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Marie-Atoinette



그냥 간단 감상.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사실 스포일할 만한 아이템이 없는 영화다.
영화 속 마리 앙뚜아네뜨의 실제 나이는 14살부터 38살까지였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의 마리는 27살 키어스틴 던스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의 전부인 것 같다. 말하자면.. 18세기 중반부터 프랑스 혁명기에 이르는, 조금은 순진무구했고 많이 멍청했던 왕 루이 16세의 아내의 삶을 재현하는 방식은 '네버랜드'적이다. 우리는 이런 캐릭터를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마틴 스코시즈의 <순수의 시대>에서 위노나 라이더가 그랬다. 위노나 라이더는 이 영화에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를 연기하지만, 20대 중반의 위노나의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재현된다. 이건 분장의 실패가 아니다. 의도적인 그 '순수함', 혹은 '무고함', 혹은 '무지'의 재현이다.

여기서 잠깐 네이버는 마리앙뚜아네뜨를 무어라고 설명하는가..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빈에서 출생하였다. 1770년 14세 때 정략결혼으로 1774년 왕비가 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트리아농관(館)에서 살았으며, 사교·관극(觀劇)·수렵·미술·음악 등의 모임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어 작은 요정(妖精)이라고 불렸다. 검소한 국왕 루이 16세와는 대조를 이루어 ‘적자부인(赤字夫人)’이라는 빈축을 사기도 하였으며, 1785년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은 그녀의 명성에 상처를 입혔다.

또, 그녀는 스웨덴의 미남 무관 페르센을 비롯하여 몇 사람의 연인이 있었다.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그녀의 일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왕과 그 일족은 1789년 10월 6일 파리의 왕궁으로 연행되어 1792년 8월 10일까지 시민의 감시 아래 불안한 생활을 해야만 하였다. 그 사이 그녀는 퇴영적(退嬰的 새로운 일에 좀처럼 손대기를 꺼려하여 나서지 아니하고 망설이는, 또는 그런 것.)이며 선량한 루이 16세를 격려하기도 하고, 왕가의 안녕을 위해 미라보 매수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나, 1792년 8월 10일의 시민봉기로 그녀는 탕플탑(塔)에 유폐되고, 국고를 낭비한 죄와 오스트리아와 공모하여 반혁명을 시도하였다는 죄명으로 1793년 10월 16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에게는 왕과의 사이에 4명의 자녀가 있었으나, 장녀 마리 테레즈만이 성인이 되어 훗날 당글렘 공비(公妃)가 되었으며, 차남 루이 17세는 1795년 이후 생사 불명이 되었다.


..라고 되어 있으나, 영화적으로 재현된 사실에는 어떤 정치적 디테일은 소위 '거세'되어 있다. 일테면.. 마리의 혁명 당시 가장 긍정적인 이미지의 클리셰란 것은 파리 시민들에게 큰절을 하는 모습 정도일텐데, 영화는 그 장면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만약 그 장면에 연출적 기교를 넣는다면 파리시민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뒤 그 시민의 시점숏에서 마리를 포착하는 역숏을 넣을 것이다..이런 식의 연출기법은 철저히 배제되어있다) 대신 이 영화는 매우 거친 스타일로 '궁정 스타일'을 재현한다. 특히 지루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재현하다가 그것을 멈추게 되는 계기(즉 정치적인 의도들에 대한 압박을 '울어냄'으로써 지우게 되는,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리 혼자 남겨지는 세 개의 분할숏들)부터 영화는 다소 '팬터지'적으로 흐른다. 그리고 영화는 그때부터 마리-던스트-코풀라의 욕망을 따라간다. 말하자면 그때부터 영화는 시대극에서 벗어나 소녀취향의 '예쁜 것들'을 재현하는 한없는 가벼움(혹은 키치)으로 치닫는다. 영화에서 시점숏은 딱 네번나오는데, 모두 마리의 것으로 정원에서의 산책 장면이나 오페라장면, 페르젠백을 바라보는 장면, 아이를 보는 장면 정도이며 이는 마리의 욕망의 대상들이다. 플래쉬백 내지는 팬터지 시퀀스 역시 마리의 것으로 딱 한 번(페르젠 백을 그리는 모습) 나온다. 나머지는 '대부'에서나 볼 법한 평이한 숏들의 연속이다. 영화적으로 보면 무척 '순수한' 형식이다. 왜? 프랜시스 포드의 딸 소피아 코풀라가 제 입맛대로 선택할 수 있는 마리 캐릭터의 재현의 방식이 어떤 것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다보면 조금 당연한 사실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 마리 앙뚜아네뜨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보여주지 않는 것, 베르사이으의 정원에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장면의 센티멘털리즘은 어쩌면 스코시즈의 캐릭터들이 그랬듯..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유아적이고 도착적인 세계관의 긍정이 아닐까. 말하자면 나르시시즘이고, 혹은 퇴행이거나..

뭐 어쨌든 예쁜 게 많은 영화다. 성공적이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아무리 영화가 방방 뜨는 분위기라고는 해도 자막을 그딴식으로 만들었다간 다음부터 번역일 하기 힘들텐데 용기는 가상했다.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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