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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9 쇼핑 갔다 오십니까 1



 며칠 전 영화를 보고 왔다
. 영화 구경을 하러 갔다기보다는 극장 구경을 하고 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폭이 32m에 달하는 초대형 스크린은 과연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자랑했다. 지난 916일 개장한 멀티플렉스 체인 CGV의 새 상영관 ‘아트리움’ 이야기다.

더욱 압도적인 것은 상영관이 아니라, 상영관이 입점해 있는 대형 쇼핑몰 ‘타임스퀘어’다.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CGV 영등포점까지 가는 길은 이 타임스퀘어를 가로지르는 것이 가장 가깝고도 멀다. CGV입점 매장 가운데 영등포역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소나기 효과(shower effect) 고려한 배치인 셈이다. 쇼핑몰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동안 둘러보게 되는 실내 풍광은 대단히 직관적이다. 공간의 중앙을 비운 아트리움 구조이기 때문이다.

흡사 성채나 다름없는 거대한 건축물인 타임스퀘어의 연면적은 약 37만㎡이다. 대단한 규모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존 영업 중인 다른 ‘UELC(Urban Entertainment&Life Center)’의 크기도 만만치 않다. 시초 격이라 할 수 있는 삼성동 코엑스몰(호텔, 백화점 포함 총 29만㎡)이나 용산역 아이파크몰(28만㎡)도 광활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보다 비교적 작은 왕십리역 비트플렉스도 10만㎡에 달한다. 평범한 백화점의 2배다.

이들 거대 쇼핑몰은 공통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혹은 기차역)을 끼고 있다. 이들 쇼핑몰뿐만 아니라, 서울시내 주요 지하철역은 대개 크고 작은 복합 쇼핑센터나 백화점이 연결되지 않은 경우를 찾기 어렵다. 이러한 역세권 상점은 대개 지하철을 일상생활을 일부로 영위하는 중간 계급을 겨냥한다. 교통시설과 상업시설을 연계하는 대대적인 토목공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일반 대중의 소비 진작이다.

사실 이러한 광경은 다분히 근대 일본의 것을 닮아 있다(이것이 우리의 근대가 일본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서울역의 갤러리아 백화점, 영등포역의 롯데백화점, 용산역의 아이파크백화점을 비롯해, 지방 도시 기차역마다 자리한 백화점들은 일본의 전통적 ‘터미널 데파트’와 비슷하다. 철도와 백화점은 근대화의 가장 대표적인 두 표상이며,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을 통해 공고한 결합을 이룬 것이다. 산업사회 혹은 대중사회를 지탱해주었던 표준적 대량 생산과 소비 체제 형성 과정에서 철도가 혈관의 역할을 했다면 백화점은 허파였던 셈이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선 대형 쇼핑몰들을 두고 ‘근대적인 건축물’이라고 하는 것은 어딘지 이상해 보인다. 서구적 근대 세계에서는 생산을 위한 노동의 영역, 상품 거래를 위 한 시장의 영역, 심미적 쾌락을 위한 문화의 영역이 제법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업무지구와 상업지구, 주거지구와 문화지구의 구획이 명확했다. 공단은 공단대로, 베드타운은 베드타운대로, 도심 상업지역은 상업지역대로 개발되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종로3가나 충무로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관 상영관을 찾아가야 했다.

티플렉스와 대형화된 쇼핑몰의 출현으로 서울의 풍경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강변역과 동서울터미널을 끼고 등장한 테크노마트와 CGV, 코엑스몰과 메가박스의 등장은 일상적인 쇼핑과 문화생활의 영역을 하나로 묶어 냈다. 대표적인 유통기업인 롯데가 영화 배급 사업을 벌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UELC는 바야흐로 상업적 기능을 넘어, 도시 생활을 보다 폭넓게 창조해낸다. 쇼핑센터에 진열된 상품의 스펙타클과 스펙타클을 판매하는 문화산업의 교배는 새로운 공간과 제도, 환상의 세계를 낳았다. 비트플렉스의 조준래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학 시절 공부만 하지 않고 주말이면 도시 곳곳에 다니며 문화와 양식을 배웠다. 그때의 경험이 모두 비트플렉스를 구성하는 아이디어가 됐다. 비트플렉스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창작 예술품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물론 대형 자본이다. 말하자면 서울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은 서울시청이 아니라 거대 자본과 기업가다. 코엑스몰을 운영하는 코엑스는 한국무역협회에서 설립한 회사다. 아이파크몰과 타임스퀘어도 모두 거대 기업 자본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의 실패는 상징적이다. 행정기관이 대형 상업시설을 직접 조성하고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었다. 가든파이브는 엄청난 물량의 TV광고를 통해 자신이 ‘대한민국 문화특구’임을 강조했다. ‘문화 특구’라니? 시장을 행정 구역으로 여기는 이 구호는 포스트모던한 쇼핑몰과 전근대적인 관리 행정을 결혼시키고자 했던 기묘한 시도의 방점이다. 가든파이브를 둘러싼 잡음은 입주가 약속되었던 청계천 상인들이 행정기관에 기대하는 정치적 공정성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조화는 늘 그렇듯 매끄럽지 못하다.

 강남 일대를 뒤덮은 주상복합건물과 더불어, 이러한 포스트모던 건축물들은 사회의 경계를 지운다. 우리는 거주하는 동시에 소비하고, 소비하는 동시에 사유해야 한다. 쇼핑몰과 주상복합건물에는 상층회로와 생존회로가 경계를 잃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타임스퀘어와 아이파크몰에는 수많은 하이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입점해 있다. 기존 영등포 상권에 명품에 속하는 브랜드라고는 버버리가 유일했다. 용산 아이파크몰은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 지역에서도 멀지도 않다. 이들 쇼핑몰에서 가까운 곳에는 여전히 집창촌이 있다.

 

도시의 공기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인구 1천만의 거대도시 서울의 공기는 인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가? 새롭게 등장한 UELC와 주상복합건물은 시민과 도시의 연결을 끊고 인간을 포스트모던 쇼핑객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여기에 시민성이나 인간성이라는 개념을 들이밀 여지가 없다. 공급자의 필요에 의해 정교하게 배치된 상점들 사이를 거니는 것은, 한가로운 산책이라기보다는 몽유에 가깝다. 이러한 스프롤링(sprawling)은 역세권 상점뿐만 아니라 기존의 번화가도 집어삼키고 있다. 홍대와 신사동에 들어선 ‘힙플레이스’들은 과연 문화적인 해방구인가? 삼청동과 가로수길은 커피를 마시며 친구를 만나 담소하는 생활영역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일탈의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서울에 산다는 것은 곧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 청담동의 상점 사이를 거닐기 위해서는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입장료를 지불할 수단이 없다면 추방되는 소도이다.

  독재 시절 서울은 베를린 장벽과 포츠담 광장으로 대표되는 베를린과 비교되곤 했다.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속의 외부’인 미군부대의 규모는 세계 최대였다. 개발 이후 서울은 강남, 분당, 일산을 위시한 관치 건설 사업으로 탄생된 개발도상국의 공룡도시였다. 90년대 서울은 출근길에 허리가 동강난 한강다리와 피크타임에 뜬금없이 무너진 백화점으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21세기 초입의 서울. 코엑스몰과 아이파크몰 타임스퀘어는 깃들 곳이 없는 막막한 성채다. 소설가 김훈의 표현대로, 지금 서울은 어느 누구의 고향도 아니다. 서울은 만인의 타향이다.

 


Posted by toto le he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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