식스센스><언브레이커블><싸인><레이디인더워터>...)과 마이클 베이(<아마겟돈><더 록><콘 에어><트랜스포머><아일랜드>...<나쁜녀석들>시리즈는 제외-_-)의 중간쯤에 있고, 마이클 만(<히트><콜래트럴><마이애미 바이스>..)과는 비교되며 거스 반 산트(<아이다호><굿윌헌팅><엘리펀트><라스트데이즈>..)와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서설이 길었고 앞으로도 좀 길텐데-_- 비교적 '금지된' 축에 속하는 필모그래피들인 <에일리언 3>과 <게임>에서부터, <세븐>, <파이트 클럽>, <패닉 룸> 등의 일련의 작품들에 붙여지는 수식어들은 대개 '스타일리쉬' 쪽이고, 혹자는 반문하겠지만 그 '스타일'에 비해 작품의 어떤 영화적이거나 혹은 문학적인 '깊이', 나아가 '완성도'에는 어느 정도 물음표가 달려 왔던 것도 사실이다. <세븐>의 음산한 분위기, '이 사회는 무언가 잘못되어있다'라는 메시지를 살리는 것은 간지나는 편집과 미장센, 그리고 상당 부분은 나인인치네일스 트렌트 레즈너가 담당한 음악에 빚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견 폄하해서 말하자면 '핀쳐의 영화들은 (그의 촬영감독인) 다리우스 콘쥐의 영화'라고도 말할 수도 있었다. 마치 대니 보일의 <비치>가 콘쥐의 촬영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영화인것처럼 말이다. <패닉 룸>이 전작에 비해 평가를 덜 받는 건 콘쥐가 중간에 콘래드 홀로 교체되었다는 사실 때문으로 생각했다. 물론 <세븐>, 그리고 <파이트 클럽>과 같은 영화는 (콘쥐가 촬영했지만, 마르크 카로의 미술과 장 피에르 주네의 연출이 더욱 빛나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의 경우에서처럼) 핀쳐의 '연출력'이 승리한 사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핀쳐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것은 조금 무리한 요구였던 것 같고, 나는 그는 그래서 그를 그의 영화적 선배들인 브라이언 드 팔머, 올리버 스톤, 조나단 드미 같은 감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고사하고 동년배인 퀜틴 타란티노나 스티븐 소더버그, 리처드 링클레이터보다 아랫줄로 보고 있었던 것도 사실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조디악>을 보고 곰곰 생각해보건대 그 생각은 이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타란티노의 <재키 브라운>, 소더버그의 <트래픽>, 링클레이터의 <웨이킹 라이프> 같은 영화들을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긴 서설과 짧은 본론. <조디악>의 작업 당시 프로젝트이름은 <크로니클스>였다. 이는 극중 등장하는 주인공들(제이크 질렌할과 로버트 다우니가 연기한 그레이스미스와 에이브리)이 일하고 있는 신문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 영화의 형식('연대기적 구성')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는 집요하게 지금의 시퀀스가 언제 어디서 벌어졌는지를 다큐멘터리처럼 표시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추보라는 것은 하나의 시퀀스에 제시된 하나의 시공간적 배경의 디테일들이다. 따라서 스릴러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교차편집이나 플래쉬백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스릴러가 아니기도 하다. 장르적 스릴러란 곧 정해진 결말을 향해 지연된 퍼즐들이 짜맞추어지는 순간 도파민의 분출과 더불어 아드레날린이 솟는 그런 장르적 쾌감을 목표로 하는 영화들을 얘기할텐데, <조디악>은 그런게 없다. 오히려 <조디악>에 비한다면 <콘스탄트 가드너>가 더 스릴러스럽다. <조디악>의 서스펜스를 구성하는 것은 온통 맥거핀들이다. 하지만 히치콕이 즐겨 사용한 맥거핀이 말 그대로 맥거핀인 반면, <조디악>에서는 그 맥거핀이야 말로 영화의 본질인 것 처럼 보인다. 인생이란 원래 항상 감질나는 것이다. 실제 살인사건들의 범인이 잡히는 과정은 영화에서처럼 서스펜스도 없고 스릴러스럽지도 않으며, <나쁜 녀석들>이나 <히트>, <세븐>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예컨대 <인정사정 볼것없다>라든지 <살인의 추억>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조디악 킬러'의 살인수법이나, 경찰과의 두뇌싸움 운운은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찌질'할 정도로 유치하다. 그렇지만 범인이 잡히지는 않는다. 실제로도 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 그런건 다 찌질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목격하고 인식하고 증언하고, 영화화되고 그 영화를 보고 하는 일은 항상 다 맥거핀이고, 그것만이 사실은 영화가 담지할 수 있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결국 영화적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그레이스미스가 신문삽화를 그만두고 발로 뛰는 사건 수사에 뛰어들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를 찾아가 노려보고 책을 내고....했던 일을 다시 영화로 만들고, 연대기적으로 재현하고.. 등등의 일에서 값을 할 뿐, 그것을 어찌 윤색하고 짜맞추고, 관객과 게임하고 하는 일을 버리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핀처는 방법론적으로는 히치콕을 따르고 있지만, 주제상으로는 고다르 등에 닿는다. 맥거핀의 향연이야 말로 영화적 진실인 것이다. 여기에 이 영화의 진정한 미덕이 있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