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바람이 냉장고 문 열고 고개쳐박을 때처럼 콧속을 쨍하니 아프게 하는 시월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올 한해를 얼마나 비루하고 미천하게 살고 있나 짐짓 실감해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새 서른이 차근차근 오고 있고, 나는 죽는둥 사는둥 무신경하게, 주변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잠에서 깨나 다시 잠들때까지 별반 의미없는 섭생나부랭이를 반복하고 있다.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목표의식이 더 불명하다. 심지어 내가 누구를 친애하고 무엇을 대적하는지도 지금은 온통 오리무중이다. 그저 지난날의 가진 관념들이 관성으로 남아 의식무의식적으로 사리를 분별하려 해 보지만, 실은 다 값없는 속단들이고 그래서 실은 죄다 틀려먹은 명제들만 남는다.
이게 자본주의적인, 소외된 삶인가? 맑스니 뭐니 하는 이들의 말을 백날 옮겨놓아도 적당히 먹고 살만한(엄밀히 말해 그렇다고 느끼는) 삶을 사는 필부필부 인생들에게는 그 전언의 진위를 판별할 최소한의 인식적 혹은 도덕적인 여력도 남지를 않는 모양이다. 하긴, 배운 넘들과 배부른 넘들도 다 그모양인데, 정신차릴 틈도 없이 사는 이런 인생에 무슨 성찰과 회의가 깃든단 말인가.
이렇게나 저렇게나 살아가다 문득 이 얄팍한 물질적 토대의 외피가 깨져나가게 되면, 그때그순간 매일 가일층 왜소해져간 존재들은 스스로의 무존재함이 얼마나 가이업고 또 두려울 것인가. 해고 노동자들, 별안간 가족과 동지를 잃은 사람들, 돈 때문에 어떻게 하려 해도 뭐가 안되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공포를 새삼 가늠해보면, 아아, 월급쟁이가 되어가면 그 영업권에 대한 이자비용으로 내 영혼의 일부를 야금야금 떼어갔구나, 내 마음이 순식간에 이리도 가난해져갔구나 싶어지며, 예전보다 오히려 더 짙은 경제적 공포와 고독에 휩싸이고 만다.
상스럽거나 범속한 일들에 조금 더 대범하고 싶고, 온당하고 경이로운 일들로 감복하는 삶이 되길 바라보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영수증 한장 더 만들어내는 일밖에 없어서 슬프다. 솔직하고 싶고 솔직한 말 사이사이로 살짝씩 수줍어 보고 싶은데, 마음이 울리지 않으며 입술이 떨어지지 않고 눈길은 가 닿지 않으며 손길은 까슬거리는 것이.. 죽은 자처럼, 무덤 속에서 걸어나갔다가 다시 무덤 속으로 돌아오는 것같만 같다. 인간의 연대와 인간의 공감과 인간의 사랑이 무척 그립지만 난 이순간도 또 어사무사한 말을 채운다.
하여 이토록 말이 많으나 이 말들은 모두 다 죽음처럼 조용하기만 하리라 싶어 쓸쓸한 가을이네.
나는 서른 해 가까이를 사는 동안 한 순간도 강건한 육체를 가져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땐 무척 마르고 허약한 체질이었고, 술이 늘면서 뱃살도 늘었으며 내 헐벗은 몸뚱아리는 참으로 보기가 좋지 않다. 그에 비하면 머리 회전은 그래도 제법 명민한 편이지만, 그게 사실 영재라거나 감각적인 데에 발달한 건 아니다. 오히려 따지고보면 대기만성형에 가까웁다.
나는 따지는 걸 즐기는 편이다. 내 인식론을 굳이 분류하자면 사실 불가지론에 가깝고(내 인생의 모토는 오랫동안 "이게 다 뭐란 말인가?"였다), 굳이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실재론적인 비판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일테면 포퍼에 가깝다(혹은 로이 바스카). 세상에 이유 없는 것이란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 가지 판단을 내릴 때에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최종적인 판단 바깥에 남아 있을 예외라는 잉여를 항상 염두에 둔다. 개념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해 집착하고, 의사소통 쌍방간의 공리와 합의를 중시한다. 기본적으로 공감 혹은 감정이입(empathy)을 의사소통의 기초로 삼는 사람들과는 사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편이다.
정치적으로는 질적 공리주의 혹은 정치적 자유주의를 선호하되, 현실정치에서는 중도 사민주의에 마음이 간다. 시장원리를 부정하진 않지만 이데올로기에 대해선 늘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원래 그러한 것, 당연한 것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공동체중심의 자유주의에 공감하며, 그래서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역설적으로 민족주의자이기도 하다.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태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한만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소통은 지난하며, 승인엔 첩경이 없다. 역설적으로, 그런만큼 인연을 중히 하고 사랑은 기적으로 여긴다. 그 하고많은 어려움들 속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까닭이다.
..라고 생각해왔던 요즘, 하나같이 인생이 어사무사하다. 스스로를 위해 마련해둔 명제나 수사들이 죄 맞지가 않다. (몸뚱이가 저질이란 건 안타깝게도 유효하지만) 하루하루 신속정확한 계량적 판단을 요구받고(판단의 수준이 높지 않고), 거의 매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술먹고 놀고, 국내 제일의 재벌 기업(그것도 그 모태라 불리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문득 지독하게 외롭다. 인간관계는 좀처럼 모색이 쉽지 않았다. 사람사이는 상호 호혜라는 게 없다. 내가 맘 가는 사람에게 그 맘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에 보답할 의무가 없다는 뜻이다. 그걸 알면서도 문득 부아가 치밀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면서도 맘가는 사람에겐 맘이 가며 맘가지 않는 사람은 냉대하게 된다. 엇갈리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기왕의 쓴 맘들에 맘이 쓰곤 하다.
이토록 내 속에 내가 많은 요즘인데, 실은 통 스스로를 소중히 못하고 업신여겨오는 것이 당연한것만 같은 나나나날들이라 새벽잠 무릅쓰고 나나나 포스팅. 할말이 더 많은 것 같지만 그만 써야지.
엄마가 그랬다. 나는 걸음마를 배우지 않았다고. 돌이 지나서도 앉아만 있다가, 어느날 번쩍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다녔다고 한다. 내가 원체 성격이 그렇다. 실수하는 걸 싫어하고, 최대한 많이 생각하고 시작하고 싶어한다. 살아간다는 건 자기 자신을 버려간다는 것일까? 업무를 시작하고나서부터, 정말이지 태어나서 가장 속수무책이었던 것만 같다. 갖가지 실수들로부터 업무가 돌아가는 방식들을 많이도 배웠다-_-. 덕분에 좀 무던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단순 전산 작업이 9할인 업무에 대해 마냥 만족스럽진 않다. 그래도 이 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이래저래, 자본주의의 가장 막강한 실체인 '회사'와, 그 실체의 행위인 '거래'에 대해 조금이나마 잘 알게 되서.. 기분이 퍽 삼삼하다.
지난달의 주말들은, 지난 한달만큼이나 다채롭게 바빴다. 3월 한달동안 가장 빨리 퇴근한 것이 여덟시 반이었고.. 날짜를 넘겨 귀가하기 일쑤였다. 사월이 되니, 그나마 좀 사정이 나아서 주말에는 아직 다 한 번도 출근하지 않았다.-_- 온 종일 뭔가 정신 없이 일을 하다가도, 저녁을 먹을 때쯤 되짚어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가 되었고, 금요일이 되고 주말이 되면 마음이 허하다가도 주말동안 해야지 싶었던 일들을 맘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두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넘어가 버린다. 그래도 어제는 무려 최신 트렌드 '직딩 미팅'을 성사시켰으며.., 오늘은 한달간 미뤄두었던 옷장정리를 마치고 비교적 깨끗해진 방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원래는 무척 바쁜 주말이 되었을 예정이었던지라, 작정하고 놀아야지 하고 있었던 이틀이었는데.. 여차저차 문밖을 나선 시간은 단 십분도 채 되지 않았다. 취소된 약속이 썩 반갑지는 않았던 걸 보면 지난 한 주가 좀 많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나가서는 담배 한 갑, 요구르트 한개 사 온 게 전부. 집밖을 안 나서니 피워문 담배도 이틀동안 세 개피. (라고 적어놓고 이 글을 쓰는 동안 한 개피를 더 피우고 와서 이제 네 개피) 집에서 고기 굽고 동생 나가는 길에 사다준 기네스 두캔에 과자에,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이월의 마지막 나날들.
어제는 오랜만에 하루종일 창문 열어놓고서는,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방구석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서 빨리 이 집을 떠나야지'라는 맘만 다시 새기고 청소니 정리니 하는 걸 포기했다. 산들산들 들어오는 바람에 봄이련가 하고서는, 긴팔티셔츠에 후디까지 껴입고는 방문 닫고 나와 거실 소파에서 본편보다 광고가 더 많이 나오는 미드 시리즈를 잠결속에서 보는둥마는둥하다가 방에 들어와 창문 닫고 본격적으로 잤다.
여러모로 혹독한 겨울이었다. 휘청거린 적도 많고, 발발 떤 적도 많고, 눈앞이 캄캄할만큼 길을 나서기가 힘든 일도 있었고, 속앓이도 심했고,그러다보니 위로 아래로 많은 걸 쏟아냈던 시간들이었다. 그사이 장장 육개월이 넘는 입사 연수가 끝나고 명함을 받았다. 학창 시절에 그토록 비웃었던 '관리의 XX'라는 회사의 '경영관리팀', 학창 시절에 그토록 안쓰러워했던 회계사 셤 공부하던 친구놈들이라면 우스워보일, 경비처리하는 일반 회계업무를 한다. 불과 반년전만해도 막연히 나는 미디어 아니면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전표와 재무제표에 적힌 증빙자료를 검토하는 데에는 맥루한도 소쉬르도 별반 도움이 되질 않는다. 패션 인더스트리에 입성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난 일반 제조업, 혹은 조금양보해 유통(직매)형 제조업 시장의 경리사원이 되고 말았다. 굉장히 표준적이기에 조금은 지루해 보인다, 나의 이십대 끝물이 말이다. 여차저차 '1지망'으로 쓰고 들어온 팀이니 어디 불평하기도 그렇고..그냥 뭐 열심히 해야지. 군대 있을 때처럼.
2월 한 달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금명간에 와서 갑자기 시간도 공간도 녹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천십년도 이천십일년도, 그리고 내 나이 스물여덟이 그리고 스물아홉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질 않는다. 나에게 어떤 불연속점이 생겼다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짧던 사랑놀음도 끝나고, 짧지만은 않던 식자연하는 시간도 끝나 버렸기 때문인가보다 싶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나라는 인간에 대한 자의식 자체가 엷어져버린 것 같아 홀가분하다가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 같아 불안불안하기까지 하다. 마치 봄같이, 얼어있던 눈사람같던 내가 녹아서는 바닥에 흥건히 젖은 채 말라가길 기다리는 것같다는 기분까지 든다. 하지만 다시 영하 사오도. 맘을 다시 단단히 하고는 일어나서 걸어야겠지.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담배를 피우느라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 부는 꼴이 심상찮다. 내일은 또 추울 것 같다. 낮에 동네 한바퀴 돌 땐 쌓여있던 눈들이 거짓말처럼 녹아 아스팔트 위에 고여있기도 했는데, 마치 봄 같이 사람맘을 싱숭생숭 녹여놓고는, 다시 얼어붙게 만드려나 보다. 내일 또 휘청거릴까봐 두렵다. 징이 박힌 신발을 신고 자박자박 걷고 싶다.
할 말은 많은데 누구한테 해야할지 모르겠고, 누군가를 생각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을 때 사람은 가장 외롭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분명할 때, 하지만 용기가 없어하지 못할 때의 설렘과 불안이 차라리 쉽지 싶다. 봄이 오면 그렇게, 호생심이 살아났으면 하고 희망해 본다.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가족 얘기니 엄마 얘기를 하는 시시한 남자애가 되고 싶진 않다. 돈 얘기나 혹은 끽해야 옷 얘기나 주워섬기는 재미없는 인간은 더더욱 되기 싫고. 어찌되었건 곧죽어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 논하는 근사한 인간이 되어 봄을 맞아야지. 그래도 굳이 옷 얘기를 덧붙이려는데(난 패션회사에 다니니까), 올리브색 혹은 옐로카키빛 트렌치코트와 카멜색 태슬로퍼가 갖고 싶다. 왠지 내가 나라는 동일성을 확인해주는 건 이런 사소한 물욕뿐인 것 같기도 하다. 기분이 참 묘하다. 한시퀀스에서 다른 시퀀스로 디터-디졸브되는 한 프레임을 가만히 응시하듯 이 글을 쓰다가
'입사'한지 반 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교육중이다. 이리도 많은 것을 가르쳐가며 천만원이 넘는 돈을 통장에 넣어주는 회사가 이해가 가질 않으면서도(근데 그 돈은 다 어디에 간거지?)..이 부의 원천도 실은 어디의 누군가의 노동으루부터 비롯된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면서, 두려움은 줄고 오히려 막연함은 늘고, 차츰 미안해진다. 오늘보다 내일 더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오늘 만난 그는 십년동안 알고 지낸 친구였는데, 십년만에 처음으로 가장 우울한 모습을 보았다. 멍하니 창밖보는 모습이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도닥인다. 사실 아직 손에 쥔 카드가 많은 그는 분명 며칠 뒤에 잘해낼 것이고, 나보다 더 잘살겠지만,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고 나는 위로할 깜냥이 있으니까..
오고가는 길에, 십이월 마지막 한 주에 일했던 백화점 매장에 가서 함께 일했던 분들께 비타오백 한병씩으로 간단히 새해 인사를 갈음했다. 그 길에 흩는 눈발이 있었고, 정처없이 허공을 맴돌다가 차들이 휩쓸리고 인파에 밟히며 보도의 어느 한 자리에 누웠다가, 선배들 틈에서 얼거나 녹거나 흐르거나 한다.
지난해부터 참, 겨울이 겨울답다. 겨울마다 원래 눈은 원래 많았던 것인지. 또 이리도 추운 것이 온당한 것인지. 아직 명도가 다 올라오지 않은 사위를 헤어나오는 평일의 아침마다, 자박자박 발 밑으로 아직도 하얀 알갱이를 밟는다. 몇주동안 녹지도 얼지도 흐르지도 않던 것이 오늘은 누군가 뿌린 염화칼슘과 섞여 슬그머니 아스팔트 속에 스미고 있다.
인종갈등이란 주제를 재난영화의 문법으로 푼 토미 리 존스 주연의 십칠년전 영화 '볼케이노'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흑인 백인 황인이 화산재를 뒤집어쓰고 허옇게 변한 모습을 보고 한 꼬마는 '우리 모두 똑같아요!'라고 외치는, 참 누가 봐도 뻔하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장면이 있다. ...밤새 하얗게 쌓인 눈은 이 성채같은 도시의 정주민들을 각자의 자리'로부터'('-에'가 아니라) 고립시킨다. 무슨 말이냐면, 눈이 오면 세상은 신세계가 되고, 정주민들은 속절없이 하얗게 변한 세상에서 낭만에 젖거나 혹은 투덜거리거나 하며 눈[snow] 때문에 부신 눈[eye]을 부빈다. 앞으로 펼쳐질 삶을 여생으로 여기게 되는, 길가다 어깨 부딪치면 열에 아홉일 '회사원'이 된지라 눈오는 날의 고생스런 출근길이 주는 세속적 고난에 대해 매일매일 체험하면서도.. 그래도 눈쌓인 풍경이 주는 평등과 박애의 감상을 잃지 않았다는 게 새삼 다행스럽다.
'지난해'가 된 2010년 하반기에 나는 참 많은 일을 겪었다. 마음 아픈 일이 많았고, 즐거운 일도 더러 있었다. 그 통에 좋은 사람들을 새로 알게 되고, 크리스마스 이브도, 해가 바뀌는 순간에도 회사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였다. 일주일 내내 보아놓고는 그들과 또 무슨 재미가 있겠냐 싶다가도, 사실상 '전우'인 그들과 지리멸렬한 맥락을 벗어나 일탈하고 싶어지는 마음들을 이제사 이해하고 나니, 인생의 많은 순간들이 서로 교통하지 못하고 서로 배반하고야 마는 것이야말로 종종 생을 다채롭게도 하고, 고통스럽게도 한다는 사소한 진리를 맘에 새기게 된다.
이삼년동안 블로그, 로 옮겨와서 연말이면 늘 연말결산 하며 '올해의 뭐뭐'를 운위했는데, 그냥 올해는 생략해야지.
'우리'라는 대명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그게 가족이 되었든 연인이 되었든 동료가 되었든 혹은 국가나 민족, 인류가 되었든, 오늘날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모처럼 평온한 주말 밤이라, 나조차 찾지 않는 내 블로그에 험블하게 포스팅.
두달간이었지만, 대학원 수업들은 나름 즐거웠던 것 같다. 특히 영화 수업이 가장.. 사실 난 영화가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 여튼 오늘 교수님들께 다 말씀드렸고. 목욜 섭에서 스케쥴 밀린 발제만 해치우면 일본으로 고고.
