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영화보기와 책읽기 2007. 11. 6. 01:52
밀양
Secret Sunshine




요약하여, 이 영화는 인간의 가족과 언어, 그리고 욕망에 관한 대단한 수작, 나아가 걸작이다. 장면 하나하나의 밀도가 대단히 높다. 해석을 위한 책 한 권을 적어도 될 정도로 튼튼하다. 장면장면이 놀랍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또 인간 삶이 어떤 것인가 하는 느낌으로 '장인'의 터치가 무엇인가 하는 느낌으로 한번씩 볼 것을 강권함.


스포일러..가 될 짧은 감상을 간단히 몇 개만 적자면,


* 다른 평자들이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에 그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신애(전도연)의 죽은 남편이라는 지배기표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영화에 나오는 몇몇 '주저하는 시선'들은 어쩌면 영화적 관습에서가 아니라, 바로 그 부재한 가부장의 관음증적인 시선을 관통하여 재현되어 있다. 이창동의 영화는 가끔 메일쇼비닉의 혐의를 받고는 하는데, 그러나 내 생각에 이창동을 그런 류의 안티페미니즘으로 읽기 보다는, 다소 계몽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각설하고.. 예컨대 신애가 죽은 아이를 만나는 장면이나, 신애가 약국 장로를 만나 바닥에 누웠을 때 카메라를 똑바로 보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가 카메라를 향해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죽은 남편의 응시에 대한 도전이다. (한편 신애가 단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미디엄숏으로 잡을 때에 그것은 희열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의 공간으로 설정되는 '밀양', '숨은 볕', 그것은 보이지 않는 응시의 저편에 있는 어떤 태양이다. '숨은 볕'이란 말은 한편으로 무척 따뜻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부분(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응시의 저편)에 무언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순간은 죽음, 신비주의, 종교 같은 것들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환상을 가로질러 그것을 본다. 표준말을 하는 신애가 자신을 위한 기도회를 훼방놓고 종찬(송강호)를 만나서 사투리를 지껄인 뒤 그의 공격성에 놀라 도망가며 무어라 무어라 욕을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밥상에서 숟가락으로 머리를 때리고.. 색골같은 새끼.. 하는데, 그런 캐릭터는 영화 내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죽은 남편에 대한 양가적 욕망의 웅얼거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애는 언제나 '포즈'를 취하며 산다. 유괴의 원인이 된 것은 신애가 돈이 많은 듯한 '포즈'를 취한 것 때문이다. 응시는 늘 포즈를 만들어낸다. 사진가의 모델이 포즈를 취하는 것처럼. 그러나 사진가가 죽고 나서도 모델은 포즈를 취한다. 남편이 죽고 남편의 고향에 돌아온 아내와 아들처럼.

* 신애가 아들을 죽인 범인(이름이 기억이 안ㄴ남-_-)을 '용서'하겠다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다고 마음먹고 찾아갔을 때 이미 그는 자신의 하나님을 찾고 용서받았노라고 말한다. 아마도 영화의 모티베이션이 된 장면은 바로 여기일 것이고, 아마 원작 소설 역시 이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교회를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나를 통해 이루어져야 의미가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 하고많은 사역과 은사 가운데 내가 가장 흥미있어 하는 건 '방언기도'이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 바로 '언어'이다(요한복음에서 신은 로고스라고 했다, 로고스는 곧 말씀이다). 가끔 부흥회나 기도회 같은 것을 가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로 마구 떠들며 눈물흘린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마음이 편해졌다는 둥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었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한다. 무척 도착적이고, 나아가 대단히 착란적인 치유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면화하고(다시 말해 부재했던 가부장의 남근을 자신의 몸에 새기고), 자신의 남근을 거세했던 자를 그 세계에 편입시킴으로써, 자신의 양가적 욕망(남근이 되고 싶은 욕망 혹은 남근을 살해하고 싶어하는 욕망,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죽은 남편의 불성실함(동생이 증언해주는)을 인정하고 그를 기각하고 싶은 욕망)의 배회를 끝내고 싶어했지만 그러나 이미 그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그에게도 있음, 즉 남근이 자신의 의지를 먼저 관철시키고 있음에 반동적이고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여성은 '실어증'적으로 변하고 종교에 대해 반목한다. 죽은 아들의 녹음된 목소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들을 죽인 자가 가르쳐준 말이다. '아버지의 말'의 무서움, 그 강박성을 영화는 집요하게 표현하고 있다.  

