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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11.09 이것이 땡전뉴스
  4. 2007.11.06 씨네필 문화

best vocal!

남이 쓴 것 2009. 11. 17. 00:44



 임선호라는 사람이라는데.. 자세한 건 아직 검색해보지 않았음. 어디선가 보고 너무 좋아서 올려봄..
 발성이나 신코페이션 처리나 프로 보컬리스트들을 단번에 발라버리는 발군의 실력.
 내가 음반제작자라면 단번에 계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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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

이화여대 오욱환

인생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필연적인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다양해집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전공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을 겁니다. 전공이 같았던 동년배 학우들이 각기 다른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흩어진 경험도 했을 겁니다. 같은 전공으로 함께 대학원에 진학했는데도 전공 내 하위영역에 따라, 그리고 지도교수의 성향과 영향력에 따라 상당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겁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한국교육학회나 분과학회에 정회원으로 또는 준회원으로 가입한 젊은 학자들에게 학자로서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몇가지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이 조언은 철칙도 아니고 금언도 아닙니다. 학자로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하우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읽기를 바랍니다. 이 조언은 제가 젊었을 때 듣고 싶었던 것들입니다. 젊은 교육학도였을 때, 저는 이러한 유형의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직업에 따라 상당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저는 직업을 생업(生業)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학문은 권력이나 재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학자로서의 성공은 학문적 업적으로만 판가름됩니다. 자신의 직업을 중시한다면, 그 직업을 소득원으로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로 받아들여야 맞습니다. 아래에 나열된 조언들은 제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조언들은 제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일자리는 있다”고 확신하십시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구직난을 호소하지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구인난으로 애를 태웁니다. 신임교수채용에 응모한 학자들은 채용과정의 까다로움과 편견을 비판합니다만, 공채심사위원들은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공정한 선발 과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면서 요구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는 데에 더 힘쓰십시오.

• 학문에 몰입하는 학자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젊은 학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모형이 되어줄 스승, 선배, 동료, 후배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에는 따라해 보는 방법이 효율적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스타일을 갖추면 됩니다. 학문에의 오리엔테이션을 누구로부터 받느냐에 따라 학자의 유형이 상당히 좌우됩니다.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반드시 학문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존경할 수 없는 학자들을 직면했을 경우에는, 부정적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다시 말해서, 그 사람들과 다르기 위해 노력하면 정도(正道)로 갈 수 있습니다.

• 시․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위대한 학자보다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그렇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모형으로 삼으십시오. 의식을 해야만 인식되는 사람은 일상적인 모형이 될 수 없습니다. 수시로 접하고 피할 수 없는 주변의 학자들 가운데에서 모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모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에는, 여러분이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 때, 눈을 들어 조금 더 멀
리 있는 모형 학자들을 찾으십시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분이 훌륭한 학자에 가까워집니다.

• 아직 학문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조속히 결정해야 합니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학문은 적당히 해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택하지 않은 일에 매진할 리 없고, 매진하지 않는 일이 성공할 리 없습니다. 학계에서의 업적은 창조의 결과입니다. 적당히 공부하는 것은 게으름을 연습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게으른 학자는 학문적으로 성공할 수 없으며, 학계는 지적 업적을 촉구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읽고 쓰는 일보다 더 오래 할 수 있고 더 즐거운 일을 가진 사람은 학문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읽었는데도 이해되지 않아서 속이 상하고 글쓰기로 피를 말리는 사태는 학자들에게 예사로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읽고 씁니다. 이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일은 어렵고 힘들수록 더 가치 있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그 일에 다가간다면, 학자로서 적합합니다.

•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다면, 대인관계를 줄여야 합니다.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학문에 투입하는 시간은 다른 업무에 할당하는 시간과 영합(zero sum)관계에 있습니다. 학문을 위한 시간을 늘리려면 반드시 다른 일들을 줄여야 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대인관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부가 보험설계사의 전화번호부처럼 다양하고 많은 인명들로 채워져 있다면, 학문하는 시간을 늘릴 수 없습니다. 물론 대인관계도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학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학문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불행해집니다.

• 학문 외적 업무에 동원될 때에는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에 헌신하지는 마십시오. 젊은 학자들은 어디에서 근무하든 여러 가지 업무―흔히 잡무로 불리는 일―에 동원됩니다. 선택할 수 있을 때에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그 일을 부탁한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보다 직위가 높고 영향력이 더 큽니다. 그리고 그들은 젊은 학자들이 일하는 자세를 눈여겨봅니다. 잡무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에게 평생 직업을 제공하거나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기 싫지만 피할 수 없을 때에는 성실해야 합니다.

•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십시오. 논문을 쓸 때 가장 힘든 시기는 시작할 때입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올 리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면 될 일을 시작하는 절차에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고 길일(吉日)이나 적일(的日)을 찾다가 실기(失機)합니다. 신학기에, 방학과 함께, 이 과제가 끝나면 시작하려니까 당연히 신학기까지, 방학할 때까지, 과제가 끝날 때까지 미루게 되고 정작 그 때가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새로운 변명꺼리를 만들어 미루게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재치 있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답니다(성경 잠언 27:16). 논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즉시 그리고 거침없이 많이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적기를 기다리다가는 아이디어를 놓칩니다. 사라진 아이디어는 천금을 주어도 되찾을 수 없습니다.