취업했다고, 제XX직 간다고 했더니 영화 섭 같이 듣게 된 선생님 한 분이 '아 거기 친구 있는데, 상무.. 정X호~' 거참. 내가 괜히 거길 박차고 나온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능. -_- 토니 레인즈와 친분이 있으시단다. 최근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음.
인간들의 연애란 대부분 거개의 양상이 엇비슷하다. 만나고, 헤어지고, 재회하거나, 연을 끊고, 친구로 지내고, 새 연인이 생기고, 옛 연인은 억지스레 부인되거나 은밀한 관계로 남는다. 처음엔 서로를 필요로 하다가, 한때는 부담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상대가 주어이거나 술어로 등장하는 명제를 취해(일테면 'you complete me'나 'to me, you are perfect' 따위) 마음속 도덕률로 삼기도 하고, 혹은 헤어진 뒤 완전히 새로운 삶의 명제를 이끄는 소전제로 전락하기도 하며('love is a lemon', 'no women no cry' 따위), 페르마의 정리처럼 마음의 여백이 부족해 채 결론을 짓지 못하는 그런 무정형의 어떤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사랑밖에 난 몰라 따위'). 마음을 나누거나, 몸을 만지거나, 함께 기념물을 남기거나 하는 일은 어쩌면 그런 모든 일은 한때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생활의 규율이 되기도 하다가도, 종래에는 결국 일기장 한 귀퉁이의 아포리즘이 되거나, 금단의 외경이 되어 깊이 봉인 되기도 한다. 다 비슷하게 말이다.
이런 모든 일을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 것은 일견 합당하지만 참 부당하기도 하다. 인간은 남녀 불문 보통 1미터 70내외, 50~60킬로그램 전후의 체중의, 1.5킬로그램이 채 되지 않는 뇌를 담은 두개골과 2개의 눈과 귀 1개의 코와 입이 달린 안면을 가진 머리 밑으로 몸통과 사지가 달린 수분과 골격과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가지고 70년 가량 생명활동을 한 뒤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처음 20년-30년 가량 양육과 훈육과 교육을 받고 다음 30여년 동안 노동한 뒤, 그 다음 삶은 대개 '여생'이라고 부르는 지리멸렬한 나날들로 채워진다. 대개 한 번 내지 두 번 결혼을 하고 5명에서 10명 정도의 성교 대상을 갖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평균적으로 왠만한 인간들은 질병이나 사고로 수개월가량을 병원 신세를 진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동안 7명 내외의 깊은 교우 관계를 갖는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모국어와 약간의 영어를 구사하고, 하루 세번 밥을 먹고 어두울 때 자고 밝을 때 깬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은 표준적이며 동시에 문화적이다. 그러니까 모든 연애들이 비슷한 양상을 띄는 것은 합당하다. 하지만 동시에, 한 인간의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내 삶'이 '너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대체가능한 표준으로서의 인간의 이 외로운 삶이 현현하는 수많은 부조리와 무의미를 뚫고 행복과 가치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필사적이다. '필사적'이라는 말이 지시하듯 결국 '그래봤자 장기에 우리는 다 죽지롱'이겠지만.. 토템을 부정하고 터부를 혁파하며 마침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려하고, 각각의 관계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불러내려고 한다. 말하자면 낭만주의는 근대의 표준적 삶의 정착, 그 '죽음과도 같은 삶'(말하자면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적인 삶)에 반발하여 등장한 사조였다. 중세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이야기부터,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낭만적 사랑'에는 괴멸하는 세상과 그것을 이기고자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즉 낭만적인 사랑은 감정적 원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표준적 생활양식과 개인의 성(섹슈얼리티)간의 지배 문제이기도 하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두 사람간의 배타적인 사랑이든 대안적인 공동체적인 사랑이 되었든 간에 그것은 항상 섹슈얼리티의 문제이며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항상 생명심과 재생산의 결과를 가리킨다. 즉 우리는 장기에 모두 죽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와 자고 싶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DNA를 재생산하고 싶다'라는 말을 건네게 되며, 이것은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의지의 발현이다. 에로티시즘 혹은 관능은 그런 생명심과 진면목에 관계되는 바가 크다.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그루피들이 '당신의 아이를 낳아주겠어요(i want to have your baby)'라고 외치거나, 경상도 말로 '사랑해'가 '내 아를 낳아도'라고 하는 것은 인간사의 원형이 결국 그렇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에로티시즘은 인간이 필멸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동시에 무한하다는 농염한 언약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낭만적 사랑의 표준적 문화 모형'과 성적인 방종(일테면 프리섹스주의)은 사실 한통속이다. 왜냐하면 그 모두가 사실 참으로 하나도 '에로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에로티시즘은 말하자면 존재에 대한 감정적인 표현 수단이다. 표준적인 모형은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성적인 방종은 성적인 중독에 그 주도적인 지위를 내준 채, 에로티시즘은 거기에서 감정을 위무하고 쾌락을 주고받는 도구적인 기술의 지위로 전락된다. 에로티시즘은 권력관계 혹은 차별로부터 벗어나 동등한 인간의 성숙한 사회관계를 확인해주는 최초의 심급일 때야 비로소 정당한 것이므로, 소비문화의 지배를 받는 낭만적인 사랑이나 중독적인 사랑은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기능 없이 생물학적인 몸, 정신병리학적인 마음에 맞는 몰핀 역할에 다름아닌, 선무당의 푸닥거리로 남는다. 더욱 나쁜 것은 그것이 끝나고 나면 항상 차별적인 권력관계는 확대재생산된다는 점에 있다. 일전의 글에서는 '그나마 후자가 낫지 앟나'고는 했지만서도..성차별적인 권력관계에서 재연되고 재현되는 성적인 방종은 거의 대부분 일방적으로 약자(보통은 여자)가 피해자가 된다.
무슨 보수적인 크리스차니티에서 말하는 '영성의 회복' '생명의 존중'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난번 글의 결론대로, 우리는 끊임없이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지만 다만 그 이면에 있는 합당한 자신의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윤리인 셈이다. 따라서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온전히 충족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잘못된 것이다. 당신의 사랑의 이야기가 마음속에서 술술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잘못된 것이다. 그냥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능..
근데 써놓고보니.. 기든스의 <친밀성의 구조변동>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글이 된 것 같다.
별다른 애정으로 가꾸고 보듬는 그런 블로그가 아닌지라, 연말 결산 류의 글을 올리는 것이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당장 지난 해의 글이 여기서 멀지가 않다. 한 해 동안 내가 쌓아올린 것이 많지가 않아서 그런가 싶다. 아홉수가 끼어있던 한 해가 애매하게 지나간다. 이천십년이 된다고 작은 것 하나도 단번에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이제 어디서 나이를 물어보면 여덟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게 썩 기분 좋지는 않다는 게 찝찝하다.
문득 생각해보면 지난 몇해동안 참 속절없이 살았지 싶다. 이천삼년 꽃샘추위로 길 위에 살얼음이 진 어느날 아침, 신촌역에서 꾸역꾸역 학교쪽으로 기어오르다가 성산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 앞에서 이상은의 <새>를 듣다가 별안간 나는 조금 슬퍼졌다. 수업을 듣는둥마는둥하고 돌아와서 휴학신청을 했다. 꽃이 지고 등을 타고 땀이 흐르는 계절까지, 여의도로 출퇴근하고 간간히 글을 쓰고 그림을 배우다가 여행을 갔다. 다시 기온이 내려갈 즈음에 결국 군대를 갔다. 대학에 와서 한 번도 학교 생활에 재미를 붙여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달리 다른 데 마음쓰고 열의를 다한 적도 없어서 참으로 낯뜨거운 삶을 살았다. 단 한 순간도 나는 어른스럽지 못했다. 그 나날들은 첫번째 종지였다.
제대 후 시작된 이십대 중반의 후반전도 양상이 개선되지 않았다. 삶에 미련이 없는 주제에 난 두려운 게 많아서 고슴도치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굴러다니기나 했다. 하여 여전히 학교는 재미가 없었다. 피디 따위가 되겠노라고 깨작거려봤지만, 지금의 결과가 말해주는 게 무엇인지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소설은 딱 한 편을 쓰다 말았다. 읽지 못한 채 쌓여있는 책들, 저급해가는 취향, 줄지 않는 체중, 꽉 찬 재떨이 등등. 이천구년은 지난 오년간의 미미미미 하는 삶을 느슨하게 반복한 한해였다. 두번째 휴학, 두번째 인턴, 두번째 복학, 두번째 구직(과 실패)과 더불어, 어른이 되고나서 두번째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던 한 해가 되었다. 으스스했다. 덕분에 이젠 난 삶이 조금은 덜 두렵기도 하다. 잘 가라 이천구년. 네 덕분에 조금은 무던해진 것 같다.
하여 이틀 남은 이천구년 끝자락에 이것저것을 복기해본다. 길다면 길었을 연애의 끝자락이기도 하고, 길다고 밖에 할 수 없을 학부 생활의 끝자락이기도 하다. 가끔은 생각나지 않는 것이 있어서 손가락을 허벅지에 대고 옆으로 누운 8자를 그리며 초조해한다.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 눅눅하고 오래된 책장처럼 기억이 뻑뻑하다. 이제야 난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조금 더 솔직해지고 있는 것같다. 아직 관념적인 말들에 갇혀 있지만, 약간은 더 적나라한 말도 할 수 있지 싶다. 다 자란 수컷 짐승처럼 살지는 못해도, 어른 남자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어른 남자 사람은 자기 욕망 앞에 당당한 존재다. 그리니 지금 내가 어떻게 살 생각이고 살아갈 것이며,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해서도 담담히 얘기하고 움직이는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여 아직 나는 젊다. 젊은 인간은 내일이 어떻게든 오늘과는 다르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또 한 걸음을 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다시 젊게 살련다.
- 올해의 사건 : 그들의 연애
: 어쩌면 나는 나의 연애가 끝났음을 올해의 사건, 이라고 말해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사건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된 일에 가깝지 싶다. 다만 그저, 서로 간직하고 있는 약간의 비밀들을 나누며 서로의 어두운 눈 앞에 빛이 되기를 바랐던, 그래서 아주 잠깐 가장 눈부신 때를 함께 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바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누구도 그립지 않아서 외롭지 않을 때까지 잠자코 있어볼 작정이다. 분별 없고 인내가 없어 성급한 판단이 있을줄로 안다. 넌 우리 사이에 대해 심상한 마음뿐이겠지만, 나는 아직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네가 이 글을 읽거든 나를 잘 단속해주렴. 알고 있겠지만 가끔씩 나는 내 두려움이 또 두려우니까.
이준희는 내가 열두살 때 만난 친구다. 이재승과 더불어 만나거나 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들던 때에 만나 사귀었다. 덕분에 이런저런 삶의 변곡점들을 함께 해오며, 서로의 기질이나 취향과는 별 관계 없이 친교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일종의 삼각관계인지라 준희와 재승이 더 친하던 때도 있고, 혹은 나와 준희가, 나와 재승이 더 친하던 때도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있다고 친)다. 하지만 어쨌든 셋은 만나면서 단 한 번도 서로 의심하거나 질책해 본 적이 없어서 좋은 친구다(혹은 좋은 친구이기에 그러지 않았는 것이 맞겠다).
이자해는 스무살 신입생 때 만났다. 이자해는 말하자면 인문대 동기의 허브였으니, 사실 나와 이자해가 가장 친해진 것은 요 며칠 사이일는지도 모르겠다. 김진우 등과 더불어 같은 학과에 진학하고 비슷한 것들을 배웠기에, 우리는 가끔 친구라기보다는 동지에 가깝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쉽지만은 않은 시절이다. 하지만 힘내라고 하지 않겠다. 그냥 오래 신의를 잃지 말고 함께 하길 빈다. 덕분에 요즘 덜 외롭고 더 즐겁게 사는 것 같다.
그밖의 사건들? 연초에는 스브스에서 일을 했고, 여름 동안에는 어영부영 살았고, 가을에는 진로를 바꿨고, 겨울에는 술을 먹고 있다.
덧붙이자면.. 요사이 한명숙 전 총리 비리 의혹이나 유시민을 중심으로 한 국민참여당 창당 과정 등이 썩 개운치는 않다. 정치라는 게 늘 개싸움으로 흐르는 것이 생리인줄은 알면서도, 불과 반년밖에 지나지 않아 고인의 유지는 얄팍한 구호로만 남은 채 주변에 흙탕물이나 끼얹고 있는 꼴이 같잖다. 여당도 여당이지만, 진보정당들을 포함해 야당들의 하는 짓들도 기꺼운 데가 하나도 없다. 나는 노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으로서의 그를 썩 좋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해했을 뿐이고, 절반 정도는 승복할 수 밖에 없을 따름이다. 그래도 다만 그가 죽음으로 지키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다면 다만 사랑이리라 믿었다, 사랑이란 말이 낯간지럽다면 진정성 정도로 해두자. 그가 대통령이 되던 순간은, 혹자는 후보단일화 따위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겠지만, 그 어떤 정치적 타협도 계산도 없이 온전한 정치가 가능하리라 생각하게 하는 어떤 아우라가 있었다. 결국 정치란 게 표싸움인 건 애진작에 알지만, 그 '표싸움'이라는 것의 본질은 곧, 투표 행위 따위로 치환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심과 열의의 표현인 것을 유시민 등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올해의 영화 : <up>
픽사는 말하자면 영화예술에 있어서의 현대판 바우하우스인지도 모르겠다. 바우하우스에 클레, 몬드리안, 칸딘스키, 반 데어 로에 등이 있었다면 픽사에는 브래드 버드, 존 레스터, 앤드류 스탠튼 그리고 <Up>의 피트 닥터 등이 있는 셈이다. <Up>은 애니메이션으로서도 훌륭하지만,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5분여의 한 씬은 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센티멘트를 선사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가끔은 다시 봐도 눈물이 핑 돈다. 대사가 없는 센티멘털한 장면이라는 점에서 <Wall-E>의 초반부와도 비교할 수 있을 텐데, <Wall-E>의 쓸쓸함과 외로움, 적막함이 공시적이고 구체적인 감정이라면 <Up>의 그것은 보다 보편적인, 우리 인생의 '통시적 시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똥파리>, <Gran Torino>, <Inglorious Bastards> 등을 재밌게 보았다. <에반게리온 : 파>, <District 9>, <Star Trek>도 재미 있었고. 언젠가 올해 본 영화들을 주욱 정리하고 몇 마디 코멘트라도 올리는 포스트를 올려볼까 싶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집행자>와 <호우시절>이었는데 두 편 모두 별로였고, 특히 <호우시절>은 <마더> <박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과 더불어 한국영화 평론/팬덤들이 좋아라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 그렇고 그런 영화여서 기분이 삼삼하지 못했다. 참고로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구린 영화는 <박쥐>였다.
2009년 놓친 보고 싶은 영화 : <화이트 리본> <예언자> <허트 로커> <업 인 디 에어> <도쿄 소나타> <24 씨티> <와일드 그래스> <시리어스 맨> <낮술> <걸어도 걸어도>.
- 올해의 배우 : 클린트 이스트우드(<그랜 토리노>). 동림 할아버지의 마지막 주연작이 되지 않을까? 물론 알랭 래네도 아직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이스트우드도 앞으로 몇년 더 영화연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볼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자신의 영화적/정치적 유산을 상속해내고자 하는 어떤 비장한 선언처럼 읽히기도 하기에 아마 더 이상 직접 출연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더군다나 곧 개봉한다는 그의 신작에는 그의 아들이 출연한다고 하니.. 더욱 그런 심증이 굳는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배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 올해의 음반 : <Popular Songs> of Yo La Tengo
올 한 해는 음악적으로는 참 풍성했던 것 같다. 잘 챙겨서 듣지도 않았는데도 들을 게 많았다. 욜 라 텡고의 새 앨범에 관해선 지난 글로 대신함. 당시 쓴 글에 적은 별점으로는 손드레 레르케의 다섯개에 밀렸지만 이후 순위가 바뀌었다.
그 외의 후보로는 물론 매닉스, 도브스, 손드레레르케 등이 있지만 각설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 중 하나는 리쌍의 6집이다. 한국 가요계에는 항상 언더와 오버의 애매한 경계에 있는 뮤지션들의 팬덤이 가장 솔리드해지는 기현상이 있는데, 리쌍은 어쩌면 좀 예외적인 듀오였다. 단적으로 힙합씬에서는 무브먼트에 디스를 자주 당하던 기억이 나고.. 히트곡도 꽤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에픽 하이인 것은 아니다. 이번 앨범은 참 적나라하고 솔직해서 마음에 든다. 젊은이의 삶을 그려내는 데 성공해서 기묘한 팬덤을 얻은 장기하와 얼굴들, 의 앨범이 좀 위선처럼 느껴지는 것에 매우 대조적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힙합 앨범이라고 할 이번 앨범에서 만날 수 있는 건 한국 팝-록씬의 최신 경향이었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건 루씨드폴의 새 앨범인데, 전업 선언을 한 그가 왜 음악적으로 답보하고 있는 것일까 아쉬운 앨범이었다.
