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7.12.19 <조이풀 걸>
  2. 2007.12.19 <레지 맥스웰의 사랑> 2
  3. 2007.12.19 <우환>
  4. 2007.12.19 <싸늘한 편지>
  5. 2007.12.19 <sam>
  6. 2007.12.19 <두견·화>

<조이풀 걸>

라이터 리 2007. 12. 19. 13:55

조이풀 걸
joyful girl


두더지처럼 양팔을 허우적거리듯 지하를 헤맸다. 손아귀를 자꾸 빠져나가는, 살아있는 듯한 이물감이 드는 자동차 키에 돋은 버튼을 누르자, 저쪽 촘촘한 기둥 사이에서 삐삐 거리는 경박한 소리가 났다. 깜빡이는 불빛을 쫓아 나는 발을 질질 끌었다.

딸깍이는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여자가 일러 주었던 대로 몸을 비틀어 조수석 쪽 수납함을 열었다. 견고해 보이는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나는 숨죽이고 그것을 뜯었다.

안녕, 빠리의 소년. 당신은 나의 블루칩이었어요.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 시간이 흐르는 곳으로 갔습니다. 선물은 마음에 들까요.

초대하지 않는, 닿을 수 없는 청첩장이었다. 나는 가만히 시동을 걸었다. 오디오에는 쇼팽이 걸려 있었다.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반걸음쯤 밟았다. 난파선의 파편처럼 조각난 빛이 흐트러진 입구를 향해 천천히 핸들을 꺾었다.

1

“돈 벌면 가서 너 차 한 대 새로 사자.”

옆 자리에 탄 선배가 내 낡은 차의 히터를 3단으로 올리며 말했다. 차가 더 요동했다. 매캐한 냄새가 났고, 들숨이 걸쭉했다.

“정우성하고 전지현하고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히터를 세게 틀면 다음날 신문기사에 뭐라고 나오는 줄 알아? 정우성 전지현, 뜨겁다.”

농담 삼아 한 말인 줄 알았더니 그는 하나도 웃기지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야, 어제는 인터넷 기사 제목이, 김아무개, 대본이 필요하다면 코미디 접겠다. 이런 식이더라. 무슨 조지 부시, WMD 없으면 대테러전 접겠다 수준이야. 자존심이 있어서 클릭 안 했다니까.”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사차선 일방통행로 전방에는 소통이 드물었다. 혹한의 겨울밤이었다. 앙상한 가로수들 사이로 바람의 얼룩이 눈 속에 흔적으로 남았다. 나는 운전을 했고, 그는 담배를 피우며 가늘게 열린 창밖을 내다 봤다. 질이 다른 매캐함을 교환하는 창의 안팎에서 나는 한사코 맑은 것을 찾으려 애썼다. 아파트가 많았고, 테니스클럽이 보였다. 때때로 회색조의 상가건물들이 육중하게 서 있었다. 멀리 초고층 주상복합건물들의 윤곽이 밤안개 너머 아스라했다. 운전대를 비스듬히 하고 차선을 이리저리 가로질렀다.

“이 동네에는 신기하게 전신주가 하나도 없어. 이것저것 다 지하로 매설했을 거야. 대신 가로수가 많아서 좋지, 땅값 비싼 것도 다 그런 것 때문이래. 이제는 사라진 이데올로기 대신 웰-빙 열풍! 야, 저쪽에서 돌아야 돼.”

벌써 몇 주를 지내왔지만 아직도 낯선 동네였다. 태어나 삼십 년 가까이를 살던 집이 재건축 바람에 휩쓸리고 나서, 양친은 보상금으로 용인 어디쯤의 아파트를 사들였다. 그러고도 제법 많은 돈이 남았다. 나는 손을 벌려 이 동네 어디의 원룸에 입주했다. 무너진 옛날 너른 집의 감나무와 개집의 냄새를 떠올리며 나는 참지 못해 운전석의 창문을 열었다.

선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거대한 건물의 입구였다. 네 개 동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최근 신축된 강남 어디의 마천루에 그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유명했다. 어두컴컴한 진입로를 한 바퀴 반을 돌아 지하 1층으로 들어가자, 졸고 있던 지하주차장 관리인이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나는 창문을 열고 그가 요구하는 주차료 천 원을 냈다. 열린 틈으로 아직도 어딘가를 헤집는 엔진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익숙한 듯 동선을 잡아 상가 건물 지하에 딸린 멀티플렉스로 걸어 들어갔다. 조명을 받지 못하고 철장 속에 갇힌 마네킨들의 표정들이 암담했다. 그는 매표도 하지 않고 상영관 입구로 들어서며 검표원에게 인사했다. 앉아 있던 그는 이미 안면이 있는 듯 고개를 살짝 숙여 응대하더니, 선배의 뒤를 쫓아가던 나를 뜨악하게 쳐다보았다.

“오늘은 한 사람 더 있어요. 유 실장님한테 얘기해놨어요.”

개미굴처럼 늘어선 상영관의 입구들 가운데 더러는 불이 켜 있었고 더러는 어두웠다. 저쪽 사람 없이 스산한 스낵코너 앞에 코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선배가 내쳐 다가가자 여자 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몸을 돌려 반가운 얼굴로 방심하듯 손바닥을 내보이던 그는 뒤에 선 나를 보고 데인 듯 손가락을 오므렸다.

“얘가 유진이야. 너희 둘이 동기였어.”

“그래? 98학번 불문과 나온 오유진인데요.”

“네, 어, 나는 사회학과…….”

오유진. 큰 키와 긴 머리, 또렷한 눈을 가진 미인이었다. 커다란 백을 맨 그와 악수를 했고, 그는 내밀었던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여배우들을 베낀 듯 닮은 동작이었다. 나는 나와 공유했다는 그의 대학 시절을 상상했다. 서로 다른 것을 추억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술을 퍼먹고 당구장을 드나드는 한량이었던 나는 옷과 화장품을 사러 다니는 이들을 방임하여 살았다. 사회과학 도서 열람실이 학교 중앙도서관 건물의 좌측 날개에 있었고, 쇼핑객들은 거기 있는 부류를 ‘중도 좌파’라고 비아냥거렸다. 서로는 서로를 빠르고 또 깨끗하게 잊곤 했으니, 재회임이 틀림없다 해도 우리는 다른 수족관의 붕어들처럼 생면부지였다.

선배는 앞장서서 제일 구석에 있는 상영관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는 우리에게 앉을 자리를 안내하고는(선배는 굽은 손가락으로 저 어둡고 텅 빈 공간의 어디쯤을 가리킨 것일까) 상영관 뒤쪽의 영사실 입구로 들어갔다. 발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오유진이 먼저 계단을 내려가 객석의 가운데 되는 쯤에 가서 앉았다. 나는 머물러 영사실에 들어간 선배가 나올 때를 기다렸다.

“근사한데요. 시네마 천국이 따로 없네. 유 실장이라는 사람이랑 잘 알아요?”

“응, 이쪽 지점 영업 담당이야. 처음에는 같이 봤어. 나중에는 아예 보고 싶을 때 밤에 와서 보라고…….”

극장 시설이 시동되면서 기계음이 식탁보처럼 상영관을 감쌌다. 선배는 내 어깨를 툭 치고 오유진이 앉은 쪽을 향했다. 나는 선배 옆에 엉덩이를 묻었고, 그 너머 오유진은 다리를 꼬고 앉아서 로고와 오프닝 크레딧이 뜨기 시작한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접하지 못했던 프랑스 영화였고, 영어로 자막이 나왔다. 최근 배우기 시작한 프랑스어 발음이 내심 반가웠다. 오유진은 영어 자막과 프랑스어 더빙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편안했을까. 선배는 언제 또 이런 영화에 관한 고상한 취향을 갖게 된 것일까. 낯설거나 낯익은 배우들이 나왔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따분했지만 잔재미가 있었다. 다행히 졸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들어왔던 길을 거슬러 백화점 지하로 나왔다.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잠자코 두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다.

2

세상이 다 잠들었을 무렵 대담한 도둑처럼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선배의 일방적 강권에서였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고 네 학번이 위였다. 방에 달린 밖으로 난 틈을 온통 틀어막고 전기에 의지해 심해어처럼 납작해 있던 밤에, 선배는 챙겨 입고 차를 끌고 나오라고 했다. 취한 듯 박자가 불분명한 발음을 들었고, 나는 거절의 뜻을 비쳤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나는 이틀을 입던 셔츠와 코트를 대충 챙겨 입고 지하주차장으로 가며 발을 자꾸 헛디뎠다.

선배는 몇 년 전, 우리 사이에서 스타 아닌 스타였다. 빚은 것처럼 잘 생긴 외모는 아니었지만 호남이었고, 바이올린 D현의 음역에서 울리는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무엇보다, 학생운동이 불타고 남은 희나리 위에 새로 지은 디오니서스 신전에서 노닐던 나는, 그가 희나리에 불을 놓아 삼은 횃불을 보고 경도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신입생 시절 나는 그를 따라 총장실이 있는 학교의 본관을 점거하는 데 따라 나섰다. 그는 학생운동이 배고픈 시절이 지났다고 일갈하고는 ‘단식’ 투쟁 대신 ‘폭식’ 투쟁을 벌이자며 끼니때마다 자장면에 탕수육, 고량주 따위를 배달시켜 먹고 총장 이름으로 외상을 달았다. 캠퍼스에 상주하며 배달하던 철가방들도 그의 그런 호기에 은근히 동조해 주었다. 그는 시위 때면 화약을 구해 와, 질서 없이 도열한 우리 뒤편에 불꽃을 그렸고 우리는 그것을 후광으로 업고 전진하는 발걸음을 밀었다.

그의 ‘세미나’는 구세대의 세례를 받은 여타의 운동권들과 조금 달랐다. 다른 선배들이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같은 글을 번역해 오거나 이론과실천판 <자본론>을 가지고 올 때, 그는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케인즈의 <자유방임의 종언> 같은 것들을 가지고 왔다. 케인즈의 책은 미국에서 출간된, 희귀하게 낡은 하드커버 판이었다. 그는 다른 작자들은 마르크스의 핵심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 딱딱한 교조성에서 벗어나, 마르크스가 했던 바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마르크스는 변증법을 설명한 게 아니라 변증법을 사용한 거야. 마르크스 시대의 자본주의와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는 그 질이 다르지. 따라서 우리는 마르크스를 도그마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적 방법론이라는 텍스트를 취하고 그것을 즐겨야 해”, 그는 마르크스 대신 자본주의 경제학자를 공부하는 까닭을 이렇게 밝혔다). 거기서 우리는 모두 모호했고, 모호함을 구체로 이끌어낼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세상 자본의 속도는 쫓아갈 수 없게 빨랐고, 예컨대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 통장 속 숫자(어제만 해도 2백44만3천2백5십 원이었다, 나는 오늘 거래은행의 모 지점 일련번호 A14번 ATM에서 2만원을 출금했고 수수료는 물지 않았다)는 분초를 기해 변하는 그림자보다 더 변화무쌍했다.

선배는 나 같은 후배들을 달고 다니며 함께 시나 소설을 써서 학교 여기저기에 뿌리고 다녔고,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때때로 제법 규모 있는 사진전이나 연극 공연, 영화 상영회를 기획했다. 실로 캠퍼스는 마개를 방금 딴 사이다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과거 즐비했던 사회과학 동아리들은 폐쇄되거나 명맥을 잇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 가고 있었고, 대신 영화를 찍거나 재즈댄스를 추는 무리들이나 경영 컨설팅을 공부하는 모임 등등이 대학생 신문에 소개되었다. 확성기와 빨간 머리띠가 있던 곳에는 비트가 흐르는 앰프와 힙합바지가 있었다. 심지어 총학생회 선거가 다가오자 선거운동 구호로 ‘당신의 꿈을 위하여’ 식의 문장이 채택되었다(누가 어떤 꿈을 꾸고 있단 말인지, 나는 궁금했다). 나는 신입생 시절 ‘선배’들이 마르크스를 읽혀주던 것을 떠올릴 때마다 캠퍼스의 계통 없는 진면목들이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광장의 미혹에서 중립을 말하는 것과 내 행태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선배들이 안겨줬던 <전후시대의 인식>과 <전환기의 논리> 대신, <시사교양>과 <롱맨 토플>을 끼고 다녔다. 후배들은 동생이 되어 오빠가 된 선배와 커플링을 끼고 연애를 시작했다.

세기가 바뀌면서도 나는 선배를 따라다니며, 지난 시절의 좌파를 서슴없이 애도하는 그의 대담함에 거듭 놀랐다. 우리는 때로 고인의 시편을 읽으며 건물에 있는 틈마다 숨겨진 비밀이 없나 들여다보고 다녔지만, 이제 버려진 금서는 나오지 않았다. 새 밀레니엄을 장식하는 행사들이 우리들을 지나쳐갔고, 정당의 이름들이 바뀌었다.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운동’은 선배의 마지막 겨울, 그의 논문심사가 끝나고 교정 전반이 한산하던 무렵에 자행되었다. 우리는 중앙도서관과 본관 앞에 세워진 학교 건립자들의 기념 동상에 페인트를 부었다. 하나에는 검정색, 하나에는 빨간색으로 세 통쯤. 나는 이만 가자고 했지만, 선배는 그중 하나의 목을 자르기 위해 톱질을 해대다가, 순찰을 돌던 학교 수위에게 발각되어 제지당했다. 나는 도망쳐 잡히지 않았고, 선배는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학교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졸업학점을 다 채운 상태로 퇴학당했다. 이듬해 1월에 나는 쫓기듯 군대에 갔다. 위문편지로 지인들이 선배의 구명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지만, 선배는 내게 소식이 없었고 다만 하릴없이 말없이 가이없이 떠났다고 했다. 군에 있던 시절 그가 무슨 일인가로 입건되어 1년 6월을 살았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경황이 없는 나는 그냥 듣기만 했다.

복학한 뒤에도 나는 줄곧 ‘중도 좌파’였다. 졸업한 뒤에는 어쩌다 대학원까지 흘러들었다. 선배는 대학원 시험을 치를 무렵 ‘나는 이제 철학의 땅을 떠난다, 너는 부디 건승하기를!’이라고 적힌, 구겨진 엽서를 보내왔다. 우표에 찍힌 소인에는 미국 중부의 어느 도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함박눈처럼 내리는 선배의 추억을 밟고 석사 졸업 논문으로는 <관혼상제를 통해 본 한국 가족사회의 분석 - 연결망 이론을 중심으로>를 냈다. 늘 세상 이치에 미숙했던 나의 논리는 보잘 것 없었고, 합당하게도 성적은 평범했다. 토플 시험을 보고 대학원 시험을 치렀다. 같은 기간 주위에 휩쓸려 입사 시험도 몇 번 응시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대학원에 남았다. 누가 왜 그래 물으면 아직 내게 세상은 알쏭달쏭한 것이라고 답했다. 존경하던 교수들은 위인들이 응당 그랬듯 내게 말이 없었고, 아마 나도 학교를 떠나기에 마뜩한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나는 박사 논문으로 <한국의 문화 정책>을 준비했다.

선배를 다시 만난 것은 최근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보상금 중에 남은 것이 많다며 묵혀두긴 아까우니 불릴 방도를 찾아보라고 일렀다. 부동산 투자를 핑계로 여기저기 이름난 땅들을 돌아다녔다. 격전지와 철새 도래지, 오래된 성과 옛 놀이터를 오가며 나는 사람 생각을 많이 했고 가끔 돈 생각을 했다. 서울로 돌아와 나는 입주한 원룸 근처에 있던 무슨무슨 자산투자 하는, 이름난 회사의 영업장을 들렀다. 선배는 거기에 따로 자기 방을 갖고 비서를 둔 돈놀이꾼으로 있었다. 처음 그를 마주쳤을 때에는 김동식이라는 이름조차 가물거렸다. 맥없이 앉아 홍보물을 뒤적이다가, 사무실에서 나오던 그가 먼저 아는 체를 하며 인사를 해왔다.

“아니 동식 선배, 여기서 일해요?”

“선배라니, 형이라고 불러라.”

“아니요, 선배는 선배예요. 선배다운 선배.”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를 형이라고 부르기가 머쓱했다. 보증을 잘못 서 대신 빚을 갚았던 경험이 있던 아버지는 아는 사람과는 돈 거래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나는 거기서 노는 돈을 굴려 달라는 말 대신, 구르던 나를 놀리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연락하겠노라 했다.

3

펀드 매니저와 아나운서 커플 사이에서 대학원생은 겨울동안 적지 않은 영화를 봤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선배는 연락을 해왔고 나는 한 번은 거절하고 한 번은 수락했다. 선배는 프리츠 랑, 알렉산드르 도브첸코, 미조구찌 겐지, 쇼티아지트 레이,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필름을 가지고 왔다. 들어서 이해할 수 없는 동서남북의 제어들은 효과음에 불과했고, 나는 미장센을 챙길 틈 없이 자막을 읽어야 했다. 이해가 부족한 부분은 생각 없이 넘어갔다. 때마다 영화는 미스터리처럼 남았지만, 나는 영화관에 가는 것이 까닭 모르게 좋았다.

우리가 만나던 시간은 항상 새벽이었다. 나는 더러운 냄새가 나는 내 차를 타고 돌아왔고, 선배는 자신의 BMW로 유진을 데리고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가끔 셋은 밤에 만나 영화를 보는 대신 술을 마시러 가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데면데면한 사이였고, 술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말없이 황망해서 일어나곤 했다.

셋이 새벽이 아닌 다른 시간에 자리를 가진 것은, 이르게 핀 꽃들을 살피며 새 학기를 준비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선배는 내게 전화해 점심 약속을 정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먼저 나가 덜 녹은 길에 빗물이 미끄러지는 거리를 쏘다녔다. 야무지지 못해서 양말이 젖는 것을 몰랐다. 선배가 잡은 인사동의 어느 한식당에서 나는 신을 벗지 않는 자리에 앉자고 했다.

원형 테이블에 셋은 둘러 앉아, 늘어진 반찬을 깨작이며 식사를 했다. 난방기 돌아가는 소리와 주변의 외치는 소리가 우리의 긴 침묵을 대신했다. 삐거덕거리는 의자에서 몸을 숙이고 또 일으키며 탕이니 구이 등속을 헤집었다. 나는 재우쳐 먹었다. 몇 달은 닦지 않은 듯 지저분한 창문에 빗자국이 하염없이 새겨졌다. 창밖을 보며 이렇게 셋이 만날 명목은 사실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웬일이에요, 점심 때.”

“오늘 우리 펀드에서 투자한 작가 전시가 있어. 너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펀드에서 작가한테 무슨 투자도 해요?”

“전부터 이걸 얘기할까말까 했는데, 우리 펀드가 성격이 좀 달라. 일테면 아트펀드야.”

그는 정말 갤러리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가 입는 회색 스트라이프 수트가 그토록 어울려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유진은 그의 곁에서 해사하게 웃으며, 커다란 모자를 쓰거나 지팡이를 든 관람객들과 인사하고 악수를 교환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멀거니 서서 전시된 것들을 훑었다. 실리콘과 식염수와 플라스틱과 철심 따위를 낡고 헤진 옷가지에서 자른 포목 위에 배치한 미니어처 도시들과 풍경화들이었다. 나로서 그것들은 한 겹 벗겨내고 나면 빈 공간만 남는,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고 알 수 있어도 알고 싶지 않은 일련의 오브제들일뿐이었다. 청바지에 블라우스 차림의, 성별조차 불분명해 보이는 어린 작가가 선배와 오유진에게 굽실 인사했다. 나는 그의 불분명한 성차와 그의 작품이 짓는 경계와 선배가 투자했다는 돈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삼십분쯤을 화랑에서 배회했다. 나는 할 일이 없어 본 것을 또 보고, 도록을 들췄다. 이윽고 안에서는 리셉션을 시작했다. 나는 화랑의 직원이 따라주는 음료를 받아들었다. 화랑의 주인과 평론가가 작가를 소개했다. 지방의 미술대학 2학년에 다니는 여학생이었고, 절반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변에 인사를 돌렸다. 딱히 누구에게 한다고도 할 수 없는 고갯짓을 그는 연신 주억거렸다. 화랑의 주인은 리셉션에 초대된 어디 대학의 교수, 어느 협회의 고문, 무슨 화랑의 딜러 등등을 소개하더니 선배를 가리켰다.

“그리고 오늘 이 전시회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수고해 주신, 우리 한주희 작가의 후원자시지요. 김동식 선생님이십니다.”

선배는 살며시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상하로 움직였다. 그것은 인사가 아니라, 좌중의 박수에 대한 인정처럼 보였다. 떠들썩한 환호와 박수 가운데 잠자코 있던 나는 선배의 곁에서 손뼉을 부딪치던 오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항의하듯 가만히 보았고, 나는 이내 손을 들어 서너 번 소리를 냈다.

자리를 뜰만한 틈을 엿보며 실리콘과 청바지로 부산을 그려놓은 그림 앞에 서 있던 내게 오유진이 가만히 다가왔다. 그의 접근에는 맥락이 없었고, 그의 어깨 너머 선배는 평론가라고 했던 중년 남자와 손짓을 섞어가며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저녁 때 시간 있어요?”

“저녁 때? 왜요?”

“동식 오빠는 사람들하고 모임 있어요. 혼자 불러놓은 게 영 미안하잖아. 시간 있으면 내가 한 잔 살까 싶은데.”

4

나는 아티스트와 크리틱, 패트런과 딜러, 콜렉터와 필란트로피스트들 틈에서 갈팡질팡했다. 전시가 다 끝날 때까지 화랑 옆 커피숍에서 잡지를 읽으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사이에 섞여 고기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선배는 자리를 파하기 직전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했고, 나는 나와서 비 그친 것을 보고 아무 데나 걸어 다녔다. 이윽고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전화기가 울렸다. 나는 젖은 양말을 걱정하며 오유진과 접선했다.

심상하게 서 있는 건물의 입구에 그는 맑게 서 있었다. 거리는 춥고 어둡고 축축했고, 발이 시린 우리는 어디선가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 냄새를 피해 한적해 보이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전통주 따위를 파는 주점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 다니던 그렇고 그런 주막들을 떠올렸고 그의 대학 시절을 상상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등을 벽에 기대고 소리 없이 술을 따라 마셨다.

“아나운서라면서 TV에서는 왜 한 번도 못 봤죠?”

“나 라디오만 해요. 방송사가 좀 작아. 작년부터 텔레비전 위성방송도 하긴 하는데 보통 목사들 나와서 집회하는 거 틀어대는 채널이라.”

“아, 기독교 방송이지요. 방에 라디오가 없어서 못 들어요. 유진씨도 기독교예요?”

“모태 신앙이에요.”

“나는 못해 신앙인데요.”

여흥을 만들기 여의치 않은 간극이 자꾸 아득해보였다. 나는 젓가락을 깨작거리며 술잔이 비면 재빨리 채웠고 술잔이 차면 재빨리 비웠다. 술병들이 둘 사이를 어슷거리는 사이 시나브로 취기가 돌았다. 애초부터 취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함께 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이렇듯 한가하게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신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제 그와 흥뚱항뚱하며 잘도 마셨다.

“뉴스 말고도 그런 것도 해요. 시보랑 공익광고 멘트. 뉴스 끝나면 영화 음악 방송 DJ 보는 여자가 있는데, 한심해. 차라리 내가 하고 싶어. 매일 그래요.”

그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문득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박사 2년 했으면, 그럼 계속 학교 다니면서 교수까지 하는 건가?”

“글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어요. 눈은 높은데 일자리가 시시해서 그랬지요. 보따리장사를 꼭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요.”

그냥 앉아있는 줄 알았는데, 돌던 술병이 비자 그가 먼저 주문을 넣었다. 눈을 씻고 보니 유진의 얼굴도 제법 불콰해 있었다.

“집에서는 당연히 교수를 하라고 하지요. 근데, 박기복 알아요? 유진 씨도 박기복 알아요? 우리 과 꼰대 있잖아요.”

꼰대 하는 발음을 하며 혀 꼬이는 소리를 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종업원이 가져다 준 술병의 뚜껑을 따 죄 비어있던 잔들을 채웠다. 부딪친 술잔으로 그는 입술만 적셨고, 나는 반쯤을 비웠다. 시계를 보니 자정을 넘어 곧게 섰던 바늘이 막 헤어지고 있었다.

“나 교수한테 찍혔어요. 그 양반이 무슨 칼럼을 신문에 냈는데, 내가 그거 씹는 글을 써서 대학원 신문에 냈어요. 그 원고 쓰는 게 대학원생들한테 순번대로 청탁이 오는데, 이번에 특별케이스로 내용까지 정해줬어요.”

예기치 않은 마찰이었다. 갓 석사 과정을 마친 애송이였던 나는 교수를 모독했다. 나는 죽은 독재자를 치적이니 공과를 운운하며 옹호하는 그를 정치적인 청맹과니라고 썼다. 신문이 뿌려진 이틀 뒤 교수는 나를 호출했다. 수많은 사회과학 서적들로 둘러싸인 그의 사무실에서 언쟁을 시작한지 30분쯤 지나 그는 내게 꽁초가 수북했던 재떨이를 던졌다. 나는 흩어진 꽁초를 줍고 옷에 묻은 담뱃재를 털며 돌아서는 길에 분연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할 일이었다. 유학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어학원(‘알리앙스 프랑세즈’라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알량한 불어’라고 불렀다)을 다녔다.

“빠리 가려고? 불어는 많이 배웠어요?”

“쥬 쒸 꼬헹(Je suis Coreen) 정도는 쓸 줄 알아요. 헤헤, 유진 씨가 나 과외 해 줄래요? 불어 어렵던데요. 아, 사실 갈지 안 갈지도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몰라요, 실은요.”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오유진이 풋 웃으며 말했다.

“이제 봤더니 사회학과도 우리 과에 즐비한 간다프였네.”

“간다프가 뭔데요?”

오유진은 뒤적거리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갑자기 잔을 들어 건배를 청해왔다. 내가 엉겁결에 잔을 들어 부딪치자 유진은 희롱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반드시 간다, 프랑스로! 앙샹떼, 쁘띠 갸쏭(Enchantee, petit garcon).”

상떼, 마 벨(Sante, ma belle). 나는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혀를 꼬부라뜨렸다.

5

입춘이 지나고 2월이 다 가도록 실로 춘래불사춘이던 날들이었다. 비가 더 왔고, 옷이 얇아졌다. 괴이쩍게도 나는 여전히 추웠다. 세차게 퍼붓던 비와 이르게 지던 꽃들. 나는 하릴없고 할 일 없어 손을 비볐다. 아버지의 돈을 맡긴 금융 상품들의 수익률은 신통치 않았고, 내 잔고는 야금야금 바닥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박기복은 뜻밖의 제의를 해왔다. 나는 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기 전, 몸을 떨며 울리는 전화기를 잡았다 놓았다 했다. 그와 다툰 것은 오로지 내 지식이 미천했기 때문이라는 자책이 들었다. 나는 내게 불리한 증거물을 지우려는 미숙한 흉악범처럼 문득 내 책장을 헤아렸다.

“내가 올해 어디 간사로 가거든. 자세한 얘기는, 음, 내가 자네한테 술 한 번 사지. 그때 들려줄 테니. 어때?”

“저 더러 선생님이 맡으신 강의를 땜빵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신입생 병아리들 데리고 하는 입문 강의잖나. 병아리들 날개 짓 못한들 상관없으니 책임감은 느끼지 않아도 좋다네.”

전화를 하며 나는 내 책장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세상의 동서남북과 상하좌우가 맥락 없이 꽂혀 있었다. <SPSS 12.0> 옆에 <국어사전> 옆에 <까라마조프가 형제들> 옆에 <문명의 충돌>, 그런 식이었다. 책장에는 <자본론>과 <국부론>도 있었다(그 둘 사이엔 뜬금없게도 <수화교실>이란 책이 있었다, 신입생 때 장애인 봉사 동아리에 들어가겠다며 사고는 읽지 않은 책이었다, 결국 동아리에도 들지 않았다, 나는 어쩌자고 이 책을 이 방까지 가지고 왔을까).

나는 전화를 끊고, 그것이 그의 호의일는지를 가늠했다. 박기복은 어쩌면 제자에게 소란을 피운 부덕을 뉘우치며 일종의 선심을 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학과에는 박사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이 십여 명 있었으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강의를 맡은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그러나 강의를 맡는다고 해도 강의실 밖에서는 파트타임 임노동자에 불과했다. 막상 뜻에 없던 모교에서의 강의가 손에 잡힐 듯, 아련했다. 나는 돌연 되게 쓰고 어지러웠다.

다음 날 박기복에게 전화를 걸어 수락의 뜻을 전하고, 강의안 요약을 준비하고, 학과 사무실에 필요한 서류를 등록하자 수강편람에 내 이름이 찍혀 나왔다. 나는 실무 교수안을 짜며 선배가 가지고 왔던 검은 장정의 <자유방임의 종언>를 떠올렸다. 나는 강단에서 에밀 뒤르껨과 막스 베버, 마르크스 같은 선현을 주워섬겨야 했다. 낡은 책들을 훑어보는 사이 수강 신청이 시작되었고, 양친에게 늦게나마 소식을 전했다. 당신들은 기뻐하시며, 열심히 해서 평가 잘 받으면 교수 임용도 쉬운 것 아니냐는 등의 순진함을 늘어놓았다. 나는 집에서 축하금조로 보낸 용돈으로 미욱하게도 옷을 몇 벌 샀다.

강의를 맡는다는 소식을 선배에게 전하자 그는, 삼류 대학원생이 일류 대학 교수 됐네 하며 농을 걸어왔다. 그는 개강 직전 만난 자리에서 '한국비정규직대학교수노동조합'에 가입하라며 <대학이여, 우리는 희망 없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건넸다. 훑어보니 하나 같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시간 강사들의 수기 모음집이었다. 저 고결한 합리성을 간직하고 있어야 할 상아탑 내부에 켜켜이 쌓인 부조리들을 보며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선배와 술잔을 교환하면서도 일이 박기복 교수의 주선에 의한 것임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증권맨들이 모이면 최신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대출 이자에 대해 이야기하거든.”

내가 선배가 하는 일에 대해 묻자 그는 손에 찬 비싸 보이는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점잖게 말했다. 그는 나를 앞에 두고 연신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학창 시절 시간과 공간을 묘사하는 언어와 학(學)의 핍진함을 대신하여 모니터 속 점멸하는 경제 지표를 추적하는 사람이 된 것이 생경했다. 시나 소설을 쓰고, 연극을 보러 가던, 무던히도 모던했던 우리는 이제 삼십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그랬다. 서른 살이 넘으면, 치솟는 금리와 임박한 구조조정 따위가 각다귀처럼 달려드는 삶의 치덕거림에 마냥 태연할 수는 없게 마련이었다. 하물며 선배는 대단히 근사한 편이었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선배들은 대개 허리가 틀어지고 눈 밑이 퀭해, 방금 무덤에서 꺼내놓은 것처럼 보였다.

선배가 사모(私募)하는 펀드는 1억 원 이상을 투자하는 고액자산가들을 상대로 했다. 3년 6월 만기에 설정액은 150억이었으며 기준 통화는 미국 달러화를 썼다. 판매 수수료는 매입 청약금액의 1.5%, 운용보수 및 관리보수 금액은 순자산가치의 2%로 설정되었다. 평론가를 고용해 자산의 40% 가량을 미술품을 투매하는 데에 쓰고, 고용한 딜러를 통해 경매에 붙였다. 나머지 자산의 20%는 영화 수입에, 20%는 공연 산업에 투자되었고, 실비를 뺀 나머지 자산 18%는 펀드 안정성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 채권과 어음 등 픽션 금융상품에 묶어둔다고 했다. 선배는 고용한 평론가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을 보장하는 가운데, 다만 한 가지 권고 사항을 두기를 ‘정치적으로 공정한’ 작품들을 우선 구매하라고 일렀다. 안정적인 투자를 위해 유명작가들인 김흥수, 이용덕, 박성태의 작품도 구매했지만, 머리가 노란 젊은 작가들, 이불, 서도호, 배준성, 함진 등의 작품 역시 포트폴리오의 대상이었다. 목표 수익률은 연 8%였고, 환매는 신청일로부터 익영업일 기준가로 제 7영업일 이내에 지급되었다.

선배가 초대했던 개인전의 작가는 오로지 선배의 안목으로 건진 ‘물건’이었다.

“유진이랑 대학생들 연합 작품전 하는 미술관에 갔거든. 너무 괜찮은 거야. 포스트모던한 몸을 이루는 질료들로 만든 보디스케이프지. 그 시각적 충격! 이번 개인전은 프로모션일 뿐이야. 작품도 내가 다 사들였어. 다 해서 5천만 원 줬지만, 두고 봐. 작품 당 3천은 받을 거야.”

선배는 그날 박수 받던 자리에서 짓던 표정으로 내게 모종의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나는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가의 창조성과 감상자의 수준을 맞추는 거지. 고유 가치와 유효 가치를 맞추는 작업이야. 예술가와 감상자가 서로를 자극시키고, 우리 예술이 인간의 윤택하게 하는 거지.”

