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매거진 공채 전형 중이다. 포트폴리오 만드는 게 숙제로 나와서 만든 것들인데, 그냥 두기도 아깝고 해서 블로그 포스팅. -_-
<야심만만2>가 9월 28일 방송을 끝으로 폐지됐다. 햇수로 6년만이다. 2007년 1월 <야심만만 만 명에게 물었습니다> 종영 당시 ‘시즌 2’를 기약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퇴장의 모양새는 퍽 쓸쓸해 보인다. <야심만만2>의 부진에는 외적인 이유도 크다. 동시간대에 공중파 방송3사가 모두 엇비슷한 토크쇼를 편성한 것도 그렇고, 경쟁프로그램인 <놀러와>가 전시간대 여왕님들의 선정에 힘입은 데 반해 이렇다 할 반사이익을 얻지 못한 점도 <야심만만2>의 불운이었다. 제작진은 올해 들어서만 4차례의 개편을 통해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MC였던 강호동은 그러나 바로 다음 주부터 새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PD와 작가진은 다르지만, ‘강호동이 진행하는 집단 토크쇼’라는 얼개는 그대로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은 유재석의 <놀러와>가 강호동의 <야심만만>을 화요일로 쫓아냈다고 생각할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비록 강호동이 월요일은 유재석에게 내주었을지 몰라도, 주말 2연전 (<무한도전>과 <스타킹>, <1박 2일>과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진행중이다.
두 사람의 라이벌리는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는 최고의 관전 포인트이다. 강호동은 강하고 유재석은 유하다. 강호동은 힘이 있고 유재석은 감싸 안는다. 강호동은 감정적이고 유재석은 상식적이다. 강호동의 찡그림은 애교스럽고 유재석의 찡그림은 애처롭다. 두 사람이 함께 했던 프로그램 <X맨>에서의 역할이 두 사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두 팀으로 나눠 진행되는 게임쇼에서 유재석은 메인 진행자였고, 강호동은 ‘강팀장’ 역할을 했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나란히 출세한 <동거동락>과 <천생연분>의 질감도 그렇다. 유재석은 출연진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고, 강호동은 출연진 사이의 관계에 직접 개입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항대립 끝에서 두 사람이 대등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현실에서는 강한 것이 유한 것을 이기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강호동은 2인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유재석은 ‘국민MC’고 강호동은 ‘A급 MC’다. 왜 강호동은 유재석을 이기지 못할까?
강호동이 방송에서나 사석에서 늘 강조하는 말은 ‘진정성’이다. 숱한 악성 루머를 이겨낸 그는 스스로가 성실하고 진실된 사람이라는 뚝심에 가까운 자신감을 보여준다. 그의 이력이 그것을 방증한다. 씨름선수 시절 그는 압도적이었다.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운동능력도 중요하겠지만, 피나는 노력과 연습이 없다면 1인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폐쇄적인 방송가에서도 그는 살아남아 지금의 반열에 올랐다. <1박 2일>에서든 <스타킹>에서든 강호동은 언제나 진짜 강호동이다. 분장을 하고 진행하는 <무릎팍 도사>에서도 강호동은 늘 강호동이고 싶어 한다.
여기에 강호동이 반드시 피해야 할 함정이 있다. 강호동은 <무릎팍 도사>에서 안철수 대표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강호동이 [아웃라이어]를 좋아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강호동은 유재석과는 달리 ‘승리자’의 이미지가 짙다. <X맨>에서도, <동거동락>에서도, <무한도전>에서도 유재석은 언제나 루저의 이미지를 고수한다. 유재석을 ‘국민MC’라고 불러도 ‘A급 연예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강호동도 <1박 2일>에서 간혹 다른 출연진들에 의해 골탕을 먹지만, 제리에게 골탕을 먹는 톰이 실제로 제리보다 약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야심만만2>에서의 강호동은 줄곧 그 진정성과 진솔함, 혹은 A급 MC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예능 노하우’를 내세웠다. <야심만만 2 : 유.치.장>에서의 강호동은 <1박 2일>에서의 ‘우두머리’ 강호동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도소가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에서 죄수들이 나누는 대화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진행된다. 사회에 있을 때 누가 더 잘났는지, 누가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허풍을 떨거나, 동병상련을 간직한 이들이 서로의 억울함을 듣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강호동이 택한 것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강호동은 수감실의 유일한 승리자로서 게스트들을 취조하는 수사관처럼 행동했다. 결국 코너 내내 강호동이 가장 자주 내뱉은 말은 ‘○○○ 죄수, 죄를 인정하십니까?’였다. 똑같이 감옥에 갇힌 사람들끼리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이상하다. 그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강호동의 고자세를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야심만만2>의 전신 <야심만만 만 명에게 물었습니다> 역시 ‘진정성주의자’ 강호동에게 잘 어울리는 토크쇼였다. 이 쇼는 근래 토크쇼의 대세가 된 소위 ‘솔직 토크’의 효시로 꼽힌다. <야심만만 만 명..>을 기점으로 토크쇼의 트렌드가 연예인의 사생활을 중심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강호동이 성공으로 이끈 또 다른 토크쇼 <무릎팍도사>는 일견 <야심만만 만 명..>과 달라 보이지만, ‘솔직 토크’를 성공 비결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야심만만2>의 실패나 여타의 지리멸렬한 토크쇼에서 보듯, ‘솔직 토크’는 그 자체로 프로그램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야심만만 만 명..>은 실제로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한 ‘공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무릎팍 도사>는 마치 정신과 상담을 연상케 하는 ‘무당과의 ‘대화’라는 외피를 씌움으로써 따뜻한 느낌을 유지한다. <야심만만 만 명..>이나 <무릎팍 도사>를 볼 때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게스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이때의 강호동은 게스트들을 윽박지르거나,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거나,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는 승리자 강호동이 아니라, 항상 게스트의 편이 되어주는 듬직한 보디가드가 되었다. 즉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공감(혹은 용서 내지 칭찬)받는다’는 정서가 이들 토크쇼의 기반이었다는 점이다. <야심만만 만 명..>는 본래 강호동이 중심이 된 토크쇼가 아니었다. 쇼의 성공에는 김제동이나 박수홍처럼 편안한 공감을 이끌어낼 줄 아는 모범생과 재담꾼의 역할이 컸다. <무릎팍 도사> 역시 강호동이 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건방진 도사’ 역할을 연기하는 유세윤이 ‘무릎팍 도사’ 강호동을 능가하는 ‘독한’ 기믹을 맡음으로써 강호동의 포지션을 재설정한 것이 프로그램의 성공 포인트다.
유재석은 유하고 강호동은 강하다. 텔레비전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유한 것이 강한 것을 이겼으면 좋겠다는 전복적인 욕망을 전유한다. 강호동의 새 프로그램 <강심장>은 스무명이 넘는 게스트가 정해진 주제에 따라 입담을 겨루고 방청객이 심사를 맞는 형식의 토크쇼다. 흡사 토크쇼판 <스타킹>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승리를 위해서는 더 독한 이야기거리를 들고 나와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때 강호동은 자신이 갖지 못한 유재석의 재능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들이 가장 불편해할 모습은 분명 게스트들에게 ‘경쟁에서 승리할 것’을 강요하는 그의 모습일 것이다. 강호동은 자신이 분명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낼 줄 안다는 사실을 <무릎팍 도사>를 통해 증명해 보였다. 그때 강호동이 발휘한 것은 그의 겉으로 드러나는 강함이 아니라, 내면의 강함이었다. 강호동이 유재석을 넘어서는 길은, 외유내강의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