그 외에, 언급하지 않았던 좋았던 앨범들은.. 이소라 <7>, Placebo <Battle for the Sun>. Lily Allen <It's not me it's you>, Sonic Youth <the Eternal>
- 올해의 싱글 : 이소라 <track 3>(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전작(<눈썹달>)이 워낙 역작이었던지라, 그리고 <바람이 분다>의 잔상이 참 길게 간지라 이소라의 새 앨범을 듣는다는 것은, 그녀가 새 앨범을 만들었을 때의 각오나 용기를 약간이나마 나눠받아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소라는 어쩌면 힘을 모두 빼고 담담하게 이 앨범을 만들었지 싶다. 첫 트랙의 '참 쉬워 해봐'라고 하는 읊조리는 가사가 묘한 위로를 준다. 3번 트랙, 나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라고 기억하는 이 노래는 따라부르며 슬며시 웃게 되는 진솔한 '노래'였다.
그 외에.. 올해의 '소절'은 '그대를 사랑해 말럽'(카라 <허니>)..
덧붙여, 작년에 나왔지만 올해 들어서 좋았고, 그래서 적지 못했지만 <가장 보통의 존재>와 <앵콜요청금지>는 2000년대 인디 팝-록 씬의 가장 아름답게 조용한 음반이다.
- 올해의 책 : 이석원 <보통의 존재>
어쩌면 이석원의 이 책은 타블로나 구혜선의 소설, 배용준이나 배두나의 사진집 등과 묶여 그렇고 그런 별볼일 없는 책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절반 조금 넘게 읽었을 뿐이지만.. 띠동갑인 이석원의 진솔한 책을 읽으면서 내 삶도 함께 되돌아본다. 사춘기에 <동경>과 <청승고백>을 듣던 나는 다시 <아름다운 것>을 듣고 있다. 아포리즘이라고 부르기엔 생각이 깊이가 좀 민망하고, 에세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덜 문학적인, 그냥 '공개일기'인 이 책은, 역시 띠동갑인 막내 삼춘과 유년기를 보냈고 천리안 '돼지띠 동호회'를 통해 사춘기를 보낸 내게 도착한 솔직한 서신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연애란? 그에 의하면, 누군가의 필요의 일부가 되는 것. 그러다가 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 나중에는 결론의 일부가 되는 것. 이란다.
그 외에.. <혁명을 팝니다>의 조지프 힉스가 쓴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최종렬의 <사회학의 문화적 전환> 등을 유의미하게 읽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는 감동적인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안팎으로 뜻깊은 책이었다. 뉴레프트리뷰 한국어판 창간호도, 오래 붙잡았던 중요한 책이었다.
올해 나오지 않은 책 중에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 비비안 포레스테의 <경제적 공포> 따위를 읽으며 구직생활의 구질구질함을 견뎠다. 프랭크 런츠의 <먹히는 말>과 고경태의 <유혹하는 에디터>를 읽으며 진로를 수정했다. GQ의 통권 100호를 기념품처럼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올해의 책, 부문에 소설이 한 편도 없는 건.. 내가 정말 올해엔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정도를 제외하면 끝까지 읽은 소설책이 한 권도 없다.
내년에는 딴 건 둘째치고 책이나 좀 더 진득하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항상 여러개의 책을 동시에 읽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다보니 읽은 책들의 사유가 좀처럼 일관되게 깊지가 않다. 소설책들도 다시 읽어야겠다. 내 삶의 우울은 어쩌면, 내 생각이 계속 '이야기'로부터 멀어져 있어서 그런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짧은 삶이었지만, 최근 몇년간 이야기로부터 떨어져지낸 시간들은 꽤 지리멸렬했지 싶다.
다만 올해의 시. 자조적으로 요새 '나는 하루 하루 똥만드는 기계일 뿐이지' 따위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사실 이 시 덕분에 생각난 자학 개그였다.
">">">">변기를 닦다
똥이 튀어 변기를 닦았다
나의 윤리
불혹이 넘어 겨우 찾은
생활의 윤리
내 방황의 뿌리가 여기였는가?
그 이후로는
소변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경솔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가난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돈을 성욕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바람 속을 걸어본다
엿새째 이어지는 설사를 나는
논어를 공부하듯
복음서를 공부하듯 엄숙히
내면에 들여본다
지린 속것도 몰래 헹구어 내놓고는
윤리를 생각한다
윤리의 무늬를 지우고
윤리가 감춘 죄를 생각한다
설사에 대해서
불현듯 고장난 장에 깃든
사랑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슬비는 새벽 내내 처마 끝에 모여들어 한방울씩 떨어진다
- 올해의 방송 : <남녀탐구생활>(<롤러코스터>) (TVN) (이성수김경훈 연출, 김기호김지수 대본), <지붕 뚫고 하이킥>(초록뱀, MBC) (김병욱 연출, 이영철, 이소정 각본)
올 초에 스브스에서 일하며, 시사교양이 아니라 예능쪽으로 생각을 바꾸고 나서 이런저런 예능 프로들을 많이 보았다. 틈틈이 챙겨보는 <빅뱅이론>같은 시트콤이나, 몰아서 본 옛날 미드 <스투디오 60>도 좋았다. 연초엔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가 재미있었고, 최근엔 QTV <예스 셰프>도 즐겨 봤다. 사실 리얼리티-서바이벌 쇼는 중간만 가도 다 재밌는 것 같다. 그런고로 <수퍼스타 K>의 '리얼리티'나 <디 에디터스>의 '리얼리티'가 서로 다른 것을 재현하고 있음에도 어쨌든 그 광폭한 스펙트럼 사이에서 재미의 길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진짜 '리얼리티'는 사실 <남녀탐구생활>에서 재현되고 있기도 하다. 혹자는 <남녀..>를 두고 '예능판 홍상수'라고 이름붙이기도 했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남녀..>와 홍상수 영화는 모두 인생의 최저점들, 일테면 치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일테면 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들을 툭툭 건드리며 독설 아닌 독설을 내뱉는다. 홍상수 영화와 <남녀..>가 다른 점은,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의 '우리'는 일군의 위선-지식인들에 한정되는 측면이 있고, <남녀..>는 갑남을녀 모두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힘이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홍상수 영화가 자기애라면, <남녀..>는 이미 대상애의 성숙한 시선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즉 홍상수 영화를 보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만, <남녀..>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한편으로 타인에 대해 눈길을 건네게 된다.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라는 '선언'이 따라서 짤막한 꽁트가 끝나면 '남자는 그렇단 말이지? 여자는 그렇단 말이지?'라는 조응으로 끝난다는 건 정말이지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과 거의 같은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훨씬 더 드라이하다. 따라서 조금 덜 재밌지만 조금 더 진지하다. 김병욱 시트콤은 예전부터 중산층-부르주아의 경계에 있는, 가부장이 확실한 확대가족 안에 있는 소소한 균열들을 통해 에피소드를 만들고 욕망을 변주하는 데 능했다. 학교나 회사 등의 공간을 지능적으로 쌓아올린다는 점도, 시트-콤을 가장 시트-콤답게 만드는 김병욱 사단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런데 전작이 사춘기 청소년들의 시선, 즉 민호-유미-범의 삼각관계를 기축으로 쌓아올린, 스릴러에서 출발하여 일종의 비의적인 성장드라마로 이어진 데에 반해, 후속작은 세경 자매와 이순재 가족/김자옥 하숙집이라는 계급갈등적인 측면이 부각된, 일종의 심리드라마라는 데에 차이가 있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돈 이 시트콤이 어떤 식으로 끝맺음될지 모르겠지만.. <하이킥> 시리즈는 대한민국의 '표준적 욕망'을 가장 잘 투영하고 있는, 증후적인 텍스트인 동시에 치유하는 텍스트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도 해내지 못한 걸 이 TV쇼가 해내고 있는 셈이다.
스브스 작가 윤 모 누나가 한, 나의 유머질에 대한 지적질. 놀랍게도 이 말은 올 한해 나의 모든 행동에 꼬리표로 달려도 손색이 없을 훌륭한 반문이 되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참고로 저 문장은 끊어읽기와 악센트가 중요하다. 영어로 옮기면 what did you do? 가 아니라 did you do something? 이므로.. 거기에 맞게 읽어야 한다. 여튼 [정규뭐한거니?] 라고 한달음에 읽는 것이 아니라, [뭐/한거니이?(끝을 올려준다)] 라고 읽는 것이 올바른 사용법이다.
올해의 성취 : 딱히 없다
사실 딱히 성취가 없었던 것은 새롭지 않은 일이나 당혹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올해는 이것저것 느낀 게 많았다. 방송국 생활을 좀 엿보면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재밌는 경험이기도 했고. 구직 활동하면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게 뭔지도 알았다. 김훈선생에 이어 이충걸편집장을 만났으니, 이제 윤대녕선생(선생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긴 한데)과 제임스딘브랫필드(좀 어렵나)만 만나면 내 빠심은 참으로 충만할텐데.
올해의 별명 : 똥 만드는 기계 shitting machine
요새는 스스로를 댕규라고 부르는 게 편해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뎡규나 렁규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뎡규보다는 렁규가 더 좋은데 왠지는 잘 모르겠다. 뎡이니 뎐이니 하는 말이 됴선시대 말이라 그른가부다. 일전에 모르는 사람들과 떠난 일박이일 술파티(;)에서 그들은 내가 피디를 지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계속 이피디, 라고 불렀던 적이 있는데.. 이봐요 지금 날 놀리는 겁니까? 하고 정색이라도 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냥 맘대로들 하시오 하고 넘어갔던 적이 있다. 군대 있을 때 장군과 안형이 이작가라고 부를 땐 안 그랬는데 말이지.
똥 만드는 기계, 는 이준희와 통화하다가 불현듯 생각난 것. 요새 술을 많이 먹어서 장이 좀 좋지 않다보니 좀 그르타. 먹고 나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곧 똥이 되고 마는 거지. 인생은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구멍을 채우려는 헛손질에 다름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게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지.
올해의 유머 : 대한늬우스
앞으로 다시는 이런 희비극도 없을 것이다. 사건 일지는 다음과 같다.
1) 대한늬우스는 4대강 사업에 대한 국정 홍보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이를 최초 보도한 중앙일보는 대한늬우스가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적시(관련기사)했는데, 이준희인턴기자(;)의 이 보도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2) 다른 신문들은 중앙의 이 기사를 받아서 '대한늬우스는 MB 아이디어'라며 인용보도. 이어 여론이 좋지 않자, 출연했던 연예인이 '그런 건줄 몰라뜸' 하며 '공식 사과'를 하기에 이른다(관련 기사). 청와대도 다시 한 번 '오해다'드립(관련 기사)으로, 이 아이디어가 대통령의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3) 결국 대한늬우스는 유인촌 장관의 작품인 것으로 대충 정리되며.. 유 장관은 직접 '이건 개그임'이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관련 기사). 첨엔 바긔가 틀러라면 완장촌은 괴벨스쯤 된다고 봤는데, 가만 보면 괴벨스는 시중이 아저씨였고 완장촌은 괴벨스가 부리던 많은 딴따라 중의 하나에 불과한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그 외의 웃긴 말들? 난 YS가 DJ의 병상에서 했던 말이 또 정말 환장하게 웃겼다. DJ를 찾아간 그는 세브란스 병원 입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화해했다고 봐도 좋다'라고 대답했다(관련 기사). DJ와 YS는 이날 서로 만나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 뒤에도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관련 기사). 그러니까 화해한 것은 사실 YS와 DJ가 아니라 상도동과 동교동이었던 셈인데.. 각각 생물학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이 다 해 가는 두 전직 대통령의 이 객쩍은 화해는 한국 현대사의 떨떠름한 한 결정적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올해의 여행지 : 해운대
뉴스에서 '올해도 바캉스 인파가 조낸 많지롱' 하는 단골 리포트에서 늘 배경 그림이 되곤 하는 해운대에 대한 선입견이 강했던 인간으로서.. 사람 많은 바가지 물가 피서지인 해운대는 아마도 결코 찾지 않으리라는 이상한 결심을 하고 있었더랬다. 처음으로 해운대에 갔던 건 2004년 여름인데, 당시 준희와 재승과 나는 모두 싱글남으로서 '비키니 미녀'를 쟁취하겠다는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을 안고 해운대에 입성하였으나 입구에서 30분간 앉아 있다가 돌아나온 경험이 있다.
올해 다시 찾은 해운대. 여름의 끝물이어서 한산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인간들이 나만 빼놓고 이 좋은 데서 쳐놀았다고 생각하니 몹시 분해지는 것이 아닌가! 난 진지하게 해운대 근처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올해의 관심사 : 카라
솔직히 말하자면 연예인 스캔들에는 관심이 좀 있는 편이었지만(그런 점에서 최근 접한 JJH 커플의 결혼설 쫌 충격임), 아이돌 가수에게까지 관심이 뻗어나갈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으나..
뭐 아직 앨범을 산 것도 아니고.. 빠돌이가 된 건 아니지만.. 뭐.. 그렇다고... 학교빡세 쉐키쉐키
올해의 전자제품 : 알칠이
아버지는 내가 지난 번 카메라를 분실한 뒤 내 돈으로 새로 사온 것임을 까맣게 모르고 계신다. 덕분에 내 속도 까맣게 타버렸었지..... 그러던 차에, 우리집 첫번째 디에세레랄이었던 알백이가 익사하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백이십만원이나 들여서 샀던 건데..... 아버지는 어느날부터인가 디카 중고장터 매복쟁이가 되어 계시더니, 갑자기 알칠이 바디를 물어오셨다. 확실히 사진이 잘 나오긴 한다. 렌즈는 삼만원 짜리 번들이를 쓰다가, 막내삼춘이 초보용 줌렌즈인 시그마70-300 아포DG마크로를 사준 덕에 재미나게 풀사진을 찍으러 다니신다. 뭐 나도 덕분에 중급 엔트리 바디 유저 행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올해의 패션 : 리바이스 511&양복
리바이스가 북미에서 파는 청바지들, 그러니까 일명 '미판리바'는 찌질이들의 옷이라는 게 인넷 빠숑피플들의 중론인듯싶다. 가격이 싼만큼 원단도 구려서 살에 닿는 느낌도 좋지 않은 데다가 잘 늘어난다. 염색도 잘 빠진다. 그래도 어쨌든 싸고 모양이 나쁘지 않다. 남들 다 입는다는 디젤이니 디앤지니 하는 사치를 부릴 처지가 못되어서 하는 소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리바이스는 청바지계의 클래식 아닌가? 레비스트로스도 올해 타계했고(..). 신도림 지하상가에서 시중가의 2배를 주고 처음 샀던 미판리바의 511, 을 그 뒤로 두 벌이나 더 사서 입고 있다. 그냥 그렇다고.
면접을 보기 위해 양복을 샀다. 몸에 꼭 맞게 줄였다. 넥타이도 사고 구두도 샀다. 예전부터 한번 양복으로 말끔히 차려 입어보고 싶었는데, 뭔가 숙원을 해소한 느낌이다.
선덕여왕은, 그냥 보지 못했다. 딱히 재미가 없다거나 훌륭하지 못한 드라마라는 생각은 안 한다. 그런데 어쨌든 '선덕여왕'의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다. 조기종영하긴 했지만 '탐나는도다' 쪽이 더 신선했던 것 같다. 근데 이거 쓰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송지나 각본의 <남자 이야기>를 거의 다 보긴 했었다. -_- 흠 다들 재밌었다고 하는데 난 그것도 상당히 별로였다. 소녀시대는 <gee>는 그냥 듣기 좋다고 생각했지만 <소원을 말해봐>에선 좀 너무한다 싶더라. 뭔가 나경원을 보는 듯한 느낌? -_-
올해의 남들은 다 별로라던데 난 좋았던 : 플러시보, <아>(애프터스쿨)
플러시보 새 앨범에 대한 평가는 좀 짠 듯한데, 레코딩이 좀 덜 헤비한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meds> 때만큼은 괜찮은 것 같다. 최소한 <sleeping with the ghost> 수준은 아닌 거지. 그래도 이처럼 한결같이 꾸준한 밴드도 찾기 어려운 거 아닌가? 모토롤라 광고 때문에 뜬금없이 <ashtray heart>가 뜨긴 했지만, 사실 이 앨범에서 제일 좋은 노래는 <kitty litter>였던 것 같다. 애프터스쿨의 <Ah!>는 용감한 형제 작품인데, 용형의 장기가 사실 디스코/일렉트로니카를 빙자한 뽕짝인 데 반해 이 노래만큼은 뭔가 제대로 댄서블한, 사운드 배열이 흠잡을 데가 없는 노래다. 뽕끼가 없어서 차트에서는 선전하지 못했고, 대신 멜로디가 유치한 <디바>로 뜨긴 했지만.. 그러니까 브아걸의 <L.O.V.E>와 <어쩌다>하고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
내년의 소원 : 데뷔
무엇이 됐든, 데뷔하는 게 목표다. 그러니까 직장인이 되든 대학원생이 되든. 기자로 데뷔하든, 작가로 데뷔하든, 학자로 데뷔하든. 그러니까 진짜 어른이 되는게 목표라는 말이다.
