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 마이크로 블로그와 같은 뉴미디어의 최신 버전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을 반민주적인 국가기구의 통제와 고전적인 자유권 수호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을 것이다. 그것이 정보 기술의 잇따른 진보와 그로 인해 도래할 새로운 합리적 공론장의 이념과 기술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순간 적절한 규제 모형이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을 오가는 건전한 논쟁으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가만히 따져 보면 기분이 개운치 않다. 한국 언론이 지난 시절 경험한 언론통제의 역사와 민주화 이후 극적으로 쟁취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념의 갈등이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반복되며 기형적인 형태로 인각되어 있는 인상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체계 통합의 메커니즘과 사회 통합의 메커니즘이 서로 불화하며, 도구적 합리성의 전략적 행위와 의사소통 합리성을 통한 공론장 작동은 여전히 서로를 배반하고 있다.

인터넷과 뉴미디어가 바투 다가온 6월 지방 선거나 앞으로의 정치 이벤트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 예상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선거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의 성격에 따라, 때마다 다이내믹하게 제기되고 회자되는 이슈에 따라, 정부 규제나 시민사회의 조응에 따라, 또 기존의 주류 저널리즘이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메시지들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뉴미디어가 갖는 정치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역량이 위축될 수도 있고 극대화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영향이 민주주의에 긍정적일 수도, 또 부정적일 수도 있다. 인터넷이나 뉴미디어에 호의적인 주장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지방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정치적 과정이다. 지방 선거는 민주주의의 위기, 민생의 위기, 국토와 생태의 위기, 도덕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의제를 상향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다양한 의사소통 도구는, 지금껏 말해지지 않았던 것을 말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열어준다, 중앙 정부와 미디어가 다루지 못하는 지방의 의제, 생활의 의제, 시민의 의제를 다루는 것은 오로지 시민에 의한 것이며 시민의 것이며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라고.

그런데 가만히 따져 보면, 인터넷과 뉴미디어에 대한 정쟁은 사실 그 파급력에 얽힌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동상이몽으로 읽히기도 한다. 뉴미디어를 통해 누가 정치적인 이득을 얻는지의 문제로 요약되는 것이다. 보수 정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은 뉴미디어에 친숙하지 않으며, 뉴미디어에 친숙한 세대 혹은 계층은 진보 정당에 호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 경험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2002년 우리 대선과 2008년 미국 대선을 보라). 우리네 정치권이 대표적인 마이크로 블로그인 트위터에 보내는 관심과 사뭇 상반된 반응도 그런 순진한 인식에서 크게 멀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트위터가 갖고 있는 정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매력(혹은 함정)이다. 트위터는 다른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뚜렷하게 구별될 만큼 더 뛰어난 선전 도구이거나 동원 수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트위터를 포함한 마이크로 블로그의의 특징은 보다 더 ‘유비쿼터스’하다는 것, 즉 시공간적 제약에서 더욱 더 자유롭다는 것과 더불어, 짧고 단순한 메시지가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파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트위터에 대한 정치권의 패러다임은 따라서, 강하고 짧은 메시지의 즉각적 반복을 통한 정치적 선전 기계, 혹은 폭넓은 확산능력을 통해 기회구조를 창출하는 정치적 동원 기계라는 시각인 듯하다. 전반적으로 트위터에 미지근한 여당의 입장에서 본다면 뉴미디어를 통한 자기 당의 정치 캠페인의 효과는 높지 않지만, 야당의 유권자들과 지지자들은 트위터의 동원 효과에 포섭될 확률이 높다. 반대로 트위터에 열정적인 정치인들은 트위터가 적은 거래비용으로 선전과 동원에 필요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패러다임이 공히 보여주듯, 트위터가 제공하는 의사소통 방식은 사실 뉴미디어와 네트워크사회에 대한 긍정적 이념형들이라 말할 수 있는 ‘참여 민주주의’ 혹은 ‘숙의 민주주의’ 등이 상정하는 공론장 모형과는 이질적이다. 다소 거칠게 말한다면, 마이크로 블로그는 집단 극화나 사이버 캐스케이드(cyber cascade)로 흐르는 기술적 유인 요소로 기능할 공산이 높다. 다량의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 메시지들이 정치적 숙의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트위터에 대한 정치권의 접근은 의사소통 행위를 지향하고 있다기보다는 전략적 행위를 의도하는 것처럼 읽히며, 효율적인 메시지 생산 수단을 갖고 있는 쪽은 어디까지나 시민이 아니라 정치 거대 기업과 정치 정당이다. 특히 선거철처럼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해지면 트위터를 통해 전해지는 정보의 범람은 오히려 역정보로 기능하게 되고, 흑색 선전과 네거티브 캠페인이 횡행할 여지가 높다. 정부의 트위터나 UCC에 대한 규제의 표면적인 근거 역시 여기에 있다.