* 다시 말해 종교는 크리스테바식으로 말하면 사랑의 과정이고, 신애도 교회다니는 것을 '연애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신애는 종종 아프다. 과호흡을 겪기도 하고 (특히!) 생리통을 겪기도 한다. 구토 장면도 몇 번 있고 손목을 긋는다. 그러나 신애는 다급히 거리로 나와 '살려주세요' 라고 말한다. 인간 유기체를 이끌어가는 것은 언제나 항상성의 본능이지만, 상실의 아픔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 그 아픈-존재는 항상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의 언어, 전이와 역전이의 과정..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치료'이다. 그러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 '밀양'적인 어떤 '응시'의 대상(달리 표현한다면, 성화나 소위 '찬양'의 너머에 있는 실재한다고 믿어지는 어떤 신)의 내투사와 자기 안의 조응(resonance)에서 그 언어를 구획하며, 대단히 도착적이고 퇴행적이다. (히스테리 환자가 종교를 통해 안식을 얻는 과정은 따라서 대개 퇴행적이고 여성적이다, 어째서 종교집단의 지도자들은 대개 남성이며 그 신도들은 여성이 많은지 생각해 보라, 부재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가부장을 대신하여 상징계적인 남근적 언어에 대한 도착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서의 종교...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를 생각해 보라) 이에 관해 재밌는 장면이 여럿 있는데, 신애가 과호흡으로 가슴이 답답했을 때 기도회에 참석해 막힌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마도 몇몇 '음표들'과 간헐적인 리듬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신애는 그것을 언어로 풀어낸다(기도하거나 성경구절을 읊거나). 그러나 그 종교가 실패했을 때, 신애는 가던 길에 야외 집회를 하고 있는 곳의 PA에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튼다. 그리고는 예배당에서 소리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혹은 배신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의자에 마구 내려치며 리듬을 만든다. 신애의 마음을 털어놓게 했던 것은 리듬이나 분절, 촉수와 같은 환영, 자궁과같은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짝을 이루는 장면은 종찬이 카센타에서 혼자 가라오케를 틀어놓고 노래를 부를 때의 음악으로 가득찬 공간이다. 그것은 바다속으로 들어간 듯한 환상을 연상시킨다. 종찬이 줄곧 어머니와 통화하며 어머니에게 친근하게 대하고 있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신애가 끝내 종찬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듯하면서도,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거울을 든 종찬 앞에 다소곳이 않는 것은 종찬이 어머니와 분리된 사람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죽은 남편이 도착적인 사람('색골')인데 반해, 신애가 밀양 사투리를 써가며 섹스하고 싶지 않냐고 유혹해도 '정신차리세요'(절대 그는 '하나님이 보고 있어요'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이나 검열 때문이 아니라, 아니라 신애의 입장을 헤아린다)라고 말했던 것을 높이 샀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가 거울속에서 본 것은 아마 죽은 남편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머리카락을 잘라내는데, 그 머리카락을 따라 시선은 그 마당의 숨어 있던 볕에 가서 멈춘다. 남편은 말하자면 메두사였고, 종찬이 들고 있는 거울은 이지스 방패이며, 신애의 가위는 페르세우스의 칼이기 때문에 그 시선으로부터 신애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 거울, 그 응시의 바로 저편에는 죽은 남편의 유령 대신 종찬이 서 있을 것이다. 이창동 영화의 계몽적 윤리성 운운은 아마 이 '숨은 볕'으로 자신의 시선을 늘어뜨리고 겸양을 떠는 것으로 변명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내 의견이다.

근데 딴얘긴데.. 신촌역지나다닐 때마다 본 포스터(우산들고 있는 송강호가 코가 빨개질 때까지 주저앉아 울고있는 전도연의 뒤에 서서 어쩔줄 모르는 표정을 보여주며 '이런 사랑도 있습니다' 써 있는)에 나온 그런 장면은 당최 안나오던데.. 영화 홍보사들은 대체 영화를 보고 홍보물을 만드는 걸까?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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