“좋네요. 말하자면 병인이라든가 변증인가요.”

“블록버스터급의 미술기획사와 영화 수입사를 차릴 거야. 그날 전시는 장난 수준이야, 제대로 된, 매머드급 아트 페어 올리고 경매에도 제대로 참가할 거야. 필름마켓도 다니고.”

그는 선언하듯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떴다. 나는 남아 술병에 남은 것을 다 비우고야 일어났다.

6

강의를 하고 또 듣는 날이 지나 밤이 되면 가끔 오유진이 생각났다. 그때는 자정을 기다려 지하에 세워둔 차로 향했다. 가끔 주차한 자리에서 난청일 때 차를 빼 동네를 돌기도 했다. 또박또박 세파를 설명하는 목소리는 언젠가 ‘간다 프랑스’ 하던 그 목소리가 아니어서, 차에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방송국의 웹사이트에 접속해 이름을 확인하기도 했다. 여지없이 진행 오유진 하는 문자열이 빛났고, 나는 마뜩찮게 위로 마우스 커서를 올리고 좌우로 긁었다. 프로듀서 김 아무개, 엔지니어 박 아무개, 저는 오유진이었습니다. 거짓말 같았다.

급기야 나는 3월의 두번째 수요일에 동네를 돌아 조그만 오디오를 사들였다. 책상 한쪽에 기기들을 쌓아두고 나는 라디오 튜너부터 전원을 올렸다. 시간을 기다려 주파수를 맞추고, 고루한 세상을 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하는 유진의 명쾌함에 새삼 놀라며 나는 뿌연 창밖에 현실이 있음을 느꼈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 정책과 향후 전망,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국제사회의 경향,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과 그 의미, 이상기후의 원인과 대책을 들으며 나는 고궁의 이끼처럼 몸을 눕혔다. 라디오 속에서 유진은, 가까운 곳에서 먼 곳을 향해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동북아 정상 회담의 파행과 정당들의 이합집산, 지속적인 유가 안정과 경제 동향, 빅 리그 스포츠스타의 선전 가운데 유진은 밥벌이를 했고, 채점 받아 감점당해야 할 나는 도리어 채점하며 감점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를, 그저 오랜만에 만난 성공한 선배의 애인쯤으로 여겨야 했던 나로서는 갑작스레 걸려온 유진의 연락이 당혹스럽게도 반가웠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가지며 말을 트고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날의 수고에 대한 대가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흔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주고받은 적이 없는 사이에 걸려온 전화를 아무렇지 않게 받기에는 말하자면 자신감과 용기가 필요했다. 사실은, 일종의 두려움과 수치심을 버려야 했다. 그는 선배의 애인이기에 앞서 잘난 여자였다. 나는 자신을 가지고 겸허해져야 했다. 출강을 두어 번쯤 하던 어느 날 그는 전화를 걸어 방송국 앞에 잘하는 회전초밥집이 있는데 식사나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교수님 되셨잖아. 한 턱 내야지요.”

“스시? 박봉인데……. 나 시간 강사야. 교수는 무슨. 축하할 일도 아니야.”

우리가 만난 것은 오유진의 방송국에서 정한 저녁 시간 동안이었다. 따로 만난 그는 선배와 함께였을 때에는 알지 못했던, 오히려 더 활달하게 잘 웃는 여자였다. 나는 그의 어깨에서 미려하게 떨어지는 수트의 선을 보며 내 비루한 옷차림이 못내 부끄러웠다.

내가 앉아 타이, 히라메, 시요리, 미구로아카미를 구별하며 남은 시간을 재고 있을 때 그가, 새벽에 다시 만나 겨울처럼 영화를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물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유진의 주선 하에 만났다. 유진이 가운데 앉았고, 남자들이 양 옆을 점했다. 선배는 나를 보며 짐짓 하는 말인 듯 오랜만이라 했다. 따져 보니 오랜만도 아니었으나, 오랜만이라는 말 밖에는 하지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선배는 나와 유진을 태우고 차를 몰았다. 이문이 남지 않는 내 아버지의 돈에 대해 묻자, 그는 기대 수익률을 낮춰 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 왔다. 원칙적으로는 가치주 보다는 성장주를 주목해야 하며, 분산투자하는 쪽이 좋다고도 했다. 금리가 인상되면 조정 장세에 있는 주가가 탄력을 받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마무리되는 대로 채권형 펀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며, MMF 같은 단기 매칭형 펀드에 투자하다가, 금리가 어느 정도 안정되는 타이밍에 채권형 펀드를 본격 늘리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신약, 금융 등 성장주를 추천하며 최근 한 달 수익률이 주식 상승률을 웃돈다고 설명했다. 나는 선배의 설명을 들으며 반쯤은 이해하고 또 반쯤은 넘어갔다.

봄이 익어가며 나는 유진과 만나는 일이 더 늘었고, 선배는 더욱 바쁜듯했다. 나와 유진은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소소한 데이트를 했다. 그녀는 가끔 내 팔을 안았고, 나는 자주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나는 날짜가 바뀌는 순간마다 유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7

나는 시험문제를 준비하며 어린 날 뻔질나게 드나들던 ‘세미나’에서의 선배의 장광설을 떠올렸다. 나는 그때 열정 없이 앉아 라캉, 틸리, 부르디외, 하버마스, 아도르노, 푸코의 국적과 연배를 구별하곤 했다. 이제 강의실에 서서 나는 아이들에게, 지난 12년간 여러분이 ‘무엇’을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어떻게’를 받아들여야 하며, 책에 적힌 분석 결과가 아니라 분석 방법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라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래놓고 시험지에다 ‘아노미 현상이란?’ 같은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질문 주변을 적어놓고 나는, 벌레처럼 몸을 숙여 어두운 방으로 숨어들었다. 찜찜한 마음을 지울 길 없이, 도둑이 도망치듯 정신없이, 나는 굳어서 가끔 밭은 기침소리를 냈다.

“어제 열린 홍콩 크리스티에서 열린 현대미술 경매에서,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 한주희씨가 그린 작품이 한화 2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아시아 최대 미술품 경매인 이 경매 행사에서 독특한 화풍의 풍경화 <부산>은 영국의 한 수집가에게 미화 18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억원에 달하는 고가에 낙찰되었습니다.”

자정 라디오 뉴스의 행간으로부터 날아온 나비가 뜻하지 않게 내 뱃속에 앉았다.

“현재 미술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한주희씨는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작업을 앞세워 세계적인 비엔날레나 아트페어에서 주목받아 왔습니다. 이 날 경매에서는 한국 작가 12명이 총 24점을 출품해 전 작품이 낙찰되며, 한국 미술계의 정취와 세련미를 과시했습니다.”

창문을 열자 가벼이 봄바람이 들었다. 이 바람이 태평양을 건너 인파로 붐비는 타임스퀘어에서 폭풍으로 변해 에너지를 소진하는 순간을 상상했다. 나는 뱃속의 나비가 바다를 향해 날다가 죽은 생선 위에 앉아 날개를 희미하게 떠는 모습을 떠올렸다. 어둠이 더할 쯤 참지 못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진은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방송을 들었노라고 했다. 대답이 없었다. 유진은 잦아드는 숨소리를 수습하듯 내게 작게 속삭였다.

“동식 오빠 작품이야. 다 해서 10억도 넘게 팔았대.”

“잘됐구나.”

나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우리…… 만날까? 이리로 올래? 방송국 로비에서 기다릴게.”

“뭐 하려고, 이 밤에?”

“그냥 얘기나 해도 좋아. 집 구경이나 시켜 주든지. 돈 쓰기는 아까우니까.”

시계를 보니 오전 1시가 가까웠다. 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만나러 가기에는 익숙한 시각이 아니었다. 덧붙이자면 누군가를 방에 초대하기에는 더없이 의심스러운 시각이었다. 그의 일터는 가까운 곳이었지만, 우리는 우리 사이에 놓인 물리적 거리보다는 더 멀리 놓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출발하기 전 대충 방을 치우고 문득 냉장고 속을 확인했다. 실로 어림없는 살림살이였다. 나는 나가는 길에 쓰레기를 두 봉투나 버렸다.

그를 차에 태우고 나는 어색해 카 오디오(차를 사면서 과욕으로 달았던 것이다. 차도 그렇지만 이 녀석도 아직 할부 기간이 끝나지 않았다)에 넣은 CD를 돌렸다. 앞 뒤 스피커에서 큰 소리로 익숙한 음악이 흘렀다. 이게 누구의 음반이더라 하는데, 제 3의 인물이 호들갑을 떨어 인사를 건네고는 무어라 떠들기 시작했다.

“하하, 이거 프랑스어 교재니? 너 아직도 간다프네?”

나는 다급하게 브레이크를 밟고 CD 트레이에서 복사한 교육방송의 불어 강좌 CD를 뺐다. 나는 유진이 앉은 조수석 쪽의 문에 달린 수납함을 가리키며 듣고 싶은 것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유진은 CD들을 훑어보다가 아기가 헤엄치며 웃고 있는 사진이 실린 케이스를 꺼내어들었다.

“아, 그거 빈 거야. 알맹이는 집에 있다.”

“그래? 무슨 앨범이야?”

“모르고 꺼낸 거야? 너바나 몰라?”

그는 ‘너바나’라는 말도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듯했다(너바나의 음악을 쓴 영화가 없던가). 방송국에서 내 방이 있는 건물까지 차로 불과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유진이 너바나의 재킷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지하주차장으로 차를 몰아 주차까지 마쳤다. 시동을 끄려던 참에 유진이 다른 CD 하나를 꺼냈다. 가끔 듣는 쇼팽의 피아노곡들이었다. 쇼팽 연습곡 작품번호 10번과 25번. 얼핏 보니 재킷에 그리 적혀 있었다.

“이런 걸 차에서 들어?”

“아, 방에 오디오가 없었어. 얼마 전에야 샀거든. 음악을 듣고 싶을 땐 차에 와서 들었어.”

“나 이거 좋아해. 듣고 싶네. 가지고 올라가도 되지?”

좋을 대로 하렴, 들을 시간이 있을까 싶었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며, 방향제를 뿌리고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별 수 없었다. 불을 켜고 보일러를 틀었다. 유진에게 의자를 끌어다 주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나는 커피포트의 전원을 올리고 잔을 꺼냈다.

“나 커피 믹스는 안 마셔. 너무 달더라.”

나는 대신 냉장고를 열어 인스턴트 밀크티를 꺼내주었다. 그는 차가운 밀크티를 홀짝이며 오디오에 가지고 올라온 CD를 넣었다. 오디오를 만져 듣고 싶다던 트랙을 틀었다. 12번인가 그랬다. 그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격정적인 선율을 들었다.

“나 이 곡이 끝나면 집에 가야 되나?”

나는 그 말을 신호로 여기듯, 그에게 바투 다가갔다. 나는 유진의 어깨에 손을 얹고 허리를 굽혀 그의 뺨 근처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입술을 볼에 대고 소리를 내자 그녀는 풋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녀는 거부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잠시 선배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리는 가볍고 길게 입을 맞췄다.

2분 38초짜리 트랙은 2분 38초 만에 끝났고, 다음 곡이 연주되었다. 유진은 일어나 다가와 슬쩍 내 팔을 안았다. 나는 셋이 함께 봤던 어느 영화 한 장면을 떠올리며, 피아노 소리와 함께 그를 흠뻑 안았다. 짧거나 긴 입맞춤이 있었고, 손을 뻗어 등을 어루만졌다. 잠시 숨이 가빠왔다. 우리는 엉켜서 방안을 비틀, 네 발로 걸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서 옷자락을 끌어내렸다. 바닥에 놓였던 무엇이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가 내 귀에 날숨을 밀었다. 속삭였다.

“내가 온 건, 비밀로 해.”

우리는 방안을 돌며 춤추듯 입을 맞췄다. 고개를 숙여 그의 가슴에 귀를 대보니 긴급히 움직이는 것이 있어 기뻤다. 그의 앙가슴에 닿은 내 관자놀이에 쳐들어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들어오는 것이 성급한 소리로 울렸다. 뱃속의 나비처럼 방안을 돌다가 그에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우리는 사막에 온 사람처럼 마셨다. 모래 섞인 바람이 아스스 쏘듯, 쌓이던 사구가 급거 무너지듯 우리는 서로를 향해 털썩 주저앉았다.

유진은 머리를 풀고 내 어깨에 턱을 대고 잔에 남은 것들을 핥았다. 나는 볼펜으로 책에 밑줄을 긋듯 그의 옷매무새를 교란했다. 그는 지금 나와 무엇을 하려고 이 방에 온 것일까. 그리고 선배는……사람들은, 잠들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고, 대신 그의 옷 속에 야무지지 못한 손을 넣었다. 그가 움찔거렸다.

“나한테 할 말 없어? 하고 싶은 말 없어?”

취조일까. 혹은 공범자로서의 알리바이를 모색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마뜩하게 진술할 것을 찾지 못하고 몸을 만지던 것을 멈췄다. 나는 혹시 있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말이 없었고, 조용했다. 하여 내가 무언가 말해야했던 순간, 그가 입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생각해보면 이 방에서 자정 마다 늘 있어오던 일이었다. 그가 읽는 기왕의 세상으로 인해 나는 새로이 세상 쓰는 일을 멈추곤 했다. 길고, 쓰고, 달고, 짧은 입맞춤이었다.

나는 홍콩에 있다는 선배의 얼굴을 떠올리며, 감았던 눈을 떠 창에 비친 것을 보았다. 우리의 서로 입을 포갠 반영이 너머 보이는 고대비로 선명한 도시로 묻혔다. 전선이 없는 도시. 우리가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던 시절에 하릴없이 돈을 쓰러 다녔던 거리. 우리의 교접은 더 없이, 아아, 아득했다. 나는 가만히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방심하듯 풀어진 그의 드러난 상체가 안쓰러웠다.

선실처럼 춥고 축축한 밤이었다. 백경을 잡던 배를 탔던, 커피를 좋아하던 스타벅스를 떠올리며 아침을 맞았다.

나는 그녀를 데려다주며 낡은 차를 천천히 몰았다. 차는 몸이 불편한 듯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녀에게 너바나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말없이 들으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혼자 오는 길에 차를 멈추고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문득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배는 웬일이냐고 전화를 받았다. 그는 정말 홍콩에 있었다. 알면서도 홍콩에는 무슨 일이냐고 묻자 도리어 너는 그럼 무슨 까닭에 전화질이냐고 물어왔다.

“물어 볼 것이 있어서요.”

“나는 호텔방에 앉아 쇼스타코비치 심포니 5번 3악장을 듣고 있다가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하고 있지. 너는 그래 무엇이 궁금해서?”

“아니요, 혹시 선배 애인 있잖아요. 오유진이요.”

선배는 잠시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동안 나는 너머로 음악소리를 듣나 했지만, 그것도 때를 맞춰 잠시 멈춘 듯, 바다를 건너오는 치 하는 잡음만 일었다. 선배는 무슨 일로 그리 되었는가, 그리고 그래서 내게 묻는 것이 무어냐를 넌지시 물었다.

“……혹시 유진이가 저에 대해 뭐라던가요?”

선배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넌지시 물어왔다.

“글쎄다, 아침부터 왜 그걸 묻는 거지?”

“아니, 특별한 일은 없어요, 형.”

“……유진이가 너한테 나에 대해 나쁜 말이라도 했니?”

그녀와 당신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지가 꽤 오래되었다. 처음 만났을 무렵 우리의 화제는 근황과 더불어 당신 이야기뿐이었지만, 뱃속의 날생선이 삭아갈 때 우리는 더 이상 당신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하마터면 놀리는 말처럼 그렇게 얘기할 뻔했다. 나는 유진과 선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했다. 유진도 나를 이해하는 눈치였다. 왜일까.

“그런 건 아닌데, 형한테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네가 날 ‘형’이라고 하니 참 이상하구나.”

선배는, 요사이 유진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8

세차게 비가 오는 토요일이었다. 도시는 젖었고 또 적막하게 푸르렀다. 선배는 돌아와 경매에서의 승전보를 호기롭게 알려오며 나를 불렀다. 동행한 유진은 그날 무안한 듯 굳은 얼굴이었다. 나는 쇼팽을 들었고, <한 권으로 읽는 예수님> 따위를 펴들어 읽다가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은 말씀이시며, 우리의 마음에 언제나 계시다고 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나는 읽으며 또 읽었다.

우리는 저녁에 만나 좋은 음식을 먹었고, 술을 마셨다. 무던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밤이 되어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관람객으로 붐비던 극장에서 우리는 프리츠 랑을 보던 상영관에서 일어났던 일을 복기했다. 나는 국내 상업자본이 만든 영화들의 포스터를 보며 국내 영화산업의 수익배분구조를 생각했고, 선배가 차린다는 영화 수입사를 생각했다.

“월가에서 할리우드로 공급되는 자금이 4조원이다. 우리네는 관객이 많은 것 같아도 시장 전체로 보면 500억 적자야. 대박 났던 영화 펀드도 설정액 다 합치면 300억 밖에 안 된대.”

“그래도 수익률은 좀 되지 않아요?”

“설정 1년에 2%나 되나, 그래. 은행에 넣어도 그것보다는 이표가 높지.”

“그래서 수입하는 게 낫다는 거예요?”

“수입도 수입이지만…… 국내 자본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돼. 정해진 기간 내에 수익을 보장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잖아. 우회상장에다 회계부정에다 검은 돈까지 왔다 갔다 하니까, 결국 영화판 안쪽의 매판 자본들만 대박을 맞는 거지.”

객석에 앉아 나는 돌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선배가 영화를 틀었다. 나는 옆에 앉은 유진이 차가운 밀크티를 홀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익숙한 로고 음악이 흘러나오며, 스크린에 사자가 포효하는 MGM의 로고가 올라왔다. ARS GRATIA ARTIS. 진 켈리가 우산을 쓰고 탭댄스를 추는 1952년 작품 <사랑은 비를 타고>였다. 나는 영화가 상영되는 103분 동안, 뜻 모르고 보아 넘겼던 프리츠 랑, 알렉산드르 도브첸코, 미조구찌 겐지, 쇼티아지트 레이,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영화들에 나오던 배우들의 대사를 떠올렸다. 마음속에서 그들의 말은 텔레비전 영화의 더빙처럼 모국어로 들려와 허허로웠고, 나는 그 허허로움을 감당하지 못했다. 말이 없는 영화로부터 노래하는 영화로의 비약, 최초의 달세계 여행으로부터 지금 우리 셋의 역사까지, 비 오는 거리가 나오는 영화를 나는 잠자코 봤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유진은 먼저 가야한다며 택시를 탔다. 선배는 모범택시를 잡아주었고 기사에게 요금을 선불했다.

“잠깐 쉬러 갈까?”

나는 선배의 말이 무슨 뜻인 줄 몰라 갸우뚱했다. 선배는 대리운전을 불러 나를 강남 어디께로 이끌고 갔다. 시간은 이미 두 시를 넘어 있었다. 선배는 어딘가에 전화하더니 준비해 두세요 하는 몇 마디만 하고 자리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시트의 가죽 냄새가 시큰했다. 나는 창밖으로 지나쳐가는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던, 위스키와 실론티와 얼음통과 과일 따위가 흐드러지게 차려져 있는 방에 시중드는 사람까지 둘 기다리고 있었다. 위스키를 하룻밤 사이에 반병이나 먹은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선배는 화장이 짙은 여자의 허벅지를 주무르며 이글스의 <쌔드 카페>를 불렀다. 그가 내게 마이크를 건네줬고, 나는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불렀다. 대학 시절 가라오케 애창곡이었고, 선배는 들으며 크게 웃었다.

9

나의 강의는 제법 무난했다. 돌아보면 객쩍고 위험하고 무모했던 불장난이었다. 공부를 하며 강단에 서는 일은 오랜 염원이었으나 기실 나는 하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저질렀고, 학생들은 내가 하는 말을 농담까지 받아 적었다. 나는 내가 전하는 말과 유진이 전하는 말 가운데, 어떤 쪽이 이해에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일인가가 항상 궁금했다. 누군가 ‘이 건물은 바로크 건축 양식의 훌륭한 예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이 건물은 1843년에 건립되었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고 했다. 요컨대 건물의 건립 연도를 밝혀야만 한다는 진술 자체가 하나의 가치판단에 의한 결과라고 했다. 말하자면, 내가 강단에서 어떤 가치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을 애꿎게 논하는 것과 그가 세상을 향해 어떤 사실을 말하는 것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고, 오히려 내 것이 성냥 정도라면 그의 것은 화산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유진은, 여름이 가기 전에 선배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알려왔다. 쌍춘년이라 길하다는 것이 양가 부모의 뜻이라고 했다. 혼수품을 살 것이고, 집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 못하다 잘 됐네 하고 대답했다. 그는 소식을 전하며 침착했다. 그는 가만히 있다가 내게 할 말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일을 계속하느냐고 했다.

“아마 이쪽 일은 그만 둘 것 같아. 비전도 없는데 잘 됐어. 대신 오빠가 만든 회사 쪽에서 일하지 않을까 싶어.”

미술기획사니 영화 수입사를 말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일이었잖아?”

“그랬지. 하지만 이게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르잖아.”

그가 소식을 전한 이틀 뒤부터 자정의 라디오에서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진행 누구누구입니다, 하는 다른 이름을 듣고, 웹사이트에 게재된 새 진행자의 이름 위를 굴렀다. 나는 속없게 유진의 번호를 눌렀다. 그는 받지 않았다. 왜일까.

그에게서 연락이 끊기고 이틀 뒤, 박기복 교수가 쉐라톤 워커힐의 바로 나를 불렀다. 나는 길을 헤맸고, 약속 시간을 30분이나 늦었지만 그는 느긋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테이블 위에는 벌써 꽁초가 수북한 재떨이와 주둥이가 고적한 위스키가 한 병 놓여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간 격조했네. 술을 사겠다고 한 게 지난겨울인데, 이제야 약속을 지키니 멋쩍구만.”

“바쁘셨다고 들었습니다.”

박기복은 사람을 불러, 내게 잔을 내주게 하고는 손수 그것을 채워 주었다. 나는 선배와 마셨던 일을 떠올리며 오늘도 끝이 좋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는 잔을 들어 건배를 청했다. 나는 두 손으로 받들어 받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얼음을 입술에 대자 알코올 냄새가 전후좌우로 작열했다. 박기복은 나의 마시는 모습을 보고 소리 내어 웃었다.

“편한 자리니 편하게 마셔. 담배를 피우면 피워도 좋고.”

“담배는 피우지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박기복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멀거니 그의 가슴께에 흐르는 넥타이를 보았다. 고상한 빛깔이었다. 나는 스승을 만나는 자리라고 정장을 했지만, 박기복은 태생부터가 멋쟁이였다. 그는 담배 연기를 훅 불며 크고 단단해 보이는 라이터를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는 내게 으레 할 것이라 예상했던 질문들을 했다. 강의를 해 보니 어떤 느낌인가, 누구누구는 학교에서 잘 지내는지부터 묻고는 다정하게 웃으며 내 부모의 건강을 챙겨 물었다. 나는 그가 담뱃불을 끌 때, 그가 던졌던 일을 떠올리며 멈칫거렸다. 그는 이어 연애는 하고 있는가 물었고, 내가 웃으며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자 역시 그렇군 하고 답했다.

“어째서 역시 그렇다는 말씀이신지…….”

“자네 같은 남자를 요새 여자들이 무얼 보고 좋아하나. 돈이 있길 해, 인물이 낫길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들으니 강의는 괜찮았다고 들었네. 여자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들어.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공부로 기백을 떨칠만한데 게으른 게 문제겠지.”

나는 들어서는 안 될 비밀을 듣는 꼬마아이가 된듯했다. 입시 상담을 하는 고등학교 선생처럼 그는 내게 손짓을 섞어가며 말을 이었다.

“자네, 준비하는 졸업 논문 말이야. 잘 써봐. 좋은 내용이 나올 것 같네. 내가 지금 간사로 간 데가, 문화예술정책 기획하고 연구하는 데거든. 잘만 써 보면 내가 예뻐함세.”

“아직 진행이 더딥니다.”

“그럼 내 쪽에서 도울 게 많겠구만.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해. 사실 자네가 간간히 내는 소논문들을 눈 여겨 봤어. 믿을만한 얘기인지 모르겠네만 자네가 신문에 낸 글 보고도, 오호라, 이 친구 강단이 있군, 하는 생각을 했네. 그땐 노망이 들어 그리했지만…….”

그는 물끄러미 자기 앞에 놓인 재떨이를 보다가 쿡쿡 웃었다.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늙은 몸이야. 책상을 뺄 때쯤 되면 물려줄 사람이 없나, 내가 아끼던 것을 똑같이 아낄 만한 인재가 없나 하는 오만한 생각을 한다네. 그러면서도 또 그걸 뺏기는 것 같아서, 괜히 그렇게 시비를 거는 거야. 자네가 그날 뜻을 굽히지 않아서 고마웠네.”

그는 병을 들어 서로 비어 있던 잔들을 채웠다. 나는 이야기에 온통 집중해 예의를 거스른 것 같아 민망했다.

“그런데 말이야, 혹시 자네 김동식이라고 알지?”

“그, 퇴학 처분 받은 김동식을 말씀하시는지……?”

그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갑자기 목이 말랐다. 술을 대신 밀어 넣었고, 식도를 태우고 흐르는 느낌에 작게 신음을 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혹시 선배의 소식을 듣느냐고 물었다. 눈치로 내가 선배와 만나고 있던 것은 모르는 듯했다. 나는 그저 가끔 들려오는 말로, 펀드 매니저가 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교수는 담배를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퇴학당하기 전에 나와 교분이 좀 있었어. 내가 녀석에게 케인즈의 책도 내주었지. 퇴학당할 때쯤에 내가 연구 교환으로 미국에 있느라 구명을 못했네. 미안해서, 그 친구가 연락해 왔을 때 미국으로 불러 이것저것 가르치기도 했어. 학위를 받는 것까지 챙겨주고 싶었지만, 내가 먼저 오느라 어찌 됐는지도 모르고. 소식 없이 지낸지 수년이 흘렀지.”

뜻밖의 이야기였다. 나는 퍼지는 담배 연기 사이로 드러나는 그의 얼굴을 보듯 그의 목소리에 온통 집중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찾아와서, 근사한 말들을 늘어놓더군. 아트펀드라고…… 미국에 있을 때는 가끔 들었지만, 우리 풍토에도 가능한 줄은 생각 못했네. 하긴, 돈이 있으면 삶이 있지. 그 반대라면 좋겠지만.”

삶이 없으면 부가 없으련만, 우리는 부에 눌려 삶을 살지 못한다. 내가 글을 읽고 박기복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 아버지의 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계몽하지 못하는 것은 살기에 바쁘기 때문이었고, 계몽한 자들은 이미 계몽이 필요 없는 작자가 되어 배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 그 잘난 삶이었다. 박기복은 피우던 담배를 비벼 껐다.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틀 전에 사라졌어. 모은 돈을 가지고 말일세. 나한테도 1억 2천을 뜯어갔네. 혹시 아나 해서 물었어.”

나는 별안간 속이 거북해졌다. 속에 들었던 나비가 잠을 깨서 날개 짓을 시작했는가.

10

밝혀진 피해자만 18명, 피해액은 150억여 원. 주로 대기업의 오너나 간부급 사원들, 스타급에 속하는 대학 교수나 예술가, 미술품 수집상들이 그에게 믿고 돈을 맡겼다. 나는 학교의 사무실에서, 쓰린 속을 달래며 텔레비전 뉴스를 들었다. 그의 말쑥한 사진과, 언젠가 들렀던 그의 사무실과, 홍콩에서 팔린 2억 짜리 그림과, 알지 못하고 지나간 영화 수입사 사무실 따위가 맥락 없이 화면에서 명멸했다.

퇴학처분을 받았던 이야기도 나왔고, 미국에서 학위를 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여러 피해자들이 번갈아 나와 인터뷰까지 했다. 선배에게 그림들을 5천만 원에 팔았던 젊은 작가도 나와 그를 매도했다. 그는 고개를 열두 시 오 분 전을 가리키는 분침 같은 고개를 하고, 외모와는 다르게 엉뚱한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있었다. 함께 갔던 룸살롱의 여급도 나와 조잘거렸다. 그분이 준비해 두세요, 하면 무슨무슨 술과 가라오케를 준비했어요, 팝송을 즐겨 부르시더라구요, 그러면서 그들은 꺄르르 웃었다.

경찰이 그를 추적했고, 나는 복도를 배회하며 선배와 오유진에게 번갈아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울렸지만, 그들은 받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편의점에서 유진이 마셨던 밀크티를 8백 원에 샀다. 외국인 사진이 찍힌 속옷 한 벌을 6천 원에 샀다. 샴푸와 비누를 4천 5백 원에 샀다. 길에서, 가로등 빛을 지우는 가로수 그늘에서, 사라진 전선을 묻은 잘 닦인 도로 위에 서서, 나는 먹먹한 마음으로 유진이 들렀던 내 방을 헤아렸다. 빛과 어둠의 경계로 그의 뺨 냄새가 비어져 나오는 듯했다. 나는 상점으로 돌아가 담배를 2천 5백 원에 샀다. 라이터를 3백 원에 샀다.

나는 문득 대책이 없었다. 나는 사각거리는 어둠 속에서 색이 다른 그림자를 쫓으며 몇 년 만에 담배를 피웠다. 어지러웠다. 검은 먼지가 굴러다녔고, 전선을 잃은 거리를 젊은이들은 시시각각 전술을 바꾸어 빠르게 이동했다. 담뱃불을 튀기니 연기가 사소하게 부서질 뿐이었고, 나는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욕망은 같은 종류가 아니면서 또 여전히 같다고 생각했다. 사위 가득히 차는 적막. 허벅다리쯤에서 떨리는 수신음. 나는 잠시 받지 않았다. 누가 누구를 그리워하나, 다시 전화가 왔다. 나는 또 받지 않았다. 나는 잠시 어둠속에 숨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을 벌레처럼 빠른 걸음으로 기어 다니다가, 적막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저는 오유진 씨 부탁으로 전화를 드립니다. 직장 동료였어요. 우편을 보시면 열쇠가 있을 거랍니다.”

정말 있었다.

“그걸 들고 지하 주차장에 가시면, 차가 있답니다. 조수석 쪽에 그……, 여는 데 있잖아요. 그걸 열어 보시랍니다. 그리고 또…….”

여자의 목소리가 바람에 떨렸다.

“저더러, 지금 통화하시는 그쪽에게 프랑스어 교습을 해 주라고 했어요. 강습료도 받았습니다. 원치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돈까지 받은 마당에…….”

“아뇨, 그건 괜찮아요. 신의가 있으신 분이네요. ……혹시, 혹시 유진이는 어디 있나 아시는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어디론가 간다는 얘기만 했어요.”

나는 방문 앞에 서서, 어둔 눈을 하고 담배를 한 대 더 피워 물었다. 열쇠 끝에는 물고기 모양의 고리가 매달려 있었다. 왜일까. 문득 밖에서 비가 내렸다. 나는 방문 바로 앞에서 발 길을 돌려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굵은 빗발소리가 들려왔다. 내 방 문과 꼭 같은 것이 열 몇 개씩 늘어선 복도는 음험해 보였고, 나는 두 걸음 걸을 것을 세 걸음씩 딛고 내달려갔다. 혹, 있을까, 하는,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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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 2전 2패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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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 맥스웰의 사랑.

The Love of Reggie Maxwell's. Portishead의 ‘Roads’를 듣다가 생각났다.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레지 맥스웰이 아니라, 그 “사랑” 말이다.

레지 맥스웰, 갑자기 그런 이름은 어디서 떠오른 것일까. Portishead의 새로운 멤버일까? 아니면 Tricky의 프로듀서였거나, Everything But The Girl의 노래에 등장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레지 맥스웰이란 유명인사를 기억해 내는 데엔 실패했지만, 레지라는 이름도 흔했고 맥스웰이란 성도 흔한 것이었으니, 그는 분명 있기는 있었다. 미국 어디쯤에서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려 보면 Reggie Maxwell이란 이름쯤은 쉽게 나오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생각해낸 그 레지 맥스웰은 어떻게 생겼을까? 레드와인 색 머리칼에다가, 마찬가지로 자줏빛 눈을 하고, 녹색의 피부를 가진 이천 년대의 신종족일는지도 모르고, 더티블론드에 푸른 눈을 가진, 켈트 혈통의 미국인일 수도 있고, 독일 어디쯤에서 사는 영국인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야, 나는 레지 맥스웰을 모른다. “Hey, I'm Reggie. Nice to meet you, I've been expecting."하며 손을 건네는 레지 맥스웰이 있더라도 아마, 나는 기겁을 하고 도망치거나 했을 게 분명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겁나는 일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타블로이드 1면을 잠식한, 레지 맥스웰의 사랑


나에겐 여자 친구가 있다. 다른 친구 녀석들에겐 친구, 라고 일컫지만, 다들 그보다는 훨씬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반 시절, 서로 바쁘던 때에 만났던 나와 그녀는, 힘이 되었고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변했다. 수년이 흐른 다음에 나는 변했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함정일 뿐이다. 함정에서 헤어나면 그것이 함정이었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사랑을 저버리기엔 너무 지쳐 있는 것이다.