• 표절은 학자에게 치명적인 오명이 됩니다. 표절은 의식적으로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납니다. 표절에의 유혹은 게으름과 안일함에서 시
작됩니다. 표절을 알고 할 때에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유리한 변명이 충분히 만들어집니다. 표절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모르고 표절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표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글쓰기에 엄격한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하고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발표된 후에 표절로 밝혀지면, 감당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 시간과 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도서구입에 인색하고 음주나 명품구매에 거침없다면 학자로서 문제가 있습니다. 읽을 책이 없으면 읽어야 할 이유까지도 사라집니다. 책을 구입하고 자료를 복사하는 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면 구입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지를 따지는 것은 책을 사지 않으려는 이유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 문헌들을 읽거나 가까이 두고 보아야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 새 책을 구입했을 때나 새 논문을 복사했을 때에는 즉시 첫 장을 읽어두십시오. 그러면 책과 논문이 생경스럽지 않게 됩니다. 다음에 읽을 때에는, 시작하는 기분이 적게 들어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구입한 책과 복사한 논문을 도서관 자료처럼 대하지 마십시오. 읽은 부분에 흔적을 많이 남겨두십시오.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반론이 생각나면, 그 쪽의 여백에 적어두십시오. 그것이 저자와의 토론입니다. 그 토론은 자신이 쓸 글의 쏘시개가 됩니다.

• 학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학회의 주체로서 활동하고 손님처럼 처신하지 마십시오. 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긍정적 모형들과 부정적 모형들을 많이 접해보십시오. 좋은 발표들로 모범 사례들을 만들어가고 실망스러운 발표들을 들을 때에는 그 이유들을 분석해보십시오. 학회에 가면 학문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학회에 가면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성적 자극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지도교수나 선배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해주지 않음을 명심하십시오. 학위논문을 작성할 때 지도교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배의 조언은 학위논문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와 도움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그들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홀로서기가 시련이듯이, 학자로서의 독립도 어렵습니다. 은사나 선배에의 종속은 그들의 요구 때문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젊은 학자들이 스스로 안주하려는 자세 때문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 걸작(傑作)이나 대작(大作)보다 습작(習作)에 충실하십시오. 논문을 쓰지 못하는 학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걸작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들은 다른 학자들의 논문들을 시시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찮게 평가한 논문들과 비슷한 수준의 논문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논문을 쓰는 데 엄청난 압박을 느낍니다. 걸작에 대한 소망은 학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걸작은 쉽게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걸작을 지향한 논문이라고 해서 걸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논문을 쓸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그 논문들이 쌓여지면서 걸작과 대작이 가능해질 뿐입니다.

•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곧바로 연구업적에 대한 압박이 시작됩니다. 교수직을 구하려면 반드시 연구업적을 충분히 갖추어야 합니다. 많은 대학에서 연구보고서는 연구업적으로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저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번역서에 대한 평가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낮습니다. 번역보다 창작에 몰두하십시오. 번역
은 손쉬워 보이지만 아주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색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역했을 경우에는 지적 능력을 크게 의심받습니다.

• 학자가 되고 난 후에는 저서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압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책을 찾을 때 다른 학자들이 쓴 책들만 보이면 상당히 우울해집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동료들이 교과서와 전공서를 출판할 때에는 뒤처지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자들이 젊었을 때부터 교과서 집필을 서두릅니다. 교과서 집필은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어렵습니다. 교과서에 담길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논문과는 다르게, 교과서 집필은 다른 학자들도 알고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어서 표절의 가능성도 아주 높고, 오류가 있을 경우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학자로서 최소 10년은 지난 후에 교과서 집필을 고려하십시오.

• 학회에 투고한 논문이 게재되지 않더라도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학회에서 발행되는 정기학술지에의 게재 가능성은 50퍼센트 수준입니다. 까다로운 학술지의 탈락률은 60퍼센트를 넘습니다. 그리고 학계의 초보인 여러분이 중견․원로 학자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리도 없지 않습니까? 아이디어를 짜내어 논문을 작성한 후 발송했더니 투고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맞거나,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게재불가 판정을 한 심사평을 받을 수도 있으며, 최신 문헌과 자료를 사용했는데 이에 대해 문외한인 심사자를 만나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게재불가를 받은 자신의 논문보다 훨씬 못한 논문들이 게재되는 난감한 경우도 겪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투고해야 합니다. 학회에 투고하기 전에 학회 편집위원회보다 더 까다로운 사람들로부터 예비 심사를 받기를 권합니다.

