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fighting it

내가 쓴 것 2008. 2. 4. 00:49


 오늘날 소위 ‘미국 정신’의 기초는 메이플라워와 독립 전쟁의 역사에서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인디언과의 전쟁과 골드 러쉬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핍박받은 청교도들이 자신의 윤리와 생존을 지키기 위해 대양을 건너온 것은 얼핏 들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나 금맥을 찾아 서쪽으로 떠나고, 마차와 권총, 보안관과 범죄자들을 만들어냈다. 어느 쪽이든 '파이오니어'이고 '프론티어'인 것은 사실이겠지만, 둘이 다름은 자명한 일이다. 다른 방식으로 질문해 보자. 인간 세사의 귀결은 윤리와 생존의 문제로일까, 아니면 황금의 문제로일까? 그리고 덧붙여, 죽어간 신대륙 원주민들의 목숨은 어느 담론의 렘마로 희생되었나?

 먹고 사는 문제, 거기에 얽힌 불평등은 인류의 역사와 같다. 당장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정치 폭동을 보자, 그 권력을 잡은 자들이 좌파이든 우파이든 간에 결국 민중들은 굶고 그래서 소요와 봉기가 일어난다. 불평등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것이며, 다만 그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용했을 뿐이다. 고대 노예제로부터 현재의 보통 선거에까지, 이러한 문제들은 다만 인류 문명사에 있어서 ‘차이의 차이’로 항존해 왔다. 다만 기술 문명의 발달, 정신 문화의 변화에 따라 불평등을 생산하는 기제가 끊임없이 다변화했던 것 뿐이다. 예컨대 고대에는 타고난 힘이, 중세에는 혈통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유전자에 따른 경제적 능력이 한 개인의 태생적 우월함을 설명하는 각기 다른 ‘문명적 양상의 반영’일 따름이다.

 소위 지식 정보 사회, 포스트모던 문화의 시기, 유목하는 주체의 시기, 시장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에서 이러한 격차는 새롭지 않으나 새롭게 제기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제 모든 사회문제는 민주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로그인’하여 시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보적으로 평등한 사람들(대중이든, 다중이든, 어중떠중이든)이 만들어내는 정보-평등한 집단무의식, 공동체의식의 왜상들은 보다 치열한 독해를 요구한다. 고도의 정보통신 기술이 결정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류의 집단 지성/행위의 특징은 (테크노크랏이 그러하듯) ‘한 개인의 윤리성’의 불가능성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많은 경우 첨단기술일수록 그것은 더더욱 ‘자연스럽게도’ 윤리성과 성찰성의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하는듯한 인상은 나만의 것일까. 기술문명의 발달은 그에 따르는 인간행위의 특정 양상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의식적 침략자이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성과는 ‘오늘’에 이르러,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빠르게 시장에 안착하여 대중화되고 일상화되며 자연시된다. 인터넷시대의 특징은 그것이 ‘네트워크’간의 연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새로운, 더욱 외로운 ‘개인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 접속창구인 ‘퍼스널’ 컴퓨터와 모바일은 일상생활에서 개별적인 사용자들을 파편화시킨다(서로 마주 앉아 각기 다른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는 커피숍의 풍경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우리는 때때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공존하며 소통하는 것까지만, 그러나 가끔씩 그것은 착각이었으며 인터넷과 모바일은 간혹 ‘퍼스널 미디어 센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 미디어로부터 전달되는 메시지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항상 공존, 융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술문명에 관한 인문사회과학의 문화적, 윤리적 판단은 그 기술이 가져온 사회의 변동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기술, 그리고 설명과 그에 따른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인터넷의 사회사를 얘기할 때, 우리가 간혹 우왕좌왕하곤 하는 것은, 80년대 인터넷서비스제공자들이 처음 인터넷을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인터넷-미디어라는 테크놀로지가 일상 생활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인문사회과학의 공론장에서 충분한 담론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가 현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학자의 그러한 반문은 무능에 대한 소치일지도 모른다. 테크놀로지가 현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인터넷 사업자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테크놀로지의 자연화, 일상화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시될 것이고, 그에 따른 더욱 많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우리는 기계들과 함께 ‘진화’해야 할까, 아니면 잠시 지체해야 할까? 선택하기 나름이겠고, 그러나 또한 선택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더욱 부지런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비약적인 발달은 이제 ‘공간’의 문제를 시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산업시대의 정치가 증기기관과 가속페달의 공간의 압착속에서 가속화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시간과 싸워야 한다. 인터넷은 절대속도로 움직인다. 인터넷 신대륙의 골드러시의 속도는 예전보다 빠르다. 인터넷이 어떻게 영토화되고, 그것이 어떻게 가시화되는지, 그리고 그 시공간의 압착, 혹은 시공간의 무화가 어떤 슬럼과 어떤 엔트로피를 만들어내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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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학기에 썼던 레폿을 시리즈로 묶어 리비전하는 것으로 밀렸던 블로그 포스팅을 재개 -_-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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