일단 결산 끗!
글을 쓰면서 :
제대로 못 들어봤던 올해의 앨범 후보작들을 몇 개 들어보았다. 이모젠 힙은 프루프루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Phoenix는 복고밴드가 되어버렸는데, 그 복고라는게 정말 '볼프강 아마데우스' 급은 아니지만서도 훌륭한 수준인 것만은 사실이다. XX는 욜라텡고나 소닉유스같은 뉴욕인디록의 느슨한 팝버전 같다. 어쩌면 욜라텡고가 <팝송>이라는 제목의 앨범 안에 이런 노래를 만들어 넣었어야 하는것 아니었나 싶은 그런 노래. 앤틀러스는 왜 뛰어나다고 하는지는 알겠는데 딱히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Last thing I remember is the freezing cold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정말 차디찬 물이
Water reaching up just to swallow me whole 날 통째로 집어삼킬만큼 바투 차올랐던 것
Ice in the rigging and howling wind 윙윙 바람소리가 들려 얼음처럼 찬 바람에
Shock to my body as we tumbled in 난 너무 놀라 몸이 벌벌 떨었어
Then my brothers and the others are lost at sea 그 바다에서 형제들과 친구들을 잃었지
I alone am returned to tell thee 나는 홀로 돌아와 그대에게 전하니
Hidden in ice for a century 백년간 결빙된 채 숨어있던 나는
I walk the world again 세상을 향해 다시 걸어 나와 말하니
Lord have mercy on the frozen man 이 얼어붙은 자에게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Next words that were spoken to me 그 다음 나를 향해 걸어온 말
Nurse asked me what my name might be 간호사는 내게 이름이 무얼까 했지
She was all in white at the foot of my bed 그녀는 하얀 옷을 입고 침대맡에 있었지
I said angel of mercy I'm alive or am I dead 나는 내가 죽은 걸까 살아있나 궁금했어
My name is William James McPhee 내 이름은 윌리엄 제임스 맥피가 되었지
I was born in 1823 1823년에 태어났지
Raised in Liverpool by the sea 바닷가 리버풀에서 자랐어
But that ain't who I am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야
Lord have mercy on the frozen man 이 얼어붙은 자에게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It took a lot of money to start my heart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데에는 돈이 좀 들었어
To peg my leg and to buy my eye 내 다리를 붙이고 내 눈을 사는데도
The newspapers call me the state of the art 신문에서는 나를 기술의 총아라고 불렀지
And the children, when they see me, cry 아이들은 나를 보면 울음을 터뜨렸어
I thought it would be nice just to visit my grave 이 내 묘지에 한 번 와보는 것도 근사한 일일거야
See what kind of tombstone I might have 이건 어떤 종류의 무덤양식이라고 불러야 할까
I saw my wife and my daughter and it seemed so strange 난 내 아내와 딸을 보았어 이상한 일이었지
Both of them dead and gone from extreme old age 그들은 이미 많이 늙어 죽어버렸지
See here, when I die make sure I'm gone 봐봐 내가 죽어야 죽는 거야
Don't leave 'em nothing to work on 그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건 아니야
You can raise your arm, you can wiggle your hand(unlike mysef) 팔을 올릴 수 있고 손을 움직일 수도 있지(나랑 달리)
And you can wave goodbye to the frozen man 그리고 이 얼어붙은 인간에게 작별인사도 할 수 있어
I know what it means to freeze to death 얼어죽는다는게 뭔지 알지
To lose a little life with every breath 매 숨결마다 조금씩 삶을 잃어가는것
To say goodbye to life on earth 그렇게 세상과 작별하는 것
To come around again 세상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Lord have mercy on the frozen man 얼어붙은 자에게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Lord have mercy on the frozen man 이 얼어붙은 자에게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Oh baby baby, have you seen Amy tonight? Is she in the bathroom, is she smokin' up outside? Oh baby baby, does she take a piece of lime for the drink that Imma buy her..do you know just what she likes?
Oh Oh.. tell me have you seen her because I'm so..I can't get her off of my brain I just want to go to the party she gonna go..Can somebody take me home?
Love me hate me, say what you want about me .. But all of the boys and all of the girls are begging to If You Seek Amy
Amy told me that she's gonna meet me up .. I don't know where or when and now they're closing up the club I've seen her want to drive before she knows my face .. but it's hard to see with all the people standing in the way
Tell me have you seen her .. because I'm so.. I can't get her off of my brain I just want to go to the party she's gonna go.. can somebody take me home?
Love me hate me, say what you want about me.. But all of the boys and all of the girls are begging to If You Seek Amy Love me hate me, but can't you see what I see All of the boys and all of the girls are begging to If You Seek Amy
So what you want about me .. but can't you see what I see So what you want about me .. so tell me if you've seen her Cause I've been waiting here forever ..o baby baby If You Seek Amy tonight .. oh baby baby We'll do whatever you like .. oh baby baby, baby baby
#1. 현대차 신차인 투싼 IX의 광고에 실린 음악. 문제의 가사인 f-u-c-k me 부분은 절묘하게 '하하히히하하호'로 편집해 뒀더라. 사실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에이미를 찾는다면'이란 거라고 우겨도 별 문제는 없었겠지 싶지만.. 나름 CF 음악 감독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_- 영화관용 광고에서도 적당히 편집을 잘 해두었다.
#2. 이 노래가 '섹스'얘기라서 몇 마디. 일전에.. 거리의 진보와 젊음의 진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사회의 '진보'라고 하는 젊은이들도 결국 성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어찌 이다지도 보수적인가..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마찬가지지. 뭐 사실 '진보적'이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경우엔 더 말할 것도 없다. 루저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도 다 그런 것이고 꿀벅지도 그런 것이다. 하지만 '진보' 운운하는 커뮤니티를 가도 그런 성대결 떡밥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여튼 한국 사회에 성혁명은 도착하지 않았을뿐더러 출발도 하지 않았다는 걸 얘기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68혁명 당시의 젊은이들의 성적 일탈, 일테면 마르쿠제나 라이히의 이론들과 그 실제 응용, 그러니까 베르톨루치가 <빠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혁명전야>를 거쳐 <몽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자유'와 '상상력', 그리고 '성 해방'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몸과 마음의 풍경들은 한국땅에서는 단 한 번도 펼쳐지지 못했다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2-1.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국사회에서 '프리섹스주의자'가 등장했던 건 90년대에 잠깐이었다. (그걸 잘 보여주는 노래가 룰라의 '자유'인가 하는 노래다. 이 노래는 룰라가 끗발이 다 해가던 90년대 후반에 나와서 방송금지를 먹었다) 90년대 윤대녕의 연애소설에서도 그러한 풍경을 잠시 엿볼 수 있고. 여튼 80년대의 이념의 시대가 가고 문화-경제가 본격적으로 들어섰던 시기에 '오렌지족'과 'X세대'를 중심으로 아주 잠깐, 그런 것이 풍문처럼 있었더랬다. 그때 난 중학생이었는데 별걸 다 기억하고 있군. -_- 여튼 IMF 이후, 이 성혁명에 관한 문제는 결과적으로 모두 다시 사라졌다. 올해 핫이슈 가운데 하나였던 조두순 사건으로 성폭력에 관한 논의가 점화되기도 했지만, 그 수준은 사실 굉장히 지엽적이고 여전히 성불평등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 젊은이들의 프리섹스, 혹은 성적 자유의 실상은 '연애불변의 법칙-나쁜남자' 같은 케이블프로에서 단편적으로 재현되고는 있지만, 좌우 막론하고 그 프로그램을 '삼류쓰레기저질'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사실 아직도 한국사회에서의 성해방은 우스운 수준이라는 점을 방증하기도 한다. (난 그 프로그램이 전적으로 나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생각해보면, 20대들의 성적 방종이란 팩트는 한편으로는 급진적인 정치프로젝트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단 한 번도 그런 평가나 대접을 받지 못한채 한낱 타락으로 치부되곤 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전히 공고한 한국사회의 성폭력적인 사회저변에 대한 제고가 없기 때문이기는 하다. 여튼 각설)
#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73251 우석훈이 얼마전 한 강연이다. 링크를 눌러보기 귀찮은 이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섹스를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 이 강연의 주제다. 주제 문장만 놓고 보면 마르쿠제나 라이히 같은 (포스트-)마르크스-프로이디언의 그것과 다르지는 않다. 그런데 이 강연에서 우석훈이 말하는 게 성혁명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강연 전문을 보지는 못했으니 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함부로 말해보자면 이 강연에서 중심이 되는 이론의 주요 골자는.. 섹스회수(이건 어디까지나 '출산'과 관련이 있는, 소위 '합법적 테두리' 내의 섹스회수를 말할 수 밖에 없겠지)와 국가주도의 토건경제체제의 심화 정도가 반비례한다는 가설인데.. 우석훈의 이 이야기는 실증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희한한 명제일뿐만 아니라, 사실 큰 틀에서 보면 멜서스적 커플의 성에 대한 국가의 노동력 재생산 관리라는 푸코의 이론을 절반만 뒤집은 애매한 선언일 뿐이다. 최근에는 같은 내용의 강연을 민주당 친노방계 중진들(일테면 뭐 대표님이랄지, 박영선 김근태 등등)을 앞에 두고 했다는 얘길 들었다. 점잖으신 분들 앞에서 섹스전도사가 되었으니 참 해괴한 일이었겠다 싶지만, 사실 내가 볼 때 이건 허경영의 '신혼부부 집주기'(사실 같은 내용의 공약은 바긔에게도 있었다)만도 못한 하나마나한 소리다.
#3-1. 섹스회수가 중요하다고 하자. 하지만 이 섹스는 피임이나 성매매, 성폭력과 같은 주변적 성관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빈' 섹스다. 생식과 발생 없이는 상정되지 않는 그러한 종류의 섹스다. 그러니 그나마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자 하는 그런 섹스조차 아니다. 재우쳐 말하자면 '빠구리'라고도 부를 수 없고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대체 그런 섹스란 존재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경제학적인 섹스'는 정의하기 까다로운 것이다. 하물며 '생태학적인 섹스'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우석훈의 섹스는, 말하자면 정치적이고 선전화된 진지전으로의 섹스다. 참호에서 참호로 이어지는 '보급'이다. 몇해전부터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사회에서 출산율에 대한 공포가 촉발되더니, 이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출산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떠드는 것이 유행이 된 것 같다. 하물며 성해방의 본산지인 프랑스와 독일과 북유럽에서도 그러할진대, 한국사회에서 섹스를 전쟁처럼 불처럼 도적처럼 하라는 말에 '진보학자'로서 어떤 견지를 지니고 하는 말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자원민족주의와 연관되어, '인적자본'(노동력)에 관한 논의와 결부되며 종국엔 파시즘에 다름아닌 이야기로 끝나고 마는 이야기다. 하고 나면 뒷맛이 쓴 말들이다.
#3-2. 그러니까.. 사실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그냥 '한국'이란 사회가 생명을 억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출산율 저하가 토건경제의 그것과 연관관계가 있다는 가설 자체에는 별로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했던 윤대녕의 소설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일관된 갈등, 혹은 최근의 '가족'을 다루는 영화들 (<가족의 탄생>, <괴물> 같은) 에서 끊임없이 보여주는 문제의식은 곧 한국사회가 어찌나 '양육'에 무관심한지 잘 보여준다. 이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푸는 데에는 앞서 말했듯 1) 허경영의 공약이 보여주는 '섹스할 공간'의 문제, 즉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경제의 계층 순환구조의 경직성으로 인한 '가족' 형성의 지체와 기존 가족의 해체이다. 이게 토건경제와 관련된 출산율 저하의 문제라면, 맞는 말이겠지. 2) 그리고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계급 재생산의 최대 고리인 학벌주의와 그로 인해 왜곡된 (사)교육 문제가 가장 크다. 이건 생태문제도 아니고, 토건문제도 아니긴 하지만, 여튼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문제를 다 넘어서서.. 그냥 한국 사회는 '살맛'이 안 나는 사회라서 그런 것일 뿐이다. 살아가는 게 재밌다면, 그래서 다른 하나의 생명이 살아가는 것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한다면, 그러한 선물을 나와 나의 파트너가 합심하여 누군가에게 선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기적이 어디있을꼬. 그러니 결국 출산율 저하는 이 사회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 어찌 이리 행복하지 못한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일 뿐이다.
#4. 섹스는 섹스고, 출산은 출산이다. 이 둘은 연결되는 동시에 또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과 관련된 두 가지 화해하지 못하는 세계의 가깝고도 먼 거리를 찬찬히 보여준다. 성교를 출산의 예비단계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친밀성을 표현하는 행위로 볼 것인가? 하나인 동시에 따로인 것이다. 그런데 짚어볼 문제는, '출산(율)'이라는 말은 조금도 우리의 '존재'에 대해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역설적으로 유럽사회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섹스'와 '존재의 기원'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감수성이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즉 섹스에서 존재를 찾지 못하는 이유 말이다. 중세에는 1회의 섹스가 1회의 출산을 상정하지 않으면 치를 수 없는 '거사'였다. 지금은? 굳이 피임이 아니고서라도.. 어느 누구도 섹스가 출산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는다. 나는 피임이나 임신 중절에 반대하자는 뜻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섹스'와 연관된 다른 관념들, 일테면 '에로티시즘(관능)', '친밀성', '삶' 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소통으로서의 섹스가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출산은 인간의 복사이기 때문이다. 자꾸 윤대녕 이야기를 하니까 우습긴 한데, 윤대녕 소설은 항상 '존재의 기원'을 찾아간 뒤 '섹스'를 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섹스의 결과일 '존재'는 다시금 억압되고 만다. 윤대녕에게 섹스는 존재의 시원(말하자면 플라톤의 '코라')으로부터의, 혹은 그로 향해 다가가는 떨림이다. 기원을 탐색하는 주체의 사유는 결여되거나 전복된 심상에 집중할 수 밖에 없지만, 어쨌든 그러한 욕망은 한편으로는 참으로 아름답게 재현되곤 한다. 그러나 결론에서 항상 억압되고 말듯, 이 시대의 섹스는 모두 의미를 잃은 모양이다. 배설과 관련된 말초신경의 자극이거나, 노동력/인적자본 재새산의 과정인 모양이다. 하지만 최소한 love/hate라는 감정을 가슴에 담고 허리를 놀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사회에서 모든 섹스는 마치 포르노그래피처럼, 섹스의 시뮬라크라로 존재하는 것같다. 그냥 그런 것 같다고. (사실 이런 풍경은 김훈의 <화장>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쓴 <두견화>도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었다. -_-)
#5. 쾌락에는 궤멸하는 무엇이 있다. 그러나 그 쾌락의 이면에는 언제나 한 권의 책, 혹은 적어도 윤리의 순간으로 응축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라고 파스칼 키냐르는 썼다. 그러니까... 진보학자가 성해방을 말하고 섹스전도사 행세를 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논의를 해괴한 명제를 가져다 놓고 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석훈 박사가 그다지 섹시하지 않은 인물이란 건 알지만.. 어쩜 섹스 얘기를 이다지도 안 에로틱하고 안 섹시하게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사랑하며 삽시다. 그리고 그 은밀한 생 뒷면에서, 저마다의 시작과 끝에 대해 더듬어보자구요. 에이미는 항상 여러분 곁에 있으니까요. -_-
+ 의구심이 들어서 뒤져봤는데, 프리섹스에 대한 룰라의 노래는 4집에 있는 <아자>였다. 이 앨범, 이현도가 프로듀싱했던 룰라의 제2의 전성기를 있게한 '3! 4!' 가 들어 있는 앨범이므로 끗발이 다해가던 때..라고 하기는 뭐하고, 이 앨범을 끝으로 끗발이 다했던 거지. 96년에 나왔다.
There's a moment in my mind I scribbled and erased a thousand times like a letter never written or sent These conversations with the dead..I used to be a sentimental guy. Now I'm haunted by the left unsaid 쓰지도 부치지도 않는 편지처럼 맘속에서 되뇌이는 상념의 순간이 있지 망상들이겠지.. 센티멘털 가이였던 나니까. 난 이제 종종 침묵과 마주할 뿐인데
I never thought so much could change.. 이렇게 많은 게 변할 줄은 몰랐지..
Little things you said or did are part of me, come out from time to time. Probably no one I know now would notice. 네가 말하고 했던 사소한 것들은 내 생활의 일부야 종종 마주치곤 해 아마 내 주변 사람들은 그걸 아무도 모를테지만
But I never thought so much could change 하지만 정말 난 이렇게 많은 게 변할 줄은 몰랐어
You drifted far away.. far away it seems. Time has stopped, the clock keeps going 넌 멀리 떠났지 정말 먼 것처럼 보였어.. 시간이 멈춘 듯했지만 그럴리 없겠지
People talkin' and I'm watching as flashes of their faces go black and white
And fade to yellow in a box in an attic. 사람들은 떠들고 난 보기만 하지 흑백 사진에 뿌려지는 카메라 플래쉬처럼 다락에 둔 상자 속 사진처럼 바래 가겠지 But I never thought so much could change, now I don't miss anyone.. I don't miss anything What a shame cause I used to be a sentimental guy 하지만 난 이렇게 많은 게 변할 줄 몰랐지.. 이젠 아무도 아무것도 그립지는 않아 난 왜 그트록 센티멘털 가이었을까, 부끄러운 일이지
천번을 쓰고 지운 연서처럼, 내 사유와 언어는 답보하고 있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처럼, 어사무사한 것들이 내 주변을 떠돈다. 분명히 모두 읽었는데 생각나지 않는 책처럼, 반대로 내용은 기억 나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처럼. 이치에 맞지 않고, 연결이 되지 않는 것들로 내 안팎을 얼기설기 봉합한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했었더라..하루 종일, 한참을 생각하다가 겨우 떠올리고는 쓴 웃음을 입에서 턴다.