•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학문 활동을 쉽게 생각합니다. “앉아서 책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은 소일거리처럼 책만 보는 일이 아닙니다. 논문작성은 피를 말리는 작업입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저도 논문을 작성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논문은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문사회계에는 깜짝 놀랄 일이 많지 않습니다. 논문의 주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찾아야 합니다. 논문은 새로운 것을 밝히는 작업이라는 점에 집착함으로써 낯선 분야에서 주제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 논문을 쓰려면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논문의 아이디어는 직감(hunch)에서 나올지 몰라도 논문 글쓰기는 분명히 인내를 요구하는 노역입니다. 책상에 붙어 있으려면 책상에 소일거리를 준비해 두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컴퓨터는 최상의 제품을 구비하십시오. 프린터는 빨리 인쇄되는 제품을 구비하고 자주 인쇄하십시오. 퇴고는 반드시 모니터보다는 인쇄물로 하십시오. 퇴고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논문을 심사하듯 비판적으로 살펴보십시오. 논문의 초고를 작성했을 때쯤이면 내용을 거의 외우게 됩니다. 그래서 오류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작성하더라도 초고에는 오류가 아주 많습니다. 이 오류들을 잡아내려면 그 논문을 남의 논문처럼 따져가며 읽어야 합니다. 앞에서부터도 읽고, 뒤에서부터도 읽어야 하며, 중간부터도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오래 묵혔다가 다시 읽어보기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방법은 모두 동원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학회에 투고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남의 글을 비판하듯 읽기 때문입니
다. 논문심사자들은 심사대상 논문에 대해 호의적이 아닙니다. 이들은 익명이기 때문에 객관적이며 탈락률을 높여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에는 아주 냉정해집니다.

•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반드시 지적 업적을 갖추어야 합니다. 연구업적이 부족하면, 학계에서 설 땅이 별로 없습니다. 부족한 연구업적을 다른 것들로 보완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떳떳하지도 않습니다. 쫓기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자신의 전공영역에서 발간되는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관심이 끌리는 논문들은 복사하여 가까운 데 두십시오. 그 논문들을 끈기 있게 파고들면, 여러분이 써야 할 글의 주제와 소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젊은 교육학자들이 학자로서의 일상을 즐거워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 가지 학술모임에서 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으로 한국의 교육학이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 필자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석사, University of Illinois

출처 - http://202.31.182.214/news/news_3.php?seq=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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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 문화

남이 쓴 것 2007. 11. 6. 02:07


『정은임의 영화음악』2004.01.07. FM 씨네마떼끄 정성일편 - 씨네필 문화

   

정은임
FM 씨네마떼끄. FM 영화음악, 언젠가 '내 일기장 속 영화' 에서 어느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죠? 이 분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마치 간첩이 되어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 같은 그런 비장함과 그런 심각함과 그리고 남모를 어떤 정서를 가지고 늘 방송을 들었다구요. 자, 다시 수첩들을 준비하셨습니까? 그리고 볼륨을 높이셨나요? 예. FM 씨네마떼끄, 이 달부터 한 달 동안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정성일
안녕하세요. 정성일입니다.

정은임
반갑습니다. 뭐,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애요. 많은 청취자분들이 기다리셨거든요.

정성일
어, 지금 저는 가슴이 미어져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될지 모르는 정말 벅찬 감격을 안고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정말로 만일 불러주시지 않으셨으면 저는 매우 오랜 시간동안 삐졌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정은임
사실 제가 정성일씨께서 많은 라디오방송이나 다른 방송에서 불렀는데 다 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자리에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구요, 그리고 청취자 여러분들이 굉장히 많이 기다렸어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또 일단 목소리라도 듣게 되니 너무 반갑다 라고 하셨어요. 인사말 좀 해주세요, 다시 한번.

정성일
8년만에 돌아와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야기를 건네는 중입니다. 새벽 3시이긴 하지만 만일 제 말이 들리시면 속으로가 아니라 정말 여러분들의 작은 입술로, 작은 목소리로, '네 들립니다' 라고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정말 힘이 날 겁니다. 8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오면서 가장 커다란 변화라면, 그러니까 정은임씨와 그리고 여러분들을 만나면서 우리들은 20세기에 헤어져서 21세기에 다시 만난 겁니다.

정은임
너무 감개무량하게 말씀을 해주셨어요. 자, 과연 21세기에 마치 이제 SF영화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21세기에 만나서 과연 정성일씨께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오늘 시간이 굉장히 기대가 되는데요. 어떤 말씀 준비해오셨나요?

