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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out 2035?

최신시사상식 2007. 11. 6. 02:21

 오늘 수업이 끝나고 잠시 명동에 나들이를 갔다. 남대문 시장에 들렀다가 경희와 돈까스를 먹은 뒤 명동역쪽으로 가던 길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명동역 앞서 '돈질' 좀 한 정치집회 현장을 봤다. 연단을 만들어놓고 록으로 편곡 녹음한 '거위의 꿈' MR에 맞춰 한 여자가 솜씨없는 노래자락을 주워섬겼고, 청중들은 피켓팅하며 알아듣기 힘든 말로 연호했다. 처음엔 뭔가 연예인을 부른 이벤트려니 했는데, 들고 있는 피켓을 보니 투표권을 행사하자는 둥, 젊은 세대들이 정치를 해야하는 둥의 내용이 적혀 있어 아 정치집회구나 했지.

 그저 일별했을 뿐인데도, '아 왠지 저들은 뉴라이트계열인 것 같다'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방금 정치기사 몇개를 훑어보다가 생각나서 피켓에 적혀 있던 웹사이트에 접속해보았지만 아직 사이트가 오픈되지는 않았다. 뉴스검색을 해보니 최근 발대식을 가진 뒤 바로 어제 명바기를 초청해서 무슨 강연을 들었다고 한다. 대충 스스로 주장하는 정체성은 '포스트-386 세대 모임'인 모양인데, 아직 뭐 뚜렷한 태도를 적은 글 따위를 찾지 못해 알 수는 없지만



이념과 기성세대를 거부하고 실용을 중시한다고 쓴 감성적 개인주의자가, 무슨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걸까? '실용적인 정치'라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정치는 가장 비실용적인 어떤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악은 실용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칠팔년 전 나는 꼭 같은 그 자리에서, 롯데호텔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에 앉아 있었다. 나는 당시 고교2년생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PC통신에서 만난 '아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 줄 안 것이 거기였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공동 롯데호텔 시위 현장에서 손도끼를 든 용역깡패에게 쫓겨나왔다고 울분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은 그것뿐이었다. 그들의 고용조건이 어땠고,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며, 요구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그런 정신으로 소설을 썼고 사회학과에 왔고, 그때보다 조금은 더 배웠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다만 명동에 가면 그저 보기 좋은 옷과 먹기 좋은 음식을 탐할뿐. 부끄러운 일이지만, 멈추지 않는다.

 언젠가 경희에게, 우리 세대는 사회의 선악을 자신의 호불호로 가늠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적이 있다. 그리고 호텔 커피숍이나 스타벅스에 앉은 '친미 엘리뜨'와 홍대까페에 앉아 예술을 논하는 '쁘띠 부르주아'와, 대중화된 축제로서의 정치집회인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소시민'들이 있다고 한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내가 뱉은 말로 인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나는 친미 엘리뜨와 쁘띠 부르주아와 소시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사람이었으니, 사회의 선악을 운운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었고, 언제나 결국 내 깜냥을 못 넘고 내 호불호에서 모든 것을 사유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곤 했다.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한 것은 스스로가 겪어야 했던 차별과 핍박과 고뇌를 이젠 개인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감내할 수 있으며 대신 이미 주어진 고정관념과 싸우겠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의미가 있다. 저들의 정치적인 '커밍아웃'이 과연 그들에게 가해졌던 어떤 차별과 어떤 핍박과 어떤 고뇌 때문이었는지가 궁금하다. 나는 그들의 '커밍아웃'이,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질서를 거부하기 위한 것인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질서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 따위의 알량한 죄책감을 면하기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정치는 '무엇이 선인가', '모두에게 좋은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여 권력의 작동방식을 고안해는 투쟁의 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다. 나는 저 젊은이들의 '커밍아웃'의 불손함이 불안하다. 롯데호텔은 여전히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있고, 칠팔년전이나 지금이나 이랜드의 노동자들은 괄시받고 있으며, 세상 모든 빈곤은 해결될 기미가 없다. 나는 '실용'을 말하기 전에 먼저 말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정치'를 하겠다고 '커밍아웃'을 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덧붙이면..
 최근 읽은 정미경의 단편 <모래 폭풍>에 등장하는 한 한심한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 '실용주의는 밀수꾼의 철학이야. 수연아. 가사노동은 기쁨도 보람도 운동도 되지 않는 시간도둑일 뿐이다. 그 시간에 시를 읽어.' 좋은 말이지. 그러나 그 한심한 남자는 생활력도 없고 주제도 모르며, 그저 값싼 낭만주의 시대의 낭만을 쫓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호생심 가득한 주인공 화자인 애인에게 상처를 준다. 정미경이 그리고 있는 풍경은 사막이다. 나는 어쩌면 그 한심한 주인공 남자와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덧붙여 2.
 이 이미지도 같이 검색되었는데,
 가운데 있는 MB가 명바기의 이니셜이 아니길 빈다. -_-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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