손을 잡고 길을 걸었고, 자주 가는 공원에서는 소리나게 키스를 나누곤 했지만, 이젠 전혀 느낌이 없었다. 그건 무급으로 고생하는 막노동과도 같았다. 아무도 춤추지 않는 연회장에서, 아무도 장단을 맞추지 않는 춤곡을 연주하듯, 꼭 필요한 것 같지만 결국은 무의미한 것이다. 결국, 사랑을 느낀다기보다는, 의식한다고 할까.

그녀의 이름은 세영이었는데, 가끔은 잊는다. 세은이었는지, 은영이었는지, 혹은 애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흙이 묻은 구두를 솔로 문질러 보았다. 눌어붙었던 것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흙이 묻어 생긴 누런 얼룩을 지울 재간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구둣방에 가기로 했다. 꺼내 둔 신발이 없어서 별 생각 없이 그 구두를 그대로 신고 갔는데, 마침 구둣방에는 여분의 슬리퍼가 떨어진 후였다.

나는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가스 불을 올려놓은 것이 생각났다. 구두를 그대로 신고 돌아올까 생각도 했지만, 얼마 멀지 않다는 생각에 맨발로 집에 돌아왔다. 길 위의 빗물은 마르지 않았고, 덕분에 맨발에 흙이 묻었다.

내가 왜 진흙길을 걸어야 했는지 기억해 보았다.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바로 어제의 일이었지만,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는 추억에 가깝도록 흐리고 멍한 데가 있었다. 술 탓이다. 세영과 함께 마신 그 “회오리 바람 맥주” 때문일 것이다.

그녀와 마시는 술은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함께 군장을 맸던 녀석들과 마실 땐 그토록 좋던 술이었는데, 세영과 마시는 술은 차라리 쓰라렸다. 그냥 씁쓸한 액체가 혀 주위에서 맴돌다가 목구멍을 꼴깍 넘어가서, 식도를 따라 흘러 위산과 합쳐졌다. 다른 의미가 되지 못했다. 과정과 그 존재 자체일 뿐이었다.

그냥 있다, 라는 것은, 크게 의미가 되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내가 변하려고 할 때, 그때 의미가 생긴다. 의미가 없는 것은, 무의식이고, 죽음이다.

덕분에, 세영과 마시는 술은, 죽음을 향해 치닫듯, 금방 취하게 된다. 그건 아마 세영도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 우리는 거나하게 취하고, 술김에 어떤 나쁜 짓을 해도 서로 책임을 면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술김에 하는 나쁜 짓은, 그저 내 프로이트적, 생리적 자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일지여감, 공복에 알코올은 독약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 된 라면을 식탁에 그대로 두고 화장실로 갔다. 샤워기에서는 따뜻한 물이 흘렀다.

그래, 어젠 비가 왔었지. 참 오랜만에 왔어. 일곱 시쯤인가, 전화가 왔고, 그녀였어. 예전엔 그토록 잘 보이려고 몸단장이라도 했겠지만, 이젠 그런 설렘도 없이, 호프에 가서 맥주를 마셨겠지. 뭘까, 감정이 격했는데, 웃었던가, 울었던가. 겉과 속은 달랐는데, 아마 겉이 울었다면 단단히 틀어졌을 테니,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운 모양이군.

그리고 비속을 우산 없이 걸었지. 미친 사람처럼. 질퍽한 길 위를 걸으며 미친 듯 웃었어.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였겠지만,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는 건, 우리니까……. 하긴, 원래 나와 세영이, 확실히 미쳤어.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껏 이렇게 만나고 있을까?

화장실에서 나와 젖은 발을 수건으로 감싸 안았다. 나는 레지 맥스웰의 사랑만은 미친 짓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함정이 아닌 사랑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라면을 먹으며, 오늘 해야 할 일을 체크했다.

컴퓨터를 켜자, 윙, 하는 소리와 삑삑 거리는 기계음이 어지럽게 흘렀다. 컴퓨터를 시작할 때 나오는 지겨운 팡파레. 버릇대로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커피를 마시며 화면을 주시했다. 사이버 공간에선 모든 게 가능하지, 무기력한 눈으로 자판을 두드리면……. 언젠가 잡지 일을 하며 들었던 인상적인 노래 가사가 으스스하게 떠오르곤 했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정말 즐거워서 "^^" 와 "=)" 를 찍는 걸까. 평소 친분이 있던 누군가가 메시지를 보냈다. 컴퓨터 옆의 CD 꽂이에서 David Bowie의 음반을 꺼냈다. Golden Years가 흐르기 시작했다. 에인절, 우리의 밤은 뜨겁고, 술을 마시고, 환상의 나락으로…….

[후훗. 데이빗 보위의 골든 이어즈? 그거 제 주제곡이에요.]

[아, 아시는군요? 데이빗 보위 좋아하세요?]

[네, 어느 정도. 참, 가이거님도 나오실 거죠, 저랑 디비젼씨랑 하는 오프모임때요?]

[예. 그런데 엔젤님께서는 딥뎐이 얼굴 보신 적 있으세요?]

[아뇨. 전화통화는 많이 했지만 얼굴은 본 적 없어요.]

가이거는 내 통신 닉네임이었고, Giger, 라고 썼다. 디비젼, 은 Joy Division에서 이름을 딴 동선이의 통신 이름이었다. 이름 탓에 동전이라고 불렸고, 디비젼이라는 닉네임마저 딥뎐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엔젤이라는 그 사람은 이름이 천사희, 였는데, 안지는 오래 됐지만 정말 천사 같은지는 알 수 없는 것이 전자 메일의 맹점이었다.

수십 통의 E-mail보다, 십 분의 대화가 훨씬 더 많은 정보의 양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물론 십 분의 대화의 정보조차 무의미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쓸모없긴 하지만, 그래도 컴퓨터통신처럼, 이진법화된 인생보다는 훨씬 나을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사이버 공간에선, 뭐든지 가능하지, 무기력한 눈으로, 자판을 두드리면…….

[참, 엔젤님, 레지 맥스웰이 누군지 아시나요?]

[레지 맥스웰이요? 글쎄요? 가수나 운동 선수 아닐까요?]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노래 같은 데에 등장하는 사람 아니에요?]

[글쎄요.. 레지 맥스웰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답변]

[답변 다음이 짤렸네요. ^^]

[제대로 못해드려서 죄송해요.. ^-^;]

가이거, 는 통신에서의 또 다른 나였다. 사이버 공간에서 나는 육체가 없었다. 마치 천사처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했다. 우리가 서로 전달하고 전해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극히 정신적인 것이었다. 신호, 메시지, 우리의 감각에 호소하는 것들을 서로 교류한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 진석, 보다 가이거, 라는 이름을 좋아했다.

컴퓨터를 끄고 조간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을 무렵, 친구 준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 저녁에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그렇지, 오늘은 세영이 바쁘다고 했다. 벤쳐 사업을 하겠다고 한참 난리인 준구 녀석은 언젠가, ‘쓸만한 웹디자이너를 구했다’ 라더니 그만 그 쓸만한 인재와 결혼을 해 버렸다. 이후 아내는 전업주부가 되어버렸고, 준구는 나에게 부탁해 후임 웹 디자이너를 물색했다. 나는 우리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진짜 다큐멘터리를 찍어 볼래요’ 하고 회사를 뛰쳐나갔던 후배 녀석을 추천해 주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찍고 다녔지만 편집이 미흡해서 늘 일을 망치는 괴짜였다.

“시간이 빈다고? 그럼 우리 집에 올래? 우리 집사람하고 내가 차려 줄 테니까. 마침 네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

“그러든지. 몇 시쯤 갈까?

“한 7시 정도면 될까?”

“그래. 몇 동 몇 호지?”

전화를 끊고 나니, 준구에게 레지 맥스웰의 사랑에 관해 묻는 것을 잊었음을 깨달았다. 그 말을 생각하게 했던 Portishead의 노래를 다시 플레이했다. 레지 맥스웰은, 분명히 있었다. 나를 보고 웃으며, 그는 있는데, 나는 그와 닿지 않는다. 닿지 못한다. ‘못한다’ 라는 말이 맞다.

왜냐 하면 나는 그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분명 Portishead의 음악에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보컬리스트인 Beth Gibbons의 소개로 그를 만난 것이다. 그는 분명히 있긴 있지만, 그가 누군지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추측이 불가능했다. 내 어림 짐작이 빗나갔을 때, 레지 맥스웰은 날 비웃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닿지 못한다’ 라고 하는 것이 맞다.

신문을 접고 마시던 커피 잔을 씻어두고 일을 시작했다. 이번 달 잡지에 낼 음반 평을 써야 했다. 우리 나라 음악은 트렌드가 있는데, 결코 ‘depeche mode(빠른 유행)’는 아니었다. 유행 작곡가들은 fashionable다기보다는 passionate for money, 하다. 거기에 맞춰 노래를 하는 아이들은, 스포트라이트 속에 노란 머리를 하고 화려하게 웃지만, 스스로 슬픈 삐에로임을 잘 알고 있을지.

하지만 하이틴 잡지에서의 글쓰기란 결코 텍스트의 진실성에 대해 심문 받지 않는다. 얼마나 독자들을 기쁘게 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앨범의 장르 : 잡탕 댄스 음악, 이었지만 “최신 유행의 테크노와 우리 나라만의 예쁜 멜로디를 잘 섞어 놓았어. 퓨전 음악이라고 해도 될 거야. 해피 테크노라고 하던데?”

이 앨범의 장점 : 짚으라면 뭐, 그 작곡가의 능력, 또 그 작사가의 익숙함, 그리고 잘생긴 아이들의 ‘끼의 분출’ 정도. “히트 작곡가 ○○○씨가 만든 타이틀곡은 80년대 모던토킹을 연상시키는 쉽게 재미있는 리듬에, 발랄한 가사로 너무너무 재밌고 행복한 노래가 가득해. 그리고 이번 안무는 ‘안드로메다’ 춤인데,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가 없어”

이 앨범의 약점 : 한 마디로 지겨움. “거의 1년에 걸친 준비 기간에, 너무너무 열심히 연습하고 노래하고 작업하는 바람에,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거야”

평점 : 별 다섯 만점에 별 한 개 반. 건질 것이라고는 개정 증보된 매너리즘. "요즘엔 거의 보기 드문 명작이야, 별 4개 반!"

리뷰하던 음반을 끄고, 다시 Portishead를 틀었다.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보니, 흐릿하고……, 물방울이 맺더니 떨어진다. 장마철도 아닌데 비는 지겹게 내린다. 구두를 찾아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두를 찾아온 후, 다시 비에 젖어버린 나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따스한 물이 가슴을 타고 흘렀다. 머리카락 끝에 맺혔던 물방울은, 제자리에서 몇 바퀴 돌더니 이내 떨어져 땅바닥에 몸을 던지고는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어깨에 맺혀 있던 녀석은 어깨선을 타고 흘러, 팔에 한 줄기 시냇물을 만들고 말았다. 샤워를 하며 나는 the Cardigans의 Carnival을 흥얼거렸다. 가사를 외우지 못해서 그야 말로 흥얼거리는 정도였다. I'll never know, 'cause you'll never show. C' mon and let me know, c' mon and let me now…….

샤워를 마치고, 새로 준비한 옷을 입었다. 기사를 몇 개 더 쓰고, 사진을 준비하기 위해 카메라를 손보고 난 후였기 때문에, 어느새 시간은 점심때를 훌쩍 지나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서 부엌을 뒤졌지만 쌀도 라면도 떨어진 후였다. 다음 한 달치 식료품을 살 돈은 있었지만, 비오는 날 잔뜩 안고 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준비한 티셔츠를 팔에 끼며, 수화기를 들고 근처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 예, oo장입니다!

나 : 예, 여기 oo빌라 o동 oo호인데요, 자장면 한 그릇이요.

상대방: oo빌라 o동 oo호, 자장면 하나요?

나 : 아뇨. oo빌라 o동 oo호요.

상대방: 예, 알겠습니다.

(10여분 후)

상대방: 예, oo장입니다!

나 : 예, 여기 oo빌라 o동 oo호인데요, 자장면 시킨 거 출발했어요?

상대방: 예, 방금 출발했습니다. (작은 소리로) 야, 빨리 나가! (또 다른 목소리) 예, 예.

나 : 기다릴게요.

30분이나 기다린 자장면은 뜻밖에도, 양이 무척 많았다. 배가 고파서는 한참을 먹다 보니 자장면이 무척 맛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먹기 시작한 순간엔 맛이 없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쩐지 스스로를 속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술이 덜 깼는지 여전히 속이 쓰린 기분이었다. 그야 말로 게슴츠레한 하늘은 회색이다. 우산의 살을 타고 내리는 빗물도, 사람들 사랑 묻어나는 길가의 발자국도, 피냄새가 나는 비를 흘리며 우는 저 구름도 회색 빛이다. 내 걸음도 회색이었고, 어쩌면 내가 흘린 추억도, 어쩌면 눈물까지도……. 회색이라서, 나는 느낀다기 보다는 의식하는 것이다. 준구의 집에 가기 위해 골라잡은 택시에 마저 무거운 회색빛 시트가 나를 안았다.

준구 아내의 요리 솜씨는 꽤 좋은 수준이었다. 맛이 있다, 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남겨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어라 굉장히 맛있네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고, 그렇게 해야 다른 날 또 얻어먹으리라는 얄팍한 계산도 했다. 그녀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준구와 나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다.

방송에는 유괴 사건의 기사가 흐르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이름, 을 가진 꼬마가 유괴범에 의해 살해되었다, 라는 것이 기사 내용이었는데, 준구의 아내가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한참 웃고 떠들고 있었다. 곧 TV에서는 다음 뉴스로, 눈매가 매섭지만 우유부단하기로 소문난 정치인이 대통령에 출마하겠노라고 선언했다는 기사가 흘렀고, 라디오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름을 가진 꼬마의 죽음을 슬퍼했다.

“참, 준구야, 너 혹시 레지 맥스웰이라고 아냐?”

“무슨 맥스웰? 다방 레지?”

“사람 이름 레지.”

나는 안 되는 영어 발음으로 reggie,를 발음했다.

“글세. 맥스웰이라면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 아닌가? 그건 맥심인가?”

마침 준구의 아내가 커피 세 잔을 내왔다.

“맞다. 진석 씨는 세영 씨랑 취향 비슷하게, 헤즐넛만 마신다면서요? 이거 어쩌죠, 이거 맥스웰인데.”

“상관없어요. 맥스웰이라니 반갑네요……. 차라는 게 끓이는 사람 손맛이죠, 뭐.”

난 웃음 지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어느새 덮친 어두움을 못 이겨, 레지 맥스웰의 애절한 사랑을 생각했다. 문득 그 사랑이 애절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나를 떠도는 모습, 언제나 맴돌기만 하는 모습은 애절함을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학교다. 어릴적 다니던 학교다. 여기 저기, 사내아이들이 뱉어 놓은 침이 고인 계단이 있고, 여기저기에 패인 복도가 있고, 가끔씩 틀에서 떨어져나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문이 있고, 발자국에 있는 벽이 있고, 벽이 있고, 며칠 동안 닦지 않은 창문이 있으며, 그래서 비춰지는, 손떼 묻은 모습, 천진함과 발랄함이 ‘타락’과 함께 풍겨져 오는 모습이 있다. 거울이 있다.

거울은 깨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붙인 것이다. 거기 맺힌 상은 일그러져 있었다. 라고, 생각했다. 아, 저것은 거울이 아니다…….

그저 내 모습일 뿐이구나, 아마 나도 모를 내 어릴 적의 시간이로구나. 그때가 생각난다.

복도에 단발머리를 한 키 작은 소녀가 마구 달린다. 그 뒤로 빡빡 머리를 한 소년이 따라 간다. 그리고 무언가를 집어든 커다란 사내가 쫓는다. 모두, 마구 달린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달리고, 내 고개는 따라 움직인다. 이내 지친 빡빡 머리는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뒤따르던 사내는 들고 있던 무언가로, 그 소년을 내리치고 만다.

비명 소리를 들은 듯 했다.

아, 꿈이었구나. 오디오의 패널에 적힌 시간을 보았다. 2시, 23분. 이런 시간에 깨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나는 피곤을 느끼며 몸을 뒤척이다 다시 잠을 청을 청했다.

사내에게 잡히지 않은 소녀는 계속 달렸다. 나는 소녀를 구하고 싶어서, 뒤에서 따라오던 사내와 맞선다. 사내는 이내 사라진다, 나를 피해서 사라진다.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나는 소녀가 내려간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여기서 구르면 아프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구르고 만다.

멀리 그녀가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눕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상들이 겹친다. 겹치고, 또 겹치고, 겹치며, 엉켜버렸다. 그리고 뒤집히며, 다시 엉켜버렸던가 하면, 다시 보일 듯 하다가 만져지지 않으며 잡히지 않는, 그저 소리뿐인, 추상적 공허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다. Portishead의 Roads였다. 레지 맥스웰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눈을 떠도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느낌이었다. 햇살이 비춘 듯 했지만 나는 이불을 더 꼭 덮었다. 꿈속의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사랑을 나눈 것은, 그녀를 품에 안은 것은, 레지 맥스웰이었을까, 아니면 나였을까. 나는 분명 그녀를 안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소녀는 결코 나와 사랑을 나눌 사람이 아니었다.

꿈 속에서 나는 Portishead의 Roads를 듣고 말았다. 레지 맥스웰을 떠올린 것이다. 소녀의 사랑과 레지 맥스웰은 겹쳐지고 있었다. 꿈의 기억, 그 어설픈 편린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소녀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다, 라고 생각했다.

아침, 8시 30분. 몸에 물을 적시며, 결코 의미가 없을 하루를 예감했고, 텅 빈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포기했다. 조간 신문을 뒤적이려는데, 9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각에, 잡지사에서 전화가 왔다. 기사는 잘 받았으며, 고료는 예정된 날짜에 입금하겠다는 말이었다. 오늘 오전에도 다른 잡지사에 낼 같은 종류의 글을 써야 했다. 하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선, 식료품을 사러 가야 했다.

식료품을 파는 창고형 매장을 향해 가는 동안, 특히 걷는 순간, 나를 향해 부는 바람을 품 안에 안아 보았다. 그저 바람에 맞서 걷는 것뿐인데, 꿈처럼, 무언가를 안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품고 있는, 포근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헌신에 따른 희열을 음미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다만 마음일 뿐이었다. 이때 많은 그저, ‘느끼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의식’했다.

꿈속에서 안았던 조그만 소녀가 생각났다. 추억처럼,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네모난 캔버스에, 소녀가 내 품에 엎드려 있고, 윗쪽엔 흰색의 밝은 형상이, 오른쪽 아래엔 갈색의 무언가가,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 빛이 떠돌고, 고명도 저채도의 바닥?이, 고동색의 천장?이, 발끝을 서게 하는 포근함이 전해진다.

소녀가, 바람으로 변한 느낌이었다. 소녀가 공기 안으로 섞여 들어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소녀는 정령인지도 모른다, 라는, 내 이성의 틀을 벗어나는 허황된 상상마저 하게 되었다. 꿈 속에서 만난 소녀는, 그랬다.

창고형 매장 건물의 정문 앞에서, 고개를 높이 들어보았다. 새삼, 커다랗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에 들어서서도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올 때마다 보던 것들이, 소녀와 함께여서인지, 어쩐지 새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들어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점점 내려가, 커다란 네모난 타일을 밟고, 과일, 생선,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냄새들이 코 속으로 들어왔다.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혼자서 먹을 것들이었지만, 한 달치가 넘는 식료품이란 양이 많았다. 자루에 이것저것 집어넣은 채 어깨 위에 올려놓고, 빈 한 팔로 택시를 잡는 모습은 어쩐지 우습게 느껴질 만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그리며 실소하는 순간마저, 나는 누군가를 안고 있다 느꼈다. 내가 안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내가 안긴 것처럼 포근했다.

택시 안에서는, 내가 있고, 기사가 있고, 라디오에 목소리로 존재하는 두 사람이 있었고……. 소녀가 있었음은, 마치 운명처럼, 레지 맥스웰의 사랑처럼, 그렇게 존재했다.

저녁 무렵 세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 저녁은 나가서 먹도록 하지. 그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말하고, 시간과 장소를 상의한 뒤 전화를 끊었고, 나는 곧 나갈 채비를 하고 문을 밀었다.

그녀의 품을 생각하며, 꿈속의 그녀의 여운을 생각하며, 어쩐지 나는 못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은근스레 레지 맥스웰을 질투했다. 소녀는 내가 아니라 레지를 택할 것이다. 레지는 내가 닿을 수 없는 공간에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이것은 ‘느낌’이었다. ‘의식’이 아니었다. 소녀는, 아늑하고, 어눌하다. 흐릿한 꿈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이, 의식이 아닌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제발 이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했다.

약속 장소에는 세영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웃으며 반겼다. 그 웃음이 어쩐지 새삼스럽게 생각되었다. 우리들은 웃고 있는 것이다. 그냥 웃기만 할뿐이었다. 대학 시절 우리는 서로 보고만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똑같이, 내내 웃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리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일은 잘 돼 가?”

“언제나 그렇지 뭐.”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서로의 일상을 묻는다. 주로, 일에 대한 푸념이었다. 대화를 열기 위해서, 가장 쉬운 공감대를 형성하는 말은 그것뿐이다.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으면, 관계는 가벼워지고, 벽이 쌓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가벼운 관계가 있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이것저것을 먹다보면, 일에서 시작한, 암담한 미래 같은 얘기가 흐르고 만다. 가슴에 와 닿는 얘기를 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급격하게 줄었다. 사랑이 있을지 모르겠다. 극현실적인 얘기가 오간다. 그 장면은 가히 초현실적이다. 하지만 초현실적인 웃음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세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지나치게 현실적일 때만 웃는다. 더 이상 사람들은 꿈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 꿈은 아무도 보지 않는 타블로이드 같은, 물에 젖은 신문지 같은 뭉글한 것에 불과했다.

헤어질 때조차 우리는 웃었다.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헤어진다. 님의 침묵, 처럼, 즐거웠냐고 자문하며, 대충, 이라고 자답하며. 대충이라는 답변이 즐겁지 않다라는 뜻은 아니었다. 세영은, 현실적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인 것에 불과했다. 현실은 설명이 가능했다. 설명이란 늘 지나치고, 늘 부족하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에 대해 잊고 지낸지 오래였다. 설명할 수 없는 존재를 만난 것은 바로 어제였다. 레지 맥스웰, 나는 그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세영은 레지 맥스웰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나는 레지 맥스웰을 알지 못하는 세영과, 레지 맥스웰과 사랑을 하는 소녀를 서로 비교해 보였다. 나는 세영 앞에서 꿈속의, 그리고 공기 안에 떠도는 소녀를 떠올렸다.

세영과 함께한 저녁식사 마저, 나는 소녀와, 레지 맥스웰과 합석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4각 관계였다. 희뿌연 연기 속에 가려진 4각 관계였다. 이런 드라마를 만든다면 분명 fashionable이란 말이 어울리리라고 생각했다.

하루의 끝. 침대에 누운 나는 오늘도 꿈을 꾸고 싶었다. 꿈속에서 다시 그 소녀를 만나, 레지 맥스웰을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지 몰랐다. 다른 특별한 대답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그저 솔직한 대답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어떠한 생각도 나를 재워주지를 않았다.

그 소녀는, 꿈 속의 존재일 뿐이었지만, 신선했다. 현실이란 권태가 아니었다. 짜릿하다라는 것과는 달랐다. 스며들어오는 신선함이었다. 낙엽을 태울 때의 냄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엽을 밟을 때의 느낌을 짜릿하다고 한다면, 나뭇잎이 낙엽이 되가는 과정을 편히 않아 수초 안에 포착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 신선함이라고 생각했다.

검은빛이 쌓여 가는 야경으로, 오늘은 어제로, 내일은 오늘로 다가오는 시간에, 나는 정말 잠들고 싶었다. 나는 잠이 필요했다. 현실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레지 맥스웰 때문이었다.

밖에는 다시 빗소리가 들려 왔다. 하늘이 흔들흔들 쏟아지더니,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뜨락으로 몸을 던지는 비를 쏟고 있었다. 비속으로 달이 보였다. 둥그런 달이 보였다.

잠이 오질 않았다. 농담처럼, 하지만 진담처럼 정말 그랬다. 차라리 악담이면 좋을 것을, 거짓말처럼 진짜 그랬다. 말장난 같은 시간이 계속 흘렀다.

차라리, 허공에 이어진 내 시선을 누군가가 끊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라도 내 무의식의 세계, 그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고 싶었다. 소녀를 만나서 다시 품에 안고 싶었다. 그녀의 사랑이 레지 맥스웰이었다면, 내가 레지 맥스웰이 될 수 있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Beth Gibbons(Portishead의 보컬)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지 맥스웰의 사랑. 그녀는, 내게 선명히 다가왔다. 그녀가 소녀를 내게 데려와 나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소녀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그 소녀를 만났다.

“레지…….”

그 소녀는 조그맣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공기 속을 떠돌며 조용히 소녀를 안았다. 아침이 오면 끝날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의식하는 게 아니라, 느끼고 있었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빠져들 듯, 내 프로이트적, 생리적 자아에 대한 오르가슴이 아니라, 내 영혼의 중추를 즐겁게 만드는 느낌으로, 소녀를 안았다.

그리고 나는,

깊은 잠. Giger의, 혹은 Reggie의, 현실이 되지 못할 영원의 요원.

아무도 보지 않는 타블로이드를 가득 매운,

슬픈,

레지 맥스웰의 사랑.


(1998년 5월)

으아 무려 10년된 거네 -_- 이 파일을 가지고 있는 내가 더 신기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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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환>

라이터 리 2007. 12. 19. 02:39

우환

#1. 쿠반 룸바 콜롬비아 Cuban Rhumba Colombia

세 잔째의 드래프트 비어를 비우자, 술이 식도 부근에서 멈추고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듯했다. 우환은 터져 나올 듯한 기침을 참으며,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를 기억했다.

삼등석 증후군 때문인지, 땅을 밟은 우환은 숨이 막혀 왔다. 몸에는 열이 있었고, 점차 기침이 잦게 되자 우환은 처음으로 만난 현지인에게 지리를 물었다. 웨어 이즈 더 니어리스트 드럭 스토어? 기침을 섞은 서툰 발음을 더듬었지만, 진녹색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던 반백의 영국인은 오, 케미스숍, 하며 우환을 근처의 약국으로 이끌어 주었다. 주머니에는 그때 얻은 천식 때문에 늘 지니고 다니는 알약이 들어 있었다. 술과 함께 먹지 마시오. 겉에는 주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디제이는 힙합 비트의 드럼앤베이스를 몇 곡 틀더니 이내 음악을 바꾸었다. 살사? 아니다. 룸바 쪽이다. 룸바 리듬을 실은 훵키한 넘버였다. 우환은 네 잔째의 맥주를 받아들고 술렁이기 시작한 무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LSD를 하고 사탕을 빨며 레이브를 하던 백인들 몇몇이 흐느적거리며 한쪽으로 비켜나자, 이번엔 구석에서 하쉬시를 하던 검은 얼굴들이 탄탄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가운데로 나서며 뽐내듯 어깨를 돌리거나 번갈아 킥을 하며 몸을 관능적으로 꼬곤 했다. 쿠바의 정통 룸바와는 다르게, 흑인 특유의 노린내나면서도 힘찬 동작. 왼발 오른발에 번갈아 가며 킥, 킥. 유연하면서도 절도 있게. 우환은 손을 휘젓기 시작하는 흑인들의 춤동작을 넋을 잃고 바라보듯 했다.

당신, 나와 만난 적이 있죠?

우환은 소리가 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음에 묻힐 법도 한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주변의 소음 사이를 비집고 우환의 귀 바로 옆에서 속삭여 왔다. 유학생 특유의 과장된 발음. 우환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었다. 베이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 구석에는 루이 뷔똥의 로고가 수놓아져 있었고, 얼굴 화장에도 신경을 쓴 모습이었다.

그녀는 우환의 잔에 자신의 것을 부딪쳐 왔다. 중국인이에요? 우환은 고개를 저으며, 노, 코리안, 이라고 답했다. 아, 그래요, 나는 일본인이에요, 당신이 저 흑인을 보는 눈빛이 넋 나가 보여요, 우리 언젠가 만난 적이 있죠? 우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여자는 바에서 술을 더 주문했다. 바카디로 주세요. 그녀는 쿠바의 럼을 담아 홀짝거렸다. 우환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는 헤프게 웃어 보였다. 저 흑인, 정말 근사하게 추죠. 쿠반 룸바인데, 쿠바 사람보다 쿠바 춤을 훨씬 잘 추잖아요. 그녀의 영어는 서툴었지만 문법은 틀린 데가 없었다.

그녀는 은근슬쩍 우환의 팔에 자신의 팔을 부딪쳐 왔다. 리듬에 맞춰 몸을 앞뒤로 흔들기도 했다.

#2. 좋든 싫든 내 조국이다 My country, right or wrong

그녀의 이름은 아사코였다. 일본어로서는 예쁜 이름이었지만, 한국어 식으로 읽으면 조자(朝子)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 우환은 피식 웃었다. 기억을 되짚으니, 런던 근처의 유학생 상대 대학 예비 과정의 학원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우환이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처음 만났던 레이브 클럽에서 멀지 않은 아디다스의 이코노 숍에서였다. 우환이 한국에서 가져 온 운동화가 망가진 탓에 신기 편한 런닝 슈즈를 찾고 있을 때, 아사코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내가 골라 드릴까요, 하고 말을 걸어 왔다.

아, 그럴래요? 우환은 반갑다는 인사도 잊은 채 그녀의 조언을 부탁했다. 그녀는 두 종류의 신발을 골랐다. 우환은 그녀가 고른 신발이 일본풍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개중 평범해 보이는 쪽을 골랐다. 수퍼스타. 그것이 그 신발의 이름이었다. 우환이 사이즈를 고르고 계산을 하는 동안, 그녀는 그를 기다렸다. 마치 만날 것을 약속했던 사람 같았다.

둘은 함께 가게를 나왔다. 그녀는 우환의 팔을 잡으며, 내가 신발을 골라 주었으니 당신이 내 우산을 골라주어야 할 차례예요, 하고 말했다. 우환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산 하나를 고르는 것쯤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아사코는 시내를 거닐며 우산을 제외한 물건을 샀다. 커피하우스에 들려 우환에게 엔젤 푸드 케이크도 사 주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랄프 로렌의 숍에 들어서서야 우환에게 우산을 골라달라는 부탁을 했다. 우환은 멈칫 하다가, 체크무늬의 접는 우산을 골라주었다.

숍을 나선 아사코와 우환은 길을 재촉했다. 아사코는 우환의 팔을 안다시피 잡고서, 어디 가서 얘기 좀 해요, 하고 우환을 당겼다. 우환은 낯선, 혹은 이제 막 얼굴을 익힌 일본 여인과 흐린 하늘 밑을 걸었다. 간혹 기침이 나와 영국에서 산 손수건을 입으로 가져갔고, 그때마다 아사코는 측은한 얼굴로 우환의 눈을 보았다. 그녀는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간혹 빗방울이 떨어질 듯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고, 말린 허브 같은 은은한 몸 내음을 우환에게 맡게도 했다.

이윽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그녀의 아파트였다. 크게 넓지 않았으나, 우환이 한국인 교포의 집에서 하숙을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처지였다. 우환을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아파트가 다다미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덟 장 정도의 크기, 잉글랜드의 한 복판에서 일본식의 방을 만난다……. 우환은 아파트의 문을 지나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지구 정 반대편으로 들어서는 듯했다.

아사코는 걸치고 있던 상의를 벗어 벽에 걸어 두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첫날 보았던 루이 뷔똥의 최신 라인이 아니라, 어딘가 고풍스러워 보이는 핸드메이드의 튜닉이었다. 벌써 삼십 년도 지난 시절, 육십 년대 유럽 디자이너들이 반항적으로 괴려한 위치에 트임을 넣었던 종류의 것. 패션 사이클에서는 십 년이라는 시간조차 자욱한 먼지처럼 아득했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 아버지가 런던 킹스로드에서 사 주신 거예요. 향수를 자극한다나요. 우환이 그녀의 상의를 바라보자 그녀는 묻지 않은 말을 흩었다. 아버지는, 실은 양아버지인데요, 도쿄대학에서 십 년이 걸려 경제학 박사를 따낸 고집스런 사람이죠. 나는 아버지의 강요로 여기서 대학 가려고 대학 예비 코스 중이고요.