정성일
오늘 제가 첫번째 준비한 이야기는 '씨네필 문화'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정은임의 영화음악실' 그러니까 줄여서 약칭 '정영음' 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비판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응원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다소 자랑삼아 이야기하자면 저 밖에 없을 겁니다. 저는 이 방송에 오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8년전의 정영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정은임씨가 돌아오기를, 그리고 정은임씨가 영화음악실을 다시 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시간들을 기억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해방구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방구라니. 저는 그것을 무엇으로부터의, 그리고 무엇을 향해서 해방구란 말인가, 그 대답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정영음은 제 생각에 두 가지 점에서 그 이전의 모든 영화음악 프로그램과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정은임씨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잘 모르겠지만, 그 하나는 정영음은 분명 정치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영화적이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정영음은 일종의 컬트 방송이었고, 이 말이 편집되지 않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라는데, 방송국에서는 게토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해방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시간을 버텼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투를 빌려 말하자면 정영음은 그러니까 1992년 제 시간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바꿔보겠습니다. 편지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저는 라캉의 그 목적론을 믿어 의심치 않는 편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도착하는 곳이 목적지이기 때문에 던져진 편지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80년대 정치의 계절이 끝나고 90년대 문화의 백가쟁명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정영음은 바로 그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 문화의 백가쟁명이 시작되었었을 때, 그 어떤 다른 문화도 90년대를 껴안지 못했습니다. 문학도, 음악도, 더더군다나 회화나 연극, 무용은 정말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직 영화만이 그것을 끌어안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화를 하기 때문에 제가 드리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것을 저는 이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80년대 내내 지상에서 화염병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을 때, 지하에서 자생적 씨네필들이 성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씨네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쳤고, 그리고 그 속에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말은 그들이 자생적이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고생창연한 옛 선현의 말씀, 그러니까 '토대의 변화가 상부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는 말을 정말 믿는 사람입니다. 80년대는 사실상 여전히, 약간 말을 패러디하자면 '만인의 각자의 방에서 만인의 씨네마떼끄' 가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이러한 상황은 정말 존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비디오의 등장이였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비디오의 등장은 80년대, 그 거리에 나가기를 꺼리던 백조, 백수들의 천년왕국의 도래를 선언하는 것에 다름아니었었습니다. 이 새로운 기계, 그러니까 처음에 이 비디오라는 것이 신혼살림 기구에 쫓아가는, 항상 거기에 포함되었었던 그 품목을 넘어서서, 저는 여전히 이런 표현을 씁니다만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으니' 이 남한 땅에 가져온 문화에서의 이 비디오는 그저 씨네필들의 도래를 예언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면이었다면 부정적인 면은 항상 공존하는 법인 것 같습니다. 즉, 비디오의 도래는 이 땅에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부르는 것, 그러니까 지구화라고 부를 수 있는, 세계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첨병으로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비디오를 통해서 문화의, 그 지구상의 문화들이 갑자기 그 어떤 통제할 수 없는 방법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은 저주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것은 문화의 제국이 성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주의하셔야 될 것은, 저는 제국주의라는 말 대신에 문화의 제국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비디오는 이 땅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허트가 얘기했던 바로 그 의미에서의 제국을 심는데 일조한 셈입니다.

정은임
네. 여전하십니다. 제가 끼여들 여지가 없습니다. 언젠가 사실 예전에 방송을 시작했을 때 장문의 항의편지를 받았었거든요. 그 때 말씀을 드렸었죠? MBC 인줄 알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더니 교육방송이더라, 처음에는 그런 항의를 받았으나 점점 정성일씨 특유의 방송에 빠져들고 말았는데, 똑같은 것은 제가 끼여들 여지를 안주시네요. 자, 오늘 정성일씨와 함께하는 FM 씨네마떼끄, 바로 씨네필 문화, 그 80년대의 자생적으로 지하에서 시작된 씨네필 문화가, 그 씨네필들이 어떤 변화를 거쳐서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21세기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를 주욱 아마 밟아올 것 같은데요, 잠시 쉬어가면서 음악을 듣고, 자 그 씨네필의 변화, 그 얘기들을 들어볼까요?


"Hooked on a feeling" perfomed by Blue Swede

정은임
안인경씨 듣고 계세요? 적당한 긴장감, 지금 느끼고 계세요? 정성일 아저씨의 말투, 적당한 긴장감, 그 어투가 기다려진다고 하셨었죠? 하면서 신청하신 곡, 바로「저수지의 개들」중에서 "Hooked on a feeling" 들려드렸는데요.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야말로 90년대 그 때 영화광들에게 가장 신봉받던 그런 감독이 아닌가 싶구요, 그리고 바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또 우리에게 널리 알린 인물이기도 하죠. 그의 진가에 대해서요. 자, FM 영화음악 씨네마떼끄,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씨네필의 문화, 이 시대 씨네필의 문화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일단 80년대로, 그리고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는데요. 자, 이야기를 계속해볼까요?