뭐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어차피 세상은 적당히 부조리해서 적당히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냥 그렇단 말일세. 난 이 말을 10살도 되기 전에 깨닫고는 20여년이 지나서야 더 열심히 쓰고 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의 모토는... 이게 다 뭔가? 그냥 그렇단 말일세.
어사무사 살아도 무사하면 됐지. 그래도 다시 한번,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처럼, 잔뜩 감긴 채 고정된 시계태엽처럼, 격발 직전의 총알처럼.
이천십이년 십이월 이십일일까지는 즐겁게 살아야겠다.
별 일 없이 사는 가수, 장기하를 내가 목격;한 것은 공연장에서가 아니라 노상에서였는데.. 한 번은 종로근처였고 한 번은 스브스에서 일하던 때 방송국 로비에서였다. 처음 그가 장기하 라는 것을 알아보았던 때는 아직 앨범이 나오기 전으로, 홍대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서울대생 뮤지션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러다 나름 방송에도 출연하고 여기저기서 인지도가 높아진 뒤여서였는지.. 방송국 로비의 장기하는 카메라 마사지를 제법 받은 말쑥한 엘리트간지의 연예인처럼 보였달까. 아마 라디오에 출연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을테지.
유명해지기 전의 그에게서는, 일테면 같은 전공을 공부한 다른 가수들..예컨대 이적이나 성시경에게서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사회학이 묻어나는 표정(일테면 마르크스의 초상에서나 만나볼 법한 시크함?-_-)을 찾을 수 있었다. 허나 행인지 불행인지 그즈음의 그의 눈빛에서는 마르크스는커녕 스펜서도 느껴지지 않더라. 물론 그의 외양과 행간에서 촘스키를 찾든 피터 드러커를 찾든 그건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 것일 게다. 하여 사실 그때 나는 그게 좀 부러웠는데.. 요새 유행하는 말로 그에게서는 '위너 간지'가 흘렀다(실제로 키도 컸고-_-).
어쩌면 이런 느낌은 처음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홍대 마플 주변에서 마주친 '미선이'의 조윤석과 이후 대학로 라이브극장 주변에서 마주친 '루시드폴' 조윤석에게서 느껴지던 어떤 차이..와도 비슷하다. 그 뒤 조윤석은 스위스로 떠난 뒤 돌아왔다. 책을 내고 명성을 얻고 등등. 물론 여전히 장기하와 조윤석은 '인디펜던트'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에 가깝겠지만.. 그리고 여전히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음악이 좋지만, 마치 헤어진 연인이 잘나간다는 소식을 듣게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스물일곱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퍽이나 무참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도 난 세상이 마냥 고까운 마음이다. 결국 스스로의 부덕이지만서도.. 연말쯤이 되니 결국 한 해가 이다지도 심상하게 지나갔다는 것에 새삼 치를 떤다. 아니, 사실 치를 떤다는 표현은 그냥 그렇다는 말일 뿐이다. 사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왜냐 하면, 나는 별 수 없이 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스물일곱이란 나이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냥, 그 정도 나이를 먹으면 혼자서도 세상을 전부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교과서에 적힌 이야기들, 일테면 경제정책의 수립이나 민족문화의 창달 따위가 내 손끝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허나 내 삶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기회를 잃어가는 것이고 더하여 하나씩 패배를 늘려가는 일에 다름아닐뿐이다. 언제부턴가 상실과 포기가 쉽고 익숙하다. 그냥 그렇게 지나가고 마는 것들을 쟁여놓는 게 인생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 나는, 절반쯤은, 그동안 살고 싶었던 인생의 어떤 방식을 포기한 채, 노동력을 생산하는 기구로서의 신체를 저당잡혀 나머지 인생의 대손충당금을 벌어들이는, 그렇고 그런 인생의 세계로 아주 편안히 진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교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그간에는 그토록 근사하게 살고 싶어했지만, 이젠 그걸 내놓고 이렇게 품위 없이 살게 되었으니, 그냥 자동적으로 모든 게 다 되어야 한다는 알량한 보상심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기실 그때 이미 모든 게 결판이 난 셈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응당 모든 걸 다 걸어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나도 보통 사람일 뿐이었으니, 그따위 케세라세라 자세로 직장인이 되어 등따숩고 배부를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반칙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단 한 군데도 나를 고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정당한 일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고까움을 느끼는 내가 아직 덜 자란 거겠지. 그러나 다시 한 번 그럼에도, 가끔씩 마주치는 '위너 간지'들의 세상의 단면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그런 세상이 부럽다고 해서 그런 삶을 쟁취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제는 좀처럼 없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늘 내가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협상력을 과대평가하곤 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당장 취업이 안되서 우울하고, 근사한 커리어가 없어서 쪽팔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쉽게 얘기하면 왕자병이랄지 교만일는지도 모르겠다. 별일없이 사는 장기하가 부럽고, 책을 두 권이나 낸 조윤석이 부러울 수도 있겠다. 블라인드를 치고 어두컴컴한 방 침대에서 기어나오지 않는 잉여라이프인 내 삶은 하잘것없이 가소로운 것일 수도 있겠다. 당장 먹고 죽을 돈이 없어서 하루에 서너시간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고 서너가지의 알바자리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 내 삶보다 훨씬 숭고한 것이고 가치있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이런 말이 역겹고 우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삶이 숭고하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가치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내 몸의 항상성이 아니라, 내 마음의 의지대로 살고 싶을 뿐이다. 미미수족관의 두달된 금붕어가 뻐끔거리는 것과 태평양 3천미터 심해에서 향유고래가 유영하는 것이 같은 의미라고 한다면, 그것이 인간의 삶과 꼭 같다면, 그래서 나는 그냥 별 수 없이 산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기를 바랄뿐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내가 돈이 없고 능력이 없어 매일매일 일을 하며 살고 있다거나, 혹은 돈이 차고 넘쳐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거나 하는 가정은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나는 그 지경에 다다랐다. 내 말에 우스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스운 일일 것이다.
오늘 두군데서 나를 불렀다. 한 군데에는 공부 핑계를 대고, 다른 한 군데에는 선약을 핑계로 댔다. 그러고선 동네에 사는, 스브스에서 일하는 박지영을 만났다. 오래전부터 밥을 사기로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박지영이 워낙 바쁘기도 해서. 우연찮게 백화점 지하에서 그때 함께 일했던 피디님과 작가님을 만나, 밥을 사러 나간 내가 도리어 밥을 얻어 먹었다. 피디님은 농반진반으로, 피디 공부 하다 안되면 와서 작가로 일해 보란다. 솔깃해지면서도 쫄깃해지는 이야기다. 두산매거진에서 탈락 메일이 온 다음날, 편집장님('님'자를 붙일까말까 고민하다가 또 붙이고 만다. 이 간사한 마음이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와 기분이 비슷했다. 모르겠다.
오늘은 원래 일찍 잠들려 했다. 잠시 후에는 우리 학교 대학원에 면접 시험을 보러 간다. 커뮤니케이션 전공 석사과정. 사실 난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게 없다. 학부 2학년 수준의 지식 정도로 보면 될 테다. 떨어져도 할 말은 없다. 공부를 하려 했지만, 4년간 배워야 했을 무수한 이론의 구체성을 하루 사이에 볼 수 있을리가 없다. 그냥 미욱하게도, 입고 갈 옷만 정했다. 다들 면바지에 캐주얼코트를 입고 오겠지만, 난 새로 산 양복을 골랐다. 애당초 산 까닭이 면접용, 이었지만 2번 밖에 입지 못한 게 아쉬워서다.
새벽 5시다. 2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날 수 있을까.
이토록 많은 말을 내뱉고도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단 한 마디도 적지 못한다. 그런 게 삶인갑다.
마음이 울적할 땐 노래를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요새 들어서 좋았던 노래들을 추천함.
슬픈 노래 아님. 흠흠
Kings of Convenience :: <Boat Behind>
- 편익의 제왕,들의 신보의 제목은 역설적으로 <종속 선언>이다. 이제 그들의 나이 서른. 해체 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따로 또 같이 했던 긴 시간을 지나 다시 만나 그들은 인생이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임을 알았다고 읊조린다. 이 앨범은 참으로 간소하다. 그리고 담백하다. 전작의 <know-how>나 <i'd rather dance with you> 때도 그랬지만, 보사노바 포크는 드럼/퍼커션을 사용하지 않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리드미컬한 장기인듯. 비올라 선율이 유려하다. 별넷
Sean Kingston :: <Fire Burning>
- 무려 1990년생이다. 그러니까 이제 갓 스무살이 되었다. 요새 가장 잘 나간다는 "레게톤"의 오버그라운드 댄스(혹은 힙합) 버전이라고 해야 하겠다. 알아보니 2번째 앨범인듯? 오리지널 레게톤 음악을 많이 접해보진 못했으니, 이 젊은 뮤지션의 음악이 과연 얼마나 본토 음악의 정수를 잘 살렸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앨범을 접해보면 놀랍게도 '패기'보다는 '원숙미'를 느낀다. 마치 데인저마우스의 흑인 버전같다. 블랙아이드피스나 플로라이더를 좋아한다면 들어볼만하다. 서던힙합에 레게, 일렉트로니카까지 적절하게 섞어 놓았다. 춤추기 딱 좋은 건 당연한 일이다. 지-드래곤도 초등학생 때 랩을 했다며 천재라고 하는데, 이 친구는 유치원 때 리믹스를 했단다. 과연 만만치 않은 내공을 쌓았을 법하다. 아.. 부럽다. 별넷
Shakira :: <She Wolf>
- 혹자들은 샤키라 언니의 목소리를 돼지소리라고 싫어하는 모양이지만, 내게 있어 샤키라는 월드넘버원 섹시여가수다. -_- 꽤 오랜만에 신보가 나왔다. 물론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전작 oral fixation 연작만큼의 '치열함'은 잘 모르겠지만, 스타로서의 여유가 묻어난다. 첫 싱글을 들었을 땐 좀 낯설었다. 본인이 작곡에 참여했는지 잘 모르겠다. 뭐 그래도 적당히 힙하고, 여전히 듣기 좋은 노래를 부른다(최소한 내 귀에는-_-). 와이클레프 장이 참여한 노래도 좋다. 별셋반? 아직 다 못들어봤다능
Jamie Cullum :: <If i rule he world>
- 제이미 컬럼의 신보가 나왔다. 전작으로 많은 싸이월더-_-들에게 최고의 가수 반열에 오른 그의 신보는 전작보다 훨씬 차분하고 진지하다. 전작에서처럼 씩씩한 락큰롤풍의 노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마저도 전작에서처럼 마냥 유쾌한 것이 아니라 적당히 쓸쓸한 정취를 자아낸다.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그의 다짐같은 노래들에서 더 많은 진심이 느껴진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느라 그런가? 별넷
Sondre Lerche :: <i can't let you go>
- 레르케도 신보가 나왔다. 음악적인 분위기만으로는 3집의 연장에 있는듯하지만(조금 더 펑크-록, 혹은 뉴웨이브 신스록에 가깝다는 점에서), 곡을 쓰는 방식이나 멜로디를 쌓는 방법, 그리고 가창의 분위기로 하면 1,2집 때로 돌아간 느낌을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더 반갑고.. 여튼 '멜로디'나 '디테일'의 '뉘앙스'를 가장 잘 다루는 싱어송라이터는 전 세계에서 이 청년이 제일임이 분명하다. 별다섯!
the Ting Tings :: <Shut up and let me go>
- 팅팅스, 라는 이 '트렌디'한 밴드는 정말 트렌디한 노래를 부른다. 온스타일이나 쇼핑상점가에서 간간히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괜찮다, 싶어서 앨범을 들어봤는데.. 최근 몇년간의 영국의 인디팝(특히 챔버팝)의 요소요소들을 끌어다가 댄서블하게 녹여낸 '들을만한 앨범'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나쁘게 말하면 전부 어디서 들어본듯한 노래들이다. 요새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이 노래의 기타리프와 비트는 전반적으로 cosmic의 몇년전 히트 댄스넘버였던 <les hommes n'est pas mecs bien(남자들은 다 쓰레기야)>를 떠올리게 한다. <we walk> 같은 노래는 (너무 당연히) 누벨바그 같은 밴드를 떠올리게 하고, 그밖의 노래들도 the Go! team같은 영국 인디밴드(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첨바왐바), 혹은 my morning jacket이나 pocupine tree같은 이모-펑크 밴드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이런 수많은 모방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괜찮은 이유는.. 어쨌든 BGM으로는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별셋.
Kate Earl :: <Nobody>
- 트렌디한 파워팝. 난 여성싱어송라이터의 노래들은 덮어놓고 편애하고보는데(조니 미첼부터 피오나 애플까지),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여성싱어송라이터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하나같이 어쩜 그리 사랑스러운지. 케이트 얼의 이 앨범은 비요크의 (난해해지기 전의) 옛날 팝송이나, 폴라 콜의 히트작(카우보이 어디갔음?)을 떠올리게 하는 기타팝인데, 요새 팝 트렌드가 다 그렇듯 적당히 네오소울을 가미해줘서 더 듣기 좋고. '아무도 당신처럼 내게 오래된 책을 사주지 않아 아무도 당신처럼 내 치마를 들추지 않아 아무도 당신처럼 세상은 변치 않는다고 말해주지 않아' 이런 가가사를 띠껍게 부르는데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냐능.. 별셋반
Ingrid Michaleson :: <Are we there yet>
- 확실히 조금 더 '전통적'으로 노래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피아노를 쌓아올리는 거나, 몇몇 곡에서 들려주는 목소리의 비브라토에서 조니 미첼을 떠올리게 한다면.. 오버인가? -_- 제이슨 므라즈랑 같이 투어를 다닌 걸로 유명한데, 므라즈보다 좀 덜 상업적이고 좀 더 단순한 노래를 부른다. 거기에 더해 므라즈만큼 가사를 잘 쓴다. 단, 가사 역시 좀 덜 상업적이고 좀 더 단순하다. 별 넷
Yo la tengo :: <when it's dark> 등 마지막 4곡
- 욜라텡고 신보의 제목은 <popular songs>, 첨엔 베스트 앨범이라고 생각했다. 트랙리스트에 <가을스웨터>나 <네가 다 가져도 돼> 같은 노래가 없는 걸 보고 아니구나 싶었다. 첫 두어 트랙을 듣고 나서 '아 이래서 팝송 앨범이란 제목을 지었나' 싶을 정도로 편한 멜로디가 좋았다. 그러나 마지막 4곡에 가서는 이 '팝송'이라는 제목이 어찌나 역설적이었던지. 전반부의 친절함은 온데간데없고, 14분과 11분의 대곡(이라기에는 너무도 소박한 악기 편성)으로 마무리짓는 이 곡들을 듣고 나서야... 결국 욜라텡고식의 팝송이란 게 이런 거지 싶어진다. 별넷반
Selena Gomez and the scene :: <I Won't Apologize>
- 지난 시간들 록씬에서 개발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주류 팝송이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앨범이랄까. 몇몇 노래에서 소닉유스와 욜라텡고, 그랜대디, 지미 잇 월드 등이 들린다. 그런데 이 앨범은 분명 그냥 '팝'앨범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에이브릴 라빈 정도? 그런데 확실한 건 라빈 보다 노래가 좋다는 것, 라빈 보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 라빈의 첫 앨범보다 완성도가 높다는 것, 그리고 라빈보다 예쁘다는 것 되겠다. 별넷
그 외에..daniel merriweather, lilly alen(스펠링 맞나-_-), owl city, editors, pearl jam도 간간히 들었는데 아직 완전 좋은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들을만함. 펄 잼은 좀 놀라긴 했음.