그녀는 우환을 이끌어 바닥에 앉히더니, 구석 냉장고에서 홍차를 꺼내왔다. 이런 데에서 혼자 살면 집값이 꽤 비쌀 것 같은데요. 우환이 묻자 아사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부담하기에는 집값이 비싸죠. 아버지가 다 내 주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아사코는 홍차를 마시며 오디오를 켜고 음악을 틀었다. 트라비스의 곡이었다. 그녀는 CD플레이어를 조작해 자기가 좋아한다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우환은 그 곡을 알았다. 한국에서 즐겨 들었던 노래였다. 첼로와 어쿠스틱 기타가 잘 어울리는, 왜 언제나 내 위로 비가 내릴까 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브리티쉬, 아니 잉글리쉬 팝송.

나는 브리스틀 경영학과를 준비 중이에요. 아사코는 바닥에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우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원서를 낸 학교였지만 합격할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사코는 이따금씩 홍차를 마시며 트라비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작년 LSE 톱은 한국인이었다죠? ―네, 정확히 말하면 석사 과정이었죠. 우환은 아사코의 말에 대꾸를 하고 있는 자신이 적잖이 우스웠다. 매년 세계 유수 대학의 경제 경영학 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마는 기이한 민족의 우환. 하지만 경제망국의 나락에서 수년째 헤어나지 못하는, 5년 동안 100명이 넘는 장관을 갈아 치우는 조국의 우환. 그는 자신의 정정이 자존심이 아니라 자의식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아사코는 두 개의 빈 잔을 챙겨 주방으로 가져다 놓고 돌아오며 오디오를 껐다. 그녀는 돌아와 우환에게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아사코는 싱긋 웃어 보였지만, 우환의 마음은 씁쓸했다. 그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런던에 온지 이제 한 달도 안 되었지만, 그 클럽에 자주 갔어요, 잉글리쉬 친구를 얻으려고 했는데, 동양인을 만난 것은 당신이 처음이었죠.

그녀는 일어나 그에게 방안의 물건들을 소개했다. 새 친구에게 오랜 친구를 소개하듯, 다정하고 예의바른 태도였다. 책장과 화분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에서 쓰던 물건이라고 했다. 그녀는 브리스틀 외에도 런던대학이나 옥스포드 같은 대학교에 입학 서류를 제출한 상태였으며, 불합격은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방 한쪽에는 일본어와 영어로 된 책들이 빼곡 들어찬 책장이 기대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오디오와 텔레비전, VCR 따위가 놓여 있었다. 옆으로는 수십 장의 CD가 유리문 뒤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바른편 저쪽으로 보이는 그녀의 주방엔 다기(茶器)를 비롯한 그릇들이 정연하게 놓였다.

책장 속의 제목들을 훑던 우환은 잠시 시선을 한 곳에 두었다. 그것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영역본이었다. 코인 로커 베이비즈. 한국에 있는 동안, 많지 않았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우환은 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아사코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무라카미 류를 좋아하나요?, 한국어로 읽은 적이 있는데 재미있었어요.

아사코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 책을 꺼내 들었다. 나도 좋아해요. 무라카미상의 글은, 최근에는 읽지 않지만 좋아하는 게 많았죠. 그 중에서 코인 로커 베이비즈가 좋았는데, 런던의 서점에 가 보니 이 책이 있었어요. 아사코는 단지 반가운 마음에 그 책을 샀을 뿐, 아직 읽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무라카미의 소설을 좋아한 덕분에 룸바 콜롬비아 같은 것도 알게 되었고, 바카디도 마시고요, 그를 만난 적도 있어요. ―그를 만난 적이 있어요? ―네, 옐로우라는 콘서트장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었죠, 그가 운영하는 무라카미즈라는 쿠바 음악 전문 레이블에서 콘서트를 하는 거였는데, 그 사람 굉장히 자기만족적이었어요.

그녀는 만지작거리던 책을 책장에 꼽고, CD 진열장을 뒤지더니 음악을 바꿨다. 하바나에서 열린 라틴 음악 축제 실황 공연이에요, 살사나 룸바 같은 것들요. 뜨거운 함성 소리가 섞여 있는, 전형적인 라이브 앨범이었지만 녹음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아사코는 바닥에 앉아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쿠바를 좋아하나요? ―네, 쿠바 음악이나, 쿠반 룸바 같은 것은 좋아요, 하지만 쿠바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자유가 없는 나라니까요, 카스트로도 싫고요. 우환은 공연 실황 어딘가 갈급한 자유가 떠다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연주는 춤을 추기에는 어려운 리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마음으로만 춤추는 음악을 했다.

아사코는 맘보를 추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하지만 쿠바보다 더 싫은 게 니혼이에요. 아사코는 우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재퍼니즈들은 룸바가 미국 춤인 줄 알아서 싫어요, 나는 소니의 캠코더는 좋아하지만, 가와사키 모터바이크나 미쯔비시의 가전 제품이나 혼다니 도요타 따위는 정말 싫어요, 간선제의 총리도 싫고, 도쿄대 출신 대장성 관료도 싫고, 야스쿠니도 싫어요, 고래 고기도 싫고, 니혼 특유의 모노노케도 싫고, 지금 천황이 백이십사대라고 우기는 것도 싫고, 롯본기도 싫고, 소녀취향의 호색한들도 싫고, 원조 교제도 싫어요, 외국의 고급 브랜드를 지독하게도 좋아하면서 제대로 표기도 못하는 일본어는 그 중에서 가장 싫어요.

그래도 당신의 나라는, 한때 우리를 식민지로 가졌잖아요. 우환은 하마터면 그렇게 말할 뻔했지만 꾹 참아야 했다.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을 때처럼 목이 간질간질했지만, 스스로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벗어버린 30년도 더 된 듯한 튜닉처럼. 일본이 싫어요? 우환은 그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되묻는 것이 다였다.

네. 일본도 싫고, 아버지도 싫었어요. 아사코는 두 번째 문장이 과거형임을 강조하며 말했다. 싫었어요, 하고. 그녀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입양되었어요. 아사코의 말은 나직했다. 얘기했어요. ―나는 입양되었어요. ―얘기했어요.

아사코는 우환 쪽으로 다가와 우환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세 살 때까지 고아원에 있었어요, 기억은 전혀 없지만, 내 아버지나 어머니 둘 중 한 쪽은 아마 재일 한인이었던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해준 적은 없지만, 그랬을 것 같아요, 고아원 원장이, 내 이름의 아사(朝)는 칸코쿠의 옛 이름에서 따온 거라고 했으니까요.

그녀는 몸을 밀어 우환에게 입을 맞춰 왔다. 라벤더 오일을 섞은 향수 냄새가 그녀의 몸을 타고 우환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오늘 밤에, 나랑 지낼래요? 우환은 입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요, 사양하겠어요. 아사코는 픽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요, 한국은 공자의 나라니까요, 죽음을 찬미하고 성에 탐닉하는 우리와는 다르지요.

아사코는 우환의 팔을 잡고 그의 어깨에 기댔다. 우환은 그녀를 밀쳐내지 않았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엉킨 실을 풀어내듯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오키나와에서 꽤 큰 호텔을 가지고 있어요, 도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따냈지만, 호텔은 물려받은 것이니까 자기 실력으로 해낸 것은 아니었겠지요, 요즘에는 전문 경영인을 불러 앉혔으니 하는 일도 없어요. 아사코는 노래가 끝나길 기다리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 cd 플레이어가 멈추자, 그녀는 더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히토츠바시 경제학과를 나왔어요, 아버지의 강권이었죠. 사실 하고 싶었던 것은 동양 역사였어요, 오키나와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무라카미씨가 한국과 중국에 대하여 쓴 글을 읽고 일본사 교과서를 의심했었죠, 미군 부대도 영향을 끼쳤고요.

나는 아버지가 싫었어요. 아사코는 일어나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했죠, 일본도요, 그래서 당신에게 접근했어요, 일본인이기를 바랬지만, 또 일본인을 만나는 것도 자신이 없었죠. 그래서 중국인이냐고 물었던 거예요. 참, 아버지의 사진도 있었어요. 그녀는 침을 삼키며 우환이 모르는 협주곡 cd를 꺼내 플레이어의 트레이에 걸었다. 처음에 런던에 같이 왔던 아버지가 그럴듯한 원룸형 아파트를 구해주었는데, 내가 다다미방으로 옮겨 온 거예요,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거기에 사진이 들어 있었는데.

정말 그녀가 재일 교포의 딸일까? 두 시간이 지난 뒤, 우환은 아사코의 배웅을 받고 길을 나섰다. 우환은 입술에 남은 홍차향을 혀로 핥았다. 과연 그녀가 나의 동족일까? 계단을 내려오며, 그는 약간이나마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잉글랜드에서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 아닌가. 식민지를 가졌던 섬나라라고 해서 모두 영국인일 수는 없었고, 영국인이라고 해서 모두 잉글리쉬일 수는 없었으니까.

#3. 왜 언제나 내 위로 비가 내릴까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어디 다녀와요? 하숙집의 주인인 미세스 명이 물었다. 우환은 아사코라는 일본 여인을 만났노라고 말하려다, 의례적인 인사말임을 생각해내곤 목례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명 씨 부부의 집은 근처에서 찾기 힘든 단정한 단독주택으로, 처음 우환이 이 집에 들렀을 때 하루라도 빨리 입주하고픈 충동을 느낄 정도로 예쁘게 꾸며 놓은 곳이었다. 지은 지 이십 년이 채 되지 않은 빨간 벽돌집. 이렇다 할 정원은 없었지만 화단에는 영국 장미가 피어 있었다.

방으로 들어온 우환은 입고 있었던 반소매 티셔츠를 갈아입었다. 아직도 아사코의 방에 떠돌던 향이 남아 있었다. 옷 정리를 마치고는 천식 약을 먹고, 새로 사온 신발의 끈을 매기 시작했다. 하얀색 끈을 신발 구멍에 넣고 빼며 답답한 마음에 창 밖을 보았지만, 그저 마찬가지로 답답한 하늘이 낮게 깔렸다. 오늘도 이따금 안개비가 내렸는지 창에는 비의 지문이 남아 있었다.

집주인인 닥터 명은 킹스 칼리지에 출강을 하는 한국 출신의 초빙 교수였고, 미세스 명은 한국계 영국인이었다. 그들은 닥터 명이 영국으로 유학을 왔을 때 연애를 통해 결혼을 했다고 한다. 부부의 아들은 메사추세츠로 유학을 해 거기에서 살고 있었고, 우환이 쓰고 있는 방은 그 아들이 쓰던 방이었다. 아들의 이름은 케빈이었던 듯, 방 구석구석에 칼로 새긴 KEVIN♡JULIE 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우환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그리니치 표준시로 오후 10시 20분. 그렇다면 서울은 날짜가 바뀐 아침 7시쯤, 아사코의 오키나와도……. 우환은 전화기를 들고 콜렉트콜 번호를 눌러 서울의 집에 전화를 했다. 신호가 가더니, 이내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일곱 시에 출근을 하곤 했고, 어머니는 아마도 아침상을 정리하고 있던 중이었으리라.

그래, 우환이냐, 영국은 괜찮니, 그래도 좋은 집주인을 만나서 다행이다, 전화 좀 자주 하지 그러니……. 어머니는 이것저것을 떠들었지만, 끝내 아버지의 회사가 어렵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머니, 여기서도 다 알 수 있답니다, 인터넷이라는 게 있거든요, 노조 파업과 사업장 폐쇄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 그 회사 여차 하면 망합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우환을 어린아이처럼 여겼다. 그럴 법도 했다. 아직 대학 입학도 하지 않았고, 병역도 거치지 않았으니까. 우환에게 있어 대학이란 성년 의례나 다름없었다. 부모님은 어른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대학 입학 이후로 보류했다.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게 하지도 않았고, 선거 날에는 과외 선생을 불러 죽어라 공부만 시켰다. 건강 문제로 병역이 면제되었지만, 그 면제된 시간만큼 고통은 더해 왔다. 최소한 제대라도 했다면 그것으로 성년 의례를 대신할 수 있었다. 우환은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일, 얻고 싶은 권리가 꼭 하나 있었다.

아버지에 대하여 반항할 수 있는 권리.

전화를 끊은 그는 침대에 앉아 아사코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히토츠바시를 졸업하고 브리스틀 혹은 런던의 대학교에 유학을 온 아사코라는 여자. 그 아버지가 너무나 싫었지만, 결국 그리워해야만 했던 한국인의 피가 섞였을지도 모르는 일본인. 우환은 그녀가 함께 자자고 했을 때 거부했던 것을 후회했다. 일종의 시기심이었다. 자신이 수험 생활에 중독된 것처럼 재수, 삼수, 사수를 거듭하는 동안 첫 번째 일류 경제 대학을 졸업하고 두 번째 대학에 다니러 혼자 런던으로 온 여자. 그런 주제에 그 싫다는 아버지를 거부하지도 않고 도리어 애인처럼 그리워하는 딸.

처음 우환을 영국으로 보내자고 주장한 것은 어머니였다. 한국에서 우환은 그야 말로 구제 불능의 상태였다. 대한민국의 대입 시험인 수능시험이란 믿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시험일 마다 우환은 무슨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어딘가 문제가 생겼다. 감기, 고열, 몸살, 두통, 복통, 장염. 이들 중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이 그를 괴롭혔다. 시험 시간에 머리가 아파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한 번은 점심 도시락을 잃어버리고 밥을 먹지 못해 탈진해 4교시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영국에서는 평소 실력도 잘 봐 준다니까, 거기 가서 학원 몇 개 다니고 입학시험 잘 치르면 더 잘 갈 수 있을 게야,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나쁘지 않잖니.

어머니 보다 더 답답했던 것은 우환 자신이었다. 아들의 대학 입시 실패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럼 내년에는 더 비싼 과외 선생을 붙여 줘야겠구나, 하는 말뿐이었던 매정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자면 번듯한 대학에 입학해야 했다. 최소한 아버지가 졸업한 대학 보다는 입학 점수가 더 높은 명문 학교의 학생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아버지의 회사에 대항해 운동을 해도 구치소에 가지 않고 풀려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동기들 중, 일류대 다니던 녀석과 지방대 다니던 녀석이 똑같이 데모를 했어도 일류대 다니던 놈은 석방되고 지방대 다니던 놈은 구속되었던 것을 우환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숙박업체나 의류업체, 유통업체, 제조업체 할 것 없이 강경 스트라이크는 비일비재했고, 아버지의 회사도 그랬다. 보수 언론에서는 노동자들이 경제 위기를 도외시한 채 단순히 월급을 더 받기 위해 일으킨 소요라고 매도했지만, 물론 그러한 내부 노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농성하고 있는 많은 노조원들은 언제나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매를 맞거나 성희롱을 당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조선족 혹은 동남아 출신의 가난한 이들은 심지어 토막 살해되고 있었다. 경제 망국의 산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빌어먹을 가장 국지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방법들. 세계 유수 경제대학에서 언제나 수석을 도맡아도, 산업 효율성 제고의 공익은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정작 한국에서는 그런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처음 김포공항의 국제선 청사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을 때에도 우환은 결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버지 덕분에 병역까지 면제된 특권층 자제의 도피 유학이라는 딱지도 내심 거슬렸지만 그보다 그를 가로막았던 것은, 영국에서는 아버지와 투쟁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고서야 우환은 밖에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런던에서는 수도 없이 보는 비였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난 뒤라 더욱 우울해 보였다. 이곳은 비가 그렇게 많이 내리는데 검은 밤하늘은 왜 한 번도 맑지 않은 것일까? 왜 자꾸 내 위로만 비가 내리는 것 같을까? 우환은 아버지의 회사가 망하고, 입학 허가를 받은 채 등록금이 없어 한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울한 생각도 했다.

우환은 침대에 누워 조용히 비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가만히 웃었다. 영국은 비오는 소리도 고상하구나.

#4. 영국병 The British Disease

아사코는 댄스 플로어에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팔을 쳐들고, 가슴을 내밀고, 허리를 움직이면서 최대한 섹시하게. 아사코는 외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고향의 많은 것들이 그리울 테니까. 외로운 이에게 성적인 매력은 무기이다. 선택 당할 수 있는 권리이자,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는 무기. 우환은 그녀가 남기고 간 바카디를 마시며 그녀를 응시했다.

음악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아사코는 우환이 있는 쪽으로 돌아와 남긴 술을 마셨다. 아까 누가 말을 걸던데, 누구였어요? 우환이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코티쉬인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나는 잉글리쉬가 좋아요, 옥스포드 영어를 발음하니까요, 미국식 영어를 배워서 가끔은 못 알아들을 때도 있지만. 한국인인 우환도 마찬가지였지만, 일본인들은 특히 영어에 콤플렉스가 있어 스코티쉬나 웰쉬, 아이리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사코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잇츠 홋, 홋, 하는 말이 무언가 한참을 고민했었어요. 알고 봤더니 잇츠 핫, 으로 배워 왔던 거였어요. 자기 경험담을 신나게 늘어놓던 아사코는 하이네켄 한 병을 더 시켜 주둥이를 물고 단숨에 반병을 비우더니, 음악이 시작되자 병을 우환에게 맡기고 다시 댄스 플로어로 다갔다. 그녀가 좋아하는 라틴음악이었다. 우환은 그런 종류의 음악, 특히 살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처지였고, 살사는 특히 더 어려웠다.

아사코와 그녀의 아파트에서 헤어진 후 우환은 한동안 그 레이브 클럽에 가지 않았다. 원래 레이브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었던 그였지만, 아사코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우환은 시내 대형 서점들에 들려 한국 소설의 영역본을 찾아 다녔다. 두 시간을 뒤지다가 찾지 못해 점원에게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무슨 까닭인지 끝까지 스스로 찾아보았다.

이문열, 조세희, 이청준, 박완서, 김영하……. 세 시간 반만에 우환은 몇몇 소설가의 영역본들을 찾아내고는 마치 금광을 찾은 듯이 웃었다. 하루키의 책은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었지만 우환은 짐짓 잊으려 애썼다. 우환은 조세희의 책을 사서 방 안 책꽂이에 꽂아 놓고 나서야 그 레이브 클럽에 아사코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폴로 진의 옷을 입고 춤을 추던 아사코에게 영국인 하나가 접근해 왔다. 아사코는 고개를 돌리고 그 남자에게 흘겨보듯 눈길을 보냈다. 그 남자는 아사코에게 접근해 대뜸 손을 그녀의 허리에 올렸다. 네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 하는 표정으로 그는 아사코와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사코의 엉덩이가 그의 몸에 닿는 것을 보며 우환은 남은 하이네켄을 비웠다. 남자는 상기된 얼굴로 아사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에는 사탕이 물려 있었다. 그들이 사탕을 물고 있는 것은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서야, LSD나 엑스를 하면 자칫하면 혀를 깨물 수도 있으니까. 우환이 영국에 오기 전 홍대에서 만난 친구가, 사탕을 물고 있던 양키를 가리키며 가르쳐 준 것이 있었다.

음악이 바뀌자, 아사코는 그 영국인과 함께 우환이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영국인은 일행이 있는 것에 언짢은 표정이었지만, 아사코가 그냥 친구예요, 하고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우환이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는 하이네켄 세 병을 주문했다.

아사코는 우환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 사람은 이름이 켄이래요, 일본 이름 같아요. 켄이라는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 비밀이 있어요? 그는 유창한 런던 사투리를 구사했다. 우환과 아사코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환은 학원에서,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앞에서 귀엣말 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배웠다.

하이네켄을 마시며 켄은, 자기는 소니의 워크맨이 갖고 싶은데 너무 비싼 것 같다며 아사코에게 싸게 구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영국에서 사는 게 일본에서 사는 것보다 크게 비싸지 않아요, 운송료를 합치면 오히려 영국에서 사는 게 좋아요. 켄은 퍽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 아사코의 몸을 더듬었다. 그는 숨을 할딱이며,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그는 우환과 아사코에게 사탕을 내밀었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

우환은 아사코의 팔을 잡아끌어 귀에 대고 말했다. 아사코, 켄이라는 사람, 드럭을 한 것 같아요,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당신은 자유를 좋아하지만 드럭은 하지 않잖아요. 우환은 말을 마친 뒤 쿨럭 기침을 했다. 주머니 속에 약이 있다. 웨어 이즈 더 니어리스트 드럭 스토어? 영국에서는 약국을 드럭 스토어라고 하지 않았다.

다시 음악은 바뀌었다. 자정이 지나자 댄스 플로어에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켄은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처럼 비트에 맞춰 몸을 앞뒤로 흔들며 계속해서 할딱거렸다. 점점 약기운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이따금 그는 아사코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었다. 아사코는 얼굴을 찡그렸다.

우환이 켄의 팔을 당기자 켄은 불쾌한 듯 우환을 쳐다보았다. 뭐가 문제인데? 아니, 아무 것도요. 아무 것도 아닌데 왜 내 몸에 손을 대는데?, 아까는 귓속말도 하더니. 우환은 얼굴에 냉소가 떠올랐다. 미안, 잉글리쉬에게 귓속말은 결례라는 것을 깜빡했군요. 켄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당신네 일본이란 나라는 혼자 있을 때에는 굉장히 소심하지만, 둘 이상만 모이면 언제나 탐욕스러워지지. 켄은 사탕을 입에서 굴리며 비아냥거렸다. 아사코도 표정이 변했지만, 대꾸한 쪽은 우환이었다. 탐욕이라면 영국인들이 더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일본인이 아닙니다. 우환의 대꾸에 아사코는 걱정스럽게 우환의 팔을 잡았다. 켄은 입에 사탕을 하나 더 집어넣으며 우환의 옷을 잡고 끌어내었다.

밖은 비가 오고 있었다. 우환이 런던에 온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오늘처럼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는 처음이었다. 켄이 우환을 끌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켄의 친구인 듯한 몇몇이 그들을 따라 나왔다. 한 명은 닥터 마틴 부츠를 신고 머리를 삭발했고, 다른 하나는 리바이스 블루진에 오아시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LSD와 술로 몸이 달은 런던 청년들은 찬 비를 맞더니 몸을 모로 틀었다.

뭐가 문제입니까? 우환이 묻자 켄은 우습다는 듯 주먹을 날려 우환의 얼굴을 가격했다. 우환은 몸이 휘청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이내 닥터 마틴 부츠를 신은 쪽이 우환의 양어깨를 잡자, 리바이스 블루진이 우환의 배를 가격했다. 우환은 헉, 하고 허리를 꺾었다.

도운트 두 댓, 도운트 두 댓. 아사코가 우환이 고른 우산을 쓰고 나와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병역을 마치지 않은 게 이런 데서 드러나는 건가, 우환은 런던의 청년들에게 계속 얻어맞으며 자조했다. 이게 바로 글램과 펑크를 태동시킨 나라의 힘이구나, 록큰롤 밴드의 콘서트에 삼십만 명 씩 모여드는 나라의 에너지가 이런 거구나.

한참을 흠씬 두들겨대던 켄과 친구들은 기분이 풀렸는지 곧 클럽으로 돌아갔다. 비는 계속해서 쏟아졌고, 우환은 얼굴에 묻은 피를 빗물에 닦았다. 아사코는 조심스레 다가와 울먹이며 우환을 힘없이 안았다. 조금 있으면 구급차가 올 거예요, 많이 아프죠?, 미안해요.

우환은 계속 빗물에 얼굴을 씻었다. 웃는 듯, 혹은 우는듯했다. 아사코, 내 말을 들어줄 수 있어요? 입술이 부어 있었지만 우환의 발음은 명료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환은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다. 아사코, 영국병이 뭔 줄 알아요? 아사코, 영국병 말이에요, 그래요, 마가렛 대처, 그녀가 그랬죠. 네, 철의 여인, 영국병을 몰아낸 저 위대한 수상 말이에요,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엉터리 사회 보장 제도를 없애고, 과감한 산업 구조 조정으로 수많은 폐광촌들을 양산해 냄으로써 대영 왕국의 산업 효율성을 제고한 장본인 말이에요.

아사코는 우환을 부축해서 건물 아래로 비를 피하러 갔다. 우환이 잠시 말을 멈추자 아사코가 손수건으로 우환의 얼굴을 문질러 주었다. 우환은 쿨럭 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영국병 말이죠, 영국병이 그런 게 아니더라구요, 아사코,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죠?, 진짜 영국병은 계급적 사회적 모순이래요, 그래서 통렬한 저항을 해야 하고, 지독한 패배주의로 무장해야 하고, 그래서 닥터 마틴 부츠를 신고 펑크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그래요.

그럼 아까 그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인가요? 아사코가 물었다. 네? ―아까 그 사람들도 그런 부류냐고요. 우환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아까 그치들, 런던 사투리를 유창하게 쓰는 그 친구들은 그냥 흉내내는 녀석들일 뿐이죠.

우환은 한국에 있을 때 영국병이라고 하면 광우병이나 구제역을 생각했다. 그 두 가지 병이 다 마가렛 대처 시절의 산물이었다. 영국에 도착했을 때 가장 처음 겪은 영국병은 천식이었다,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는. 아사코를 만나고 나서 얻은 영국병은 언어 콤플렉스였다. 그녀도 결국 무료 영어 선생을 구하기 위해 헌팅에 나섰다가 LSD를 한 런던 보이들에게 몸을 맡길 뻔한 것이니까.

아사코가 우환을 바라보자, 우환은 이내 씩 웃으며 물었다. 우리가 사실 각자의 나라, 서울이나 오키나와에서 영국에 오기 전에 무엇을 생각했나요? 런던의 지독한 안개? 툭하면 내리는 비? 축구의 종주국? 티 타임? 신사의 예절과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 셰익스피어, 죠지 오웰, 그리고 톨킨에 이르는 그 고상한 브리티쉬 잉글리쉬? 캐나다와 호주를 위시한 영연방의 맹주국으로서의 위엄? 여왕, 왕세자, 그리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에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까지 끼여든 왕실의 리얼 드라마요? 엠아이식스와 제임스 본드, 근위병의 나라? 북아일랜드의 끊임없는, 그리고 끝없는 내전? 리복과 캉골과 닥터 마틴 부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질문 공세에 아사코도 웃고 말았다. 그 웃음 덕에 맺혀 있던 눈물이 흘러버렸다.

멀리 앰뷸런스의 불빛이 보였다. 우환은 아사코의 어깨에 기댔다. 아사코, 류나 하루키의 소설에 나오죠, 전공투 말예요, 한국에서는 노동 운동이 아직도 과격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아사코, 아사코는 칼 마르크스나 그람시가 뭔지도 모르고 노동운동이 무엇인지 모르죠? 루이 뷔똥의 옷을 입고 발리의 구두를 신고 영국이라면 버버리와 닥스의 코트가 좋아 하고 생각하죠? 우리 나라 사람도 다들 그래요. 버버리에서 할인행사라도 하면 사람이 미어터지죠. 아사코, 아사코는 스코티쉬가 싫다고 했지만, 나는 런던 보이보다 차라리 스코티쉬가 좋아요. 그들의 지독한 사투리는 굉장히 알아듣기 힘들지만, 나는 그들이 좋아요. 광부들이여, 단결하라. 끊임없는 시위는 경제적인 능력을 빼앗긴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었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에요. 그, 죽음으로 이르는 병이 진정한 의미의 영국병이라는 거죠.

우환은 말을 멈추었다. 하고픈 말이 있었지만 웅얼거리고 말았다. 나는 아버지가 싫었어요, 아사코,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를 싫어하는 만큼. 그런데 여기 와서 생각해 보니, 어쩐지 아버지를 용서해야만 할 것 같아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아버지이기 때문인가요. 노동당의 나라에 오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저기 저 거리를 씻고 있는 빗물이, 마르크스의 무덤이 있는 런던의 이 빗물이 언젠가 한국에도 내리겠지, 한국에서도 노동당이 생기겠지 기대했는데.

무서워요. 때리지 마세요. 월급 명세서를 보여 주세요. 우리도 사람이에요. 앰뷸런스에서 우환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무참히 깨뜨린, 아버지의 공장에 일하던 동남아 노동자들의 한국어 교본에 적혀 있던 예문을 떠올랐다. 우환은 영국인 구조대원의 파란 눈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무서워요. 때리지 마세요. 합격 통지서를 보여 주세요. 우리도 사람이에요. 우리도 사람이에요, 잘난 영국 신사님.

#5. 비가 돌다 (지평선을 향해) The Rain Rolls (toward the horizon)

아사코가 병원에 와서 보여 준 것은 우환의 앞으로 배달되어 온 대학으로부터의 통지서였다. 닥터 명의 집에서 찾아 온 모양이었다. 우환, 축하해요, 합격이에요. 우환은 통지서를 받아들며 아사코에게 물었다. 당신은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떨어졌어요,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우환은 그녀에게 더를 묻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우환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날이 저물고, 사위가 고요해지자 그녀는 가방에서 또 다른 봉투와 열쇠를 꺼내 우환의 머리맡에 두고는, 펜과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이우환에게, 미세스 명에게 들었어요.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면서요. 이건 내 아파트 열쇠예요. 거기서 지내다가, 기숙사에 들어가요. 어차피 집세가 그때까지 선불되어 있거든요. 필요한 서류는 옷장에 있어요. 옷장에 엔화가 얼마 있을 텐데, 환전해서 필요한 데에 쓰세요.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그녀는 잠들어 있는 우환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그곳을 떠났다.

잠시 후 깨어난 우환은 아사코의 메모를 읽은 뒤, 그녀가 남긴 편지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비행기 표 두 장과 어머니로부터의 서신이 들어 있었다. 우환은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어머니의 글을 읽었다. 아버지의 회사가 어렵단다, 생활비 마련이 어려우니까 한국으로 돌아오렴. 우환은 황급히 집에 전화하려 했지만, 서울은 지금 새벽 3시임을 기억해냈다.

우환은 끝내 집에 전화하지 않았다. 퇴원 후 우환은 바로 아사코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녀는 이미 일본으로 떠난 듯했다. 옷장에는 그녀가 그 때 입었던 고풍스러운 튜닉과, 피가 묻어 있는 하얀색 티셔츠, 그리고 아디다스의 수퍼스타 운동화가 새 것으로 하나 더 들어 있었다. 한 켠에 있는 수트 케이스를 열자, 한 학기 분의 등록금도 충당하고 남을 엔화가 들어 있었다.

우환은 빈 방에 앉아 잠시 고민했지만,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서울에는 장학금을 받았다고 사정을 설명했고, 어머니는 기뻐했다. 그녀의 다다미방은 처음 사용하기에는 불편했지만, 이내 익숙해질 수 있었다. 아파트는 템즈 강 하류 쪽에 있었고, 창 밖으로 가끔 흰 갈매기도 보였다.

며칠 후 우환은 아파트에서 나와 브리스틀 대학의 기숙사에 입소했다. 한 달 정도가 지난 뒤, 유학생을 위한 예비 과정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일본으로부터 한국어로 쓴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이우환에게

안녕하세요. 나는 아사꼬입니다. 더운 여름에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십니까?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는 장마 기간입니다.

요즘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우환 덕분에 한국에 더욱 흥미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또 한국어도 배우고 싶었습니다. 아직 서툴지만 연습 중입니다. 두 달 후에 한국의 대학으로 입학 신청을 할 것입니다. 역사 전공입니다. 고려대학교가 될 것 같습니다.

우환이 이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Bristol 대학교로 보냅니다. 우환은 영국에서 잘 해내고 있습니까? Bristol에 합격했으니 이제 진짜 대학생입니다. 우환은 우환이 바라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우환이 듣는다면 매우 재미있어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사꼬가 정원에 서서 비 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빗물과 같이 내린 것이 있었습니다. 아사꼬의 발 밑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England에서 잃었던 아버지의 사진이었습니다. 물은 순환한다는 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ngland로부터 jet stream을 타고 일본까지 실려온 것 같았습니다.

Jet stream에 같이 실려온 것은 아버지의 사진뿐만 아니라 아사꼬가 영국에서 얻었던 일본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사꼬는 비가 내리는 안에서 일본에 대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환의 한국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젠가 우환이 한국에 돌아오면 나를 찾으십시오. 아사꼬는 한국의 학교에 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 가게 되면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7月. 朝子.

fin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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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협회 주최 전국 고교생 문예 현상 공모 우수상 -_- 을 받았음
상장 한 장 날아오더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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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한 편지>

라이터 리 2007. 12. 19. 02:37

싸늘한 편지
true, dilemma

덜컹거리는 소리는 작위적이다. 역을 출발한 전철은 누군가에 의하 조금씩 빨라지고, 석양에 지는 창틀의 그림자는 점점 현란한 영상을 그린다.

조금씩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한 오후의 전철에 앉아 아픈 다리를 문질러 보지만, 아무래도 나아지진 않는다. 어쩐지 오늘은 전철 안의 사람들, 다들 안색이 좋아. 민주는 안고 있던 숄더백을 끌어당기며 중얼거린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낯익은 석양.