정성일
아마 8년전에 정영음을 들으셨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견해를 하나 수정하겠습니다. 8년전에 이 자리에서 저는 타란티노가 큰 감독이 되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랬었어요?) 예.「펄프 픽션」이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를 받은 것을 보고 비분강개한 나머지 '절대 그래서는 안되며 당연히 그 해 상은 키에슬롭스키나 키아로스타미가 받아야 됐었다' 라고 얘기했었는데「재키 브라운」을 보면서 제 견해를 수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때 정영음은 방송되지 않고 있었었고, 이제「킬빌」로 돌아온 타란티노는 하토리 한조의 칼로 저를 찌르며 '니가 틀렸지?' 라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제 견해를 수정할 용의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90년대에 막 도착했던 그 영화애호가들에게, 씨네필들에게 타란티노는 복음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자생적 씨네필들은 그러나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는 바로 그 시기에 아마도 정치담론의 그 거대한 폭력 앞에서 지하에 숨죽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담론들이 90년대에 갑자기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면서 돌연한 진공상태라는 그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정영음은 제 생각에 이 순간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주는 메세지, 이 순간에 바로 도착했다는 것, 그래서 이 자생적 씨네필들이 정영음을 통해서 그 어떤 해방구를 느꼈다는 그 메세지는, 저는 단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억압된 것의 귀환' 입니다. 그러니까 그 의미의 지평을 생각해보는 것이 돌아온 정영음의, 지금 2004년 정영음의 임무이자 이 방송을 그토록 열렬히 응원하고 기다렸던 열혈청취자 소년소녀 여러분들의 자문자답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씨네필이라는 말은 매우 오래된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영화가 맨 처음 시작되었었을 때, 영화의 최초의 이론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루이 델릭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씨네필'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는 영화의 친구라는 말이 좀 적절한 표현일텐데, 사실 필리아(-philia), 그러니까 씨네필에 붙어있는 필(-phile)의 필리아라는 말은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것처럼 '애호증'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정영음이 껴안은 씨네필은 물론 열 명이면 열 명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해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8년전에 정영음에서는 씨네필들에게 즉, 이들에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쳐주고 베풀어주고, 씨네필들도 이 정영음을 향해서 그들의 사랑을 바쳤으나 저는 그 사랑하는 태도에 어떤 자의식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여러분들의 부족함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남한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러니까 그 씨네필들에게 자의식의 태도가 있을 수 있는 영화문화의 환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씨네필들에게까지 고스란히 부채의식으로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은임
자의식 없는 씨네필이라고 말씀하셨죠?

정성일
네.

정은임
자의식 없는 씨네필이라. (네)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정성일
남한의 그 자생적 씨네필의 가장 커다란 비극은 씨네필 문화에서 영화의 모더니즘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물론 이들이 모던 영화들을, 그러니까 누벨바그 영화들이나 펠리니, 베르히만, 브레송, 부뉴엘 또는 그 이후에 계속이어지는 장 마리 슈트라우프나 다니엘 유이레의 영화들 혹은 베르톨루치의 상업영화들, 이런 모던 영화들을 뒤늦게 보기는 했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이 씨네필들이 그것을 동시대적 경험을 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영화가 고전주의와 결별하고 모던한 영화의 시대로 들어설 때, 그래서 영화가 고전주의 시대에 19세기 예술의 전통을 그대로 껴안고 오페라나 아니면 펄프 소설들이나 또는 보드빌 연극이나 만화나 인상주의 그림들이나 혹은 인상주의 음악들, 그 전통을 고스란히 껴안고 영화를 만들었던 그 시대의 고전주의, 그것에 대해서 영화는 끊임없는 무게를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가 아닌 것을 통해서만 영화를 이야기해야 됐었습니다. 그러나 모던 영화의 도착은, 질문했습니다. 영화에 대해서 영화의 자의식을 갖고 그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사유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모던 영화의 도착과 함께 카메라가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들은 그 경험을 미처 갖지 못했습니다. 그걸 그냥 건너뛰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그 순간, 그러니까 영화의 모던함이 도착했었던 바로 그 순간, 남한의 근대사는 박정희를 맞이한 겁니다.



그 이후 좀 더 정확하게 1961년부터 광주를 거쳐 노태우의 올림픽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냉전이데올로기 속에 살아왔습니다. 물론 90년대가 저는 한국이, 남한이, 남북한이 냉전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토록 철저한 무게 속에 그 80년대까지 고스란히 살았었을 때 매우 유감스럽게도 씨네필들은 영화 그 자체를 성찰할 수 있는 동시대적 경험을 획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뒤늦게 도착한 것, 밀처져 도착한 것, 그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이 90년대의 자생적 씨네필 세대에게는, 자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도착증의 증세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 기이한 합병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 이 새로운 자생적 씨네필들은 세가지 증세 중에 하나를 하여튼 껴안아야 됐었습니다. 그 첫번째는 허기진 탐식증에 시달리는 씨네필입니다. 무조건 봐야겠다라고 닥치는대로 보고, 그 보다못한 것을 답답해한 나머지 빌려온 비디오를 데크에 걸고서는 패스트 포워드로 보고 그리고 편수 메꾸기에 시달리는, 그러면서 과거 영화들을 허기지게 뒤져나가는, 그 네크로필리아적인 시체애호증의 증세가 그 첫번째일 것입니다.



두번째 증세는 뒤죽박죽의 타임머신을 탄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 체계없이 닥치는 대로 보는 겁니다. 그렇게 영화를 봄으로써 영화와 영화 사이에 놓여있는 상호영향관계라던가 인과관계나 또는 그 역사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보지 못하고 그것을 그냥 뒤죽박죽으로 마치 타임머신에 실려 이 시대와 저 시대를 건너뛰듯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영화담론은, 영화에 관한 지식은 거의 미친 상태가 되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비유법으로서가 아니라 아주 엄격하게 정신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 자생적 씨네필이 앓고 있는 정신병은, 그러니까 그 영화를 쳐다볼 수 있는 타자의 자리도 없고, 내가 그 영화를 보고 있다고 나 자신의 자아를 성숙하게 느낄 수 있는 그 주체의 자리도 없는, 그러니까 오직 타자를 대신하는 가짜 타자, 소문자 타자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을 거기 세워놓고, 그것을 우상숭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거기에 호소하는 영화적 에고 사이에서 애매하게 버팀목을 설정하고 영화를 보는, 그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겁니다.