여튼.. 지금까지 올해 나온 앨범 중엔 manics하고 sondre lerche가 제일 좋았다능.. 취향은 어디 안감. 그러나 취향을 떠나서 그들의 새 앨범이 정말 좋은 것이 사실임. 남들은 다 좋다는데 난 별로였던 앨범은 muse, 남들은 별로라는데 난 좋았던 앨범은 아마도 샤키라가 될 것 같음. -_-
지난 토요일에 CJD 바이러스(이런 용법도 재밌는 것 같아서 미는데, 주위에선 별로 반응이 없다-_-. 참고로 국내 활자매체 언론사 세 곳을 지칭한다. 이쯤되면 다들 알겠지?) 가운데 꺼 시험보고(...사회적인 크로이츠야콥병 취급을 해 놓고 시험을 보고 앉았고..아하하하), 일요일, 월요일 이틀동안(사실 화요일에도 서너 시까지 썼으니 화요일도 포함) 4편의 글을 뚝딱 쓰다보니.. 이건 뭐.. 문장들이 눈뜨고 봐줄 수가 없다. -ㅅ-
예를 들어 대표적인 황당 문장은 꿀벅지 관련 글에서 만 레이의 모델이자 장 꼭또의 <어느 시인의 피>에 출연했던 리 밀러는 만 레이의 모델이었다. 이다. -_-;; 마지막 '만 레이의 모델이었다' 대신 '전형적인 남성적 응시의 대상이었다.' 정도로 고쳐야 했다. 나머지 글들에서도 사소한 문장 단위의 실수가 많았다. 문단 배열을 통으로 옮기다가 부사어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어 어색한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러면서 접속사도 간혹 잘못 사용되었다. 토씨가 잘못 쓰이면서 비문처럼 보이는 곳도 있고(예를 들어 '~의 ~를'을 '~를 ~를'..오호리..).
오랜만에 타이트하게 글을 쓰면서 느낀건데, 하여간 글을 잘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되도록 안 쓰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안 쓰는 것이 아니고, 결국 다 쓴 다음 도로 다 지우는 것이다. 글은 경제적이어야 한다. 하나마나한 말은 안 쓰는 것이 좋다. 그러나 난 언제나 중언부언하고 덧칠을 해놓지 않으면 분량을 채우기가 힘들다. -ㅂ-
뭐...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 강에서 익사하고 말리라. 꼬르륵..
어제오늘은 저녁때 집에 앉아 중학생들 질문 올라오면 답글 달아주는 알바를 하고 있다. 답글을 달 때마다 내 인생의 모토인 '이게 다 뭔가'를 떠올리게 된다. 얘들아.. 그런 사소한 건 궁금해 하지 않아도 돼.. 난 걍 무시하고 넘기며 살았건만, 너희들이 가고 싶어할 만한 대학 중 한 곳에 다닌단다.. 라고 쓰고 싶다. 아이들이 교과서와 문제풀이 말고 다른 걸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 아마 이 알바를 하고 있는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가끔씩 '공부가 너무 지겨워요' '왜 이런 걸 하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글이 올라올 때면 맘이 약간 아프기도 하다. 정말 심각한 고민꺼리라서 이런 데 그런 글을 올리는 건 아니겠지만, 하고 생각하다가도, 지나가는 쉬운 말로도 얘기할 곳이 없으니 익명의 누군가에게 그렇게 한숨을 쉬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면 또 이런저런 얘기를 해준다. (걍 '집중이 안되요!' '할게 너무 많아요!' 이런 글 쓰는 애들은 예외다) 군고구마, 직사광선, 용광로 등 따뜻한 말(?)을 해주고 나면, 도로 와서 읽고는 '매우 만족' 이런 평가 버튼에 클릭을 하고 간다.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내가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건가?-_-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기본급 25만원에 추가급이 17만원인데 페널티 13만원.. 세 명이 나눠서 하고 있고, 결국 시급 5천원이 조금 안되는게 된다. 차라리 하지 말걸 싶기도.
그러고보니 이런 류의 '근황 포스팅', '일기글'은 이 블로그에서는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막상 시작하니 또 말이 술술 나온다. 역시 난 수다쟁인가.. -_- 내가 누군지 알고 여기 올 만큼 친한 사람들이면 다 아는 얘기겠지만.. 현재 한창 구직중이다. 국내 몇 대 재벌 회사, 이런 곳들에 닥치는대로 원서를 던지고 있다. 직종도 다양하다. 유통, 상사, 화장품, IT, 전자..등등.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예전에 소설 쓰던 것보다 더 많은 구라를 적고 있는 기분이 든다. 가끔은 정말 솔직하게 쓰고 싶기도 하다. 예를 들면
1. 우리 회사에 지원하게 된 동기와, 직무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 닥치는대로 원서를 넣고 있는데, 오늘이 마감인 기업이 당신네 회사다. 돈만 주면 시키는 일은 다 잘할 수 있다. 그러니 닥치고 뽑아 달라.
2. 우리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것과 우리 회사에 바라는 점
: 급여만큼의 노동량, 규정만큼의 노동시간, 상여금, 휴가, 직원할인.. 다 그런거 아닌가?
3. 자신의 재능
: 딱히 없지만 시키면 남들만큼 흉내는 낸다. 까짓꺼 필요하면 배워오겠다. 뭐 대단한 걸 시킬라구..
4. 살면서 겪어왔던 성공과 실패
: 성공- 태어난 것이 기적 실패- 그 이후 줄곧. 오즈 야스지로 같은 대답을 하고 싶구나..
5.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근무 태도와 바람직하지 않은 근무 태도
: 바람직 - 농땡이, 회사물건 삥땅치기 바람직X - 야근
6. 살면서 겪은 어려움과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
: 어려움 - 무직남으로 전락한 지금 노력 - 원서를 내고 있다
이미 삼성제국은 탈락, 르그전자도 탈락, 스크싸이월드도 탈락했다. 안하느니만 못한 원서질.. -_- 군대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시험은 보면 다 붙었는데.. 아 왜 인간이 이렇게 된걸까?
내일은 경희와 유니클로에서 나온 질샌더 콜라보 구경을 가기로 했다. 첨엔 유니클로 옷을 질샌더 가격에 파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가격대가 공개된 것을 그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좀 저렴한 편이니 옷이 별 볼일 없을것 같아 기대가 되질 않는다. 게다가 '브랜드 질샌더'가 아니라 '디자이너 질샌더'라며? 랖 시몬스가 디자인한 게 아니라면.. 예전에 푸마+질샌더를 생각해보면 별 볼일 없을 것같다. 그냥 그렇다고..
또 질문이 올라왔다고 문자가 왔다. 어제는 5시간동안 70개의 질문에 답을 달았는데, 오늘은 확실히 뜸하다. 중학생아, 횽아가 문제풀이를 해줄께! 기다려!
이 글을 읽을 나의 지인들이여 해피 추석되시고,
추석이 지나고 시간이 나면 내 생일 선물을 가지고 오시기 바란다. 당최 선물 뭐 해줄까 라고 물어보는 인간들이 몇 없구나..... 하하하. 인생 뭐 있나. (허나 생각해보면 작년에 받은 생일선물이 아직 고스란히 서랍에 들어있...)
스물여섯번째(이렇게 적어 한 해라도 깎는다) 생일이 지난지 다섯시간이 지났다. 글을 쓰고 있다. 쓰고 싶지 않아 했던 류의 글월이지만, 생각해보면, 만약 내가 '돈을 받고' 쓰게 된다면 응당 이런 종류일 수 밖에 없겠지 싶다. 수사(레토릭)가 하나의 내용을 다른 내용에 (무책임하게!) 연결시키는 협잡질이라 한다면, 무내용을 내용인 것처럼 꾸미는 음험하기 짝이없는 구라도 하나의 수사학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사실 배움이 짧다.
좌파와 우파, 쇼핑과 수용소, 문화이론와 문화산업, 패션과 반미학, 취향과 협상, 소비사회와 상징폭력, 노동과 포섭...그리고 욕망과 허무, 호승심과 나태, 공포와 열락. 이런 것들이 한데 뭉뚱그려져, 지난 몇 년간의 내 값없는 대학 시절의 끝에 얹혀 있다. 생일날 전후 나는 누추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무던히 글을 읽었다. 그럴수록 세상의 말들에 담긴 구체성을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간 나는 항상 떠들썩한 생일날을 좋아라 했다. 선물 주고받는 걸 좋아했고 웃고 떠드는 걸 즐겼다. 올해 내 생일은 참 조용히 지나갔다. 다만 옆을 지켜주는 내 사람이 많은 걸 채워주었다.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기분이 남루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제오늘 뜻밖에도 많이들 축하를 해 주었다. 그러니 그것은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은 아니다. 다만 내 부덕 혹은 무능이 내 스스로를 조금은 움츠러들게 했을 뿐이다.
CBS 시사자키, 로 유명한 김용민은 <충대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20대들에게 '(정치적으로) 너희는 안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 라고 독설했다. 그리고 '(10대) 아이들이 졸업하면 너희 세대를 앞지를 것이고, 곧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판 돈 모두를 걸련다.' 라고 적었다. 이 글에 담긴, 악의에 가까운 날선 비난은 처음 기고되어 원문이 실린 충대신문의 페이지를 떠나 이리저리로 퍼지고 있다. 그리고 논쟁. 논쟁의 요는 결국 20대 전반에 씌운 그 '혐의'에 대한 진위 여부를 밝히고자 하는 (집요한) 공방이다. 그래서 논쟁은 때로 386 세대(라고 쓰고 혹은 '진보개혁진영', 내지는 어떤 '계급'으로까지 읽히는) 386과 20대의 대결 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사실은, 386 진보개혁세력의 아지트(?)라고 할 서프라이즈에서 이 글에 대한 대체적인 반응은 공감에 가깝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 386 중산층이 그 주 사용자층인 dvdprime에서도 같은 글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사실, '국개론' 등과 더불어 '20대 병신론'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내 친구 이석호와 임민철은 03년에 '우리학교에는 한 줌의 보통 사람과 2만의 병신이 다닌다'라고 말하고 껄껄 웃었다. 나는 그때 내가 그 한줌의 보통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면 2만의 병신에 속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_-
20대와 386세대간의 갈등은 우석훈 등의 <88만원 세대>부터 시작해서, 작년부터 늘상 나오던 지리멸렬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고 또 해결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하나마나한 소리고 요령부득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개가 아니듯, 20대가 정말 병신인 것은 아니다. 김용민은 20대가 명바긔를 지지했다는 점을 들어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명바긔만이 경제 아젠다를 선점했다는 데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오히려 혹자는, 그러한 투표율을 분석한 결과를 두고 20대야 말로 가장 진보적인 투표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주장에 따르면, 20대의 이명박 지지율은 40대(이제 386은 전부 40대가 되었다)의 그것보다 10퍼센트가 낮았고, 정동영을 제외한 범-진보개혁 후보의 지지율도 40대보다 20대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그것은 현재의 지지도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즉 20대들이 '진보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20대들의 가치 성향은 다른 세대에 비해 비교적 진보적이다. 다만 예전 세대에 비해 '덜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대들의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대변해 주는 정당이 없다는 점에서, 정당지지율만으로는 진보와 보수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거리를 나가보자. 20대의 숫자가 과연 적은가? 물론 70, 80년대 독재 타도를 위해 뛰었던 대학생 운동권 조직이 부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쨌든 연령비율 상 20대가 현격히 적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한편으로 '촛불시위'의 기원을 봐도 그러하다. 2002년과 2003년 미군장갑차사고로 촉발된 소파 개정 요구 시위와 탄핵 정국에서 탄핵 반대 시위 등에서 처음 시작된 촛불시위는 (지금은 30대가 된것으로 알고 있는) 네티즌 '깜악귀'(이자 서울대생 김모씨,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만)의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다. 그때 수많았던 386 논객들은 무얼하고 있었나? <서프라이즈>니 <컬티즌>을 통해 '말'의 백가쟁명 시대를 열고 있었(고 곧 얼마 안 가 모두 망했)다. 깜악귀 등만이 <컬티즌>을 통해 격문을 띄웠다. 그리고 그것이 노무현을 당선시킬 수 있는 기폭제였고, 지금의 촛불시위를 있게 한 어떤 시스템의 출발이었다. 20대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이 아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라고 해봤자 결국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80년대 처럼 강렬한 운동권 조직, 지금은 없다. 전위도 없고 투쟁도 없다. 사명도 사상도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태어난 인간들이 생물학적으로 병신이어서일까? 똑같은 인간인데 왜 어디가 모자란 것일까? 20대를 '연령'이나 '세대'로 둘러쳐서 묶고 '왜 너희는 사회 운동 안 하느냐'고 다그치는 것만으로는 아무 답도 얻을 수 없다. 그러니 이야기를 바꿔보자. 한 세대의 정치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살피기 위해선 사회 구조(social structure)나 조직 체계(organisation/system) 상 어떻게 그리했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사회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다만 어느 측면이 결정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을 따름이다. 기실 항상 케이스 바이 케이스고, 백인백답의 문제이다. 다만 이러한 '담론'이 어째서 횡행하는지를 거칠게나마 살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미성년 8XXXXX- 1 : 세대전쟁 2차전 - 베이비붐 리플렉스 세대 vs 386 2세대
첫번째 결론을 당겨 보자. 사회구조상, 세대론으로 두루뭉술하게 묶어서 이야기해본다면, 결국 이 양상은 또 하나의 '대리전'이다. 굳이 김용민은 10대 이야기를 꺼내, 10대가 20대보다 낫다는 둥의 이야기를 어째서 늘어놓은 것일까? 왜 굳이 '판돈'이라는, 대단히 불편한 어휘까지 사용했을지 위악적으로 이야기해보자. 결국 386과 20대의 다툼은, 어쩌면 50대 이상의 소위 베이비붐 세대(라고 쓰고 기성세대, 산업화 세대 라고 읽는)와 386세대의 시장을 두고 다투던 싸움의 대리전에 불과하진 않은지. 사실 결국 세대론은 해당 세대에서 진행된 '국가 경제' 발전 정책, 즉 산업화의 진행과 금융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소득과 현금소비의 고리에 의한 노동 시장 재편,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자산의 증식과 세습의 문제로 추렴, 요약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국 사회는 군부 독재 시절 건설과 제조업 드라이브를 통해 고도 성장했고, 그때 생산된 부는 부동산이라는 자산으로 탈바꿈해서 편재되었고, 세습되었다. 쉽게 얘기하면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국사회는 산업화되었고, 그 산업화를 통해 만든 돈은 부동산 거품을 통해 불어났다. 서울 시내 수많은 수억대 아파트의 소유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그 베이비붐세대다. 사실상 386세대가 전두환의 독재와 불의를 이겨냄과 동시에 얻은 것은 DJ와 노무현 정부 10년인 동시에, 그러한 자산의 재분배이기도 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음영에 어용노조와 종부세와 수구꼴통 등이 있다면, 386세대의 음영에는 기실 디지털스모그와 뉴타운과 주가 조작과 유학열풍-기러기아빠와 급증한 이혼율이 어지럽게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시각에서 386이 20대를 '까고' 10대에게 '판돈을 모두 걸'겠다고 말하는 까닭은 사실상 자신들의 세대론을 세습한 것이라는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지 묻고 싶다. 지금의 20대들은 베이비붐 리플렉스 세대가 다수이다. 사실상 그 어느 누구도 부모 세대의 경제적 지원과 한계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장은 (명박이가 좋아하는 말대로 '일신우일신') 보다 자본주의적으로 고도화되고 있고, 경쟁은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다. 그것이 그들을 원자화시키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사상 최대이며, 임금 수준은 갈수록 격하되고 있다. 취업률은 말할 것도 없다. 386세대인 김용민이 '판돈'을 10대에게 걸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물론 김용민은 정치적 희망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386세대들에겐, 10대들에게 거는 판돈이란 곧 그들이 자립형 사립고를 다니고 대학 등록금을 내고 외국 유학을 가고 결혼하고 나서 살 집을 사는 데 돈을 보태주겠다는 말로 전락되기도 한다.
미성년 8XXXXX- 2 : 80년대는 끝나지 않았다
한편, 왜 20대들은 조직화된 사회 운동을 하지 않는가? 사회 운동의 동학을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군중의 자발성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과, 운동 전위 조직의 동원(mobilization)에 의한 것으로 보는 시각으로 대별된다. 재밌는 것은 이 두 가지 시각 모두로 보았을 때, 20대들이 조직적인 사회 운동을 하기에는 현재의 조건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군중 이론으로 보자면, 이전 정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가 아니다. 20대들은 이명박 정부를 심적으로는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지만, 그러나 운동을 통해 변혁시켜야 할만큼 절박함이 아직은 없다. 어떻게 보면, '사사오입 개헌'과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6월 항쟁과 비교할 때 '쇠고기 수입 파동'은 그 의제가 훨씬 '덜' 치열해 보이기도 한다. 즉 1960년, 그리고 80년대의 정치 상황과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 (물론 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현 정국은 비교적 정상적이기 까지 하다는 뜻이다. 까놓고 말해, 명바기가 두환이만큼 사람을 대놓고 학살한 새끼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군중 이론만으로는 20대들의 무행동이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두번째 고리, 동원 이론에 답이 있어 보인다.