전철은 이내 다음 역에 도착했다. 아……, 벌써 한 바퀴를 돌아온 거구나. 민주는 몸을 틀어 정차한 역이 어딘지를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쪽을 힐끗 쳐다보며 다시 자리로 뭄을 묻는다.

저쪽 맞은 편에 앉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 궁금하다. 플라타너스의 낙엽 빛깔 같은 옷을 입은 그 청년도, 꽤 오래전부터 이 전철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 민주는 조심스레 그를 관찰한다.

이제 갓 스물을 넘었을까. 아니, 어쩌면 아직 고등학생인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기른 듯한 머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베이지색 모자를 눌러쓰고, 초콜릿 색의 무늬가 있는 니트 차림. 팔짱을 낀 채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서 무언가를 듣는. 가끔씩 손이나 발도 까딱거렸고 그것으로 그 청년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어느새 두 정거장을 지나친다. 민주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아, 벌써 5시네……. 민주는 배가 고파져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문 쪽으로 가 다음 역이 어디인지를 확인한 민주는, 그 청년은 무얼 하고 있는지를 돌아 본다. 청년은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자세로 음악을 들으며, 허공을 향해 무책임해 보이는 시선을 던지고 있다.

민주는 일어나 숄더백을 고쳐 맨다. 이윽고 민주가 앉아 있던 자리의 옆에 섰던 사람이 머뭇거리다 그 자리를 차지한다. 안내방송을 들으며 민주는 시계를 본다.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다.

청년은 민주 쪽을 응시하고 있다. 인기척을 느낀 민주도, 청년의 발 쪽에 시선을 주었다가, 천천히 눈을 든다. 민주와 눈이 마주친 청년은, 옆에 뉘어 두었던 가방을 들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민주 쪽으로 다가와서는 그 앞에 섰다. 그리고는, 자그맣지만 또박또박한 말씨로 민주에게 묻는다.

저어, 오늘 특별히 할 일 있는 거 아니죠? 예? 음, 실례지만, 남자 친구 많아요? 아, 그냥. 친구는 좀, 있어요.

주위 사람들이 그들을 흘끔 쳐다보고, 민주는 시선을 의식한 듯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본다. 청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민주에게로 조금 더 다가가 말한다. 무책임하고, 뻔뻔스럽게.

그럼, 하나쯤 늘린다고 표나지 않겠네요? 눌러쓴 모자의 깃을 쓰다듬으며 청년은 피식 웃는다. 곧 전철이 천천히 멈추고,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린다. 민주는 당황스럽다.

같이 내려도 되죠? 청년은 어깨에 들었던 가방을 똑바로 고치고는, 민주의 손목을 잡고 문이 닫히기 직전 열차를 나온다. 민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청년을 본다. 뻔뻔스러운 미소. 가만 보니 이 남자는, 청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고, 푸르지 않다. 그저, 소년(少年).

그때가 민주와 규승이 처음 만난 때였다. 그들은 그렇게, 통속적인 연극처럼 서로를 알게 되었다.

퀴퀴한 냄세 속에서 민주는,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닦고 있었다. 손에 들려진 걸레는 이미 새까맣게 변했고, 청바지의 무릎팍도 흐릿한 얼룩이 생겼다.

변두리 지역의 볼품없는 소극장이었지만, 상영하는 작품은 늘 그럴듯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이나 브레히트를 올리기도 했고, 요즘 무대에 선 작품은 피터 한트케의 “관객 모독”이었다.

민주는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극장에 상주하는 솜씨없는 극단의 몇몇 단원과 함께, 민주는 무대 뒤쪽의 두 평도 채 되지 않는 구들방에서 생활을 했다. 조그만 상을 펴고, 필요한 천조각들을 넣어두는 간이 옷장을 세워두면 한 쪽 벽이 꽉 찼다. 잘 때가 되면 방의 대각선으로 누워 잠들어야 했다.

민주는 극장의 사무실을 닦고 있었다. 사무실이라고는 했지만, 평수가 조금 넓은 구들방에 불과했다. 며칠 동안 닦지 않았던 탓에, 바닥을 몇 번 훔친 것으로도 걸레는 이미 쌔까맣게 변했다. 민주는 쉬지 않고 일했다. 청소, 식사 당번, 소품을 사 오는 잔심부름. 지쳐 왔지만, 쉬지 않았다.

삐그덕.

문이 열리며, 마른 체구의 규승이 구부정한 자세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낡아 보이는 면바지에 검은색 라운드 티셔츠 차림으로, 발에는 아무 것도 신지 않은 채. 그리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민주는 고개를 돌아보고, 규승의 얼굴을 보며 반가운 표정이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꾸미지 않는,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 민주는 언제나 진지했다. 규승이네, 웬일이야? 규승은 씩 웃으며 안쪽으로 들어와 방석 더미 위에 앉았다.

도와 줄까?

잠시 동안 잠자코 바라보던 규승은 민주가 힘겨워 보인 모양이었다. 민주는 말없이 아직 먼지가 많은 방구석으로 걸레를 가져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규승은 결단코 일을 도우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가,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아 버렸다.

사람은 각자 저마다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아.

규승은 막 걸레질을 끝낸 민주에게,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주는 걸레를 접어 문쪽으로 던져 놓고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규승은 말을 이었다. 사람이 몸이라는 것,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일분, 일초라도 더 살자고 만들어져 있잖아. 그런데 말야, 나는, 내 머리 속에는 말야. 지금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누나는 어때?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난 그냥, 나 사는대로, 기질대로 사는 거니까……. 민주는 일어나 문을 열고 걸레를 밖으로 내 놓았다. 그리고 더러워진 청바지에 손을 문지르고, 규승이 앉아 있던 방석 더미에서 방석을 꺼내 그 위에 사뿐히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흐릿해……. 혼잣말이었을까, 아니면 규승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민주는 한숨처럼 넋두리했다. 민주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규승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어때? 옛날 일이 잘 기억나?

규승은, 자조 띈 얼굴로 어꺠를 으쓱해 보였다. 규승에게도 과거의 기억은 흐릿했다. 미래도 마찬가지였다. 미래는 오히려 더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오직 확실한 것은 오늘뿐이었지만, 그것마저도 공연한 반항으뿐이었다. 규승에게 시간이란,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추상적 관념일 뿐이었다. 규승은 규승은 몸을 벽 쪽으로 더 기댔다.

규승아, 너, 학교 어디 다녔어? 민주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낸 듯 물었다. 규승은 잠시 대답을 저어하더니, 입술을 앙다물고 말았다. 고교 시절 열등생이 아니었던 규승은 지금, 대학을 두 번 낙방한 삼수생의 신분이었고, 남에게 학업 얘기를 한다는 것은 껄끄러운 일이었다. 규승은 잠시 망설이다, 민주의 눈을 바라보았다.

따뜻함. 민주의 얼굴은 지쳤으되 그 눈은 따뜻했다. 타인에게, 믿음을 전하는 눈빛. 규승은 생각했다. 나와 대화하고 있는 것은 민주 누나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닌, ‘민주 누나’다.

규승은 표정을 밝게 고치고,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공부 얘기라면, 굳이 못할 것도 없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학업 성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보통의 학교를 졸업했지. 원래 대학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시험을 망쳐서 점수가 안 따라줬고. 어쩌다 보니 인천에 있는 2년제 대학교도 떨어졌어. 난 그냥 재수를 하기로 했지. 진학 같은 건 애당초,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삼수생인가.

규승은 숨을 고르듯 말을 끊었다.

응, 그래. 안 됐다.

민주는 두 손을 무릎에 포개고, 규승이 바라보고 있는 허공의 한 지점에 같은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고 애써 밝은 웃음을 만들며 규승에게 말했다. 미안해, 그런 얘기해서.

아니, 괜찮아. 규승은 소리 없이 크게 웃어 보였다. 꼭 다문 입 양쪽에 해맑은 주름이 생겼다.

피터 한트케, 알아?

민식은 민주와 규승에게 물었다. 극장의 실무 담당인 그는 스물여섯 살로, 규승 보다 여섯, 민주 보다 다섯이 많았다. 학생 운동이 한참이던 때에 대학 졸업반이었던 그의 얼굴 왼쪽에는 불에 댄 듯한 보랏빛 상흔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 성형 수술도 해 보았지만 수술비를 감당치 못해 무위에 그쳤고, 민식은 그것을 ‘그 시절의 훈장’이라고 말하며 자위했다.

피터 한트케……. ‘관객 모독’을 쓴 사람. 소설가이고.

민식은, 풍채 좋은 몸과 흉터가 있는 얼굴에 비하면 목소리는 마치 변성기를 채 겪지 않은 중학생처럼 아주 맑고 깨끗한 편이었다. 민식이 민주를 바라보자, 민주는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흔들며 가볍게 웃어 버렸다. 민식의 시선이 규승에 닿고, 규승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극이나 소설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규승이 대답하자, 민식은 짐짓 놀라워하는 것처럼, 어라, 나는 그런 것은 몰랐는데 하고 말을 마쳤다. 민식은 그가 가진 목소리같은 순진함이 남아 있었다. 규승은 그것을 학생 운동의 후유증으로 겪는 정신적인 퇴행으로 여겼다.

규승이는 커서, 영화 감독 할 거래요. 민주는 마치, 자기가 대답한 것처럼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민식은 의외라는 듯 규승을 보며, 들고 있던 맥주 캔을 입으로 가져 갔다.

영화 감독……. 규승은 멋적게 웃어 보이며 민식에게 말을 건넸다. 옛날에 소설을 쓸 때부터 생각한 거에요. 실은 나는 영화에 대해서 아는 건 없어요. 피터 한트케가 시나리오를 쓴 건 기억이 나는데 감독이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나요.

민주는 마시지 않던 맥주의 캔을 따며, 규승에게 물었다. 혹시 좋아하는 영화 있어? 민주는 전에도 두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대답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단 둘이 있을 때 물은 것은 한 번뿐이었고, 그저 다른 사람에게 규승의 꿈을 확인시키려는 듯한 의도가 묻어 있는 질문이었다.

규승은 그런 민주가 싫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말하는 것은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규승은 민주가 좋았다. 응,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찍은 퍼펙트 월드. 규승도 짧게 잔을 들어 보았다. 대답을 마친 규승은, 민주를 보았다.

의자의 팔걸이에 턱을 괴고 앉은 민주의 얼굴. 한없이 지친 것같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 흔들리는 것처럼, 창백하리만치 하얀 얼굴. 딱 그 나이에 맞는 눈매와 입술과 표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 민주는 규승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규승의 눈을 마주 보고는 말했다. 아, 그래? 나는 본 적이 없는 영화인데. 규승이는 영화 많이 보나 봐요, 그렇죠?

민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과장되어 있었다. 규승은 그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규승은 말이 없어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극장 안을 둘러 보았다. 세 사람은 극장의 객석에 앉아 술을 나눠 마셨다.

참, 규승아. 아까 사무실에서, 네가 얘기했던 거, 그거, 그러니까……. 규승이 민주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몸과 마음의 불일치……. 왜 살아야 할까, 하는 그것? 민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다는 듯, 의자에 앉은 채 규승을 향해 몸을 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규승은 민주의 실루엣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윽고 말을 꺼냈다.

사람은, 무엇인가 목표를 세워서 그 불일치를 해소하는 거야. 규승의 말은 마치 선언처럼 들렸다. 민주는 규승에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규승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해 나갔다.

예를 들어서, 이 워크맨은 테이프를 플레이하기 위해 존재하지. 만약 워크맨이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된다면, 그러니까 고장이 나서 고칠 수가 없으면 폐기 처분할 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워크맨 역시 망가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잖아? 하지만 언젠가는 폐기 처분되어야 하고. 사람도 그래.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언젠가는 죽어. 사람하고 워크맨하고 다른 점은, 워크맨은 "테이프 플레이"라는 확실한 아이덴티티가 있지만 사람한테는 그게 없거든. 그러니까 사람은 살기 위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 자신의 목표를 세우는 거야.

민주는 규승의 얘기가 거기에까지 미치자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이해가 가, 응, 그래. 하지만, 사람의 존재에 이유를 달만큼, 세상은 각박하지 않잖아? 난 네 삶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규승이 무언가 다른 말을 꺼내려 할 때, 민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제멋대로 하게끔 해 달라는 투로, 자신은 이만 가보겠으니 둘이 잘 놀라고 말을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가끔은, 일부러 이기적인 체 하지만 천성은 그렇지 않은 여자애야.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아이. 민식은 규승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규승도 그 말은 인정하고 있었다. 민주의 배려로 규승 자신도 이 극장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수명이 다 되었는지 어둑해진 형광등 불빛 아래, 민주가 서 있다. 민주의 꿈은 모델이다. 패션 모델,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조명과 받는 사람. 조명과, 음악과, 의상과, 분장이 모델을 위해 존재한다. 민주는 매일 극장 계단을 까치발로 오르내리고, 연극이 끝난 후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쇼를 펼친다. 그리고, 규승은 그것을 바라본다.

민주는 천천히 무대 앞으로 나온다. 어색한 워킹. 그리고, 갑자기 걷는 것을 멈춘다. 하지만 민주에게는, 그 멈춰 있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다. 우울하게도. 민주가 연습을 마치면 객석에 앉아 있던 규승은 일어나 박수를 쳐 준다. 규승이 극장에 온 첫날부터 매일 이어져 온 일과다.

민주와 규승은 방으로 돌아와, 어제 민식과 함께 마실 술을 사올 때 함께 사 왔던 크래커와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꽉 닫힌 문 안에, 두 사람은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상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규승은 문을 꽉 닫고는, 앉아서 기타를 매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극장에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는데, 규승이 온 뒤 주인이 되었다.

규승이 너는, 참 노래를 예쁘게 하는 것 같아. 민주는 크래커에 아이스크림을 얹으며 얘기했다. 민주의 입에서 크래커 부서지는 소리가 나자 규승도 노래를 멈추고 크래커를 한 조각 집었다.

규승아. 너, 소설 썼다는 얘기 좀 해 줄래? 민주의 질문에, 규승은 말 없이 크래커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대답 대신 민주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누나는 애인 없어?

응, 없어. 네가 더 잘 알잖아. 민주는 크래커 부스러기가 묻은 손을 털고 벽 쪽으로 몸을 밀었다. 조금씩 바닥이 따뜻해져 왔다. 민주는 잠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으로, 기타를 매만지는 규승의 손을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규승아, 너는?

나는, 여자친구가 있던 것은 아니고, 잘 해보려다가 차였어. 언제? 얼마 전에. 얼마 안 됐어. 언젠데? 1년하고, 아홉달 정도 전에. 그러자 민주는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1년 9개월이 어떻게 얼마 안 된 거야?

김연진. 규승은 흐릿한 기억 속에서, 흐릿한 얼굴을 가졌던 한 여고생을 떠올렸다. 누군가 그녀에 관한 얘기를 물을 때면 규승은 말없이 잠자코 있거나, 혹 화를 내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규승과 함께 있는 것은 ‘민주 누나’였다.

얘기해 줄 수 있어?

규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규승이 연진을 처음 만난 것은 학교 복도에서 였다. 고등학교 2학년. 규승은 학급의 부반장이었고, 연진은 학교의 신문반 기자였다. 규승이 교무실에서 담임 교사와 면담을 마치고 나와 복도를 지날 때, 그녀는 손에 학교 신문 원고를 들고 교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규승은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다.

규승이 처음 연진에게 말을 건낸 것은 학교의 매점에서였다. 연진은 친구와 함께 빵을 사 먹고 있었고, 규승은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 빵 맛있니?

학교 신문에, 자신과는 별 상관없는 투고를 하던 규승은, 연진을 만난 뒤 두달 후 처음으로 연애 편지를 써 보게 되었다. 그 이후는 고교생의 풋사랑이 늘 그렇듯, 편지를 주고 받고, 함께 영화를 보고, 선물을 주고 받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는 방학을 계기로 틀어지고 말았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안 연진에게는 새 친구가 생겼고, 그 새 친구는 규승과의 관계를 정리하기를 원했다. 규승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규승의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방적인 변심’이었다.

그 무렵 규승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규승의 부모가 규승을 한국에 남겨 둔 채 도미한 것이었다. 한국에 홀로 규승은 당숙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고, 부모의 그런 행동은 규승을 혼란스럽게 했다. 당숙은 규승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민주는 규승에게 다가가 규승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됐어, 이제 그만 얘기해도 좋아. 하지만 규승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가끔, 표정을 일그러뜨렸지만, 규승은 말을 하고 싶어 했다.

나, 아마 그애한테 나는 아마 그렇게 보였나 봐. 성격도 장점이 없고, 그 반대로 단점 투성이고.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허풍쟁이. 이기적이고, 제 잘난 줄만 알고, 남 생각해주려고 하는 건 하나도 없고, 자기 생각을 지키면 다인 줄 알고, 남 무시하기 잘 하고, 비꼬기 잘 하고.

나를 맡아서 기르게 된 오촌 아저씨가 늘 하던 말이 있어, 넌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느냐, 하고. 그래, 난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는 거지? 항상 자조했던 때가 있어. 그래서인지 나는, 그애가 나를 버렸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도 억울하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어.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도 말자. 그리고 내 상처를 보여주지도 말자. 나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입힌 적이 있는 전과자이고, 피해자이고……. 그래서, 오래 전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닫았어.

규승은 무릎에 놓았던 기타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아까 왜 소설을 쓰냐고 물었지? 나는 타인과의 소통 대신에, 나는, 소설을 쓴 거야. 노래를 부른 거고. 아픔을 달래려고.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기타를 치지 않고서는 조금도 숨쉴 수 없었어. 무언가를 내뱉어 놓지 않으면, 한시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았어. 민주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를 하는 규승의 얼굴만큼이나, 민주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제법 포기했어. 숨쉬는 것 따위……. 나 따위, 버려 버렸어. 지금 그애를 다시 만나서, 아무 탈없이 잘 살고 있는 걸 알게 될 때, 난 어떤 표정이어야 할까?

규승은 언제 쾌활하게 웃었냐는 듯이 싸늘한 표정이 되어서 허공을 주시했다. 그리고 안고 있던 기타의 줄을 퉁기며,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흥얼거렸다. 민주는 잠자코 노래를 듣다가, 이윽고 그 노래를 기억해 냈다. 유재하의 노래인가, ‘우울한 편지’ 라고 하는.

다음 날 아침, 민주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규승을 데리고 바깥에 나가, 공중 전화 박스에 밀어 넣었다. 수화기를 들어 규승에게 건넨 민주는, 전화카드를 넣고 손에 들고 있던 번호를 차례차례 눌렀다. 신호음이 울리고, 규승은 의아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민주는 대답 대신, 손에 들고 있던 메모지를 규승에게 주었다. 그 메모 안에는, 규승에게 있어 너무도 낯익은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 번호를 본 순간, 규승은 급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규승의 항의에 민주는 살짝 웃는 듯한 표정으로, 네 다이어리 보고,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수화기를 들고 손을 들었다. 번호를 누르며 민주는 규승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그애에게 전화해서, 네 남은 진심을 말해. 그래야 돼.

규승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저어 보이고는 그대로 공중 전화 부스를 나가려다, 민주가 건네는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잠자코, 귀에 가져다 대었다.

뚜르르, 뚜르르, 딸칵. 여보세요? 수화기 안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흘렀다. 저어, 거기 김연진이네 집인가요? 네, 그런데요. 저어, 혹시 김연진 있나요? 아뇨, 학교 갔는데요, 실례지만 누구……? 아, 아, 그게, 학교 동아리 친구입니다, 예. 무슨 동아리?, 우리 연진인 아직 동아리 든 게 없을 텐데?

규승은 두근거리고 있던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수화기를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불안한 표정으로 민주를 돌아보았다. 누나, 이런 장난치지 마. 규승은 약간 흥분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내뱉고는 민주를 남겨둔 채 밖으로 나갔다. 덜컹, 하고 문이 닫히자, 민주는 부스 안에 남아, 부스의 유리창 밖을 통해 극장으로 돌아가는 규승의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난 뒤, 규승은 라면을 두 개 끓여 민주의 방으로 들어왔다. 아침의 일은 읹은 듯 밝은 표정이었다. 상 위에 냄비를 올려 놓고, 김이 솟는 라면을 두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았다.

민주는 규승을 바라보며 고민한 끝에, 다시 물어보았다. 규승아, 전화 다시 해볼까? 민주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오자, 젓가락질에 열심이던 규승의 손이 멈추었다. 야, 맛있겠다, 하던 나지막한 읊조림도 멈췄다. 하지만 규승은, 뒤틀린 분위기가 싫은지 멋적게 웃으며 하던 일을 마저 다 하고, 자신의 그릇에 담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민주를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먹어 봐, 잘 익었다.

민주도 이내 천천히 그릇을 끌어와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방안에는 라면을 먹는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규승은, 그릇을 비우며 상황이 지나치게 사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라면을 먹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전연 들리지 않았고, 그래서 마치 영화의 음향 효과같다는 생각을 했다.

규승은 자신이 끓인 라면을 먹고 있는 민주를 바라보다, 누나, 하고 민주를 불러 보았다. 민주는 입으로 가져가려던 라면을 그릇에 내려놓고, 규승을 마주 보았다. 규승은 말을 하기가 어려운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이윽고 목을 울려 말했다. 전화, 해볼까?

응, 해 봐. 같이 나가자. 민주는 규승보다 먼저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규승은 자신이, 다시금 전화를 해 볼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딸칵. 여보세요?

공중전화의 수화기 저쪽 편에서는, 들은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규승은 전화를 받은 상대가 연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지만, 조심스레 물었다. 김연진 씨 댁인가요? 쓸데없는, 정중한 말투.

네, 그런데요. 저어, 바꿔 주실 수 있습니까? 고등학교 때 친구입니다. 제가 김연진인데요, 누구시죠? 저어, 연규승입니다. 규승은 떨고 있었다. 처음 술을 마셨을 때의 기분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고, 침착하게 목소리를 내는 일조차 힘들었다. 민주가 그런 규승을 말없이 바라보며 심호흡했다.

아, 규승이. 너 오랜만이다. 웬일이야, 나한테 전화를 하고? 응, 그냥, 잘 지내는지 궁금했어……. 규승의 어투에는, 이미 규승이 없었다. 민주가 규승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하지만 규승은, 곁에 민주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니?, 전화기 속에선 아침에 들었던 연진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동안, 전화선을 통해 어색한 침묵이 교환되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 규승아, 너 삐삐 있어? 내가 삐삐 칠 테니까 그때 전화해. 그 전엔 전화하지 마.

전화 속 연진의 목소리는 조용조용했다. 규승은, 으응, 하고 장황한 말투로 호출기 번호를 불러주었고, 연진은 안녕, 하고 짧게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규승은 오랫동안 그 뚜, 뚜, 하는 신호음을 듣고 있었다.

민주는 규승의 왼쪽 어깨에 손을 얹고는 엷은 미소를 비춰주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할 말을 잊게 하는 그러한 종류의 미소였다.

난 누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누나 얘기 들려 줄 거 없어? 규승이 묻자 민주는 머뭇거렸다. 내 얘기? 민주는 바닥을 쓸며 굽혔던 허리를 곧게 펴고는 조그맣게 말했다. 별로 해 줄 말이 없는데…….

규승은 민주한테로 와서는 약간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다. 누나, 누나 가족들을 얘기해 줘. 누나 가족들, 누나 닮았다면, 모두 좋은 사람일 거야. 민주는 빗자루를 든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생각하더니, 이내 천천히 대답했다. 우리 가족들…….

가족이란 민주에게 있어서는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 망각의 강 너머의 공간 같았다. 민주에게 있어 가족은 흐릿한 기억속에만 존재했다. 민주는 여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텐 어린 남동생이 있어. 지금…… 중학교 1학년인가? 아마, 올해 입학했었을 거야. 그 위로, 내 바로 밑 동생이 여자앤데, 걔는 나보다도 공부를 못하는데, 마음씨는 착해서. 상고 다니면서 취업 준비해. 난 지금 이렇게 살고, 그래.

민주는 잠시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규승은 궁금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민주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내 남자 동생. 걔가 그렇게 똑똑해. 한글도 4살인가 5살인가에 다 배웠구, 국민학교 때엔 전교 1등도 여러 번 하더라구. 나랑 내 바로 밑 동생은 엄마를 닮았는가 본데, 걘 남자애라고 아빠를 닮았나 봐.

누나 아빠 엄마는 뭐 하시는데? 민주와 규승은 청소를 하다 말고 객석의 의자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민주는,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행복한 얼굴이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를 남에게 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우리 아빠는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난 아빠하고 별로 안 친해서, 정작 장례식 때에, 다들 곡을 하고 울고 그랬는데, 나, 하나도 눈물이 안 났어. 다들 그렇게 시끄러울 때, 혼자 내 방으로 와서 내 동생 침대에 앉았어―내 동생하고 나하고는, 방을 같이 쓰는데, 침대는 내 동생 거야―. 그리고 앉아 있으려니까,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울었어. 마치 모든 걸 빼앗겼다는 듯 울었어.

그리고 허공에다 대고, 있는 욕 없는 욕 다 했었던 것 같아. 그렇게 막 소릴 지르고 있는데, 방문이 덜컥 열리면서, 엄마가 들어왔어. 엄마를 보고 내가 일어서니까, 엄마는 갑자기 내 뺨을 때렸어. 조용히 하라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엄마가, 아량이 없다거나, 못되었다는 건 아니야. 지금 내 남동생 학비를 벌려고, 일주일의 반은 파출부를 나가고, 나머지 반은 노점상을 해. 그렇게 번 돈으로, 내 동생 학원 보낸다.

내가 집 나와서 여기 있는 거, 오히려 울 엄마는 좋아해. 돈 좀 덜 나간다고. 그렇다고 내가, 엄마를 미워한다거나 그러진 않아. 오히려, 여기 도망쳐 와 있는 내가 아쉬울 뿐야.

도망치긴 누가 도망쳤다 그래……. 약간은 미안한 기색이 도는 목소리로 규승은 말했다. 그리고 일어서서는 쓸다 만 바닥을 어색하게 큰 몸짓으로 쓸어내다가, 아직 앉아 있는 민주에게 조금 크다 싶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누나, 그런 얘기하게 시켜서. 그러자 민주는 힘은 없지만 맑게 웃으며 괜찮아, 라고 대답했다. 쓸쓸한 민주의 얼굴에는 아직, 처음의 행복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 규승의 호출기가 울렸다. 규승이 모르는 전화 번호였다. 민주는 말없이 규승을 바라보았다. 규승은 하던 일을 대충 마무리 짓고 극장을 나와, 공중 전화 박스로 향했다. 음성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였다.

차례로 번호를 눌렀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규승은 남의 눈을 의식하듯 침착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어떤 내용일까, 언제 어디로 전화하라는 뜻일까, 혹시 만나자고 한다면, 그리고, 이건 어디의 전화 번호일까, 처음 보는 번호인데.

한 개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메세지 청취는 1번……. 규승은 조심스레 1번을 눌렀다. 잠시 후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건 연진의 목소리가 아니라,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고등학교 동창인 창욱의 목소리였다. 어, 규승아, 우리 3학년 때 같은 반이던 호철이가 어제 죽었다. 오늘 5시까지는 여기 있을 거니까, 자세한 건 여기 번호 찍을 테니까 전화 주고…… 한강 성모 병원 영안실이란다. 지금 말이 잘 안 나오니까…… 삐삐 받으면 빨리 연락 주라.

너무나도 차분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끝없는 우울을 전하듯 부보를 전했다. 규승은 전화를 끊고는 잠시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기대가 빗나갔다는 허탈감과 자의식이 주는 수치심을 넘어서는, 실존의 허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규승은 입을 꼭 다물고, 호출기를 꺼내 창욱이 준 번호를 보며 수화기를 들었다. 잠시 후, 수화기 반대편에서 창욱의 목소리가 흘렀다.

응, 규승이냐? 그래, 창욱아. 규승은 호철이를 생각해 냈다. 공부를 잘했고 유머 감각도 있었으며, 깨끗한 얼굴에 옷도 좋은 것을 입고 다녔다. 아버지는 어딘가 큰 병원의 과장쯤 되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대학 교수였다.

호철은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했다. 규승은 그것이 호철에게 어울리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호철은 소위 말하는 상류층의 참한 엘리트 자제였다. 대학에 가서도 무언가 큰 일을 할거라고 생각을 했고, 첫 3개월 동안 서로 연락이 닿을 때 까진 그랬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어. 그때도 좀 이상했었는데…… 좀 더 많이 얘기할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 창욱은 진심으로 우울해 하고 있었다. 어땠었는데, 호철이가?

글쎄, 너무 필요 이상으로 말이나 몸짓이나, 과장한다 고나 할까. 조금 튄다 싶을 정도로 웃고 마시고 그러더라고. 원래 걔가 좀 차분한 애였잖냐? 그런데 그 날은 그렇더라고……. 그러다가 어제, 술 마시고 올림픽 대로에서 사고가 났대나 봐.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8이라던가…….

좀 자세히 얘기해 봐. 규승은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창욱은 침울하게 대답했다. 원래 걔가 진짜 친한 친구라든가 그런 게 없었잖아. 아까 어머님하고 통화하는데, 유서에다가 ‘죽음이 가장 확실한 의사 소통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썼다더라.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

창욱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다시 호출기가 울렸다. 연진의 번호였다. 규승은 갑자기 심한 두통을 느꼈다. 규승은 호출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머리 뒤쪽을 주물렀다.

이번엔 연진의 전화번호와 메세지 있음이었다. 규승은 갑자기 머리 쪽으로 피가 몰리며 두통이 생기는 걸 느꼈다. 호출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그 손으로 머리 뒤쪽을 주물렀다.

조문을 오겠느냐는 창욱의 말에 규승은 응, 갈게, 하고 말하려고 했지만 목이 울리지 않았다. 규승은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썩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규승은 말을 더듬으며 창욱에게 얘기했다. 어, 난 못 갈 것 같아, 요즘 바쁘거든.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순간의 감정일지도 모를 기분 탓에 동창이 죽은 자리에 모습을 나타내질 않다니. 규승은 자신이 속이 좁은 놈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호출기 번호를 차례로 눌렀다. 이윽고 연진의 차가운 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규승은 그 목소리를 듣고는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규승은 장기 보존을 하려다 말고 천천히 8번을 눌러 메시지를 삭제했다. 손가락을 버튼에 누른 채로, 차가운 전자음을 계속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하는 것을 그만 두고 극장으로 돌아왔다.

전화, 했어? 민주는 언뜻 무심해 보이는 표정으로 물었다.

규승은 가볍게, 그러나 무겁게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무대 위에선 민식의 연출 하에 배우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규승은 입을 다물고는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민주는 천천히 규승 쪽으로 와서 조용히 물었다. 왜 안 했어?

규승은 딴 사람이었어, 하고 말하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서는 무대 뒤쪽으로 향했다. 민주는 그런 규승을 뒤에서 잠자코 보다가, 그 뒤를 빠른 걸음으로 쫓았다. 규승은 민주가 쫓아오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곧바로 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바닥에 쓰러져서 누웠다. 민주는 조심스레 규승의 방문을 열었다.

왜 그래, 규승아. 규승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서 민주 쪽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조금은 힘겨운 웃음을 지으며 민주에게 들어 올 거냐고 물었다. 민주는 아무 대답도 않고 방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 민주는,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규승의 옆에 마주 앉았다.

그렇게, 어설픈 침묵이 1분이 넘도록 계속되자 규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민주 누나, 오늘은 왜 그렇게 무뚝뚝해? 규승은 침묵을 깨뜨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민주에게 물었다. 민주는 느릿느릿한 규승의 말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말이 끝나고 나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겠지, 당연히, 너무도 당연히. 규승은 민주 대신 대답했다. 나 같은 쓰레기……. 규승의 힘없는 말을 들으며 민주는 몸을 일으켜 규승에게 다가가 규승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규승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아냐, 넌 소중해, 나한테 규승인 소중해.

……그래, 그건 어찌 됐든 괜찮아. 나를 죽이면 되니까. 내 존재 목적이 사라졌으니까, 날 폐기하면 되니까. 규승은 민주가 잡고 있던 손을 빼면서 고개를 가볍게, 그러나 무겁게 저었다.

누나, 내가 괴롭혔던 그앤, 나를 미워할까? 싫어할까? 미워할까? 싫어할까? 규승은 가벼운, 그러나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얘기했다. 그 동안 민주는 소리 없이, 움직임 없이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규승의 얘기가 끝나자, 다시 손을 가져가서 만지작거리며, 입을 다물고 고아하게 웃으며 규승을 보았다. 규승아, 넌 너 자체로 소중해. 그러니까 제발, ……있어 줘.