세번째 자생적 씨네필시대 세대들이 앓고 있는 병은, 사실 이게 가장 끔찍한 피해입니다. 컬트 증후군입니다. 성찰도 없고, 지식도 없고, 그렇다고 이 영화를 다 보자니 자신도 없고. 백년의 영화를 다 보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댑니다. 그러다보니 남은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기이한 영화만 골라서 찾아보면서 그걸 갖고 뽐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에는 상대에 대해서, 영화에 대해서 사랑하기는 커녕 영화를 상대로 환상적 새디스트가 되는 겁니다. 즉 자기 자신을 초자아의 자리에 갖다놓고, 영화가 아니라 자기를 초자아의 자리에 갖다놓고, 입법의 자리에 갖다놓고 그리고 자기가 법을 집행하고 싶어하는, 자기 멋대로 영화사를 쓰고 싶어하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영화에 대해서 사랑하고 있다라는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런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를테면 씨네마떼끄에서 고전영화를 할 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존 포드의 위대한 영화들이나 하워드 혹스의 영화들이나 박스오피스의 영화나 히치콕의 영화를 할 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오시마 나기사나 파졸리니의 정말 보기 힘든「살로」같은 영화들을 할 때에는 미어터지게 몰려드는 이 기괴한 상황이야말로 저는 자생적 씨네필들의 비극이자 슬픔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은임
90년대 한국사회에 자생적으로 태어난 그 씨네필들, 그러니까 영화 탐식증이라고 할까요? 아무 영화나 편수채우기로 닥치는 대로 보는 것, 그리고 타임머신을 탄 듯 뒤죽박죽 영화의 컨텍스트는 생각하지도 않고 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좀 전에 말씀했었던 컬트증후군에 가까운 기이한 영화보기로만 몰려가는 정신병적인 어떤 경향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정말 맞거든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영화의 모더니즘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래서 영화의 역사에 있어서의 한 시대를 그냥 건너뛰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한국 사회에 그 특수한 근대사가, 현대사가 만들어낸 그런 귀결인지, 아니면 그 밖에 어떤 다른 원인이 있는지 문득 우리나라의 이 씨네필이 왜 이러한 모습이었을까 라는 것에 대한 좀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정성일
다소 경박스럽게 표현하자면, 저는 역사는 반드시 게임 값을 치루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하의 식민지역사, 1950년에 우리가 경험했었던 그 한국전쟁, 1961년 군사쿠데타로 시작해서 30년을 냉전이데올로기에 몰아넣었던 그 억압, 이 모든 것들이 지난 백년 동안 한국의 역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게임 값을 고스란히 치루는 것입니다.

정은임
영화에서두요.

정성일
저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얘기해드렸었던 자생적 씨네필이 던지는 메세지는 단 하나라는 것, 그것이 '억압된 것의 귀환' 이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귀환' 이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정말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징후들이 나타날 때 정영음은, 그러니까 바로 이러한 징후들과 싸워야 될 바로 그 순간에 중단되었다는 겁니다. 즉 싸워야되는 바로 그 전선이 세워지는 순간 씨네필 문화에서 우리들은 매우 비극적으로 정영음의 마지막 방송을 들어야 됐었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것입니다.

정은임
참. 뭐랄까요. 제가 여기서 드릴 말씀이 없는데, 음악이 일단 쉼표를 찍겠습니다.「베로니카의 이중생활」중에서 음악을 한 곡 들어볼까요. 이성민씨가 신청하신 곡이거든요. Zbigniew Preisner의 영화음악 "puppets" 입니다.


"The puppets" composed by Zbigniew Preisner

정은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중에서 "puppets" Zbigniew Preisner 의 음악이었습니다. FM 영화음악 씨네마떼끄, 오늘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함께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씨네필의 문화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고 계신데 중간에 계속 그 FM 영화음악 말씀을 하시는걸 보니까 마음이 조금 불안합니다. 계속 언급되는 걸 보니 언젠가는 그 화살이 제게로 날아올 것만 같거든요? 여하튼 말씀을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정성일
그래서 저는 질문해보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씨네필은 누구인가? 모두가 지금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영화를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특권이 되는 것은 정말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씨네필은 하지만 결국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씨네필과 노동자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건 국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씨네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는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씨네마떼끄에서, 서울씨네마떼끄에서 저는 허심탄회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씨네마떼끄에 찾아오는 정말 관객은 몇 명입니까. 서울씨네마떼끄의 담장자가 저에게 얘기하기를 520명이랍니다.

정은임
520명이요.

