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자의 추천으로 읽어볼 생각을 하고는 있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던 차에, 모님께서 오랜만에 책을 샀다며 얘길 꺼낸 책이 이녀석이었다. 아무 서전정보 없이(심지어 그는 작가의 이름도 처음 듣는다 했다) 서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충동구매'했다하니 나름대로 베스트셀링 북이 되어있는 모양.

제목이나 내용이 도발적...이라고는 했지만 내가 읽은 바로는, 재밌는 소재를 안전하고 비겁하게 마무리지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찝찝했다.

서사의 중심은 한 여자가 결혼 제도에 대한 자신만의 '독트린'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나간다는 내용인데, 사실상 그 미시적인 사회 실험이 가능한 것은 서술자의 결정들이었고 그 원인은 그녀의 성적 매력이라는 식의 묘사는 무척 객쩍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건 작법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작가는 소설의 서사를 미리 마련해 놓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지지하기 위한 몇가지 문화인류학적/사회학적 논고들을 끌어모은 뒤 그것을 차례로 병렬 제시'시키'는 과정에서 어물쩍 넘어가는 것으로 소설을 이끈다. (따라서 각각의 논고들은 사실상 서로 논리적 연계성을 가지고 기능하지 않는다, 작가가 서두에 '이런저런 사회학적 논의는 실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라고 한 것은 겸손이 아니다) '나'의 서술태도는 그러한 논고들을 전유하는 것이 아니라 배반하고 있으며, 결국 앞서 말했듯 그것이 가능하게 된 까닭은 일차적으로는 '인아'의 성적매력과 딸에 대한 불가해한 집착에서이고, 궁극적으로는 작가의 서사'전략' 때문이라는 뜻.

이러한 서사전략..의 문제점은 일견 사회학을 전공한 작가의 학적 견지가 사상누각적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건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회과학도들의 일반적이고 치명적인 결함이기도 하다...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여러 학적 소재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축구에 대한 이야기들도 '선진적'인 것들, 다시 말하면 '지금-여기'의 문제가 '아닌' 것들을 어쭙잖은 방식으로 인용하고 거기에 단편적으로 '지금-여기'의 상황상황들을 애써 맞춰나가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소설로서는 드물게 책의 뒷편에 장황한 비블리오/웹 리퍼런스를 달아놓았다)

소설은 축구얘기가 반, 결혼얘기가 반인데 우리나라 축구사나 우리나라의 연애담론은 사실상 희미하고, 심지어 결혼 관계 '전반'에 대한 어떤 통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반-남성중심주의(이건 이 소설의 서사가 '여성주의'라고 말하기도 밋밋하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겠다)라는 일면만을 비출뿐 어떤 포괄적인 통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결혼 관계에 대한 치열한 통찰을 보여준 소설적 성취는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짓이다'와 같은 전례에서 찾는 편이 낫다) 멋적은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읽자면, 작가는 또 '병수'라는 뻔한 속물 캐릭터를 '나'의 왼편에 배치해 두고 '나'의 어떤 일면을 투사하는 한편 또다른 남편을 오르편에 자리해 두고 그 두 사람 사이를 왕복시키며 나레이터의 캐릭터를 발생시킴으로써 남성캐릭터의 스펙트럼을 쌓는 수법을 쓴다. 이는 손쉬운 유형화 전략이지만 그다지 치열한 것은 아니다. '나'는 소설의 서사의 필요에 따라 두 사람 모두에게서 거리를 두고 또 두 사람 모두와 가깝다.

결론 역시 결국 이러한 작법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결국 이 기묘한 커플은 한국사회를 떠나 뉴질랜드로 가리라 마음먹는 것으로 이야기를 황급히 끝내버린다. (우습지만 하필 뉴-질(vagina)-랜드다) 사실상 이 기묘한 쓰리썸에 대한 명쾌한 통찰은 끝내 제시되지 않는 것. 그것은 인아의 책장에 쌓인 읽지 않은 책들의 풍경과 비슷하며, 다르게 가려고 해도 밥벌이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나'의 처지와 같다.

사족을 붙이자면... 남성 중심의 쓰리썸 이야기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접했다. 고전적인 '씨받이'에서 출발해 금요일 밤마다 권태기 부부들의 긴장을 4주 후로 유예시키는 '사랑과 전쟁'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한 남자가 두 아내에게 승인을 받고 두 집 살림을 한다는 내용은 이미 여러번 방송되었고, 심지어 그것은 요순시대의 첩실들이 사이가 좋았다는 식의 이야기들과 이어져온다. 그것을 여성중심적으로 바꾼다는 발상...은 사실 새롭거나 치열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축구'라는 뜬금없는 소재와 결부시켜 애매하게 서사를 진행한 것이 어째서 상금 1억원짜리 문학상에 당선된 것인지 도통 알기 어렵다. 축구에는 국가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이며 남성중심적인 욕망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이 소설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재밌는 이야깃거리 이상이 아니기 때문. 음...개인적으로 지단 피구는 잔뜩 얘기하면서 미할엘 발락 얘기가 하나도 없어서 조금 서운했다. -_-;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