나는 그애가, 날 그애의 것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애가 앉아 있는 의자의 한쪽 다리가 되어도 좋아. 나는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되어, 나란 존재, 나란 개체를 없애 버리고, 나에 대한 자의식을 날려 버리고, 그저, 그애의 것, 그애의 소유물,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게라도 일단은 남고 싶었어. 떠나지 않고, 멈추지 않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이름을 잊고, 그렇게 남아서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더 나은지, 내 판단을 갖고 살고 싶지 않아,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아, 완전히, 정말 완벽하게 도망치고 싶었어……. 그래서, 난 나란 존재를 지워버리고,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고 싶었어. 하지만, 누나도 알겠지만,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규승은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쓰러진 채로 민주를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아직, 누나 같은 고마운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고 규승은 눈을 뜬 채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민주는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가서 문을 꼭 닫고 문고리의 버튼을 눌러 문을 잠궜다. 그리고 입고 있던 스웨터 자락을 천천히 걷어 올렸다. 규승은 어느 새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민주는 어느새 속옷만 입은 채로 규승에게 다가와 규승의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규승의 셔츠를 벗기면서, 규승의 눈 위에 입을 맞췄다. 민주의 가만히 열린 입술 밑으로 규승의 눈에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규승은 자신의 몸을 완전히 민주에게 맡기고 있었다. 아주 조용히 목소리를 억누른 채로, 벗기고, 만지고, 부비고, 서로 껴안는 간결한 행위의 간극에 규승은 민주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배설한 체액 같은 실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뜨겁고, 그것만이 그 순간의 자신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자신의 호흡을 도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긴 밤은 지나갔다.

연극이 끝나자 사람들은 어느새 모두들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고, 텅 빈 객석과 조명이 꺼진 채 수명이 다 되어 가는 형광등 불빛만 불안하게 흔들리며 그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그 순간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민주와 규승은 객석 복도 옆쪽에 서 있었다.

무슨 생각해?, 하고 민주가 묻자 규승은 잠자코 대답했다. 죽은 사람. 누구? 내 동창. 서울대 의대 다니던 놈인데, 차 타고 달리다가 어딘가에 뛰어들었나 봐. 자살이야? 그런가 봐. 아……, 나, 옛날에 만나던 사람도, 그렇게 죽었었는데.

규승은 순간, 전혀 다른 ‘민주 누나’를 보고 있었다. 민주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아련함이 어린 눈을 하고 있었다. 민주는 떨면서 말했다. 사람은, 문득 너무 쉽게, 그렇게 사라져 버려, 그리고 잊혀지고……. 어쩜 좋아, 지금까지 난 그 사람을 잊고 있었어. 민주의 감정이 고조된 모든 표정은 보는 사람에게 할 말을 잊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규승은 조용히 민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앞으로 커서도 서로를 기억할 수 있을까? 나, 그 사람 만날 때는 행복했어. 외롭지 않았어―물론 규승아, 너랑 있을 때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사람, 어느 날 갑자기, 안녕이라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트럭이랑 부딪쳤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 깨끗하게 그 자리에서 죽었겠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거야.

그 이후 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그 사람과 있을 때 하던 모든 것들…… 모든 순간의 행복을 재생하고 싶었어. 오토바이 뒤에 올라서, 그 사람이 행복하냐고 물으면 난, 세상에서 우리가 제일 행복한 사람일 거야, 하고 소리질렀어.

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어. 나는 그 사람들을 안아주려고 했지만, 다들 내 굴레를 부담스러워했어. 예전의 그 사람하고는, 나, 짧은 키스에도 서로 느껴지는 게 있었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 그렇지 않았는데, 그래서 모두 다 잊었는데……. 난 지금까지, 왜 사람을 만났는지 잊고 있었는데…… 너와 있으니까, 그때의 행복, 조금씩 찾아드는 것 같아. 그리고, 그제서야 나, 그 고마운 사람이 생각난 거야…….

나는, 누군가에 잊혀진다는 게, 두려워.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만큼…… 그 잊혀지는 마음은, 안타까울 거야. 나는 잊혀지고 싶지 않아. 규승아, 나, 기억해 줄 거야?

나, 정말 행복해지고 싶었어. 가끔씩 꿈에서 그 사람이 나타나서, 이젠 행복해? 외롭지 않아? 하고 물을 때가 있어. 지금 나, 자신있게 대답해 주고 싶어. 이젠 행복해, 정말 행복해, 하고.

규승은 말없이 민주의 양손을 잡고, 그리고 입술을 맞대었다. 긴 키스 도중에 규승은, 누나, 잊지 않을게, 하고 끊임없이 얘기했다.

하지만 행복이란, 시간처럼 어느새 왔다가 어느새 사라지는 줄 모른다. 그 긴 키스를 하던 민주와 규승도, 이윽고 그 극장을 떠나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극장처럼, 흩어지는 담배 연기처럼, 세월처럼……. 그렇게 사라지고는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민주는 집으로, 규승은 학교로 돌아갔고, 최소한 그 전처럼 외로워하지 않았다.

몇 년 후 여름이 막 끝나갈 무렵 규승은 서울에 있는 조그만 레스토랑에서 민주를 만난 적이 있었다. 민주는 규승이 만든 영화 팜플렛을 들고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모델로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조그만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와 만나 아기자기하게 살았고 그런 생활의 활력이 그 시절의 그녀를 여전히 아름답게 한 모양이었다.

어때, 지금 결혼은 했어?

응. 누나 남편만큼 소박하고, 참 편한 여자야. 옛날의 그녀―김연진―하고 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평범한 여자.

너랑은 안 맞는 거 아니야?

아,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뭐.

잘 됐네.

참, 그때 얘길 들려줬어.

그때? 언제?

우리가 같이 잤던 때.

훗. 그래서, 어땠어?

어땠냐고 물어 보며 웃던데?

민주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살며시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담백했어, 그때는.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세상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저물어 가는 석양과 교감 중이었다.

규승아, 지금은 숨쉴 수 있니?

좀 가쁘지만, 괜찮아.

잘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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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

<sam>

라이터 리 2007. 12. 19. 02:35

sam

나는 안다, 사람들은 모두 이야기를 원했다. 그리고 샘 샌들러의 현기증 이는 사랑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새뮤얼 '디지' 샌들러의 사랑 The Love of Samuel 'Dizzy' Sandler.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샘 샌들러에 관한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문장은커녕 단어 하나를 발음하기도 힘겹던 어린 시절, 실패하기 위한 연애와 곽란을 위한 음주를 오가다 소년은 간혹 여행을 했다. 타이 캇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왜소한 동양인이 무던히 죽어간 강철 다리 위를 낡은 열차가 흉조처럼 고성을 내며 종단했고, 나는 그때 아마 관광을 하던 새뮤얼 샌들러를 만났을 것이다. 그는 진녹색 티셔츠를 입고 갈색 눈동자를 빛내서 나무 같았다. 나는 그가 만든 흐릿한 그늘 옆에 앉아, 나도 암녹과 진녹과 연갈색이 섞인 옷을 입고 세상 바깥에서 위장하겠지, 씁쓸해 했다.

아니면, 그는 내가 깜빡한 패션하우스의 디자이너였는지도 모른다. 마크, 존, 미우치아와 도나텔로를 더불어 마티니를 마시며 테일러링과 디테일, 소재 선택에 대해 논하고 스스로의 핏을 훈련했던 지도 모른다. 그는 괴려한 위치에 트임을 넣고 의기양양해 하는, 독특한 분별을 가진 장난기 어린 크리에이터일 것이다. 혹은 그는 밀라노나 뉴욕의 런웨이를 장식하는 6피트5인치의 키에 체지방률 3%와 잘 조각난 치근을 자랑하는, 미스터 케이트 모스였을 수도 있다. 아마도 양성애자인 그는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8등신 미녀와 함께 레드 카펫을 밟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건, 나는 그의 이름만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내 입속 언저리에 가시지 않는 모래먼지처럼 머물며 천장과 벽에 미세한 통증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뱉어내거나 삼키지 않고 혀 위에 오랫동안 머물게 했다. The Love of Samuel 'Dizzy' Sandler, 연신 발음하며 나는 그를 추억하려 무던 애썼다.

그래서 나는 정오의 도심에서, 오심에 그저 힘이 겨웠다.

초여름의 밤에 그녀가 왔는 모양이다. 금요일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수연이었고, 그래서 물안개(水煙)마냥 한없이 가볍고 또 모호했다. 가끔 나는 그녀를 부르기 전에 그만 그녀의 이름을 잊고 멍하니 그녀의 어깨 너머 시선만 부수었다. 하여, 그때 그녀는 가끔 은영이거나 세희였던가. 수연은 내가 모르던 사이 내 사위의 문을 젖히고 시나브로 가까이 왔다. 방에는 그녀를 사소하게 감싸던 후각의 소립자가 떠다녔지만, 그녀의 향수병은 지금 여기 없었다.

내가 아파하던 시간, 그래서 잠들어 사경을 헤매던 그때 그녀는 커튼 옷 입고 춤추며 돌아드는 햇살먼지 같아서 조용했다. 나를 보았을까, 어쨌든 내가 여기 바스러져 있다는 걸 알았는 모양이지. 의약품들의 화학작용이 끝나갈 즈음에야 이윽고 내가 깨났고, 해서 아픔을 참고 앉아 멍하니 빈 가슴만 바투 안으로 끌어 담은 그 때에 그녀는 내게 일별 않고 내 방을 다시 나서 산책이라도 나간듯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본다. 울라울라 울라쑝, 못 말리는 짱구 하나가 샐쭉 찡그린다. 입 안 가득 피 냄새가 배어 있고, 한쪽 아래턱은 부풀어 올라 길게 멍이 가 있다. 파랗고 차가워서 시체 같다. 입을 벌려보려 했지만 번개처럼 지나가는 통증에 입안을 확인하는 것을 그만둔다. 거울 속 내 어깨너머 이부자리는 빠져나간 자리만 그대로 동그마하니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휴지를 뽑아 침을 묻혀 입가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닦아내고 기지개 켜는데 마침 문소리가 났다. 돌아보는 나를 그녀는 토끼 눈을 하고 보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애꿎은 제 바른쪽 턱을 쓸어보았다.

그녀의 제 3대구치들은 종합병원서 전문의의 외과수술에 의해 제거되었는데, 그것을 위해 그녀는 하루 동안 입원했다고 했다. 입원은 했는데, 모조리 뽑았지만 하나도 안 아팠어. 그녀는 내게 그리 거짓말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동네에서 제일 크다는 치과의 말쑥한 치위생사와 치과의사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 말까지 믿었다. 실은 믿고 싶었다. 그러나 제 3대구치가 세 개나 남은 나는, 많이 아팠다.

"그래서 먹을 수 있을까? 죽 사왔는데."

그녀는 내 쪽으로 다가와 부은 턱에 가만히 손끝을 대보더니 이제야 미안한 기색이었다.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고 연신 강조했던 그녀는, 통각이 돌아올 즈음 수화기 너머로 내가 비명을 지르자 그럴 리가 없다며 짐짓 의아해했다.

그녀는 이내 살풋 웃더니 내 부은 바른쪽 아래턱에 스치듯 입을 맞췄다. 얼굴이 두 배가 되었어, 귀엽네. 그녀는 내 낭패감 멀리서 그저 즐길 거리 하나를 찾은 듯 내 서랍에서 사진기를 꺼내 내 부스스한 모습에 대고 셔터를 눌렀다. 나는 바른손으로 경통을 감싸며 되도 않는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배고후다, 양 머으러먼 밥 머어야 돼.

그녀가 사온 죽을 마이크로웨이브에 넣었다 꺼내 나눠먹으며 나는 그제 시간이 여덟 시가 다 되었음을 알았다. 한 영화사에서 보내온 기자 시사회 초청장에 적힌 시각은 여덟시 십오 분이었다. 지금 채비하고 나간다고 해도 영화는 중간부터나 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장에게는 점심을 먹은 뒤 치과 진료를 하고 이 영화를 보고 기사를 쓰겠노라 해둔 참이었다. 기사는 써야 되잖아? 지나가는 걱정으로 그녀가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 여와가 보오 힢긴 했는데, 이던 당태도 나가기는 돔 그더탆아."

"(사이) '그 여와', 봐야 되는 거잖아."

"그 여와, 왜?"

검정색 블라우스를 입은 수연은 말없이 입을 오물거렸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죽은 방금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 같아 입에 넣어도 이물감에 몸서리가 났다. 혀로 물에 녹은 쌀을 으깨 목구멍으로 넘기면 그간 고여 있던 핏덩이가 같이 넘어가며 콧구멍으로 피 냄새를 냈다.

죽을 다 먹을 때까지 침묵하던 그녀는, 아직 다 비우지 못한 나를 식탁에 남겨두고 오디오를 만져 음악을 틀고 내 침대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그녀는 항상 침대 머리맡의 오른편에 앉았다. 더블사이즈의 매트리스 위에는 내가 빠져나온 모양 그대로의 이불이 있었고, 머리맡에는 베개가 둘 누웠다. 침대의 오른편엔 작은 서랍장과 램프를 두었고, 그것이 그녀의 자리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서랍 속에 그녀는 남기고갈 물건들을 넣었고, 램프 아래는 그녀의 책이나 화장품들이 간혹 자리했다.

나는 그릇들을 치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녀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오디오에서 흐르는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 소리를 업고 부엌으로 오더니 선반에서 마시다 만 잭 다니엘을 꺼내 버번 콕 두 잔을 만들었다. 약봉투를 뜯던 나는 삼일간은 술이나 담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더운 날에는 데킬라가 마시고 싶은데."

그녀는 소리 없이 웃었고, 나는 그녀의 치아를 보았다. 교정을 해서 고르고 하얘서 입 안에서 녹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예뻐하던 이빨들.

나와 그녀는 잔을 비우고 침대에 누워 콜트레인의 <I'm old fashioned>를 다 들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잠이 들었던가. 나는 잠깐 일어나 이를 닦고 세수를 했고, 그녀도 어느새 깨어나 샤워를 했다. CD플레이어는 멈춘 지 오래였고, 그사이 날짜가 바뀌었다.

그리고 간혹 다시 잠들었다.

그녀가 램프에 불을 켰을 때는 아직 새벽이었다.

그녀는 잭 다니엘 몇 방울을 내 오른 뺨에 따르고 그것에 입 맞추어 나를 깨웠다.

"제민, 얘기해 봐."

그녀의 단단한 목소리에도 나는 재우쳐 잠에서 깨지 못했고, 온 몸의 신경은 통제력을 잃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무슨 소리야?, 하고 반문했지만 발음을 위한 기관들은 내 의지를 거슬렀다.

"얘기해 봐. (사이) 그 여자랑 언제부터 만난 거야? 그래 놓고 나랑 오늘 그 영화를 보러 가려고 했던 거야? 얘기해 봐."

그녀는 무거운 눈으로 나에게 그리 물어왔다. 어두웠고,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절한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수연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났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에 관해 그녀가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일까. 나는 수면의 미혹에서 좀체 깨나지 않았다. 턱이 욱신거렸다.

"그냥 쉬재 때문에 만난 여와사 흐도두서야."

"그래서 몇 번이나 잔 거야?"

"(사이) 여와판이 원래 화루계잖아. 그던 애들 원래 감독이랑도 자고 배우랑도 자고 투자자랑도 자고, 내히면 기자드이랑도 자고, 기하 등등. (사이) 어써다 엎지른 일이야."

"제민, 너는 날 배신했어.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누워 있으니까 안 된다, 참아지지가 않아."

그녀의 문장은 화를 내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했다. 속옷차림의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 옆에 섰다. 창밖 멀리 도시의 조명이 파랗고 또 빨갛게 그녀의 피부에 와서 스며들었다.

그녀는 세계적인 패션하우스의 한국지사 홍보팀에서 일하는 이십대 후반의 매력이 넘치는 여자였다. 부유하고 온건한 집에서 자라서 사랑받는 법을 알았고, 그래서 누구 보다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그녀와 나는 작년 말엽 내 잡지와 그녀의 회사가 함께 진행한 화보 촬영 현장에서 마주쳤다. 연애의 시작이 좋았다. 그녀와 나는 가끔 삼청동이나 청담동을 거닐었고, 두어 달이 지나 호텔에 갔다. 이윽고 그녀가 내 어머니의 집에 들렀고, 나도 그녀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순천을 다녀왔다. 안국동에서 한복집을 한다는 이모 댁에 얹혀살고 있었던 그녀는 내 방 열쇠를 얻었다. 그렇게 또 다섯 달이 지났다.

나는 잠자코 있다가 부엌에서 위스키 온더락을 두 잔 만들었다. 몇 걸음을 떼는 동안 날이 밝을 듯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말들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내 몸을 가누지 못해서였다. 나는 연거푸 속수무책이었다.

그녀는 그사이 커튼 너머를 가만히 봤다.

"……그제 너 집에 없을 때 여기 왔었어. 보려고 한 건 아닌데, 컴퓨터 쓰다가 네 이메일을 읽었어. 어쩌다 한 번 만난 사람? (사이) 거짓말."

비난하는 그녀가 도리어 미안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접속을 떠올리며 나는 말없이 있었다. 내가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은 사실이었고, 내 메일박스에 화산재처럼 쌓인 그녀와의 서신들은 그때의 정황들을 고백하고 있었다. 이 일이 우리의 사랑을 위협하는 정당한 단초가 되는 일이었을까? 나는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물음에 답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지금은 아무 것도 묻지 말아줘,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 그렇게도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감싼 공감각의 소립자들은 나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술잔을 비운 우리는 그냥 누워 잠들기로 했다. 그녀는 내 쪽으로 돌아누워 내 왼쪽 뺨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나와 만나며 그녀는 언제나 옳았다. 나는 그녀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오른쪽 턱이 너무나 아팠다.

토요일이었고, 아침이 유달리 빨리 찾아왔다. 그녀가 내 방에 오는 날들은 늘……늘 밤이 짧았다.

겨울철에 온 그녀는 물안개였다. 우리는 번갈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고, 그녀가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그녀는 자신의 물건들을 굳이 챙겨가지 않았다. 나는 서서 멀거니 침대에 남겨진 그녀의 자리를 보았다. 나의 자리, 그녀의 자리. 내 방은 지능범의 참혹한 범죄현장처럼 살풍경했다. 내게 유리한 증거는 깨끗이 소멸된 듯했다. 나는 낯붉히며 그 나뉨을 생각했다.

아직 먹먹한 바른쪽 턱을 갸우뚱하는 나는 울먹이듯 목소리를 두어 번 내고 문밖을 나왔다. 문을 단속하는 내 손이 문고리를 자꾸 더듬었다.

하여, 사랑니 잃고 약은 썼다.

나는 그녀가 떠날 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시간동안 샘 샌들러를 아냐고 묻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아침의 음식점은 어디 절간 같았다. 앉아 죽을 먹는 나는 그대로 죽을까 했다. 저쪽에는 나처럼 얼굴 한쪽이 부은 여자가 민소매 셔츠를 입고 식사 중이었다. 나는 여전히 음식을 혀로 으깨 목구멍으로 넘겼다. 피 냄새가 났다. 나는 내 혀를 녹여 배 속으로 넣는 기분에 소스라쳤다.

나는 사무실에서 커피는 콜롬비아 산이 최고지만, 가격 대비 성능으로는 캄보디아 제품도 나쁘지 않다고 적었다. 비슷하게 스페인 가죽옷을 사지 못한다면 파키스탄 제품을 사는 것도 좋다고 했다. 내 사유의 빈곤함이 애석해 나는 그만 책상에 팔을 포개고 얼굴을 묻었다.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던 무렵,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와 인도와 파키스탄을 돌며 나는 샘 샌들러와 같은 지도를 그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지나던 편집장이 책상에 엎드려 있던 나를 두드렸다. 나는 엎드린 채로 고개만 돌리고 덤덤하게 피곤하다고 했다.

"어제 영화는 보러 갔어?"

나는 발표하는 학생처럼 손을 들고 어제 밤 수연과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술을 마셨죠. 사랑니 뽑고 술을 마시니까 확 가대요. 나는 간혹 수연에 관해 썼고, 두어 번인가 같이 술자리를 같이해 그도 그녀를 알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태도를 바꾸어 그럼 집에서 쉬고 내일이나 모레쯤 보지 그랬냐 했다. 예민한 그는 가끔 성마르게 굴었지만, 근본적으로 섬세한 손을 가진 남자였다.

"이유가 뭔데?"

"제가…… 다른 여자랑 잤어요. 그걸 알았죠."

나는 대답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것을 허물로 삼지 않을 만한 사람이었다.

"누군데? 심각한 사이야?"

"그, 영화 프로듀서 만났다고 했잖아요. 이나용이라고……. 그냥 한 번 어쩌다, 그런 거예요."

"그런 걸 걔가 이해 못할 것도 아니고…… 됐어. 여자는 많잖아. 그게 우리 식이고."

그는 그저 그렇게 말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한동안 계속 엎드려 있었고, 그래서 그도 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 그는 그런 종류의 말을 입 밖에 낸 것을 후회하고 있는 듯했다. 만약 어제의 일이 실연의 징후였다면, 실연이라는 것은 내가 수연을 잃은 것이지 여자를 잃은 것이 아님을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보다요, 형 혹시 새뮤얼 샌들러라고 알아요?"

"새뮤얼 샌들러? 글쎄, 처음 들어보는데. 새뮤얼 잭슨하고 애덤 샌들러는 아는데."

책상 너머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편집장은 인터넷의 검색창에 새뮤얼 샌들러를 입력하는 듯했다. 편집장은 미미미미 하는 단조로운 음성으로 세상에 하고 많은 새뮤얼 샌들러들을 읊어주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샘 샌들러가 있었고, 헐리웃의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만지는 샘도 있었다. 호주의 출판사에도 샘 샌들러가 있었다.

"음, 그 사람도 아닌 것 같아요. 새뮤얼 '디지' 샌들러에요."

두어 사람에 대해 더 얘기해 주던 편집장은 스스로도 실이 없던 듯 실없는 소리를 한다고 핀잔했다.

"어쨌든 그래서, 어제 못 갔어요. 같이 가기로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걸 아는데 갈 수 없었던 거죠."

"그럴 바에 다른 사람한테 맡길 걸. 지면도 빵꾸나고."

"지면은 빵꾸 안 내요. '독점' 보도자료를 받았거든요. 운우지정이 있었는데 그 정도는 있어야 했겠죠. 영화도 뭐, 시사회 또 있잖아요. 보면 되죠."

자리에 바로 앉아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의 왼쪽으로 태웠다. 편집장도 담배를 물었고 사무실은 금세 매캐했다. 몸살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참지 못하고 재떨이를 끌어 비벼 껐지만 연기가 도망쳐 나왔다.

"그래도 그 기사는 네가 쓰지 마라. 걔가 네가 것까지 쓴 거 보면 기분이 별로지 않겠냐. 오늘은 점심이나 먹고 집에 가고."

나는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식사를 하면 이를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름은 이나용이었는데, 항렬자가 하필이면 '용'이라 했다. 남자에게는 무난했겠지만, 그녀의 사촌 자매 중에는 이미용 같은 우스운 이름도 있었다. 그녀는 용 용(龍) 대신 연꽃 용(蓉)을 써서 아름다운 연꽃(娜蓉)이란 뜻을 썼다. 나용은 내가 모르던 사이 시나브로 가까이 왔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그녀가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나는 수연을 만나고 있어서 그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무어, 수연의 비난이 옳았다. 나와 프로듀서는 그냥 한 번 만난 사이가 아니었다.

이나용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렸던 봄 모교 사회학과의 총회에서였다. 나보다 두 살이 어린 그녀는 석사과정을 밟는 조교였고, 갓 제대한 나는 그녀의 수업을 들었다. 술자리에 두어 번 합석하여 우리는 눈길을 교환했고 이윽고 함께 국가대표 축구팀을 구경하러 다녔다.

그녀는 마르크스와 앵겔스와 그람시를 가르치는 일을 도우며 "be the reds" 티셔츠를 민소매로 수선해 입었고, 나는 나이키에서 황선홍의 이름이 마킹된 저지를 샀다. 우리는 똑같이 민족주의에 취해 불콰한 얼굴이 되어 연신 거리로 나가 멋쩍은 구호들을 외치다 서로를 안고 입을 맞추는 일들이 생겼다. 그때 나는 우리가 지금처럼 서로의 삶을 단 수초도 상상하기 힘들 줄, 빻은 밀 알갱이만큼도 짐작이나 했던가. 그토록 우리는 새빨갰다.

국가대표 축구팀이 객쩍은 패배를 당하던 저녁 우리는 광화문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에 내려 또 술을 마셨다. 칵테일과 과일을 넣은 소주와 찹쌀로 빚은 막걸리까지 마신 뒤 우리는 비틀거리며 근처의 락스 냄새나는 모텔 로비를 전전했지만 방을 구할 수 없었다. 지하철역을 두 개나 지나쳐서야 우리는 값비싼 호텔에 방이 생겼다는 얘길 들었다. 우리 둘 다 그런 건축물의 내부를 구경한 것이 처음이었다.

처음 보는 방에는 방금 나눈 사랑의 냄새가 넘쳐 메스꺼웠다. 거리에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군중들이 클랙슨을 울렸다.

그녀는 그때 갓 커버를 교체한 침대에 걸터앉아 팔짱을 끼고 건너편의 무언가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녀와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번갈아 보고 의아했다.

"왜 그런 눈이야?"

그녀는 잠시 후에야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흘겨봤다고?"

나는 그녀의 곁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혀를 교환하며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서로의 손길은 기각과 유효의 긴장을 낳았다. 옷을 벗었고 다리가 다리 사이에서 꿈틀거렸다. 서로의 몸이 변화하는 속성에 스스로 균열을 만들던 그때, 그러나 그녀는 왜인지 자신을 고정시키는 데에 급급했다.

건조했다. 그녀는 젖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몸에서 사회적 거리를 만들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그녀의 잦던 숨소리가 잦아들었고, 나는 손을 내 배 위에 포개고 순간 멍해졌다.

나용은 왜 나와 이 방에 접속했을까. 왜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을 썼고 하이에크는 신자유주의자가 되었을까. 나는 취해 어지러운 마음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 밤 동안 우리는 몇 번 동안 또 입을 맞추고 서로를 만졌지만 우리는 아마도 신호를 교환하지 못했다.

여름이 지나고 사람들이 축구에 대해 잊어버리던 시간동안 나는 그녀의 도움으로 학위를 땄고, 그녀는 스스로 그리 했다. 2년이 흘렀지만 나는 그래서 총각(bachelor)이었고, 그녀는 명수(master)가 되었다. 내가 언론사 몇 군데의 입사시험에 떨어지면서 그녀와 나는 틀어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박사학위를 미국에서 할 거라 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가 교수가 될 것이며, 그래서 나도 학위를 따 교수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 순간 나는 우리의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늦은 밤 문득이라는 까닭과 모양으로 서로를 만나던 두 사람이었지만, 그 어렴풋하고 거대한 제안을 듣는 순간이 모든 연애담의 끝이 되었다.

그녀는 뉴욕에 있는 한동안도 내게 주기적으로 전화해 주었다. 이윽고 그 주기가 흐트러졌고, 가끔은 전화 대신 이메일을 보냈다. 일 년이 지나 나는 제법 명망 있는 잡지사에 취업했고, 계절이 지나 여름이 되었을 때 그녀의 소식이 멎었다. 능숙하게 시차를 계산하던 수많던 새벽, 각고의 시도 끝에 그녀로부터 학교 친구들과 플로리다로 바캉스를 갔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대답을 해야 했을까. '플로리다는 재밌어?' 아니면 '어떻게 말없이 그럴 수 있어?' 혹은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고민을 광고하기 위한 문구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조건반사적이고 우연적인 선택지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내 마음과 내 마음을 드러내는 일과 그 마음을 보답 받아야 한다는 삼중고를 거쳐, 결국 차마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이 나의 고뇌를 삭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침묵은 그녀에게 비명보다 가일층 시끄러웠다.

"내가 왜 침묵하는지 알고 있겠지, 내가 얼마나 유감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유약한지도 알겠지, 내가 감추는 것이 보이지, 내가 네게 말하지 않는 것의 형식과 내용을 너는 분명 캐치하겠지."

내게 그러나, 그녀가 미국의 대학원에 다니거나 플로리다의 클럽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도무지 어떤 의미였던가. 그녀 역시 한국의 수도에서 유폐된 삶을 사는 남자의 삶에서 일반적 의미를 도출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 뒤 가끔 전화나 서신을 교환했지만, 우리의 말들은 서로에게 투사될 수도 없었고 그래서 서로에게 회수될 수도 없어서, 주식시장의 불발된 매매주문이었다.

그녀가, 영화의 프로듀서가 되어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잡지사에서 글나부랭이들을 적었다. 그녀의 영화사로부터 보도자료와 시사회 티켓이 날아왔고, 나는 영화사에 전화해 프로듀서와 인터뷰하고 싶다는 말로 연락처를 훔쳤다. 매일매일 날콩 같던 날들에, 나는 그걸 으깨 비릿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녀에게 새빨간 편지를 보냈다.

네가 많이 보고 싶었다. 너도 내가 보고 싶었으면 좋겠다. 그 시절에 내가 틀리지 않았고,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내가 틀린 게 아니라고 믿겠다.

그녀는 금세 회신했고, 우리는 만날 약속을 했다. 나는 밀레니엄 플라자 탑 클라우드에서, 하냥, 기다렸다.

그녀는 23분 정도 늦게 나타났다. 나는 그 23분 동안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그녀에게 전화할지 고민했다. 그녀는 약속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과 서울의 운전 방법이 달라 고생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와 함께 작업한 배우나 감독과 어딘가에서 사랑을 나누다 늦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내가 기다리는 것이 나의 첫정 이나용이 아니라, 단지 취재원 이나용이었다면 나는 그런 식으로 기다리지 않았다. 취재원 이나용을 기다리는 것은 순번표를 뽑고 은행창구 앞에 앉아 발을 구르며 구시렁거리는 일과 비슷했을 것이다. 인간관계를 둘로 나눈다면, 그것은 기다려 본 일이 있는 사람과 기다릴 일이 없는 사람이며, 그 기다림에서 서로가 가진 권력의 불균형이 표시되곤 했다. 나는 수연에게 미안했다. 이나용과 즐겨 쓰던 표현대로, 어쩌면 나는 그녀의 잉여를 착취해 왔던가.

짧은 머리에 조금 살이 오른 듯한 그녀는 내 앞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냈다.

"널 위해 준비한 보도자료야. 너희 잡지에만 독점적으로 실을 수 있게 감독이 허락해줬어. DVD에 들어가는 디렉터 커멘터리 비슷한 거지."

우리는 국세청을 나와 삼청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고, 그녀의 차를 타고 남산 하얏트로 옮겨 클럽 라운지에서 진저에일을 마셨다. 소주 한 잔에 눈빛이 흐려지던 그녀에게 이제 술은 하나의 기호식품일 뿐이었다. 같은 까닭으로 나는 그녀에게 그저 한 명의 인터뷰어일 터였다. 그러나 그녀가 우리가 옛 연인으로서 만난다는 사실을 지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누드모델이 화가 앞에서 초연한 것과 같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완전히 자연스럽고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과거를 은폐하려 들거나 그 의미를 과잉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가 그저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던 사람임을 전제했다.

"영화가 좋아졌다거나 하는 건 아니야. 나 그 감독이랑 주욱 사귀고 있거든. 뉴욕에서 영화 공부하던 남잔데, 거기서 어쩌다 만났어. 줄이 닿아서 그냥 그렇게 됐지."

"교수는 어떻게 된 거고?"

"교수는 무슨. 내 팔자에 없었다."

"그럼 지금도 계속 연애중이야?"

"말하자면 그렇지. 근데 그 사람이 프로덕션 들어가더니 여배우를 끼고 살더라고. 그 바닥이 좀 지저분해."

나용은 짐짓 분연하게 말했다.

"나도 만나는 사람 있어."

"그래, 그럴 것 같았어. 네가 명색이 세계적인 스타일 매거진 에디터인데. 근데 그거 여자친구가 골라준 거지?"

나용은 하나도 웃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녀가 가리킨 목걸이는 정말 수연이 두 달 전 선물한 것이었다.

"넌 목이 가늘고 길어서 항상 보면 불안해. 하지만 넌 죽어도 목걸이 같은 건 하지 않았지. 하고 있는 걸 보면 여자친구 작품이야. 나도 항상 목걸이를 선물해 주고 싶었는데."

우리는 그날 밤 남산을 내려가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호텔의 6층에 투숙했다. 번갈아 샤워를 했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그날 밤 알맞게 젖었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호텔방을 나오며 나는 별 것 아니라고, 어른이 된 두 사람이 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연거푸 수연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인사를 했다. 그녀는 그때에 행복해 했다. 사무실로 바로 출근했다.

"옛날에 너는 내 제페토 같았어. 난 피노키오였고."

그녀는 체크아웃하고 헤어지며 끝인사를 대신해 정확한 발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사지가 절단되어도 제페토가 있어 살아남는 무적 인조인간 피노키오는 학교에 가서 왕따를 당하고 거짓말을 해서 코가 길어지다가, 어느새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배운 뒤 온전한 발음 기관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그때 우리는 저마다 제페토고, 우리는 저마다 피노키오였어. 그런데 난 이제 사람이 되었단다. 난 이제 네가 필요 없어.