정성일
인구 2천만명이 살고 있다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씨네마떼끄를 찾아오는 사람이 520명입니다. 허 샤오시엔의「밀레니엄 맘보」가 개봉하였습니다. 저는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영화를 보기 위해서 갔습니다. 토요일 날 개봉한 영화가 월요일 날, 첫 회에 단 한 명의 관객도 들지 않은 채 영화관에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날 오후에 프로가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서울의 영화문화의 현주소입니다. 반면에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 고작 4700만 인구인 나라에서「친구」라는 영화 한 편을 820만 명이 봅니다. 그건 여섯 명 중에 한 사람이 봤다는 얘깁니다. 목욕탕에서 여섯 명을 만나면 '「친구」본 사람?' 그러면 누군가 손 든단 뜻입니다.「반지의 제왕」을 지금 420만명이 보고,「실미도」를 380만명이 보았습니다. 이것은 씨네필의 지표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생각은 매우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한 편의 영화를 몰려가서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뒤집으면 실제로 영화 선택의 폭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해 흥행 1위라는 말과 그 영화가 수십번 다시 보아도 또 볼 만한 영화라는 말은 서로 아무 상관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씨네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 열정은 제 생각하기에, 그 열정은 잘못 유혹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씨네필들은 이상하게도 중심의 영화담론에 참여하는 것이 씨네필의 조건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도착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사이비 영화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영화산업과 영화저널이 서로 주고 받은, 서로가 서로를 끌어들이는 협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입니다. 즉 씨네필이라면 지금 정말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은「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이나「실미도」가 아니라 정말 당신이 씨네필이라면 당신이 미치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바다 건너 NHK BS2 프로그램에서 지금 거의 매일 공중파를 타고 날라들어오는 오즈 야스지로의 백주년 기념 전작 방영입니다. 만일 이 목록은 정말로 당신이 보기만 한다면, 씨네필이라면 두근거리는 심장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동경현대미술관에 가지 않으면 당신이 서울에 있건 뉴욕에 있건 빠리에 있건 베를린에 있건 볼 수 없었던 영화 목록의 연속입니다. 오늘 밤에도 방영되고 있습니다. 정말 저는 위대한 오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오즈 영화 한 편과 맞바꿀 수 있는 헐리우드 영화는 오직 존 포드의 영화 한 편 뿐입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라 벤더스의 말입니다. 혹은 동경대 총장이였었던 그리고 불문학자로 잘 알려진, 여러분들께서 아마도 일부 팬클럽이 있으실 그레따니 고신과 한 번 맞겨룬 적이 있었던 하스미 시게히코는 아주 유명한 영화광이기도 합니다. 그 하스미 시게히코가 한 말 중에서 이 사람 정말 씨네필인 것을 새삼 마음 속에 느끼게 만든 순간은, 시게히코가 말합니다. 영화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사건 중에 하나는 2차세계대전 도중 왜 오즈가 헐리우드로 망명가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일본인인 하스미 시게히코 그렇게 말합니다. '프릿츠 랑이 무르나우가 망명가서 위대한 영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오즈가 그렇게만 했다면 우리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또 하나의 멜로드라마 영화들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이것이 씨네필의 마음이고 씨네필의 정신인 것입니다.



씨네필들과 대화하면서 제가 항상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영화를 잘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이것이 진짜냐 가짜냐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온갖 영화이론, 온갖 문화이론, 온갖 철학적 개념은 그 다음 문젭니다. 페미니즘이 됐건, 포스트식민주의가 됐건, 트랜스내셔널리즘이 됐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분석이 됐건, 무엇이 되었건 그건 영화를 잘 본 다음에 해야될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지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영화 저널리스트 중에 한 명이 영화 자기 홈페이지에 '좋은 영화 글을 쓰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나요' 라는 한 독자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기를, '영화는 왠만해서 보이기 시작할 터이니 중요한 것은 그걸 잘 풀어낼 수 있는 교양을 쌓는 것' 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전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안보이는데. 영화 7천편을 봐도 잘 안보이는데 무슨 재간으로 '대충 보면 다 잘 보이는 것이니 교양만 쌓으면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이라는 그 말을 어떻게 감히 할 수 있는지. 프랑스의 철학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들뢰즈가 두 권의 영화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철학책을 썼습니다. 그 책이 정말 제게 신뢰를 주는 것은 철학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이 철학자가, 들뢰즈가 정말 영화를 잘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은임
질문을 하죠. 영화를 잘 본다는 게 어떤 의미죠?

정성일
영화를 보고, 그 영화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그것을 듣고,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깨우쳐 거기에 대해서 소통하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말은 마지막 말, 소통에 있습니다.

정은임
소통이요? 가끔 영화감독들도 자신의 영화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다른 방법으로 여러가지 통로로 해석되는 것을 보고 그럴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 것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이 되길, 과연 그럼 내 멋대로 영화를 봐도 된다는 말인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영화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 혼동이 되거든요.