물론 트위터에 대한 정부의 무차별적이고 일방적인 규제는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적 공론장’의 자율적 규약에 심각한 훼손을 끼칠 여지가 있다. 네트워크의 규약은 중앙의 정보통제자가 없는 개방, 참여, 공유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과도 다르지 않다. 개인이 공적 의제를 숙의하고 토론하기 위한 성찰적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 인터넷과 뉴미디어 환경은 보다 자율적인 환경을 필요로 한다. 강제 없이 일치를 보는 논증적 토론의 합의 수립력이라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합리성에 대한 기본전제에서 볼 때, 뉴미디어 환경에 대한 규제는 최소화되어야 한다. 일반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대한 일반화된 규제는 일차적으로 효율적이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규제가 완전히 철폐되고, 표현의 자유가 극대화된다고 해서 네티즌들의 정치적 숙의와 참여의 수준이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02년 대선․2004년 총선과는 달리, 2007년 대선․2008년 총선에서는 인터넷의 정치적 영향력이 뚜렷하게 관찰되지 못했다. 이는 선거법 등이 정비 되면서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는 점에 기인한 바도 있지만, 2007년과 2008년 당시 이슈가 경제 문제에 집중되면서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이 만연했다는 점에 더 큰 방점이 찍힌다. 한편으로는 인터넷 정치 공론장의 지형이 대단히 정파적으로 변모했다는 사실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트위터뿐만 아니라, 이미 사이버스페이스를 가득 매운 격문과 선전 슬로건들의 침략은 이미 우리의 인터넷 환경을 ‘공론장’이라기보다는 ‘전장’이라 부르게 만들고 있다.

시민사회가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를 견제하기 위해 보여준 지난 2년간의 정치적 성숙도는 인상적이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일련의 정치적 집합 행동이 과연 유효했는가에 대해 긍정하기는 어려운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입에 쓴 말이지만, 우리 시민사회는 공공성에 대한 폭넓은 가치 합의와 상식에 입각한 의사 결정 과정은 결여한 채, 다만 해방 정치의 의제를 감정적으로 표출한 굿판을 벌였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반성에 이르곤 한다. 정치적 무기력과 공론장의 진공 상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는 이번에도 자칫하면 무의미한 호명들만 반복하고 정보의 과부하만을 가중시킬 공산이 크다.

기술문명에 관한 인문사회과학의 문화적, 윤리적 판단은 그 기술이 가져온 사회의 변동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기술, 그리고 설명과 그에 따른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기술문명의 발달은 그에 따르는 인간행위의 특정 양상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의식적 침략자로 기능한다. 트위터나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이다. 규제나 규약은 권위적인 통제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보의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임시 방편적 지배(adhocracy)로 기능할 수도 있다. 참정권의 확대를 통해 자유권과 사회권의 확대를 예비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SNS와 마이크로블로그라는 기술적 요인만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유토피아적인 발상을 버릴 필요가 있다. 결국 필요한 논의는 인터넷이 없던 시대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정밀하고 신중한 자세로 다양한 의견의 참조와 합의 수립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공론장 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트위터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가 아니라, 트위터를 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적 원칙과 의사 소통 수행 능력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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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신문 4월호에 기고
시ㅋ망ㅋ

* CCL 플러긴이 맛이 가서... 혹시나... 본 글의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본인에게 있으나, 2차 저작권은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문국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Posted by toto le he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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