나는 남산을 내려오며, 나도 마법에 걸려 사람이 되고 싶어 견디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나온 시각은 오후 2시였다. 치통을 겪는 나는 패잔병처럼 늘어져 걸었다. 그때 어쩌면 그가 내 앞을 사선으로 긋고 가로 막을지도 몰랐다. 하이, 헬로, 안녕, 아이 앰 샌들러, 새뮤얼 샌들러, 아웃 오브 노웨어.

해가 수직으로 빛나면 그림자가 짧고 진했다. 정오, 모든 것이 양달에 드러나는 시각.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에 대한 투쟁의 옳고 그름이 명백해지려는 그 시각이 사람들은 문득 두려웠던가. 정오를 재우쳐 일련의 시각들을 허비해야 할 때 세상이 비로소 가장 더웁다 했다. 오후 2시는 그래서 항상 모든 승패가 유보되는 절정의 순간이었고, 호되게 나른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좀 어지러웠다.

사람들은 모두 이야기를 하기를……듣기를 원했고, 폭염의 시각에는 결정적인 참과 거짓마저 문제되지 않았다. 따라서 종종 거짓말마저 위대해졌다. 언중……청중의 그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소망에 요청하는 것이 언어의 책무임에 사무쳐, 사람들은 이야기를 전해왔고, 또 글을 적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야기를 원했다는 사실은, 거짓들이 오후 2시에 발화된다는 것을 거칠게 설명하고 있을 뿐, 온난화된 지구, 그 수많은 깊은 낮잠을 정당화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샘 샌들러는, 그의 짧고 행복해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샘 '디지' 샌들러, 그의 삶과 사랑을.

가던 길에 들린 커피숍 안쪽 진열대에 수종의 라이프스타일 잡지들이 꽂혀 있었다. 책들은 사이사이 먼지처럼 쌓여 있었다.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지젤 번천과 장쯔이가 각자의 몸매를 드러내며 허공에 도발적인 눈빛을 던졌다. 나는 피트가 웃는 잡지를 집어 들고 훑었다. 잡지의 어디에도 샘 샌들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수연이 만든 화보가 있었고, 모델들은 건방진 표정으로 키스하고 있기에, 나는, 그 자리서 웃었다.

더디게, 산책하듯 나는 몸을 끌었다. 도시의 광경은 집중력을 거부했다. 나는 순간순간 그것과 접속했고 또 단절했다. 백화점에 부속된 멀티플렉스의 매표소에는 사람들의 말에는 접속사와 감탄사와 의태어가 가득했다. 나는 말소리와 이어졌고 또 끊어졌다. 무심결에 무인발권기에서 티켓을 샀다. 티켓에 적힌 시각은 1시간 뒤를 가리켰다.

오늘 내가 오후 2시에 사무실을 나서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를 보았을까. 커피숍을 나와 백화점 지하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영화를 보았을까. 혹시 이 영화를 이미 봤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을까. 내가 이 멀티플렉스에 도착하기 전에 매진이 되어있었다면 나는 이 영화 대신 다른 영화를 보았겠지, 과연.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백화점 지하에 앉아 남은 커피를 마시던 나는,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고르는 일에서 편집장의 말이 너무나 온당함에 그만 아득했다. 이 영화의 상영이 끝나면 다음 영화가 상영될 것이고, 요컨대 모든 사랑 역시 다음 사랑의 옛사랑일 뿐이다. 그녀는 반드시 그녀가 아니므로, 그녀는 언제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앞을 지나는 쇼핑객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어찌 이 사람을 사랑했던 것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서로의 성별이 다름을 사랑했고, 수치심을 사랑했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 둘 사이의 우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 것인가아요.

영화는 우연은 늘 강조했다. 사람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질문했지만, 대답은 언제나 우연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사랑 이야기가 주는 행복은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노력의 결과와 아무 연관이 없었다. 어떤 연애가 시작되느냐는 항상 사람들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에 기대어 있었다. 따라서 우연과 필연은 동등한 것이었다. 우연은 필연적이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원했고, 과거의 사랑 이야기들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의거해 내려오는 필연이었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점해, 그 순간 누군가가 가장 예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일들에 관해, 어른의 사랑에서는 저 낭만적인 우연을 칭송했다.

우리가 다루는 패션브랜드는 40종이 넘었고, 그 중에서 화보촬영을 진행하는 브랜드는 한 달에 서넛, 그리고 마침 그때 그 촬영을 진행한 것이 수연일 확률, 그리고 반대로 수연의 회사에서 하고 많은 남성패션지 중에 우리 잡지를 선택하고 그 촬영의 진행자가 내가 될 확률을 곱하고, 두 사람이 눈길을 교환하여 마침내 사랑에 빠지는 그 낭만적인 우연. 그것이 우리 사랑의 본질이 아니며, 나는 그녀와 그녀의 뒤편에 숨겨져 있는 심장과 떠도는 그림자 같은 옛날 까지 사랑한다고 나직이 말하고 싶었다.

나는 우리 둘 사이의 우연까지 사랑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내가 쇼핑객을 붙잡고 그녀를 사랑하노라 아무리 외쳐도 내 사랑은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그 행복이 많이 슬펐다고 흐느껴도 그것들은 하나도 슬프지 않다. 난 안락의자에 누운 최면에 걸린 말로도 내 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정신분석가들은 꿈속의 임의적인 사물들을 얽어 이야기할 때 항상 딜레마에 빠졌다. 우연한 꿈들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꿈 이면의 모든 필연적인 의미를 완전히 폭로해야 했지만, 그러나 꿈속의 이야기는 이미 은폐하거나 기각하고 싶은 욕망이 검열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기를……듣기를 원했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도리어 그것의 참과 거짓이 문제되지 않았다. 많은 거짓말들이 오갔지만, 사람들은 어차피 하고……듣고 싶은 것만을 취했고, 그래서 모든 이야기는 은폐와 검열, 조작과 혐의의 흔적만으로 남았다.

"나, 빠리 본사로 발령받았어. 좋은 기회야. 1년은 있을 거야."

수연이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고향인 순천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나는 방에 아둔하게 앉아 TV속에 전사되는 사하라 사막을 응시했다. 오기가 나던 나는 여름마다 열대야의 날수를 갱신하는 서울이 그냥 사막이나 되었으면 했다. 한심한 오만이었다. 죽을 먹기 싫어 저녁 식사를 걸렀다. 수연은 머리부터 용건을 말하더니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결정될 수 있는 일이야?"

"미안해. 사실 한 달쯤 전부터 얘기는 있었어. 고민했는데."

수연은 수화기 너머 입술을 다문 채로 창밖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나보다 사랑스러웠고, 그래서 그녀는 나보다 영리한 여자였다. 사랑니 넷을 단번에 뽑아버렸고 더는 아프지 않는 그런 여자였다. 그에 반해 나에게는 지금도 약에 취해 몸살을 앓는 나는 아직 아파할 사랑니가 세 개나 남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나보다 똑똑하다는 사실까지도 나보다 먼저 알아챘다.

"네게 다른 여자가 생겼으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어제 이 문제를 상의하고 싶었는데 말이 안 나왔어."

"다른 여자 생긴 거 아니야."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고 대답했다.

"어찌 됐건. ……1년이면 서로 정리하는데 적당한 시간 아닐까?"

나는 TV를 끄고 수화기의 희뿌연 잡음에 집중하려 애썼다. 방은 적막하고 어두웠다. 귀가 아렸고 턱이 아팠다.

새뮤얼 샌들러.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말했다.

"응?"

그녀의 음조는 반음 정도 올라가 있었다.

"혹시 알고 있어? 새뮤얼 샌들러. 새뮤얼 '디지' 샌들러."

"몰라. 누군데?"

실은, 나도 몰라. 나는 그렇게 대답해야 했다. 하지만 목울대가 먹먹했다. 아니면 나는 무슨 거짓말이라도 지어내야 했겠다. 빠리에 살고 있는, 내가 아는 아주 멋진 남자야. 너에게는 나의 다음 사람이지. 너는 그를 금방 알아 볼 거야. 그는 빠리 어디에나 있어. 나는 그렇게라도 둘러댔어야 했다. 그러나 잠자코 있던 난 인사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 행간이 길어 전화기가 뜨거웠다. 나는 그것을 앞에 던져두었다. 시간이 지나도 벨은 다시 울리지 않았다.

찰나의 모래가 방 안의 공기에 섞였다. TV속 사막에서 흘러든 것일까. 그럴 리 없었다. 열린 창밖에는 낮동안 한껏 열팽창했던 도시가 수축하고 있었다. 창밖에 사막이 있었을까. 그럴 리 없었다. 모래알갱이가 입안에 들러붙어 까끌했다. 그것들이 바쁘게 발음기관을 생채기를 냈다. 나는 그러나 어쨌건, 그의 이름만을 기억할 수 있었다. 이를 닦고 몇 번을 헹구어도 사라지지 않는 모래먼지처럼 그는 내 혀끝에 머물렀다. The Love of Samuel 'Dizzy' Sandler, 연신 중얼거리며 나는 그를 소환하려 무던 애썼다.

나는 몸을 숙여 침묵하는 전화기를 집었다. 사위가 어두워진 저녁에 나는 회색을 보았다. 나는 전화기의 전화번호부를 검색해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새뮤얼 샌들러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는 내가 새뮤얼 샌들러라는 사람의 소식을 묻는 것에 몹시 낯설어했다. 새뮤얼 샌들러를 아세요? 라고 묻자 어머니는 지금 뭐라는 거냐? 했다. 그리고 나는 청맹과니처럼 전화를 끊었다. 새뮤얼 샌들러를 알 거라고 기대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러나 연달아 모른다고만 했다.

모르게 있다 시계를 보니 여덟시가 넘었다. 나는 야수처럼 배가 고팠다. 아무 것도 씹을 수 없는 나는 그러나 우유나 마셨다. 술을 마셔 볼까 했지만 몸이 좋지 않아 그만두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어색했다. 스무 통이 넘는 전화를 걸었지만, 그 동안 단 한 명도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웹 써핑을 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어젯밤과는 다르게 시간은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샘, 내 말 들려요? 샘, 내가 시를 읽어줄까요? 아, 샘, 유어 스피킹 잉글리쉬, 메이 아이 리드 유 섬 포엄즈? 샘, 우드 유 해브 어 서퍼 위드 미 섬 데이? 샘, 플리즈 웨이크 미 업 넥스트 모닝 얼리. 샘, 헬프 미. 샘, 헬프 미, 아이 돈 원 투……. 혼자 말하던 나는 픽 웃다가 전화기를 들어 수연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울리기도 전에 전화기를 닫았다. 나는 멍했다.

이나용에게 전화를 건 것은 여덟 시 삼십 분쯤이었다.

"오늘 시사회는 분위기가 너무 괜찮아. 영화 봤어? 어제 너 오는 거 못 본 것 같아."

그녀의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잠시 톡 톡 하고 전화기가 불안한 소리를 냈다. 이내 어디론가 차음막 안에 들어온 듯 나용의 또렷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응, 나는 가만히 들었다.

"뭐? 봤다고?"

나는 무엇인가에 찔린 듯 꿈틀하여 이나용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분명 입가에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멀리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여자친구와 헤어졌어. 경황이 없었다."

이나용은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와 계속 쿡 웃었다. 그녀는 큼, 큼 하고 목소리를 고르더니 내 쪽으로 입술을 돌렸다. 설마 나 때문인 건 아니지? 그래, 너 때문인 건 아니야. 나는 나용에게도 샘 샌들러에 대해 물었다.

"새뮤얼 샌들러? 글쎄, 잘 모르겠는데. 뉴요커야?"

그녀의 영어 발음이 낯설었다.

"아니, 빠리에 사는 영국계 독일인이야."

나는 무심결에 그렇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새어들었고 나용은 거기에 무어라 답했다. 수초가 지난 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글쎄, 난 잘 모르는 사람인데. 지금 여기 분위기가 오래 통화하기가 그렇다. 나중에 연락해."

전화기에 통화 시각이 깜빡거렸다. 배터리가 떨어져 나는 전화기의 전원을 내렸다. 눈을 감았다. 내가 높게 느껴졌다. 나는 누웠다. 그곳은 가끔 수연의 자리였다. 남겨진 베개에서 그녀의 디올 향수 냄새가 났다. 나는 호흡의 박자를 바꿨지만 코에 묻은 냄새는 그대로였다. 베개를 뽑아 멀리 던졌다. 향은 방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누웠다. 밖에서 술에 취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말소리에는 내 이름과 수연의 이름과 샘의 이름이 섞여 있었다. 나는 언젠가 우리 잡지에 내가 적은 불면증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 기억해냈다. 왼팔이 풀어진다, 오른팔이 풀어진다, 왼다리가 풀어진다, 오른다리가 풀어진다, 그것이 다시 이어진다, 이어진다, 이어진다. 나는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오디오를 켰다. CD플레이어는 존 콜트레인이 들어 있었다. CD를 갈았다. 헤뜨게 아무 것을 집은 것이 슈베르트 따위였다. 절반을 잃는 숙명을 타고났던 교향곡의 첫머리를 작게 들었다. 이제는 없는 사랑니에 대해 생각했다. 눈이 가려진 나는 조각난 그것이 스테인리스 쟁반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을 달라고 해서 챙겨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시가 되었다.

샘. 들려요? 샘.

대답이 없었다.

심장이 뛰었다. 나는 가슴 위에 손을 포개고 심장이 뛰는 것을 들었다. 슈베르트의 CD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1악장의 거창한 서두가 다섯 번 연주되었다. 자장가를 잘못 골랐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엎드려서 베갯잇에 눈과 귀와 코를 처박았다.

일어나 다시 이를 닦았다. 입을 벌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검정색 실밥이 있었고 핏물이 간간히 배었다. 마지막으로 본 수연이 입었던 옷이 검정색 블라우스였던가. 새벽 3시의 변기 위에서 나는 왼쪽 입으로 담배를 피웠다.

슈베르트를 들으며 내가 글을 쓴 패션잡지의 과월호들을 읽었다. 수연의 화보를 넘겼다. 새벽 4시에도 도로에도 차들은 달렸다. 탁자 위에는 일 년 치의 잡지들이 쌓였다. 나는 거기서 많이도 썼다. 막막한 일이었다.

밖이 환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일어났다. 하늘빛이 달라졌다. 도시는 빛의 습격을 당했고 신문배달과 거리 청소가 진행되었다. 가로등이 꺼졌다. 내 방 창문으로 일출 시각의 거리를 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침대 바른편 그녀의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샘, 샘. 새뮤얼. 새뮤얼 '디지' 샌들러가 방구석 저편으로 접속해 왔다.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요, 새뮤얼 샌들러. 당신은 모든 걸 전할 수 있잖아요. 그는 그제야 대답했다. 그는 계절이 바뀌기 전에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했다.

어느 날 나용은 출판사로 마지막 무료 시사회라며 티켓을 잔뜩 보내왔다. 그동안 수연으로부터의 연락이 없었다.

"실연의 아픔을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잊도록 해."

나용은 티켓을 담은 봉투 안에 정성 없는 글씨로 그렇게 카드를 적어 놓았다. 편집장은 그날 저녁 스케쥴을 연기하고 일동 회식을 겸해 영화를 보러가자고 했다. 동료들은 환영했지만, 객쩍은 일이었다.

영화는 평범했다. 감독이 웃으며 인사했고 몇몇 사람들이 있으나마나한 질문을 했다. 상영관을 나설 때 나용이 내 쪽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나는 맥락 없이 손을 흔들었다. 극장의 좌석은 낡고 눅눅했고, 어둑해진 도시로 나온 패션 전문가들은 구찌 시계를 찬 손으로 부대찌개를 먹었다. 상처가 아문 나도 그때는 먹을 수 있었다. 싸구려 햄과 라면 사리가 성한 이빨들에 조각났다. 이윽고 일행은 배를 두드리면서도 맥주를 마시러 갔다. 나도 그것을 마셨다. 화요일이었고 술에 취하는 사람이 많았다.

"빠리 가 봤어요? 빠리. 가 보고 싶어요. 지금."

"갑자기 웬 빠리야."

적당히 붉어진 편집장이 나를 돌아보았다. 편집장은 소주도 아닌데 맥주를 삼키고 카아 했다.

"정말, 당장 가 버릴까."

지상 8층, 생경한 스카이라인 밖에는 한 무리의 새들이 잘 곳이 없는지 날개를 푸드덕했다. 전기조명이 하늘 위로 붉고 또 푸른빛을 염하며 점멸했다. 군데군데 이가 나간 네온 간판들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맥주잔을 부딪쳤다. 편집장은 멍하니 턱을 괴고 있는 내게 까딱 손짓을 했다. 말도 안 된다는 뜻이었을까. 그는 그러더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여름이 오고 있어서 속옷에 땀이 뱄고, 나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10월이 되면 모터쇼 하잖아요. 비엔날레도 하고. 패션잡지 기잔데 샹젤리제도 걸어야 되고."

사람들이 서둘러 잔들을 비웠다. 맥주는 걸레 냄새가 났고 뒷맛이 시큼했다.

"그럼 넌 비정규직이야. 원고료 말고는 못 준다. 우리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그래서 얼마나 있는 거야?"

"비자 받을 거예요. 1년은 있어야죠."

샘은 담배를 피우며 패션 매거진을 읽기 시작했다. 이윽고 커피를 마셨고, 잡지에 실린 바네사 빠라디의 가십 기사를 읽었을 것이다. 그는 그 대목에서 비죽 웃었다. 그는 이성애자였다. 빠리의 7월 평균 기온은 19℃로 쾌적했다. 꽃 없는 거리에 꽃향기가 돌았다. 리브고슈의 노천까페에 앉은 샘을 따라, 나는 빠리에 가면 나는 가을꽃을 살 것이다. 국립 도서관에서 불어를 익히고 씨네마떼끄에서 다신 보지 못할 영화들을 볼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빠리의 시가에서 나는 여전히 어지러울까. 빠리에는 최초의 백화점과 최초의 영화관이 있을 것이다. 나는 문득 설렜다. 설레고 아련한 일이었다.

수연은 다음 달 빠리 제 2구 오뻬라꼬미끄 앞에서 샘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빠리의 오후에, 샘으로부터 그녀의 소식을 전해들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시떼 섬에 갈 것이다. 노뜨흐담에서 기도를 하고 센을 가로지르는 서른 두개의 다리를 모두 밟을 것이다. 쇼팽과 짐 모리슨의 묘소에서 아침기도를 암송하며 산책할 것이다. 나는 불어를 말하며 굳이 모든 음절을 발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할 것이다. 재떨이가 크고 커피잔은 작고, 포도주가 물보다 많은 곳에서 나는 문득 행복할 것이다.

그제 촌스러운 머리에 투박한 자켓을 입은 나는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샘 샌들러, 대사관에서 두려움을 대신해 서류의 빈 칸을 채웠다. 국제공항의 라운지에서는 전 세계 백사십팔 개국의 언어로 된 티켓을 살 수 있었고, 그래서 세상 모든 이야기를 할……들을 수 있었다. 티켓에 적힌 우연한 도시는 그 다음 도시로 향했고, 여권에 적힌 도시의 이름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매번 항공기 창밖의 안개를 보았다. 겨울이 되면 안개가 심해질 것이고, 시떼 섬 주변의 물안개에서 나는 현기증 나는 새뮤얼 샌들러의 사랑 이야기를, 사랑을. 겨울에 와서 여름을 지나 다시 겨울에, 그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른 치열을 하염없이 보면서 그는. 새뮤얼 '디지' 샌들러는. 나는.

누가 서툰 솜씨로 맥주잔을 채웠다. 감았던 눈을 떴다. 사람들이 잔을 높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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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견·화>

라이터 리 2007. 12. 19. 02:35

두견․화

더러운 냄새가 난다. 사위가 적막하고 눈이 몹시 어두워서, 빛이 드는 틈이 가늘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저 불꽃이고, 미욱하게도, 어두운 방 가운데 빛을 모으는 한 점 같은 때, 별안간. 그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또 낯익어 이상하다.

“각 대원들은 구보로 접근하라, 선착대는 상황 파악하여 속보하고, 인명 구조와 연소 확대 저지에 만전을 기하라.”

엉덩이가 큰 소방차들은 좁은 골목길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수차례 이어지는 지령을 뇌까리며 나는 들것을 끼고 하릴없이 달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짙은 연기가 맥락 없이 삶의 부산함대로 어지러웠고, 세월을 종양처럼 달고 있는 과밀한 주택가 이면 도로를 소방관들은 랜턴을 끼고 뒤뚱거리며 습격했다.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구경꾼들이 많아졌고, 바닥에는 힘줄 선 팔뚝처럼 팽팽해진 수관이 낡은 주택의 지하로 가는 계단을 향해 어지럽도록 뻗어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 불길이 거세 탈 것을 다 태우지 못하고 검고 짙게 올라오던 연기는 진압이 시작되며 이내 허연 김으로 바뀌고 있었다. 여러 차례 새로운 방수를 개시하는 지령이 오가며 진압은 활기를 띄었고, 화점에 진입한 진압대는 초진을 보고했다.

이윽고 구조대원이 검게 그을린 몸뚱이 둘을 들쳐 메고 어기적거리며 지상으로 기어 나왔다. 선착했던 관할대의 구급대원들은 그것을 인수해 바닥에 모로 눕혀 생사를 확인하고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현장 활동 수칙에 따라 그들을 들것에 나눠담고 골목 바깥의 어둠을 향해 사라졌다.

삶과 죽음이 서로를 왕래하는 시시때때, 제 몸뚱이의 숙명까지 두려워 그것의 안팎이 교통한다는 사실을 뒤집고 싶은 찰나. 그 순간마다 나는 뜻하지 않았던 수많은 죽음들을 상상하곤 했다. 소실되는 삶들은 언제나 내 눈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소환되었던 이 도시의 모든 뜻하지 않는 많은 죽음의 현장을 빠르게 되짚곤 했고, 그럴 때면 나는 돌연 무언가에 눌려 내 속 어디선가 나는 철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아야 했다. 평안히 길을 건너던 소년을 과속하던 화물차가 횡으로 긋고 지나갔고, 오랜만의 재회를 기념하며 희로애락을 소통하던 친구들은 오해로 벼려진 칼날을 서로의 목에 꽂았다. 낙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던 아파트 발코니에는 비관을 비관하여 해를 따라 낙하하는 죽음이 있었고, 귀가한 아버지는 현관을 열고 공중에 떠 있는 아들의 비틀린 발과 길게 내뺀 혀와 목을 감은 제 목에 있었던 넥타이를 보고 답답에 겨워 셔츠의 단추를 뜯어내고 바닥으로 무너졌다. 나는 그때마다 그 죽음의 현장에 증인이 되어야 했다. 지령을 받고 구급차를 대고 그들을 실으며, 뛰지 않는 심장을 터뜨릴 듯 눌러댔지만 그것이 다시 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죽음이 확실한 그들에 대한 소생술은 대개는 수칙에 따른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힘없이 온갖 구멍이 열리는 사체, 귀신은 아마 아연하여 제 살던 몸을 싣고 가는 하얀 구급차 뒤꽁무니를 쫓다 살 곳이 없어 스스로 오열할지도 몰랐다. 불타 죽은 송장, 내장이 터진 송장, 온 피가 마른 송장, 사지를 배배 꼰 송장의 주인 노릇하던 귀신들은 서로를 위무하며 소방서에 사접해 맴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구조대원 하나가 축 늘어진 여자아이 하나를 업어들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 왔다. 아이의 얼굴은 그을려있었다. 아이의 눈꺼풀을 열고 아래턱 아래 굵은 핏줄에 손가락을 댈 때만 해도 습관이 된 단념이 앞섰으나, 아아, 아이의 맥이 잦아드나마 뛰고 있었다.

“살았어요, 아직 살았어요.”

나는 헤뜨게 소리치며 호흡을 확인했다. 가는 숨이 있었다. 조를 이룬 운전원과 나는 들것에 아이를 눕히고 차를 향해 뛰었다. 삶, 삶, 삶, 삶, 삶. 발길이 땅을 차는 소리가 그렇게 났다. 사소하고 우스운 소리였다.

아침에 대원들은 모여 전날의 사태를 복기했다. 진압 작전 상 딱히 문제될만한 것이 없었으나 사람이 둘 죽었다. 다세대 주택서도 흔치 않은 지하 2층에 살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연기고 늦게 피었고, 신고가 늦었다. 좁은 골목길 탓에 중형의 펌프차를 대지 못했지만, 주변 소화전의 점령도 원활했고 초진도 빨랐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소방서의 화재조사계와 경찰의 과학수사계에서는 액체 가연물을 이용한 우발적 방화가 화재의 원인이었으며, 대피할 수 있는 입구 주변에서 최초 발화하여 연소 확대된 것이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고 분석 결론지었다.

직접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남자는 질식과 화상 어느 쪽이 첫 번째 사인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녹았고, 여자는 방에 쓰러져 있어 질식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내가 이송한 여자아이는 살아남았지만, 상태가 나빴다. 얼굴과 팔 주변에 입은 상처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 한들, 기도에도 2도 가량의 화상이 입었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측은함이 들었으나, 곧 잊어야 했다. 잊지 않기에는 지워야 할 개별적인 소실 이편에 있던 삶의 내용들이 항상 무거웠다.

“그래 불은 왜 싸질렀대?”

늙은 부소장이 화재조사계의 김 주임에게 농치듯 묻자 김 주임은 쓰게 웃었다.

“신고한 윗집 사람이 돈 문제로 싸우는 소리가 났대요. 그 여자 죽은 방에 보험 증서 같은 게 여러 장 있고요. 불도 안 컸는데, 그 남자가 술꾼이었어요. 취해서 저질렀죠.”

늙은 진압대원 중 하나가 거들었다.

“그 집 문밖에 빈 소주병이 한 짝은 있대요. 찬 소주병이 뜨건 화염병이 된 게지.”

아침마다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며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는 삶의 경건함이 신께서는 고이 미쁘실까. 출근이 거의 끝나가는 아홉시, 도시의 통근로에서 나는 터덜터덜 집을 향했다.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 역시 축복이자 저주였다. 가까운 곳에 사는 소방관들은 출동 지령이 울린 뒤 제 집 주소를 환청으로 듣곤 했다. 불타 죽는 피붙이를 상상하며 얼굴이 굳다가, 재송되는 목적지가 제 사는 곳에서 먼 곳임을 재차 확인하며 안전장구를 챙겼다.

빈 집의 문을 따고 들어서는 일은 옛날 괴담에 나오는 망각의 강을 건너는 일과 비슷했다. 비번과 당번의 세계는 서로가 서로에 닿아 있지 않으며, 그것이 서로 만날 때란 곧 비상사태를 의미했다. 서로가 서로를 거꾸로 보는 너머의 세계를 나는 잘도 왔다, 갔다, 했다. 아직 어둡고, 그러나 또 밝은 그 시각에 아내는 집에 있다, 없다, 했다.

아내가 출근을 하지 않는 날 나는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고 몸을 씻은 뒤, 커튼을 드리운 방에서 짧거나 길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언제나 매초롬했다. 나는 서로 반대로 누워 성기를 애무하는 체위를 좋아했다. 아내는 때로 그것을 불편해했지만, 나만은 삽입 없이 절정에 이른 뒤 때 모르게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누워 가늘어서 핏줄이 도드라진 아내의 발등을 쓰다듬으면, 꼼지락대는 발가락 사이로 일렁이는 순간의 아른거림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내가 일을 나간 날에 나는 홀로 부엌에 앉아 아내가 출근하기 전 갖춰둔 식탁에 앉아 말없이 먹었다.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친 뒤에, 전날 불이 있는 날이면 꼭 챙겨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불길이 핥고 간, 타고 남는 것들의 냄새가 물에 녹아 하수구로 처박혔다. 그러나 아무리 문지르고 쓰릴 때까지 닦아내도 끝내 그것들은 늘 나를 감싸고 남았다. 내 몸속에 이미 타다 남을 것, 많은 것을 소실시키는 불의 뿌리가 웅크리고 있었고, 어쩌면, 내 몸이 하수구였다. 나는 김이 낀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를 짐짓 불온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많은 것들이 내 몸을 경계로 들어가고 나오면서 차면 또 비워서 있으면 또 없었다.

한심하리만치 지리멸렬한 시간들이 지나, 해가 떨어질 무렵 날이 맑으면 나는 밖에 나가 한 바퀴 돌아 달리곤 했다. 간혹 도로에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들이 지나다녔고 구급차들이 지나다녔고 구조공작차들이 지나다녔고, 그때마다 나는 익은 낯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지만, 갑부와 을부는 서로 만날 일이 없어서 그저 몸을 숨긴 사람처럼 그들에게 굳이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다.

짜게 젖은 몸으로 돌아온 저녁에 아내는 집에 와 있었다. 현관에는 아내가 출근할 때 신곤 하는 구두가 넘어져 있었고, 거실에 둔 오디오에서 아내가 즐겨듣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집안은 등을 밝히지 않고 어두웠다.

“왔어?”

인사를 묻고 스위치를 찾으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식탁의 모습이 뜻밖에도 화려했기에 나는, 짐짓 의아함에 몸을 멈췄다. 늘 보아오던 식탁 위에는 그러나 늘 보던 것과는 다르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처럼 촛불이 세 개 흔들리고 있었고, 꽃병이 서 있었고, 아직 마개를 열지 않는 술병과 목이 가늘고 머리가 큰 잔 두 개가 가지런했다. 주방에서 아내는 멋쩍게 웃으며 씻고 와요, 하고 인사했다. 나는 날짜를 헤아려보았다. 당-비-당-비 하며 일-삼-오-칠-구로 헤아려가는 나의 날짜 개념이 새삼 거북하고 생경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었고, 근래에 또 아무 일도 없는데 아내는 식탁을 꾸미고 헤헤 거렸다.

가볍게 세수를 할까 하다가, 전날의 매캐함이 자꾸 코끝에 걸려 다시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아내는 다가와 손을 잡고 식탁으로 이끌었다. 오랜 시간을 들였을 음식들이 정갈하게 향취를 피우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묻는 내게 아내는 웃으며, 고백을 할 것이 있노라 하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뭐뭐 산부인과 하고 적힌 봉투를 열며 나는 아찔했다.

“이제 아버지가 되는 걸 축하해.”

아내는 연신 웃으며, 제 몸에 생긴 일을 자랑하듯 가슴과 배를 내밀어보였다.

나는 가슴이 무척 뻐근해 왔다. 아내의 임신 사실이 적혀 있는 종이들을 읽으며 나는 아내를 향해 억지스럽게 기뻐하는 얼굴을 했다. 우리는 앉아 포도주를 한 잔씩 나눠먹었고, 우리 신분에 지나치게 좋은 음식들을 나누며 일곱 달 반 뒤 태어나게 된 아이에 대해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면 요 며칠 사이 돌연 속이 좋지 않다고 해 오던 아내의 말에 너무 무신경했던가 했지만, 그것은 모두 까닭이 있는 일이었다.

일 년여의 연애 뒤, 결혼하자마자 신혼 밤부터 아이를 갖자고 채근하던 아내를 나는 금전상의 이유로 설득하곤 했다. 우리는 내 뜻에 따라 꼬박꼬박 피임에 철저했다. 그러자 아내는,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기로 했던 것을 취소하고 한 달 만에 일자리를 구했다. 아내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내가 설득할 때 말했던 금액 얼마얼마를 모은 통장들을 내 앞에 제시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합의에 의해 피임을 중지했고, 삽입성교의 횟수를 늘렸다. 그리고 이윽고 아내는 임신했다. 결혼한 지 1년 반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과연, 누구의 씨앗을 품었다는 말인가?

아내를 만나고 연애를 시작할 무렵, 겨울을 앞두고 나는 수술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IMF시대에 이르러 출산과 관련된 나라의 정책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 당국은 여측이심을 드러내며 정관수술에 대한 의료보험 혜택을 중지했다. 해가 바뀌면 같은 수술에 열 배가 넘는 돈을 들여야 했고, 나는 이제껏 자녀를 둘 생각이 없었다. 나는 연금이 나오는 공무원이었고 무엇보다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재간도 자신도 의향도 없었다. 수술 후 이따금 하는 정기검사에서 정자는 검출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우스웁게 뿌듯했다. 나는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태교를 이유로 마시지 않은 포도주를 모두 비웠다. 아내가 잠든 뒤에 나는 침대를 빠져 나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웠다. 유독 연기를 힘껏 빨았다. 적막한 아파트촌의 풍광 가운데, 내 눈의 원근법이 닿지 않는 저쪽 맞은편 귀를 막으면 들려올 것 같은 온갖 비명과 죽을 때 나는 시큰하고 비릿한 냄새와 신조차 어쩌지 못할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을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며칠간 소방관들은 두 남녀가 죽고 한 아이가 중상을 입은 화재에 대한 기묘한 소문들을 인사 대신으로 주고받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객쩍고, 들어서 언짢은 종류의 이야기였다. 화마로 인해 살아남거나 죽은 사람들의 뒷모습 가운데에는 늘 불타 사라지는 지점이 있었고, 소방관들은 늘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되거나 끝나는 이야기에 무심한 말들로 분주했다. 방화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관계로, 이내 수칙에 따라 간부들을 중심으로 특별조사반이 구성되었다. 조사반은 현장 감식과 더불어 피해자들의 친인척 관계와 보험 관계 등을 조사했고, 살아남은 아이를 후원해줄 사람이 누군지를 파악에 나섰다.