정성일
폴드망의 말을 여전히 저는 인용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모든 문학비평의 역사는 오독의 역사였다' 는 그 말을 여전히 저는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리 이글튼이 말했습니다. 이글튼이 말하기를, 자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든 문학작품을 다 때려부시고 다 쓸모없는 것이며 위대한 작품이란 필립 K 딕의 SF 소설같은 것이라고 말할 때 나는 반문하고 싶어진다' 고 이글튼은 얘기합니다. 자, 모든 문학의 역사를 무효로 만들고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었을 때에도 결국 도스또옙스키는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아내는 것입니다. 모든 음악을 무효화시키고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얘기해도 결국 위대한 것은 모짜르트나 베토벤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지성의 비극 중의 하나는 제가 존경했었던 이 문필가들이 정작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갑자기 바보 같아진다는 겁니다. 거기 동원된 철학적 개념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정작 영화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젼혀 보지 못하는 순간 그건, 그 글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온갖 개념과 이름들이 허우적거린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생각하기에 수많은 한국영화들은 정말 엉터립니다. 대부분 쇼트와 쇼트가 붙지도 않고 시선은 엉뚱한 데를 보고 있고 씬과 씬은 연결이 안되는데도 그냥 이어놓고 있습니다. 배우들은 더 가관인데 소리만 지르고 표정만 쓰고 있으면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텔리비전이 한국에, 이 땅에 영화관객들을 훈련시킨 결과입니다.



씨네필들은 여기에서 관심을 돌려야 됩니다. 혹은 관심을 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정말 씨네필들은 무슨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라더라 이따위 정보는 정말 잊어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발견입니다. 이것이 첫번째입니다.



두번째는 교양을 쌓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영화와 교양을 잡종교배시키지 마십시오. 그 대신 영화에 눈돌리고 영화에 귀기울여서 그 영화가 하고 있는 말을 깨닫기 바랍니다. 씨네필의 대화는 거기서 시작해야 됩니다. 테제로 말하는 걸 허락하신다면 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경쟁하지 마라, 대신 소통하라.' 저는 이렇게 하소연하고 싶습니다.



세번째는, 세번째 저의 전언은 '영화의 저 미쳐버린 듯한 소비의 속도에 저항하라' 고 말하고 싶습니다.「반지의 제왕」이 성공을 하거나 말거나「실미도」에 손님이 들거나 말거나 그건 씨네필의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비의 속도를 늦추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 장사꾼들을 미치게 만들거나 또는 팔기 위해서, 영화를 팔기 위해서 저 미쳐날뛰는, 그래서 여러분들을 티켓 한 장으로 생각하는 저 악질적인 유혹과 맞서싸우십시오.



정영음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함께 손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새벽 3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듣고 있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정은임
네. 자 결국은 오늘 정성일씨의 말씀은 저희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제작진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하시는 얘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는데요. 음, 씨네필. 자 정성일씨와 함께 이 시대 씨네필들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길 했는데 이야길 했다기보다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씨네필들의 문화라기보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될지에 대한 테제를 말씀해주셨어요. 굉장히 투쟁적이 되는데요. 이 투쟁적인 기분이 오래간만에 들어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근데 마지막으로 아주아주 보통 청취자의 목소리를 빌려서 한가지만 질문을 드릴께요. 왜 씨네필이 중요한가요? 왜 씨네필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나요?

정성일
오직 그들만이 이 소비에 미쳐버린 영화 산업 속에서 영화가 예술임을 믿고있는 유일한 방부제이기 때문입니다.

정은임
네. 유일한 방부제. 씨네필. 근데 현재 씨네필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방부제가 아니거든요. 진정한 방부제가 되길 바라구요, 정성일씨께서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셔서, 우리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뭐가 뭔지 모르는 이 영화담론 한가운데에서 좀 다른 이야기, 정신 좀 버쩍드는 이야기 좀 계속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있다면.

정성일
『말』지 이번호에 정은임씨의 인터뷰가 실려있습니다. 아마 열혈 청취자분들께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드디어 간택되었다는 기사가 실리자마자 제 이메일 앞으로 정말 80통이 넘는 신청곡이 왔었습니다. (그래요?) 그 중에 한 분을 제가 선택을 했습니다. 그 분의 사연이 제 심금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말씀인 즉슨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사랑에 실패하고 매우 괴로워 했답니다. 그 소녀의 이름이 '세영이' 라고도 하고 '화강암과무지개' 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소녀를 우연히, 하지만 제 시간에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두사람은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8년 전 같은 시간에 잠들지 못하면서 같은 방송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운명이라는 모티브, 그러니까 그들이 긴 시간동안 그 사이에 개입하고 나섰던 시행착오가 결국 여기 이렇게 도착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 저는 이것을 이 두 분 뿐만 아니라 정영음을 8년동안 기다렸던 여러분들과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정영음의 두번째 도착의 의미는 이제 저는 분명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영음은 부채를 갚아야 됩니다. 정은임씨와 임재윤PD께서 정말 부채를 갚아야 됩니다. 그것만이 두 분을 기다렸던 이 정영음을 기다린 씨네필들의 기다림에 대한 부채를 갚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항상 편지는 목적지에 제 시간에 도착하는 법입니다. 정말 여러분들과 행복하게 함께 있고 싶습니다. 신청곡은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입니다.

정은임
자. "해피 투게더" 들으면서 정성일씨와의 첫번째 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성일
감사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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