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이석호 홈페이지에서.
홍대앞에, 산울림 소극장쪽에서 홍대입구역쪽으로 내려가는 길(그러니까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는 그 골목-_-) 끝자락에 스트레인지 프룻이라는 가게가 있다. 재즈에는 조예가 없었던지라, 지인들이 좋아하는 그 가게에 서너 번 드나들 쯤에야 칠레산 값싼 와인잔들 사이로, 혼신을 다해 노래한 50년대 풍의 재즈 넘버 하나를 들었다. 가사인즉슨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과일이 달리네"였고, 그제서야 아, 이 숍의 상호는 이 노래에서 빌렸구나 싶다가. 조금 있어 화장실에 가니 그 노래의 가사가 그래피티 되어 있더라.
'이상한 과일이 장대같은 나무에 대롱 매달려 있네' '검은 몸이 남쪽 바람에 휘날리네' 이런 얘길 써놓은 걸 보고 아 그런가..하고 있는데, 가게를 나갈 때 보니 중앙에 있는 책꽂이에 'strange fruits'라는 책까지 한 권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그 노래는 빌리 할러데이의 노래였는데, 빌리 할러데이라고 해봤자 '아임어풀투원츄'정도밖에 몰랐던지라.. 가사들의 맥락을 보건대 '낯선 과일들'은 아마 남부의 핍박받던 흑인을 노래한 게 아니었을까... 하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그런 것이다. 흑인 노예들을 처형한 뒤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것이 당대의 풍습이었단다.
처음 그곳에서 받은 인상은 몇 가지 예술학 관련 서적들과 세로 쓰기로 되어 있는 굉장히 낯선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예컨대 <짜라투스트라..>도 아니고 <인간적인..>도, <비극의 탄생>도 아닌 니체의 생소한 책, 그것도 세로 쓰기), 그리고 거울에 큼지막하게 써 있던 War is over(아마도 존 레넌의..) 정도였는데, 이번에 마주친 '핵심'을 목도하고 나자 왠지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왜냐하면, 그곳을 자주 찾는 손님들 가운데에는 백인 남성들이 꽤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는 빌리 할러데이 시절이 아니므로, 인종문제에 대한 그저 적당한 개선과 적당한 실패가 남았을 뿐이라고 얘기할 수 있으며, 이는 나아가 '반문화'가 하나의 문화자본주의적 취향으로 공식등록되어 있을 뿐...이라는 기분나쁜 자기인식을 그순간 확인했기 때문이다.
홍대 놀이터 주변의 한 티셔츠 행상은 지미 헨드릭스나 커트 코베인, 심지어 체 게바라나 마오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팔고 있었고 지나가던 남자는 나이키의 신발을 신고 그것을 샀다. ain't it cool..? 그런 식으로 포섭자적인 시각을 확대하자면 난 좌파적인 논변 역시 사회과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자기애를 확립하려는 일종의 낭만적 서사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차라리 솔직해지자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그런데 그런 솔직함이란 결국 내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공격에 변명도 못하니까 그렇게도 못하고. 여튼 사회학,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사회,를 이길 수는 없단 생각이 자꾸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