죽은 조명관은 올해 나이 서른둘이었고, 거실 바닥에 누워 용융되고 있었다. 신참 구조대원 박은 그를 끌어내기 위해 팔을 잡았을 때, 살가죽이 힘없이 벗겨져 나갔고, 그래서 토악질을 할 뻔했다고 중얼거렸다. 감식에 따르면 그 곁에는 라이터에 쓰는 기름을 담는 플라스틱 통이 녹아 늘러 붙은 흔적이 있다고도 했고, 바닥에 점점 뿌려진 모양으로 탄 화흔은 즉 액체 가연물을 임의 분사한 뒤 착화, 연소된 것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죽은 이유화는 올해 나이 서른이었으며, 안방 침대에 상의를 기대 엎드린 채로 발견되었다. 구조대원 안이 발견 즉시 이유화를 업고 현장을 빠져나왔지만, 관할 구급대원 이에게 인계했을 때 이유화는 이미 맥박과 호흡이 정지되어 소생이 어려운 상태였다. 주요한 사인은 질식이었다.

신고자에 따르면 조명관과 이유화는 화재가 일어나기 30분전쯤, 돈 문제로 크게 다투었다고 했다.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흐느끼는 소리가 났고, 유리병 따위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으며, 곧이어 잠잠했다고 했다. 깨진 유리병은 집 현관 옆에 쌓인 숱한 소주병 가운데 한둘이었을 것이다. 특별조사팀과 경찰이 찍어온 다량의 사진 가운데, 이유화가 죽어있던 침대 근처에 널브러진 몇 장의 보험증서가 다툼의 원인에 대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구조대원 강이 구하고 내가 이송하여 목숨을 건진 정희정은 다섯 살 난 여자아이였다. 조사반과 경찰은 부부와 딸이라 생각한 정희정과 조명관의 성씨가 다름을 의아하게 여겨 조사한 바 정희정은 이유화의 딸이었고, 조명관은 이유화와 내연관계에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유화의 남편 오수호는 현재 이유화와 별거, 지방에 있는 창고 따위에서 잡역을 하는 자로, 경찰이 연락하자 그는 덤덤히 그러냐고 되묻더니 지금은 바쁘니 이틀 뒤에나 출두하겠노라 통보했다 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그렇소, 하고 담당 형사가 쏘아붙이듯 묻자, 그는 그저 딸이 살았으니 됐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이러이러한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자 아내는 오수호를 힐난했다.

“그럼 죽은 남자는 여자랑 무슨 관계야?”

“거기 대충 뭉개면서 같이 살았지.”

“그래도, 부인이 죽고 딸이 중태인데 가장이 책임이 없는 것 아냐? 아무리 다른 남자랑 살고 있었대도.”

“마누라가 딴 놈팽이와 배가 맞아 놀아났는데. 게다가 그 딸이란 아이도 정가인데, 남편은 오가야. 제 해가 아닌데 정이 있을 리 없지.”

나는 그리 말하고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나는 오수호가 죽은 이유화와 별거하며 사는 동안, 이유화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혹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별거했으리라 생각하는 쪽도 괜찮았다. 정희정은 아마 이유화의 전남편에게서 얻은 아이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몇 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남자를 셋이나 품었다는 뜻이 됐다. 오수호가 이유화와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내의 외도에도 이혼하지 않는 남편도 간혹 있으니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아내가 깎아주는 과일을 집어먹으며 스캔들과 사망사고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았고 스포츠뉴스와 아내가 즐겨보는 연속극까지 다 보았다. 때때로 거실 뒷벽 액자 옆에 걸어둔 시계가 뻐꾹 꾹꾸 하고 열 번 울고 열한 번도 울었다. 신혼 때 입사 동기 하나가 집들이 선물로 들고 온 제법 큰 시계였다. 아내는 연속극을 보다가, 아이가 생겼으니 이제 술 담배를 끊으라 했다.

“소방관이 연기를 마셔야 용감해지지.”

“자기가 무슨 소방관이야. 기껏해야 술 취한 아저씨들 깨워서 집에 보내는 것밖에 안 하면서.”

침실로 돌아와 등을 끄고 자리에 누웠으나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누운 아내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내 쪽을 향해 모로 누운 아내를 물끄러미 보다 문득 거칠게 깨워 삽입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소름끼쳤다. 나는 임신한지 두 달 반 되었다는 이 여자가 두 달 반 전 나눴을 익명의 성교에 대해 생각했다. 이틀에 한 번 지아비 없이 지낼 수 있는 하는 젊은 어른의 여자로서 능히 그럴 법하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내가 아내와 나눈 성교의 횟수를 헤아렸고, 아내가 누군가와 나눴을 성교의 횟수를 헤아렸다. 저급한 욕망의 크기는 헤아린 숫자만큼 자라났고, 나는 속옷 아래로 불거진 것을 만지작거리다 슬그머니 침실을 나와 발코니에 섰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일까 말까를 다섯 번 여섯 번 고민하다, 한 대를 다 피우고 다시 멍했다.

다음 날 아침 먼저 집을 나선 나는 그러나 소방서로 가지 않고 이십사 시간 불이 들어오던 근처 성인 오락실에서 릴 게임을 했다. 경험이 없어 지갑에 있던 돈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락실 문을 나서, 아내가 출근길로 삼지 않을 만한 곳을 골라 쏘다녔다. 아내에게는 오늘 휴무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다.

아내는 시내 백화점에 부속된 문화센터에서 동화구연을 가르치는 일로 돈을 벌었다. 중년의 주부들과 할머니들이 주로 그 강의를 들었다. 내가 들은 아내의 일상은 이랬다. 아내는 하루에 두어 번 있는 강의를 마치면 친한 수강생들과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떤 뒤 헤어져 층을 옮겨 백화점 스포츠센터에 있는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고, 지하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장을 봐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내의 마지막 강의가 끝날 시각을 헤아려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삼년쯤 전이었고, 그때 아내는 유치원 강사로 일했다. 한 줄 기차 두 줄 기차 하면 한 줄로 두 줄로 서서 배시시 웃는 꼬마들을 데리고 아내는 소방서로 견학을 왔고, 그때 신참이었던 나는 아이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주고 소화기 사용법을 가르친 뒤 소방차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침실 화장대에 있는 사진에서 나는 어린아이 둘을 양팔에 한쪽씩 안고 얼뜨게 웃었고, 아내는 다른 강사들과 반대편에 서서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다.

“파랑새 반 친구들, 소방관 아저씨 말 잘 들어야지. 안 그러면 잡아가신다.”

“잡아가지는 않아요. 못해요. 저희는 사법경찰권이 없습니다.”

그리 같잖은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아내는 그때 나를 보고 무안해 했다. 나는 아내의 무안함이 귀여웠다. 그러나 아내는 씩씩하게, 지지 않고 아이들에게 소방관의 무서움을 역설하며 줄을 세우는 일에 열심이었다. 소방관 아저씨한테 혼날래? 소방관 아저씨 무섭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구급대로 발령받았다. 발령 첫날 오전 열시 사십삼 분에 접수한 구급 요청에 대한 지령을 받고 첫 출동을 갔다. 지령실은 젊은 여성이 한 유치원에서 하혈한 뒤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 했다. 나는 아랫배를 감싸 쥐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아내를 상자 같은 구급차에 실어 인근 병원 응급실로 날랐다.

“소방관 아저씨가 잡으러 오셨네요. 내 말이 맞았네.”

아내는 식은땀을 흘리며 가누지 못하는 몸을 내게 의지했다. 의사도 아닌 바에 깊은 진단은커녕 어떻게 해야 응급 처치가 되는지 알 길이 없어 먹먹했다. 그저 나는 아내를 눕히고 땀을 닦아주었다. 생혈로 젖은 아래는 재간이 없어 그저 그 위에 가재만 덮었다. 이내 아내는 응급실에서 실신했고, 나는 어기적거리며 돌아와 구급차와 들것을 닦았다.

다음날 나는 퇴근하던 길 집으로 향하는 대신 아내가 입원한 병원의 입구서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처음으로 도맡아 도운 사람이어서, 스스로가 누군가의 생을 위해 노무할 수 있는 인간인가를 의심하던 자로서 도리어 마냥 고마웠던가. 아파하며 잡으러 오셨네 농치는 여자가 고마웠다. 나는 병원 입구에서 파는 무성의하게 만든 꽃다발이나마 사들고, 응급실을 들렀다가 아내가 입원한 병실을 찾았다. 아내는 그때 성기게 자라다 시드는 화분 같아서 쓸쓸해 보였다. 나는 말없이 인사하고 괜찮냐 몇 마디 묻고, 부끄러워 발길을 총총 돌렸다.

며칠 뒤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플 때 도와준 것도 고맙고 다음 날 찾아와준 것도 고마워서 보답을 하고 싶다고 했다. 비번 날 저녁 근처 일식집으로 약속을 잡고 나는 열없이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퇴근을 한 아침 가던 길에 한 옷가게를 개시해주었고, 단칸방에 홀로 있는 여러 시간 동안, 식사도 대충 챙기며 까닭 없이 들떴다.

“저, 약소하지만 받아주세요.”

“예?”

아내는 그때, 식사를 마칠 즈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하얗고 얇은 봉투였다. 편지라도 되나 싶어 열었더니 만 원짜리 서너 장인가가 들어있었다. 언젠가 선배 하나가 비슷한 일로 사례비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뇨, 이런 거 안 받습니다. 못 받게 되어 있어요.”

“비밀로 할게요. 신고 같은 거 안 할게요.”

애꿎은 봉투가 음식 위로 오가다 둘 사이의 중간께 놓였다. 아내는 봉투와 나를 번갈아 본 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보니 그때 아내는 새순이 돋는 화분 같았다. 나는 그 화분에게 물을 주고 햇볕을 쪼여주고 흙을 고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노라 들떠 얘기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얘기하고 싶은 것을 참은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참고자 했다.

“그 일을 얘기했어요. 원장 선생님도 그렇고, 부모님도 그러시고, 사례를 바라고 찾아온 거라고 하더군요. 가져오신 꽃다발은 방에 화병에 넣어두었어요. 수선화는 제가 좋아하는 꽃이에요.”

“사례를 하실 요량이시라면 꽃값보다는 많이 하셨어야죠.”

“그러게이에요. 생각보다 꽃이 많아서 놀랐어요. 그럼 돈을 더 넣어드릴까요?”

“일 없어요. 괜찮습니다. 혈혈단신이라 돈 많이 안 씁니다. 필요 없어서 안 받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럼 그날 왜 찾아오셨을까요?”

아내의 말에 나는 여짓거리다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웃고 말았다. 아내는 젓가락으로 밥알을 뒤지듯 작은 소리로 내게 자꾸만 왜 왔었느냐고 되물었다. 후일 나는 그것이, 사명감에 사무쳐 누군가의 생명소를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에 그만 좋았다고도 했고, 당신이 예쁘다고도 했다. 우리는 연애시절 참 자주 만났다.

수 년 후, 의처증에 빠진 소방관의 임신한 아내는 동화 구연 강의를 마치고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보냈다. 아내의 강의를 듣는 할머니 몇몇과 비빔밥을 먹었고, 운동을 빠진 대신 백화점에 딸린 멀티플렉스에서 혼자 앉아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에서 나와 장을 보았고,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소형 승용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비빔밥 대신 돈가스를 먹었고, 멀리 떨어진 좌석에서 영화 대신 아내를 보았다. 아내가 탄 승용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먼 길을 돌아 동네로 왔다.

전날 아내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신청해 살폈지만 특별히 반복되는 번호도 없었고, 지령실 직원에게 담배 두 갑을 사 주고 의심될만한 늦은 시각에 아내의 휴대전화에 대한 위치추적까지 해보았다. 아내는 그때 그저 집에서 연속극을 보고 있는 듯했다. 이미 그 남자와는 헤어진 뒤였을까? 결국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려 몰래 친자 확인이나 해야 할까? 나는 아내의 임신 경로를 상상하고 추적하는 동안, 아내에게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어 그 주도면밀함에 놀랐으므로, 내가 이토록 멋없게 뒤를 밟는 동안 증거를 포착할 수 없던 것도 그저 아내의 모든 주도면밀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했다.

이틀에 한 번은 여침에 자는 신세였지만, 가본 적 없는 찜질방에서 보낸 하룻밤은 고단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화재현장에서보다 나는 더 많은 땀을 흘렸다.

구름 낀 어느 아침 일찍, 오수호가 소방서를 방문했다.

그저 민원인 하나려니 했던 소방관들은 그가 죽어가는 딸의 의붓아버지이며 오쟁이 진 남편이란 사실을 알자 사뭇 눈빛을 흐렸다. 오수호는 하관이 빨고 깡마른 남자였다. 그는 화재조사계의 김 주임이 화재 경위를 설명하고 진압 활동 내용과 피해 상황, 그리고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는 동안 굽은 등으로 의자에 앉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따님 병원엔 들러 보셨습니까? 괜찮아요?”

“예, 괜찮답니다.”

나는 오수호에게 정희정을 구출한 대원의 이름 뭐뭐를 대며,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되도 않을 말을 늘어놓았다. 그는 처음으로 희미하게나마 웃었다. 오수호는 설명을 다 듣고 보험금을 탈 때 필요한 서류 몇 개를 떼고 돌아갔다. 김 주임은 널브러져 있던 보험증서의 보험금 수령자가 남편 오수호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날 간혹 불이 있었고, 그보다 자주 다치거나 죽어가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때마다 현장에 소환되어 모든 것을 지우는 사태를 지우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우리는 모두 사명만으로 일했다. 불을 잘 끄는 소방관이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고, 급자를 더 많이 살린 구급대원이 상을 받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이기심을 매만지는 방식으로서 그 모든 소실의 사태에 대응했다. 그것들의 소실에 가슴 아파 하며 일했다. 소실 저편에 뒤집히고 사라지는 것들을 연신 그리워하거나 혹 망각하여 살았다.

그날 새벽에는 어느 여관에서 한 남자가 실없는 목소리로 사람이 쓰러져 있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지령실은 상황을 이상히 여겨 경찰에 지원 요청을 했다. 여기 오번가 모텔 302혼데요, 제 애인, 아니, 아니, 웬 여자가 쓰러져서요, 숨을 안 쉬어요. 흑흑. 흐흑. 경찰과 함께 내가 방에 도착했을 때, 군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현관 앞에 망연히 주저앉았고, 여자는 욕실에서 발가벗은 채 형편없이 구겨져있었다. 외출혈이나 타박상 같은 외상은 없었으나 여자는 축 늘어져 의식이 없기에 확인하니 경동맥이 뛰지 않았고 동공이 열렸다. 사내는 그저 울먹이는 말로, 마디마디 끊는 말로 중얼거렸다.

“저 여자가 다른 남자랑 바람이 났다고요. 나는 그냥 화가 나서 한 번 밀쳤는데.”

나는 황급히 침대 시트 따위로 여자를 덮어 들것에 올릴 것도 없이 업어 나왔다. 안팎에서 생동감 없는 시큰한 냄새가 나 구토감이 치밀었다. 구급차 안에서 제세동기를 틀어 벗은 여자의 가슴에 대고 눌렀다. 여자는 입술이 파랬고 동승한 군복 사내는 입을 반쯤 벌리고 창밖만 보았다.

응급실에서 여자는 몇 번인가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바이탈 싸인 플랫, 보조하는 간호사가 제세동하는 의사에게 반복 보고했다. 이윽고 몇 번인가 간헐적으로 생명 징후가 보였지만 응급실의 당직 의사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학적으로 사망했습니다. 의사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동행한 경찰에게 넌지시 이르자 경찰은 군복을 입은 사내의 어깨를 잡고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찔렀다. 사내는 달리 저항하지 않았다.

경찰과 상황 정보를 교환하고, 지령실에 전화하여 동향을 보고한 뒤 나는 낯익은 응급실 당직 간호사에게 물어 정희정이라는 여자아이 환자가 어디 입원했느냐 물었다.

“그때 불나서 실려 온 여자애요? 화상 병동에 격리 입원해 있었어요. 오늘 걔 아빠가 와서 수술 날짜 바로 잡고 곧 수술한다던데요.”

“기대 안하고 물어봤는데 바로 답이 나오네. 관심이 좀 있었나 봐요?”

“응, 걔 입원하고 유명해요. 꽃 배달도 오고, 인형 같은 것도 오고, 유명해졌어요. 애 아버지가 보냈대나. 여전히 정신은 없죠. 어린앤데 안됐지.”

비번 날 뭐하세요? 서로 연민하듯 소방관들은 아침마다 헤어지는 인사를 대신해 서로 닿지 않는 삶들에 대해 상상해줄 것을 주문하듯 물어오곤 했다. 업무상 친교하는 자들의 비번 날 뭐하세요 하는 질문은 그러나 타인들의 당번 날 뭐하세요 하는 질문에 비해 더 노곤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물음이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돕는 시간은 서로의 밥벌이를 위한 시간들뿐이었고, 그래서 비번 날에는 대개, 결코, 서로를 위무할 수 없는 까닭에서였다. 소방관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 대개는 피로에 젖은 몸을 뉘어 한숨 자고 일어나기도 했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고, 운동을 하고 오기도 했다. 부업으로 장사를 하는 자들도 있었고,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었고, 사진을 찍으러 가거나 노래를 부르러 가는 소방관도 있었다. 늙은 부소장은 농사를 지었다. 사람이 꾸역꾸역 살아야지 그냥 살아지면 못써, 몸이 살아지면 곧장 사는 게 사라지는 거야. 나는 그의 말이 말장난치고는 제법 마뜩했고 그래서 그 말이 언제나 두려웠다.

며칠이 지났다. 어린 정희정은 수술을 받았고 후속 치료를 위해 계속 입원해 있었다. 보험금을 탄 오수호가 비용을 댔고, 저간의 사연이 지역 신문에 소개되면서 몇몇 단체에서도 성금을 걷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파출소 직원 하나가 우리도 인도적 차원에서 얼마간의 성금을 걷자고 했다. 며칠 안 걸려 얼마간의 돈이 모였고, 김 주임이 대표로 성금을 전달한다고 했다. 나는 김 주임에게 따라가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날 나는 아내와 약속하기를 함께 산부인과에 다녀온 뒤 아이가 쓸 침대를 사기로 한 터였다.

정희정이 입원한 병원은 소방서가 관할하는 지역에서 가장 큰 것이었고, 아내를 만났던 곳도 게였다. 아내에게 주려고 수선화를 만들던 꽃집에서 붓꽃을 넣어 화환을 만들었다. 아내를 위해서가 아닌 꽃을 사는 것도 처음이었고, 아내 말고 내가 이송했던 환자를 찾는 일도 처음이라 퍽 머쓱했다.

김 주임과 나는 북적이는 로비를 지나 곧장 입원 병동으로 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좀처럼 희미함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정희정을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이었다. 대신 나는 참으로 말랐던 오수호의 몸과 얼굴을 생각했다. 김 주임이 화재 사건을 묘사할 때 짓던 표정이 왜 그리 담담했는지, 비감이 넘쳐서 그것을 이기기 위해 짓던 표정이었는지가 궁금했다. 소방관들이 불구덩이가 좋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기기 위해 들어가 몸을 숨기듯 그도 비감이 싫어 그 안으로 들어가 마침내 담담한 표정을 지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희정은 네 명이 쓰는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어린 정희정은 기도 삽관하는 화상 치료를 받았고 이어 얼굴에 약간의 피부 이식수술도 했다. 이유화가 죽기 전에 어린 아이에게 물에 적신 담요를 덮어주었다고 들었다. 어린 정희정은 풀잎처럼 잠들어 있었다. 평온한 얼굴이었다. 링거를 꽂은 정희정 옆에는 오수호가 앉은 채로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었다. 여전히 말라서 복 없어 보이는 인상 그대로였다.

누구를 찾아오셨죠? 정희정과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 하나가 나를 살며시 보더니 물어왔다. 내가 정희정과 오수호의 이름을 대자 여자는 어이요, 희정 아버님, 하며 오수호를 깨웠다. 오수호는 깜빡 졸았던 듯 금세 잠에서 깨 네네 하고 주위를 살폈다. 여자가 우리 쪽을 가리켰다. 오수호는 나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무슨 일로…….”

“소방서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따님이 사고를 당했을 때 현장에 있었습니다.”

나는 김 주임 뒤에 서 있다가 가져간 꽃다발과 오렌지 주스 따위를 내려놓았다. 오수호는 일어나 번갈아 악수를 청했다. 그는 김 주임과 내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우신 분이 고맙게 또 찾아오시니 또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악수를 받으며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소방관 일을 하며 고맙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난감했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고 봉투를 건네며 조심스레 정희정의 상태를 묻자 오수호는 딸의 수술이 잘 끝났다고만 했다. 오수호는 엷게 웃으며, 죽은 이유화와 함께 들었던 보험이 많아 받은 돈도 많은데 그간 받은 성금도 너무 잘 썼노라 했다.

“사실 돈 문제는 그래서 어렵지가 않습니다. 주시는 것이야 늘상 고맙지만……. 저와 아내가 따로 살았던 게 돈을 더 악착같이 벌려고 그랬던 건데, 아내가 죽으며 남기고 간 돈으로 살자니 참……. 어려운 건 희정이가 많이 외롭진 않을까……, 어린 것이 어미도 없이. 그게 제일 걱정이지요.”

오수호는 내가 가져온 주스 따위를 냉장고에 넣고 대신 다른 음료를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다 마실 때까지 하염없이 정희정의 얼굴을 보았다. 오수호는 가만히 있다가, 예쁘지요? 하고 물었다.

“예. 예쁘네요. 봄에 피는 들꽃처럼 예쁘네요.”

김 주임과 오수호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는 동안, 나는 음료수 병을 비우고 손을 털어 일어났다. 오수호는 일어나는 내게 재차 악수를 청했다. 그는 이따금 웃어보였다. 그와 마주 눈인사하고 병실을 나서며 나는 다시 한 번 어린 것을 돌아보았다.

병실을 나서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 쪽을 찾아 걸었다. 내 뒤로 종종거리는 발소리가 나기에 나는 혹시 정희정이 깨나서 오는 것일까 하고 돌아보았다. 등 뒤에는 정희정 대신 좀 전 같은 병실에 있던 여자가 쫓아와 내게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기억 못하시죠? 한 달 전쯤에 불나서요, 저 치료해 주셨는데.”

“아,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여자는 호호 웃으며 내게 귤 한 개를 쥐어주었다. 여자는 내 칭찬을 몇 마디 하더니, 곧장 오수호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저 아이가 문득 궁금해져서 한 번 와봤을 따름이었다.

“저 아버지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난 처음에 딸이라는데 성이 달라서, 아니 뭐 그러냐 했는데.”

여자는 병실에서 혼자 있던 것이 답답했는지 구면인 나를 보자 수다를 떨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오수호가 딸의 외로움을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게, 죽은 부인 친구 딸이래요. 그 친구 부부가 노점상으로 호떡장수를 했는데, 길 가던 트럭이 덮쳐서 받았대요. 그래서 저 부부가 고아를 업어다 길렀대요.”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여자가 준 귤을 까서 반을 떼어 여자에게 주었다. 새침한 냄새가 났다. 여자는 귤을 입에 넣고 복도 한쪽에 있는 의자로 나를 끌어다 앉혔다. 링거 행거를 질질 끌기에 내가 대신 잡아주었다.

“언젠가 그런 얘기도 했는데, 아이의 죽은 엄마가 불임이어서 잘됐다 싶었대요. 아이 유치원 보낼 나이가 되어서 돈을 더 벌려고 따로 살다가 불이 나서……. 혹시 거기 가셨어요?”

“예, 갔었지요. 희정이를 제가 이리로 데려 왔었지요.”

“어쩐지, 새삼스럽게 찾아오는 데 이유가 있었네. 세상에 저런 아버지가 없어요. 낮에는 딸한테 와서 놀아주고, 딸이 잠들면 그때 제게 신신당부를 하고 가요. 밤에 딸이 갑자기 아빠를 찾으면 만사 제치고 와요. 밤에 일하러 가는 거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요. 제 몸으로 난 딸이래도 그렇게 못 할 텐데.”

여섯 달인가가 지났다. 그간 아내의 몸은 아이를 위해 고군분투 노력하여 시나브로 차고 있었다. 아내와 잠자리에 들 때 바라보는 창문 밖으로 날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더니, 곧 생이 있고 사가 찾아와 많은 것이 어둡고 또 밝았다. 아내의 몸이 변하는 것이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말하는 것인지 뜻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을 보며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이 내가 아내의 발에서 만지던 그 영원을 유예하기 위한 시간들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에 더 알고 싶었다.

나의 삶은 당-비-당-비로 반복되었고, 아내는 강의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내는 일을 멈추고도 동화책 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더해 며칠 전부터는 출산 준비물까지 사들이기 시작했다. 실로 아득한 일이었다. 나는 이유화와 조명관이 죽던 날과 다름없이 아내를 대해야 했다. 아내는 늘 아침상을 차려놓고 상냥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아내도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산달이 다가왔지. 아, 그놈 얼굴을 보고 싶어.”

내가 그리 말하면 아내는 잠자리에서처럼 매초롬하게, 아들인지 딸인지 어찌 아니 하고 답했다. 그런 말을 주고받은 다음 비번에는 동기들과 술을 먹기도 하고, 여자들이 있다는 방석집이니 뭐니를 가기도 하다가 그 일도 두 달 전에 그만두었다. 돌이키기엔 아내의 배가 너무 불렀다.

아내는 어느 날도 퇴근하며 동화책 따위를 몇 권이나 더 사온 모양이었다. 아내는 쇼핑백에서 책을 꺼내 작은 방으로 갔다. 거기에 우리는 책장과 책상과 컴퓨터 따위를 놓았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주기로 한 방을 서재처럼 쓰고 있었고, 아내는 틈이 나면 어서 정리하자고 성화였다.

“아이 이름은 희정으로 할 거야. 우리 연애할 때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기억 못하지?”

“희정은 싫어. 안 돼.”

식탁에서 나는 아내의 말을 자르듯 단호히 말했다. 아내는 기분이 상한 듯 입에 물었던 것을 오물오물 빨리 씹었다. 희정, 정희정, 죽어가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다만 그 이름이 반년 전 불타 죽은 여자의 딸이며 또 죽어가는 모르는 아이의 이름과 같아서 불길하다고 했다. 아내는 대꾸가 없었지만, 나는 오래전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가 생기면 우리는 밝을 정(晶)과 성할 희(熺)자를 쓰기로 했다. 정정희는 이상하니 정희정으로 하자. 남자 이름으로도 나쁘진 않지만 딸이면 좋겠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는 해사하게 웃었고, 씨를 낼 수 없는 나는 말을 못하고 마주 웃기만 했다.

아내가 잠든 뒤 나는 새로 생긴 습관으로 발코니로 와 담배를 피웠다. 아내의 간곡함에 줄인 것이 바로 그 하루 한 개비였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는 많은 죽임이 있는 세상을 책하며 소파에 누웠다. 텔레비전을 보다 소파에 누워 잠드는 날이 많았다.

봄.

눈이 시리게 부는 바람이 푸른 계절에 오수호와 이유화의 딸 정희정이 죽었다. 그날 나와 아내의 딸 정희정은 세상에 나왔다. 아내는 예의 그 병원 산부인과 병동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낳았다. 나는 휴가를 냈고,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황급히 아이의 얼굴을 살피며 누구의 얼굴이 들어 있나 찾았다. 간호사가 지나며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했다. 의례적인 말이었다. 나는 밤새 아내의 입원실에 있다가, 아침이 되어 병원을 찾은 동료에게 잊어서 살던 아이의 부고를 들었다. 나는 성모의 출산을 바라보는 목수의 심정이 되어 지난 밤하늘의 별을 속으로 헤아려보았다. 방문하는 박사들의 얼굴을 뜯어보며, 혹 아이의 아비가 있을까 의심하고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아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던 그때, 인간의 왕은 대신 세상 모든 아이들을 죽였다. 정희정이 태어나던 날, 정희정이 죽었고, 나는 그 잊어야 살던 아이의 부고를 재차 삼차 들었다.

“대충 여덟 달이면 많이 살았지. 돈이 아까워서…….”

“내가 봤을 때 그렇게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 살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장사 하루 이틀 해. 그 정도면 사실 현장에서 죽었어야 마음이 편한 거야. 살 놈은 살아야지. 아비가 불쌍하다.”

동료 소방관은 병동 밖을 나와 담배를 피우며 고약한 말을 뱉었다. 나는 그제 하루 한 개비 피우던 것마저 끊던 터였다. 아이의 얼굴을 보자 문득 연기를 깊게 빨아 코로 내쉬고 싶었다. 정희정이 죽고 정희정이 태어났고, 우연치고는 고약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가 잠든 사이 장례식장에 들렀다.

종합병원에 부속된 장례식장 특유의 누추하고 퀴퀴한 분위기가 장내를 더 어둡고 우울하게 했다. 고깃국의 냄새가 떠다녔고, 산 사람의 입김이 부딪쳤다. 어디서 화투장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돈이 오가며 언성들이 높았다. 오수호는 딸의 영정 옆이 꺾인 나무 둥치처럼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정희정의 죽음을 애도하러 올까, 그것은 애당초 더할 나위 없이 텅 빈 소실이었다. 오수호는 그저 그 소실점을 더 멀리로 연장하느라 온 힘을 썼다.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모든 삶은 소실점 안쪽에 있었고, 소실되는 저편에 모든 소중한 것들이 전복되거나 지워졌다. 우리는 언제나 소실을 지우려 애쓰는 자였지만, 그러나 횡행하며 반복되는 소실의 사태를 우리는 결국 어쩌지 못했다.

바닥에 발자국이 많았다. 나는 그것들에 내 발들을 맞추듯 일관성 없이 서성였다.

갓 태어난 정희정은 잘 울었다. 건강했다.

진달래 피던 날, 아내는 일주일에 두 번 다시 일을 나갔다.

어느 날 아침 집에 돌아와 창문을 열자, 아내가 사온 화분이 벌벌 떨면서 흔들렸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아내가 차린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웠다. 딸아이는 눈이 차게 자랐다. 자라며 아이는 나를 닮았다. 딸은 봄에 피는 들꽃처럼 예뻤다. 분홍이 감도는 얼굴빛을 보고 취해 나는 상춘하러 가지 않았고 두견주를 따로 찾지 않았다.

아내의 귀가를 기다리며 나는 막막하게도 미안했다. 나는 홀로서 집을 천천히 돌거나 누워 시간을 보냈다. 눈을 감고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기우뚱거리며, 소방관이 되고 어느덧 딱딱해진 손날을 어루만지다 깨물기도 했다. 이 손에 닿던 자들은 얼마나 천천히 죽어갔던가. 이 무감하고 비생산적인 육체에 닿은 죽어가는 육체들은 누추하고 비루하게 사위어 갔던가. 나는 사람 죽이는 것을 확인하는 일을 하고 있던가, 아니다, 살리는 일이다. 삶, 삶, 삶, 삶, 삶. 새들이 하늘을 비집고 땅에 닿는 소리가 그렇게 나는 낮 동안 문득문득 아내가 그리웠다. 구름이 비가 되고 하늘이 걷히며 그리를 채우는 개인 저녁 하늘의 햇살처럼 아내가 그리워서, 저녁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디고 오랬다.

눈을 감고 또 뜨다가, 바람이 들어 시든 화분을 보고 일어났다. 서랍을 뒤지니 원예 가위 하나가 있었다. 마른 잎을 자르고 화분흙에 떨었다. 시든 잎을 자르고 분무기를 들었다. 기다란 잎에 점점 맺히다 흐르는 것이 눈물 같았다. 눈물이 뿌리를 적시고 있었다. 각각 나뉘어 심어진 화분들은 시들어서가 아니라, 번식할 씨앗을 날릴 수 없고 눈물이 젖는 뿌리를 엉킬 데가 없어서 쓸쓸한지 몰랐다. 누운 잎을 보며 성기고 시든 화분 같던 아내의 옛날 모습을 생각했다.

나는 딸이 기다리는 방으로 가서 함께 어미를 기다렸다. 가련했던 화분, 마침내 일으켜 열매를 맺은 여인아, 정희정은 좋은 이름이더라. 거꾸로 해도 그대로인, 앞뒤가 맞는 사랑할만한 이름이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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