1990년대, 90년대의 주인공은 '서태지'였을만큼, 그 시절은 참 조용하게 시끄러웠다. 노태우가 집권하고, 올림픽이 열리고, 삼당합당으로 민자당이 등장하고.. 그리고 김영삼, 그리고 IMF가 오기전까지 90년대는 꽤 평화로웠다. 그리고 DJ가 대통령이 되었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동안 386들은 빠르게 사회의 주류로 편입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 열린우리당은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없고 다수당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대학 운동권의 '맥'은, 맥없이, 끊겼다. 1997년 한총련이 연세대 종합관으로 쫓겨나 불타는 건물에서 우왕좌왕하는 동안, 87년 6월 거리를 메웠던 시민들은 차라리 무관심했다. 386(현재의 40대)와 베이비붐 리플렉스(현재의 20대) 사이의 세대, 즉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현재의 30대들(이른바, 오렌지족과 X세대로 일컬어진 '신인류')은 그렇게 가장 비극적인 시절을 겪어야 했다. 민주화되었다는 명분 아래 '선배'들이 사회로 떠나가고 남은 그들이 사회에 진출할 시기가 되어 한국은 경제 한파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겨우겨우 '살아내'고 10년이 지나자 이번엔 이명박이다. 도무지 살 맛이 나지 않는 세대이다. 슬픈 일이다. (생각해보면, 93학번 김용민은 이 시절 대학생이었다)
90년대의 운동권이 쇠약해져 간 데에는, 87년 6월의 승리가, 사실상 '87년 체제'의 도래가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민주화의 가장 큰 단절점이라는 데에 그 주역들이 너무 쉽게 동의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윽고 수년이 지나 김대중, 노무현 민주 정부가 10년을 집권했다. 김대중-노무현 10년을 '민주화 공고화 단계'라고 말한다면, 어째서 노무현은 정권 재창출해 실패했던 것인가? 혹은, 87년 직후 출범하고 10년이 지속된 민정당 노태우-민자당 김영삼 정부 시절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 87년 6월 이후 20년간,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의 '민주화'가 완성되어 가고 있냐고 묻는 것이다. 노무현의 영결식에 노태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가 그의 부재를 문제삼지 않을 정도로 그는 '잊혀진' 대통령이 되었다. 김영삼은 오로지 'IMF를 불러일으킨 대통령'으로만 기억된다. 그들에 대해 전두환의 2인자, 삼당합당의 주역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긴 하지만, 다소간의 입장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은 '민주화 과정의 부산물' 수준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정치적 국면전환이 있었을 뿐, '민주화 프로젝트'는 사실상 성공적이지 못했다. 87년부터 20년간 진행된 유일한 사회적 프로젝트가 있다면 신자유주의밖에 없다.
민주화 프로젝트가 없기에, DJ-노무현 10년이, 사실상 '진보'의 견지에서 볼 때는 오히려 가장 '보수'적인, 신자유주의의 공고화 과정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정치 아젠다가 소멸된 이후, 정치가 사회 속으로 스며들어 없어지자 결국 경제 체계에 의해 생활 세계가 우습게 식민화되어버린 것과 다름없다. 우습게도, 노무현 정부 시절 양극화가 심해진 데에는 보혁 간 의견이 일치한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구 집권 세력이 거기에 대해 이렇다할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물론 자칭 보수인 현 정부는 그것에 대해 비난해 놓고서 해결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정말 뻔뻔한 새끼들이라는 점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386이 20대를 공격할 때, 20대들이 386을 반격하는 논리도 이러한 선에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공고화한 것이 386이며, 386은 그 자유주의화라고 하는 어떤 정치적 프로그램에 의해 주류로 안착한 '가해자'였고 20대는 그 '피해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산업화 세대가 다시 집권했을 때, 20대 입장에서는 산업화 세대나 386세대나 X세대나 '그놈이 그놈'인 것이다. 최소한 부모 세대인 산업화 세대는 '삶의 조건'을 제공해주기나 하지. 실제로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한 지지율을 살펴볼 때, 놀랍게도 박근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세대가 바로 40대다. 이러한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오히려 20대들은 그 여느때보다 더 열심히 경제 지표를 추적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을 따름이다.
미성년 8XXXXX- 3 : 공존이 성숙이다
저마다 2mb out을 외치지만, 나는 가끔 되묻고 싶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우리는 광장에서, 정말 중요한 이야기들은 놓치고 만다. 막상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면 저마다들 정의로운데, 종국에 다같이 만나보면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데 집중한다. 그럴 때마다 20대들은 참 '만만한 아이들'이다. 김용민은 이명박이 20대를 만만하게 본다고 했지만, 사실 20대를 가장 만만히 보는 것은 오히려 386이 아닌가 하는 억하심정도 생긴다. 386들은 20대에게 '너희들이 역사를 아냐? 정치를 아냐? 데모는 해봤냐?'라고 묻는다. 그래놓고 20대들이 '이런 치열한 경쟁속에서 내일 거지가 될 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느껴보았느냐'고 되물으면, 배부르게 살았으면서 투정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IMF 시절의 경제 한파와 이후 도래한 무한경쟁이라고 하는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였는지, 지금의 386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놓고 우경화와 진보의 가치에 대해 논하려 든다.
허나 한국의 정치지형만큼 알팍하고 거짓된 것이 어디 있을까?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란 말일까? 한국사회가 보-혁을 가르는 기준이 다름 아닌 영남-호남에 불과하진 않을까? 그리고 이제는 심지어 세대별로, 베이비붐/베이비붐 리플렉스 가정은 보수이고 386/386 2세대는 진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일까? 결국 이런 식의 잘못된 '편가르기'는 영호남을 가르는 박정희식 지역 감정론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하니 결국 보수는 보수답지 않고 진보는 진보답지 못한 것이다. 보수나 진보나 그저 권력을 둘러싼 국면 전환에만 몰두한다. 이것은 대단히 아픈 이야기이다.
따라서, 다만 386세대는 80년대 자신들의 '명분'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20대들에 대해 신경쓰고 있다면, 돌아와 다시 '가르쳐야' 한다. 20대들이 다닌 2000년대의 대학가에는 '운동권 선배'가 없었다. 다만 '동아리'들이 있었을 뿐이다. 운동권의 마지막 세대들이 저마다 '살길' 찾아간 동안, 20대들은 '정치'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있다. 그러니, 문득 자문해본다. '정치'가 무슨 뜻일까? 政治, 명사, '하다'가 붙어 자동사가 되는 그 말. 사전적 정의만으로 치면 정치는 통치(govern)의 유의어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는 국가의 주권을 가진 자가 해당 국가의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고 정책을 강제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치에는 '다툼'의 속성이 있다. 즉 사회 집단간에 생기는 이해관계의 대립 등이 조정(되기 위해 반목하거나 합의)되는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결국 정치노선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를 위핸 합의가 아니라는 뜻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편인가를 아는 것이 정치라는 말에 담겨 있는 슬픈 함의이기도 하다. 즉 독재권력의 민주화 혹은 세대/집단 간의 이해 관계의 조정의 속성이 정치라는 말 속에서 해석되고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은 보다 깊고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년전의 6월과 작년의 6월이 달랐던 이유는 그 아젠다의 차이에 있다. 20년전에는 정치 프로젝트였고, 지금은 (푸코 식으로 말해) 삶의 문제(건강, 행복추구, 안전, 지위나 재화를 추구하는 생명활동, 생물학적으로서의 '삶'의 문제)였다. 그런데 지난 광장의 의제는 계속해서 '이명박 정권 퇴진' 쪽으로 흐른다. 노무현 서거 이후의 정국도 그런 식이다. 20대 입장에서는 누가 되든 똑같으니, 적극적이기 어렵다. 즉 386은 '87년 체제'가 어떤 완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아닌, 구태적인 진보와 보수로는 말할 수 없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예컨대 생태주의나 공동체주의, 여성주의, 문화 운동과 같은 의제는 386식의 진보로는 다룰 수 없다. 서로 공박해서 될 일이 없고, 안 될일만 많다.
80년대애 태어난 모든 것들은 모두 미성년이다. 인간도, 체제도 그러하다. 정치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언젠가 완성되었던 사회로 '돌아가고자' 원해서는 안된다. 보편적인 사회, 완성된 사회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지금이 아닌 다른 어떠한 체제에서 살고 싶다'라는 끊임없는 진보의 갈망이 있을 뿐이다. 부당한 이득이 없고, 억울한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공히' 물질화,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대가 따로 없고, 지역이 따로 없다. 전위가 없고, 응당 후위가 없다. 결국 남은 문제는 다시 연대하고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386 운동권이라는 말들
386 이라는 말은 사실 대단히 복잡한 말이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의 첫 숫자를 잡고 붙여진 말이었는데, 레이코프 식으로 말해 이는 이미 프레임전쟁에서 지고 들어간 것이다. 먼저 386이라는 말은 인텔의 80386 프로세서에서 따온 말이며, 이는 이미 펜티엄3(굳이 숫자로 치면 786쯤이 되겠지)급 프로세서가 보급된 뒤에 붙여진 것으로 그들이 여전히 시대착오적이거나 시대의 흐름을 놓치고 있다는 조롱의 의미가 섞여 있다. 이미 세상은 차세대 프로세서 - 금융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통치 문제, 정치적 자유주의의 문제, 혹은 북한에 대한 태도 등에 얽매여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40대가 되어 '486'으로 업그레이드가 된다한들 마찬 가지다. 그새 세상의 프로세서는 쿼드코어급으로 올라갔으니까.
또한 386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내재적인 편가름, 배제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80년대 학번' 때문인데, 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 시절 늘어난 대학 정원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된 '80년대 학번 대학생 출신들'을 직접 지칭함으로써 일단의 배제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80년대 대학 운동권이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만을 외친 것이 아니다. 그들이 투쟁한 첫번째 동기 중 하나는 프랑스식의 교육제도, 즉 다수 입학 - 소수 졸업이라는 정책에 반대했던 것이다. 일례로 80년대 강단의 '황당한' 운동 사례 가운데 하나는, 학칙에 의거 낙제 학점을 준 교수에 대한 린치 등도 포함된다(서강대 등에서 실제로 자행된 일이다). 80년대 학번, 대학생 출신의 386들은 이후 무난히 사회 주류로 진출하거나, 혹은 DJ-노무현 정부의 금융 및 IT 드라이브의 직접적 수혜를 입었다.
지난 시절 우리의 적들이 '운동권'이라는 말로 사회운동과 일반 인민/시민, 즉 '민중', '민생'을 갈라놓았고, 그 다음은 386이라는 말로 그들의 공을 조롱한 것이다. 결국 386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사실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진짜 중요한 것은 진보적인 가치,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는 가치이지, 어떤 세대론이어서는 안된다. 즉 386이라는 한 개념어(idiom)를 진보진영은 거부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이나 한겨레 신문, 혹은 진보 논객이나 진보 정당 내의 '386출신' 운동가들은 그 말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80년대 운동권의 진짜 정서는 '부채 의식'과, 그에 의거한 '연대 의식'이었다. 서울대 상대생들이 지방대 출신 전대협 의장을 위해 몸을 날렸다. 농민과 노동자들을 보고 슬퍼서 대학을 떠나 공장으로 갔다. 그랬던 386들은 물론 지금 20대들에게 '너희들은 부채의식이 없느냐' 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시금 부채의식을 가져야 하는 '386'들, 즉 사회 주류로 편입되어 신자유주의 공고화의 직접적 수혜자가 된 그들이 자신의 운동 이력을 어떤 신화로 만들어 미화하고 추억하면서 20대들을 공박하는 것은 조금 이상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구조적으로 20대들에게 분명한 부채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채의식과 연대의식이 없고, 이상한 편가르기만 하려 한다. 20대들도 386과 같은 편이 될 마음이 없다. 김용민의 글을 읽어봤자 귓등으로 듣지도 않는다. 따라서 김용민식의, 혹은 이미 그 전에도 있어왔던 수많은 세대론에 의거한 그 음험한 편가르기는 '수사'로도 불편하다. 김용민의 그런 글은, 그 글에 담긴 의미로서도, 위악적인 포즈의 '쇼크요법'으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편갈라 놓고 싸우기를 시도하게 된다면, 20대들은 그저 산업화세대의 한 후계자로서 다시금 박정희를 불러내고, 또 전두환과 노태우를 불러낼지도 모른다. 기성세대 진보진영들이 그꼴을 보지 않으려면, 20대들을 조금 더 가까이 어여삐 여기고 가르쳐야 한다. 이 글을 적으면서 틈틈이 다른 블로거들의 반응을 읽었다. 그들 대부분은 사실상 김용민이 공격한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김용민이 비난한 부류들은 김용민의 글을 읽지도 않으며, 설혹 읽어도 '흥,386 운동권 같이' 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386들은 그것을 '조롱'으로 듣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이 땅의 새로운 편가름의 현 주소다.
수 년, 수십 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이 시절을 어떠했노라고 술회할까. 고작 서른 해를 넘기지 못한 한 짧은 생애와, 고작 육칠십년이 지났을 뿐인 어떤 조국의 역사 가운데 한 방점일 이천년대 첫 십년 그 몇 해를 앞으로 어떤 기준과 어떤 언어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과 많은 말들이, 그동안 벌어졌고 벌어질 행위와 사건 가운데 무슨 모양으로 놓이고 입히고 펼쳐질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그분조차도 그러했다. 그런데 하물며 나 같은 민초가 무슨 생각과 무슨 말로 이 시절을 통찰하고 답파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아무 것도 몰랐던 그때,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차라리 어린이용 영웅전의 한 인물이었다. 지난 며칠간, 무능하고 자격없고 파렴치하기까지 했다고 일컬어지던 그를 사람들은 자꾸만 '바보'였노라고 말했다. 내게도 실로 그는 바보였다. 백의종군한 이순신이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것처럼, 그는 항상 혼자 싸웠고, 혼자 지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이 애처롭다기보다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정치적 신념이 어떻고, 정책적 비전이 어땠는지도 전혀 알 리 없었던 시절이었다. 어렸을 적 마을 어귀의 삼거리에 붙은 노태우와 김영삼과 김대중의 벽보와 처음으로 본 정치 연설 가운데 나는 노태우의 승리가 무슨 의미인지, 그 당시 노무현이 청문회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러한 무지에도 노무현은 단기필마로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기사의 모습으로 비쳤다.
대통령인 김대중과 시정잡배들의 입 노릇을 하는 김대중을 겨우 구별해내던 십대시절을 지나, 고작해야 배운 것이라고는 술담배 뿐이던 대학 신입생 시절 노무현은 새 대통령이 되었다. 수업을 땡땡이치고 보던 TV뉴스에서는 탄핵이라는 정치쇼를 중계했고, 그러나 나는 분개했다기보다는 코미디쇼를 보듯 우스워했다. 여의도 앞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 틈에서 나는 어쩌면, 축제를 즐기듯 즐거워했었던 것같다. 얼마 후 처음으로 투표를 했을 때, 유시민과 진중권 사이에서 나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찍었다. 다시 얼마가 지나, 이뤄놓은 것도 없이 나는 쫓기듯 군대를 갔고, 자이툰부대와 김선일과 여명의 황새울과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와 한미무역자유협정과 노무현 독트린과 종합부동산세와 행복도시와 대연정제안과 대통령의탈당과 각종 게이트 속에서 나는 대통령이 버림받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안쓰러웠고 한편으로는 멋적게 웃었다. 나는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한심한 족속의 하나인 채로, 버려진 그의 등 뒤에서 무력했고 또 자괴감을 느꼈다. 지방선거와 대선, 그리고 또 다시 총선과 교육감 선거에서 번번이 낙선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내 고민은 항상 무용했다. 나는 정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게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의미를 잃어갔다. 나의 '잃어버린 10년'은 그런 것이었다.
그가 고향마을로 돌아간 뒤 벌어진 그를 향한 수많은 해코지들에조차 나는 무심했다. 기록물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말이 우스웠다. 유시민과 이해찬이 소속없이 낙선하는 것을 보고 그러려니 했다. 김두관과 문희상과 이강철 등속이 무엇을 하고 지낼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이명박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그리워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쳤다. 박연차라는 '듣보잡'이 돈을 얼마를 주었네 마네 하는 말에도 그런가보다 했다. 이미 이광재와 강금원과 안희정이 옥살이를 했거나 그에 준하는 일을 겪었다. 노건평이 잡혀 들어갔어도, 노무현 본인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왔어도, 내게 그것은 하나의 정치쇼일뿐이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부스스하게 잠에서 깨어나, TV를 켜고 뉴스 보도를 보고 나서야 나는 별안간 슬퍼졌다.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고, 이윽고 무서워졌다. 그는 정말 그렇게 '바보'로 남게 되는 것인가.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든 기병은 적의 창과 극에 쓸리고 깎이어 쓰러지는 것인가.
주말 동안, 또 주중 동안 그 어느때보다 그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담았다. 서울시청과 서울역을 찾아,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고, 화내는 사람들을 보고,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 희노애락과 동상이몽에 공통으로 새겨진 의미와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백만이 넘는 사람이 그에게 헌화를 했다고 했다. 정치가들은 저마다 상주를 자처했다. 한때 그를 버렸고 한때 그를 비난했던 이들조차 그가 그립다고 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뒤, 권력의 그늘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름들은, 남상국과 정몽헌의 이름들과 함께 거리를 나뒹굴었다. 촛불이 켜졌다. 그의 장례가 있던 금요일, 광장은 그야 말로 '황제'를 기리는 '황제'였다. 그러나 그 일사분란함 속에서, 몇몇 이들이 몇몇 구호를 외쳤으나 메아리는 크지 않았다. 거리에서 앞서가는 '그'를 따르는 '산 자'들은 어느덧 불통하는 듯 보였다. 모두들, 죽은 노무현에게 답을 듣기를 원하는 듯했지만, 당연히도, 망자는 말이 없었다. 고인이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더 있었다면, 그는 투신하여 자결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다만 담배가 있냐고 물었고, 피우지 못해서 죽었다.
