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최신시사상식 2008. 2. 4. 01:05

 2월쯤 되면 이제 슬슬 따뜻해진다. 품이 커서 올 해엔 수선해서 입어야지 했던 코트는 결국 한 번도 입지 않았고, 남은 한 달동안도 입지 않을 것이다. 비척대며 밖을 누비는 하루하루 나는 문득 오늘 입은 옷이 세탁을 하지 않고 며칠째 입는 것인지 완전히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상한 일이다. 예전에는 세탁을 한 뒤 같은 옷을 세번까지만 입었고 더러는 두번까지만 입는 우아한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옷인가는 작년 추워질 무렵에 사서 지금도 세탁하지 않았다. 왜일까. 무엇이 변한 것일까.

 아니, 애초에 나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이 블로그만 해도 그렇다. 대체 나는 왜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일까. 이런 고민은 늘 있어왔지만, 그건 결국 '나 왜 살까' 같은 우스운 질문이었고 그래서 무용했다. 항상 모든 '이유없는' 행동의 밑바탕에는 꿈을 해석할 때 쓰는 방식과 비슷한 보이지 않는 욕동이 있기 마련이고,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쨌든 여전히,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것들은 계속될 것이며, 매일매일 가슴이 멎을 듯 불안하거나 혹은 그것을 해소할 수 없어 무력하거나, 혹은 두 가지 다 이겨내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짐짓 취하는 초연한 자세로 이렇게 스물여섯이 된 뒤,

 그 한 해도 한 달이 다 지났다. 그 8%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지나갔다는 것이 무척 떫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대기에는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내 삶의 맛이다.


 1월 중에 본 영화들은 <미스트> <클로버필드> <에반게리온:서> <아버지의 깃발> <라 비 앙 로즈> 등등이었고 읽은 책은 <리베로를 꿈꾸는 비평> <텔레비전의 종말>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 <나쁜 사마리아인> <나 그리고 그밖의 것들> 등등이었고.. 자주 가는 싸이트는 청와대, 자주 보는 TV채널은 국회방송이며 꾸준히 본 TV시리즈는 <웨스트윙> 첫시즌이고 토익공부를 하는둥마는둥했으며 '1800급수 한자쓰기'에서 2자 정도 외웠고 경제학 공부는 '경제기사 300개' 따위의 상식책으로 때웠으며 역삼역 근처의 맛집 두곳을 다녀왔고 오디오 Y케이블과 전자사전의 어댑터를 바꿨고 2기가짜리 CF메모리카드를 샀으며 만성적인 배앓이에 괴로워하고 있고, 그 와중 나는 어느날 내 방앗간 같은 세상과 불온한 방식으로 연루하며 내 표정을 굳게 만들었던 바도 있다.

 
내 방은 한 걸음 뒤는 덥고 한 걸음 앞은 추운데 9살때 산 침대의 매트리스는 좌우의 균형이 맞지 않아 등허리가 삐걱거렸고 더러 아프고 쑤셨고 나는 아직 담배를 끊지 못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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