내 아버지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어린 시절 내가 부를 줄 알았던 유일한 흘러간 옛 유행가가 <사랑으로>였다.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눈물 짓고, 타는 가슴으로 햇살을 갈구하고, 그늘진 곳에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노랫말이, 익숙해서 내용없는 음향이 아닌 깊고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그때 그자리에서가 처음인 듯싶다. 광장에서 멀찌감치 서서 그 노래를 듣고 있을 때, 나는 담배를 물었다가 비벼 끄고는 정말 그가 그리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아 생전 그는 정말 '사랑으로' 살았던 것일까. 양희은과 안치환과 윤도현의 노래도 그저 푸닥거리같이 들렸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상록수>도 알맹이 없는 구호처럼 들렸건만 <사랑으로>만은 가슴이 아팠다. 지난 해 이맘때 거리를 가득 채웠던 풍자와 해학과 분노와 격문이 '사랑'을 말할 수 없게 해서 슬펐건만,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들려준 노래는 '사랑'이었고 또 '사랑'이었다. 네가 네 친구를 사랑하고 무슨 상이 있으리오, 너희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 그렇게 그는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나 그들은 알까. 예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그들이, '뱀의 자식'들인 그들이, 그 원수를 사랑하라던 말을 또 다시 망령되이 일컫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아프거나 슬퍼할 것도 없다. 그들은 항상 그래왔고, 그렇게 얄팍한 승리를 챙겨왔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아픔에도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있다면, 그 말을 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품고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관념과 정서가 있다면 다만 사랑일 뿐이다. 힘이 없고 돈이 없어서 욕망하는 것조차 욕망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조그만 손길, 그런 것이 사랑이다. 작년 이맘때 나는 이렇게 썼다--자신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며, 타인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하여 더 좋은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전망이 생기는 것이고, 진보가 있다. 우리가 성취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상상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싶다. 투쟁하지 않아도 되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맞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사랑을 말할 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섹스는 사치이며 모든 사랑은 공포다. 이러한 삶은 죽음의 유예이다--. 그래서 그는 죽어간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그는 살아서 의미를 전할 수 없음에 스스로의 몸을 던졌다. 그렇게 그는 다만 의미를 전하기 위해 자결했고, 그 의미는 상서롭게 퍼질 것이다. 그의 이름을 앞에 걸고 행할 모든 투쟁 속에서, 그는 다만 죽음이 아닌 삶으로,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거짓이 아닌 참으로 다시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 혼란하고 음습하고 답답한 시절은, 시간이 흘러 담백하고 또 치열했던 사랑의 한 시절로 적혀야 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바울과 요한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을 남기게 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인 것은, 윤회와 부활이 하나인 것은 다만 그것이 '사랑'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사랑이 환상이고, 그 사랑과 환상이 때로는 곡해되고 망령되어갈지라도, 우리는 다시금 당연한 문제에 대해 천착하고 기억해야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여 서로 소통하고 연민하는 가운데 진실이 있고 정의가 있고 예의가 있으며, 그렇게 세상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된다. 사람은 모름지기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며, 모든 시절은 마침내 사랑의 한 시절로 적혀야 한다. 사랑했노라, 행복했노라 말한 뒤에 이어 마땅히 사랑하노라, 행복하고 또 너도 행복하기를 바라노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이 시절도 사랑의 한 시절로 적힐 것이다.
속도가 빠른 개체는 운동 길이의 축소, 운동 시간의 지연, 질량의 증가를 갖는다.
그러나 세상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고, 인간은 그러하지 못하다.
관찰자가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있든지간에, 광속이 동일하게 측정된다는 사실은 현실 세계에서는 여전히 참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 너무도 느리기에, 운동 길이의 증가, 운동 시간의 감소, 질량의 위축을 경험하였다.
그러니 나의 2008년은 너무도 길고 고단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그리하였을 것이다.
올해의 사건
누구도 올해의 사건을 '촛불시위'로 뽑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입장과 이해 관계에 따라 그것의 의미를 여러 방식으로 해석하고 과장하고 축소하고 은폐하려 할 것이다.
나의 광장에 대한 기억은 추문으로 일그러져 있다.
거기에서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했다.
우리는 어찌 이리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그리고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올해의 인물
노바디 노바디 벗츄
기댈 사람도, 기대할 사람도, 믿을 사람도 없다.
올해의 영화 베스트 5
바시르와 왈츠를
월-이
다크 나이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톤먼트
외국 영화 가운데에서는 수작이 많았다. 아직 <고모라>나 <일 디보> 등의 이탈리아 영화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만약 그들 영화를 본다면 순위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저 영화의 목록들은 2008년의 베스트인 동시에 21세기의 베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은 수작들이다. 애니메이션의 신기원, 픽사의 최고걸작,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최대치, 21세기 최초의 걸작.. 가운데 <어톤먼트>는 나머지 영화들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올해 한국 영화는 정말 개판이었다. 돈이 말랐기 때문일까. <밤과 낮>과 <비몽>을 보지 못했지만, 내 편협한 취향 상 김기덕과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니 아마 순위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올해의 배우
히스 레져 (조커 <다크 나이트>)
올해의 책
올해는 올해 나온 신간 도서를 꾸준히 읽지 못했다. 최신간을 따라 가며 읽은 책은 아마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올해 나온 책' 가운데서가 아니라 '올해 읽은 책' 가운데 좋았던 책을 꼽자면,
정미경 단편 <내 아들의 연인>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
그리고 함석헌 <뜻으로 보는 우리 역사>
올해의 음반
travis <ode to j. smith>
underworld&gabriel yared <breaking&entering : ost>
erykah badu <new amerykah : part 1>
portishead <third>
dario marianelli <atonement : ost>
번외 : gnarls barkley <odd couple>, coldplay <viva la vida>, death cab for cutie <narrow stairs>, estelle <shine>, kanye west <808s & heartbreak>
올해의 트랙
dario marianelli <elegy for dunkirk>
portishead <we carry on>
yo la tengo <i feel like going home>
n.e.r.d <you know what>
jamie scott & the town <when will i see your face again>
*. 꽤 오랜만에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 다른 계정으로 할까 하다가 다 귀찮아서 그냥 티스토리로 돌아왔다. 계정 초대 안퉤님(http://tscoffee.tistory.com)께 감사의 말씀을.. 사실 다시 열어둔 지는 꽤 된 것 같다.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고 알리지 않아서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통 손님도 없고. 흠
*. 취업을 포기하고 있다가, 경기 급락으로 뒤늦게 취업 관련 정보를 검색 중. 저질학점과 무경력으로 갈 수 있는 회사가 없다... 거기다 이미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공채가 끝났다. 대학원도 접수가 마감되었다. 그리고 이런 암담함은 이제 시작이라며? 루비니인지 하는 사람이 쓴 경제 위기 관련된 글(이코노미스트를 보고 쓴 글이라고 하던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에 터널 끝에 광명을 볼 것이라, 라고 써 있는 구절을 빗대 '아 그것은 터널 끝이 아니라 마주 오는 기차의 헤드라이트야' 라고 했다고. 왠지 나 좀 그런 기분.
*. 요새 새로 생긴 취미는 자전거 타기이다. 유일하게 재미있게 하는 것 같다. 처음 몇번은 15킬로미터 정도를 달렸다. 주로 안양천에서 타는데, 쉬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대충 1시간이 조금 넘는다. 남쪽으로 가면 하안동 독산동 쯤에서 돌아오고, 북쪽으로 가면 성산대교쯤에서 돌아왔다. 그러다가 점점 거리를 늘려 남쪽으로는 석수역, 북쪽으로는 여의도를 찍는다. 20킬로미터가 조금 넘고. 시간으로 치면 1시간 반에 쉬는시간까지 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2시간 정도가 지나 있다. 그래도 아직 체중엔 변화가 없다. 하하.
*. 소설을 쓰고 있다. 사실 11월 10일 마감인 대산대학문학상에 응모하기 위해서 쓴 것이었는데, 결국 완성시키지 못했다. 연세문화상을 노려볼까 했더니 10월 31일이 마감이었다. 결국 나는 대학문학상은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고 대학생활을 마감할 모양이다. 마음이 묘하게 아프다. 완성이 되면 이곳에 올릴까 한다.
*. 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문제는 수능이 끝나고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결되지 못한 것 같다. 거참
작년 대선 직전 20대 뉴라이트 집회를 보고난 뒤, 진보개혁성향의 20대의 정치세력화 가능성에 대해 상상한 적이 있다. 당시 바긔와 그 주변 세력들이 집권할 것은 명약관화했고, 어느새 계급론은 세대론으로 둔갑했으며, 하여 '88만원세대'가 당해의 키워드가 되었던 만큼.. 20대들이 일종의 군중이 되어 거리로 나오는 일이 있으리라 짐작, 혹은 희망했던 적이 있다. '뉴라이트'를 의식적으로 택하는 20대는 엄밀한 의미에서 20대일 수 없다. 그들은 젊음의 유일한 가치인 세상의 잘못을 고치고 변화시키려는 희망 대신 세상의 거대한 힘에 순응하고 물질을 탐하며 정의를 밀수하는 집단이다. 하여 그들은 신세대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기성세대이다. 그러므로 나는 젊음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날이 있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명바기는 대통령이 되었으며 의회는 시정잡배들과 모리배와 사기꾼들로 가득 찼다. 사태는 예상보다 훨씬 더 암울하게 돌아가고 있다. 명바기는 고작 두 달을 집권했을 뿐인데, 그런데 너무나 많은 신호가 들려왔다. 대운하니 영어교육이니 하는 건 떡밥에 불과했고 그 밑으로 종부세 폐지, 상속세 폐지, 비정규직법안개정, 사학법재개정, 지방균형개발계획전면재검토, 법인세 감면추진, 노점상 전면단속, 출총제 폐지 확정, 금산분리 완화 확정, '노무현독트린' 전면재검토로 인한 대북관계경색, 그리고 소고기. 청와대 수석들과 내각은 명바기 정부가 '농민정부'인양 행세하고(나는 그들이 가진 것으로 밝혀진 농지가 이번 기회에 또 다시 가격이 오를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이 나라 국민들의 근시안적 경험론과 이기주의에 질려버렸고, 세상은 그런 것이니까. 심지어 신정아가 살던 집값이 보도 이후 폭등한 것을 보라) 바긔가 한 일 중에 잘한 것이라고는 의료보험당연지정제 폐지를 재검토한 것뿐이고, 사실 그나마 2원화 운운이니 백지화라고 하기도 어렵다. 박근혜가 잘한 것이라고는 대운하정책에 반대한 것뿐이듯. '탄핵하자'는 내용의 현실성 없는 온라인 서명운동은 3주간 10만명을 모은뒤, 불과 최근 이틀만에 40만명을 더 모았다. 그 서명운동의 비현실성 탓에 수주 전에 그것을 보고는 웃고 말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든 자신의 분노와 불안을 표현하고 싶을 따름인듯하다.
조심성없는 말들과 말들의 전쟁이 '3초 미디어'(성찰없는 quote들, 3초 분량의 그 편재하는 메시지들ubiquitous messages)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 정부는 그것을 괴담이라고 하고, 언제 사람이 100% 안전하게 살고 있느냐고 하고, 현 정부는 노무현 정권(공식 논평에서 '정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것이 정부 공보실에서 할 짓인가)의 설거지를 하고 있노라 하고, 이번만 봐주면 은혜를 갚겠다 한다. 나는 민족주의는 좋아하지 않으나 친일청산에 불쾌감을 표한다거나 실용주의 따위가 금과옥조인양하는 것도 우습다. 나는 경제학을 잘 모르지만 명바기가 나보다 더 모른다는 것은 안다. 그러한 와중에 인터넷 공간은 사실과 비사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공포와 혼란을 촉발시키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메시지와 모든 포스트는 격문이다. 나는 이 봉기가 반가운 한편으로 슬프다. 투쟁의 시절은 뜨겁고 감격스러워보이지만 사실상 언제나 그것은 슬픈 이야기이다. 나는 지난 80년대를 미화하려는 그 어떤 시도들에 대해 의심한다. 그 시절을 정말 치열하게 산 인간들은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없다. 그것이 객쩍게나마 승리한 기억이었고 성취한 기억이었을지 몰라도 그것은 분명 아픈 기억이고 반복되서는 안되는 역사이다. 나는 세상의 말들에서 격문이 아니라 연서를 보고 싶다. 자신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며, 타인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하여 더 좋은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전망이 생기는 것이고, 진보가 있다. 우리가 성취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상상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싶다. 투쟁하지 않아도 되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맞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사랑을 말할 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섹스는 사치이며 모든 사랑은 공포다. 이러한 삶은 죽음의 유예이다.
나는 한번도 스스로 운동권인 적이 없고 타인의 삶을 위해 내 삶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것이 한없이 부끄러웁고 하여 오늘 밤에도 바람은 내 별을 스치고 생채기를 낸다. 나는 다만 또다른 별을 향해 손을 뻗어 그 별자리를 서툴게 매만져 본다. 손을 뻗어, 영웅을 만나고 싶다. 나는 부족하고 도량이 없으니, 다만 누군가 영웅이 나타났으면 하는 허황된 생각을 한다. 나는 위대한 독재자라면 민주주의를 버려도 좋다고 생각할만큼 이 현실에 속이 상한다. 그러고서는 또 어영부영 살아도 행복하고 싶을 따름이겠지. 그저 음악이나 듣고 술이나 마시며 헤헤 하겠지. 나는 이렇게 살아도 좋은 걸까. 그러나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면 무엇이 달라지나. 나는 그저 진정한 철인 영웅들을 한번쯤 보고 싶다. 내가 아니라는 걸 아니, 내가 아니어도 좋다.
해마다 3월이면 그래도 제법 의욕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 '해볼만 하다'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나 할까. 나는 몸이 느린 사람이지만, 마음은 퍽 기민한 편이라 변화에 잘 적응하는 편이었고, 3월이 되면 맞닥뜨려야 하는 작지만 핵심적인 변화들이 오히려 반가울 때가 있었다. 하여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고, 새로운 일도 벌이곤 했고, 새로운 기분으로, 새롭게 살고픈 때가 많았다. 나에게 진정한 '연도'는 사실상 '학년도'였던 셈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러한 '당찬' 시작이 끝까지 이어지곤 하는 것은 아니어서, 여름이 다가오면 점점 헛손질이 많아지고 늘어지는 때가 많아 방학만을 기다리곤 했다. 9월이 되면 식어가며 노곤해졌고 겨울이 되면 움츠러들어서 보통 11월이 되기 전에 모든 일에 손을 놓았고, 그런 굼벵이 짓은 2월까지 이어져 2월이 되면 한없이 우울하곤 했다.
그래도 3월이 되면, 두꺼운 옷들을 세탁소에 맡기고 보일러 밸브를 잠그고 햇볕이 따사로운 날은 나들이 계획도 잡고 하며 제법 분주해서 달뜨던 날이 많았는데.... 올해는 왠지 아직도 겨울이 이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아침저녁으로 맞는 바람은 왜 그리도 차가운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왜 이리 힘겨운지. 목이 아프고 등이 아프고 눈이 따갑고 배가 아프고...
이번 학기에는 전공 수업은 1개만을 듣고 있고, 2개는 신입생들이 듣는 과목을 듣고 1개는 경영학과, 2개는 신방과 과목을 듣고 있다. 4학년쯤 되면 시쳇말로 '내공'이 있어서 잘해낼 줄 알았더니 오히려 1, 2학년때보다 더 헤매는 기분이다. 성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과제와 시험이 몇 번 있었는데, 준비한다고 한 것이 '나홀로' 최하점이다. 아예 준비를 안해 가거나 제출하지 않은 사람 바로 윗줄에 있는 그런 점수.. 사실 이러한 류의 성적은 (출석점수를 제외하고는-_-)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라 받아들이기가 무척 곤혹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러려니 하고 있고.
그리하여 한편으로 오히려 우아하게, 씩씩하게,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다짐을 되짚어보고 있다. 그래봤자 세상을 이길 수 없고 내 사사로운 욕심은 그대로일테고 세상의 그 수많은 불행과 비극은 똑같이 되풀이될테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것의 성공과 실패의 확률을 계산하고 내가 들일 비용과 소출을 따져보고 하는 짓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때, 마치 광인처럼 그냥 들입다 박는 자들이 세상을 이끌고 있고. 그것이 설혹 속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수많은 속임과 속임의 혐의를 뛰어넘어 왜 사냐건 웃는 것이 그저 인생인 것을. 그저 가끔 만나는 마법같은 순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하는 말들, 소중한 것이 유일한 이유인 소중함, 나아지는 것도 있긴 하더라는 곡진한 희망.. 그런 것이 인생인 것을.
이제 4월이니까, 거짓말처럼 모든 게 나아지겠지. 원래 인생의 낙은 거짓말처럼 왔다가 농담처럼 가곤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